간호사는 바빠 보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뜨려고 했다.나는 급히 그녀를 붙잡듯 물었다.“혹시 누가 낸 건지 아세요? 결제한 분이 혹시 이름을 남겼나요?”외할머니의 치료비를 신경 쓸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내가 기대할 이유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간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이름은 안 남기셨습니다. 안경을 쓴 잘생긴 남자분이셨는데, 다른 볼일이 있었는지 결제 후 곧바로 가버리셔서 이름을 물을 틈도 없었습니다.”나는 손에 힘이 풀리듯 내려놓았다.간호사는 돌아서서 떠났고, 나는 그 짧은 순간의 실망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다른 한 사람이 떠올랐다.‘안석현?’안석현은 선이 뚜렷한 외모에, 늘 안경을 쓰고 다니며, 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나를 항상 잘 챙겨주는 평소 모습대로라면 십중팔구 그가 맞을 것이다.‘하지만 석현은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나도 곧 깨달았다. 안석현은 이전에도 여러 번 나를 도왔고, 매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그랬을 것이다.‘참...’한숨을 삼키고 외할머니를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집 안은 여전히 난장판이었고, 온몸이 너무 피곤해 집을 치울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러 백화점으로 나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석현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골랐고, 회사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어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병원 앞에서 안석현과 마주쳤다.“석현아!”내가 먼저 그를 불렀다. 석현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하 팀장님?”“지금 날 놀리는 거야?”그가 이렇게 웃으며 나를 부를 때마다 묘하게 불편했다. 사실 안석현의 경력으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전혀 나보다 뒤처지지 않기 때문이다.“같이 들어가자.”나는 안석현의 뒤를 따라가며,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석현은
진윤아는 내가 아까 무시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보조개가 살짝 드러나는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나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여기서 기다릴게요.”“남은 원하지 않는데 굳이 강요하지 마.”문지성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 나를 한 번 힐끔 본 것 외에는 시종일관 그의 시선은 진윤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남자에게서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까 문지성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가워서 내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였다.‘혹시 어젯밤 내가 이 사람을 다치게 한 것 때문인가?’‘사실, 이 사람에게 사과와 감사의 말을 해야 하는데...’그러나 문지성과 발랄한 진윤아를 보고, 나는 알아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아니에요. 사실 동료랑 약속이 있어서 얘기할 일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안석현?”문지성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냥 안석현이라는 걸 인정하면 이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걸 피할 수 있을까...’“어머나!”진윤아가 하며 한껏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안 대리님이에요? 두 분이 정말 사귀는 거예요?”“언니, 저한테만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같은 여자잖아요, 저 절대 말 안 퍼뜨릴게요. 사실 전부터 안 대리님이 언니 좋아하는 거 저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두 분이 출근할 때도 같이 왔잖아요. 보아하니 좋은 소식이 곧 들려오겠는데요!”그 순간,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솔직히 이 두 사람과 확실히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안석현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아니에요, 사실 여자 동료인데, 아까 전화받고 일이 생겨서 아직 못 올라온 거예요. 그래서 그냥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마침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드디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윤아는 내 팔을 덥석 잡으며 열렬히 말했다.“같이 타요, 저 계속
“대체 어디서부터 문 대표님을 오해하시게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모르시겠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건, 소문이나 스캔들 덕이 아닙니다.”‘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나를 모함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이런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나뿐만 아니라 안석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거야.’문지성은 냉랭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래야 할 겁니다.”그 한마디가 나의 분노를 가볍게 자극했다.그때 마침 진윤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두 분 왜 그러세요? 처음부터 갈등이 있던 건가요? 혹시 전에 아는 사이였나요?”“아니.”“처음 뵀어요.”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대답하자마자 서로 고개를 돌렸다.‘차라리 내가 문지성을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어릴 때는 다들 철없는 남자를 사랑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정말 눈이 멀었던 게 분명해.’...진윤아는 나와 문지성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얼굴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문지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하 팀장과 아무 사이도 아니야.”그 한마디에 진윤아의 얼굴에 보조개가 패였다. 진윤아는 문지성의 옷소매를 잡고 애교를 부렸다.“그런 말 하지 마요. 언니 참 좋은 분이에요. 저를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렇죠, 언니?”나는 말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언니, 안 대리님과 사귀는 거 맞죠?”나는 반박하려 했지만, 방금 문지성의 말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반박해봤자 믿지도 않을 텐데.’문지성은 냉소적으로 말했다.“물어봐도 인정하지 않을 거야.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서.”나는 입을 열었다가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내가 더 말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고,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하지만 진윤아는 무척 흥분한 모습이었다.“그럼 너무 잘됐네요! 언니, 안 대리님이랑 꼭 잘 해보세요. 나중에 저 오빠랑 결혼식 할 때 우리 같이 할 수 있잖아요!”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다.‘결혼식, 신
나는... 정말 지쳐서 더 이상 설명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저녁 식사 때 안석현에게 간단히 감사 인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과 시간에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저녁이 되어 서둘러 짐을 챙긴 후, 소문을 피하고자 회사 밖 화단에 앉아 안석현을 기다렸다. 저녁 바람은 서늘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쌓였던 피로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갑자기 내 어깨에 가벼운 손길이 닿았다. 뒤돌아보니, 역광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경 너머로 미소가 번지는 안석현의 눈빛이었다. “오래 기다렸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조용히 말했다. “화단은 차갑잖아.”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잔소리는 익숙했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해 우리는 마주 앉았다. 솔직히 말해, 안석현이 추천한 대로 이곳의 대표 메뉴는 정말 훌륭했다.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식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고 안석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잔으로 고마움을 표현할게.” 그는 약간 피곤한 듯 미소 지으며 잔을 들었다. 나는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씁쓸한 기운이 입안에 돌자 나는 설명했다. “굳이 다 마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다시 잔을 채우자, 안석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아?” 이 질문...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문지성을 만난 이후 안석현이 두 번째로 던진 비슷한 질문이었다. 전 남친을 떠올렸다는 걸 깨닫고, 나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문지성을 털어냈다. “정말 괜찮아. 그냥 오늘은 기분이 좋아. 어쨌든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네.” 안석현은 잔에 남은 술을 비우며 나에게 충분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알아. 어머니랑 외할머니를 네가 혼자 돌봐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유
나는 자연스럽게 안석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이 ‘은혜’를 갚을 기회는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다음 날 저녁, 안석현은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약속을 지킬 날이야.”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야?” “따라와보면 알게 될 거야!” “알았어.” 이미 약속한 일이었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차가 멈추기 전까지 나는 안석현이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눈앞에 펼쳐진 아파트 단지를 보고 의아해졌다. “여기가 너희 집이야?” 이곳은 도심의 비싼 아파트 단지로, 넓은 집들이 많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응, 우리 가족은 많지 않지만 부모님과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해서 전 재산을 다 투자해서 이 집을 샀어. 방이 세 개라서 손님이 와도 편하게 잘 수 있어.” 안석현은 차에서 내린 뒤 내 쪽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주었다. “내려, 은인님.” 차에서 내리면서 문득 깨달았다.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 부모님이랑 이 집을 샀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이랑 같이 산다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침을 삼키며 어렵게 물었다. “설마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 네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거야?”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화났어?”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라면 적어도 미리 나에게 언질이라도 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석현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이마를 문질렀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화난 건 아니야, 그냥 좀 걱정돼서 그래.” 그는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는 듯, 얼른 트렁크에서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꺼냈다. “우리 부모님이 요즘 결혼하라고 계속 압박을 주셔서 정말 미칠 것 같아. 너는 내 구세주야! 네가 와주기만 하면 엄청 큰 도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님은 내 가정환경에 대해 전혀 묻지 않으셨고, 오히려 나라는 사람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다. 사실 혹시라도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아무리 이 상황이 연기여도 솔직하게 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기에 조금은 불안했다. 다행히도, 안석현의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다. “우리 석현이가 일찍부터 말했거든. 오늘 미래 며느릿감을 데리고 올 거라고. 그래서 특별히 내가 직접 요리를 준비해뒀지. 지금 바로 하니까, 여기서 석현이랑 편히 앉아있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벌써 어머님의 밝고 활달한 성격에 마음이 놓였다. 어머님이 주방으로 가자, 오히려 나는 곧장 어색해졌다. 아버님도 그걸 눈치채셨는지 잠시 앉아 계시다가 핑계를 대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거실에는 나와 안석현만 남았다. 안석현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우리 부모님 정말 좋은 분들이야.” 그가 말을 꺼내자 나는 갑자기 불만을 토해내고 말았다. “나한테 도움을 청하려면, 최소한 상황을 미리 얘기해줬어야지. 아무런 준비도 못 했잖아. 네 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도 모르는데, 만약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면 오늘 이 연극은 다 물거품 되는 거잖아!” 안석현은 자신의 잘못을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어머님이 주방에서 나왔다. “아가, 매운 음식 좋아하니?” “네, 어머님. 아무거나 해주셔도 다 잘 먹습니다.” 어머님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도와드리러 가고 싶었지만, 아버님도 그곳에 계셔서 망설이던 찰나에 안석현이 내 손에 사과 하나를 쥐여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기다려.” 저녁 식사 시간에 어머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요즘 젊은 애들 다 다이어트 한다고 음식을 잘 안 먹더라. 유나야, 그러지 말고 잘 먹어. 몸이 너무
순간 나는 진윤아에게 뭐라고 상황을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진윤아의 장난기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도 그저 억지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진윤아를 보내고 나자, 안석현은 급히 나를 차에 태웠다. 가는 길 내내 그는 나에게 계속 사과했다. “미안해, 진윤아도 여기 사는 줄은 몰랐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널 탓하는 게 아니야.” 솔직히 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석현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돼. 진윤아가 회사에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뜨리면 어쩌지. 나는 괜찮아, 남자니까 상관없는데, 네가 곤란해질까 봐.”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실, 나와 안석현 사이의 소문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니까. ...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호기심과 탐색의 눈빛들...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불안이 마음속에 엄습해왔다. ‘예감이 좋지 않은데...’ 결국 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역시 제일 먼저 물어본 사람은 유미선 부장이었다. “유나 씨, 석현 씨랑 부모님 뵈러 갔다면서요? 그렇게 빨리 진행된 거예요?”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회사에 소문이 그렇게 돌고 있어요.”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꾹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사실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 해도, 부장님은 그러지 마세요.” “나야 당연히 유나 씨 말을 믿죠. 그런데 회사에 귀와 입이 몇 개나 되는지 알잖아요. 다 어떻게 막으려고 그래요?”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일일이 사람들에게 찾아가 해명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은 보통 설명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믿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설명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업무만으로도 숨 돌릴 틈이 없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진윤아의 온몸에서 우울함과 후회가 뚝뚝 떨어졌다. “언니,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었어요.” 들어오자마자 사과하는 그녀의 태도는 진심이었고, 말의 흐름도 정연했다. 이런 상황에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일로 계속 물고 늘어지다가는, 문지성까지 끌어들여 더 곤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나일 테니까. “이미 말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오늘도 할 일 많으니까, 얼른 돌아가서 일 봐요. 나도 일해야 하니까.” 진윤아의 입술이 조금 떨리는 모습이,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 문서를 보았다. 잠시 후,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사무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내 눈은 여전히 문서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마 안석현과 상의해야 할 것 같았다. ... 안석현을 만나자마자 그도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장난스러운 조롱을 듣느라,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유나야, 괜찮아?”안석현이 날 보자마자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어. 뭔가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해.” “해결하는 건 간단해. 네가 나 대신 연기해 준 거라고 설명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어제 연극은 다 소용없게 돼.”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어제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아서 결국 결심하고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한 번 더 연극을 하자.” “어떤 연극?” “우리가 사귀는 척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소문이 사그라들 때쯤, 평화롭게 헤어지는 거야.” 이건 내가 생각해 낸 유일한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방법이었다. 안석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