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진윤아에게 뭐라고 상황을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진윤아의 장난기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도 그저 억지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진윤아를 보내고 나자, 안석현은 급히 나를 차에 태웠다. 가는 길 내내 그는 나에게 계속 사과했다. “미안해, 진윤아도 여기 사는 줄은 몰랐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널 탓하는 게 아니야.” 솔직히 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석현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돼. 진윤아가 회사에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뜨리면 어쩌지. 나는 괜찮아, 남자니까 상관없는데, 네가 곤란해질까 봐.”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실, 나와 안석현 사이의 소문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니까. ...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호기심과 탐색의 눈빛들...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불안이 마음속에 엄습해왔다. ‘예감이 좋지 않은데...’ 결국 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역시 제일 먼저 물어본 사람은 유미선 부장이었다. “유나 씨, 석현 씨랑 부모님 뵈러 갔다면서요? 그렇게 빨리 진행된 거예요?”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회사에 소문이 그렇게 돌고 있어요.”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꾹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사실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 해도, 부장님은 그러지 마세요.” “나야 당연히 유나 씨 말을 믿죠. 그런데 회사에 귀와 입이 몇 개나 되는지 알잖아요. 다 어떻게 막으려고 그래요?”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일일이 사람들에게 찾아가 해명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은 보통 설명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믿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설명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업무만으로도 숨 돌릴 틈이 없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진윤아의 온몸에서 우울함과 후회가 뚝뚝 떨어졌다. “언니,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었어요.” 들어오자마자 사과하는 그녀의 태도는 진심이었고, 말의 흐름도 정연했다. 이런 상황에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일로 계속 물고 늘어지다가는, 문지성까지 끌어들여 더 곤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나일 테니까. “이미 말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오늘도 할 일 많으니까, 얼른 돌아가서 일 봐요. 나도 일해야 하니까.” 진윤아의 입술이 조금 떨리는 모습이,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 문서를 보았다. 잠시 후,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사무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내 눈은 여전히 문서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마 안석현과 상의해야 할 것 같았다. ... 안석현을 만나자마자 그도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장난스러운 조롱을 듣느라,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유나야, 괜찮아?”안석현이 날 보자마자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어. 뭔가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해.” “해결하는 건 간단해. 네가 나 대신 연기해 준 거라고 설명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어제 연극은 다 소용없게 돼.”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어제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아서 결국 결심하고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한 번 더 연극을 하자.” “어떤 연극?” “우리가 사귀는 척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소문이 사그라들 때쯤, 평화롭게 헤어지는 거야.” 이건 내가 생각해 낸 유일한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방법이었다. 안석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거야
“아니에요. 아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진윤아는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정말 언니가 참석했으면 좋겠어요. 언니와 안 대리님은 정말 잘 어울려요. 우리 파티에 오시면, 제일 눈에 띄는 커플이 될 거예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윤아 씨 커플이 주인공이잖아요.” “언니...” 그녀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조차 없었다. 고개를 들자, 진윤아가 눈가가 붉어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익숙한 표정을 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윤아 씨, 왜 그래요?” “언니, 저 언니를 정말 좋아해요. 그거 알죠?” “알아요.” 솔직히 말해, 나는 진윤아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느낄 수 없었다. 그녀가 내 옆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나에게 피해만 주었으니까. 하지만 진윤아의 순진하고 선량한 눈을 보면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전 정말 언니랑 같이 파티에 가고 싶어요. 제 행복을 증명하고 싶고, 언니의 행복도 보고 싶어요!” 그녀는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나님 맙소사, 왜 두 사람의 행복을 나에게 증명하고 싶냐고!’ 하지만 이런 진윤아를 마주하고 어떻게 거절의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휴지를 건넸다. “윤아 씨, 울지 마요.” 그녀는 고개를 들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약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오기로 한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윤아는 환호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뛰어나갔다. 그 후 나는 안석현과 상의했더니, 그도 바로 승낙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며 다소 무력하게 말했다. “사실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거지?” “어떻게 알았어?” 안석현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모를 리가 있나? 마음이 약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진윤아는 당연히 문지성의 ‘유일한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를 내려다보자 갑자기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이거 한 번 먹어볼래?” 안석현이 새로운 케이크 한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그에게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맙다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내 눈앞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고, 그곳에는 문지성과 진윤아가 서 있었다. 진윤아는 사랑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문지성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누가 너희를 불렀지?” 그의 눈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한기가 가득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 순간, 앞에 나선 길고 날렵한 등 뒤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안석현이었다. “문 대표님, 안녕하세요.” “내가 너한테 말 건 적 있나?” 문지성의 말투는 거칠었고, 심지어 약간의 적대감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안석현 사이에는 원한이 없었으니 나는 이 상황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안석현이 나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지성이 그에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문지성은 나에 대한 혐오감을 이 정도로 극도로 키워온 것 같으니까. “문 대표님, 저희는...” 내 손목이 갑자기 안석현의 손에 살짝 잡혔다가 이내 놓였다. 하지만 안석현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문지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문 대표님, 저희는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그는 진윤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진윤아는 바로 나서며, 문지성의 옷자락을 당겼다. “오빠, 그러지 마요. 내가 이분들을 초대했어요.” 문지성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더 이상 우리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진윤아의 말은 정말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첫 번째 라운드에서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게임에 참가했다. 일단 게임에 참가한 이상,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고,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게임에서 문지성은 매우 능숙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예전에 함께 이 게임을 했을 때, 그는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석현이 긴 손가락으로 카드를 펼쳤을 때, 나는 약간의 실망과 예상했던 좌절감을 동시에 느꼈다. 결국 예상대로 나와 안석현은 ... 졌다. 안석현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난 이런 거 잘 못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운이 없었던 거야. 져도 괜찮아.” 어차피 졌으니까 나도 인정했다. “질문하세요.” 진윤아는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진윤아의 성격상, 우리를 곤란하게 할 질문은 하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내 안도의 한숨은 너무 빨랐다. 문지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난 연애에서, 이별 이유가 뭐였죠?” 나와 안석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문지성이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그는 단지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국 그때 이별의 이유는, 좋게 말하자면 ‘누군가’ 마음이 변해 떠나갔고, 나는 쿨하게 놓아줬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저 남자의 마음을 잡지 못한 무능한 사람이었다. 이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내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지성, 정말 독하네!’ 나는 속으로 정말 어이가 없었다.주변 사람들은 이 질문에 환호하며 분위기가 더 뜨거워졌다. 진윤아도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 질문이 나를 얼마나 곤란하게 만드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안석현은 대담하고 자연스럽게
안석현이 내게 말했다. “내가 흑기사 할게.” 나는 급히 그를 막았다. “안 돼, 내가 마실게.” 그러나 안석현은 단호하게 내 손을 뿌리치며, 아무 말도 없이 첫 잔을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두 번째 잔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가 마시는 걸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그건 그냥 와인이 아니라, 도수 높은 폭탄주였다. “남은 건 내가 마실게.” 안석현은 나에게 한 잔도 마시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석 잔을 연달아 비웠다. 망설임 없이 석 잔을 마시자,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붉어졌고, 원래의 맑은 향기는 짙은 술 냄새에 가려졌다. 나는 급히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마셔. 좀 진정해야지.” 그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진윤아는 혀를 찼다. “언니, 정말 다정하네요. 오늘 파티의 공기가 다 달달해지는 것 같네요.” “누가 아니래? 이 술에도 설탕이 들어간 것 같아.” “이게 바로 연애의 달콤한 냄새지!” 다른 사람들도 이어서 말했다.이때 ‘쾅’ 하는 소리가 나며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문지성이 화를 내며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은 것이었다. 감정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기도 한 그의 표정 속에서, 문지성은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뒤돌아 나갔다. 나는 문지성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석현이 물을 다 마시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얼굴이 붉어진 것 외에는 안석현에게 큰 문제가 없어 보이자,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후 진윤아는 다시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안석현이 술을 마시고 취한 것을 핑계로 모든 초대를 거절했다. 나는 안석현을 구석의 소파로 데려가 쉬게 했다. 파티의 분위기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정원으로 향했다. 밖의 공기는 신선했고, 실내 파티 공간의 답답함과 진한 술 냄새가 모두 날아가는
문지성은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외투를 벗어 내 머리 위로 던지듯 얹었다. “입어.” 옷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꼭 쥔 손가락 마디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마워요.” 문지성은 말없이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따라가려다 그가 갑자기 멈춰 서자 얼떨결에 멈췄다. 하지만 문지성이 왜 멈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보며 말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안석현이랑 얽힌 거야?” ‘얽힌다’는 단어가 너무 불쾌하게 들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문지성의 추궁에 대답하지 않았다. 문지성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턱을 살짝 잡았다. 힘이 세지는 않았지만,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그와 눈을 맞추게 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안석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거야? 아니면... 상류 사회로 올라가려는 또 다른 동아줄을 잡으려는 거야? 하유나, 정말 자존심도 없는 거야?” 그는 내 턱을 놓고, 손가락을 옷에 비비며 닦았다. 마치 내가 더럽다는 듯. 내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가슴속은 마치 뭔가에 세게 물린 듯 아파왔다. “이건, 문 대표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 같은데요.” 문지성의 눈빛은 금세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문 대표님께서 이렇게 직원의 사생활까지 신경 써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데요. 하지만 안석현 씨가 어떤 사람이든 그건 우리 둘 사이의 문제고, 제가 위로 올라가는 ‘동아줄’을 잡든 말든 그건 문 대표님이 걱정하실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내 속에 쌓인 답답함은 어디에도 풀 곳이 없었다. 이성은 내가 문지성의 부하 직원으로 있는 이상 절대 고개를 들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내 전 남자친구일 뿐만 아니라, 현재 내 상사이기도 했다. 하
진윤아가 갑자기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버튼을 눌렀는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사진 한 장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그 순간, 진윤아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그 사진 속 문지성과 진윤아는 나란히 서 있었고, 문지성은 고개를 살짝 돌려 진윤아를 바라보는 듯했다. 아니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햇빛 때문인지, 문지성의 눈빛은 유난히 부드럽게 보였다. 그리고 이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뒤에 이어지는 사진들도 하나같이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가끔 진윤아가 혼자 찍힌 사진도 있었고,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진윤아는 갑자기 가볍게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도 이거랑 똑같은 게 있어서... 제가 잘못 가져왔네요. 언니, 미안해요.”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나에게 간절하게 사과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자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목소리가 잠겼지만 겨우 말했다. “괜찮아요. 얼른 가져가요.” “사실 상관없어요. 이 카메라도 꽤 잘 찍히니까, 언니도 써봐요. 나중에 우리 사진만 따로 모아두면 헷갈리지 않을 거예요.” 진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보기가 너무도 괴로웠다. “아니에요. 이건 유나 씨와 남자친구의 추억이잖아요. 그냥 가져가는 게 좋겠어요.” “언니, 저한테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요. 그냥 써도 돼요!” 진윤아는 손을 흔들며 문지성에게 기대어, 자신만만하고도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이건 바로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두 사람의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방에 급히 넣고 대충 핑계를 둘러대고 자리를 떴다. “석현 씨 좀 보고 올게요.”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등 뒤로 느껴지던 시선이 나를 놓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 시선이 사라진 듯했다. 그 순간 나도 안석현과 마주쳤다.그의 얼굴에 남아 있던 홍조는 어느 정도 사라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