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 일자리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갈 유일한 경제적 기반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잃을 수 없었다.외할머니에게는 솔직히 말할 수 없어, 난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유미선 부장은 부서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나를 곧장 사무실로 끌어들였다. 유미선의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을 보고 내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부장님, 회사가 저를 해고하려는 건가요?”유미선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쩔 수 없이 내 입장을 주장해야 했다.“이전에 지각한 건 제 잘못 맞아요. 변명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회사에 가져다준 이익이 얼만데...”‘이렇게 해고당하는 건 정말 억울해!’“누가 유나 씨를 해고한다고 했어요?”“네?”나는 순간 멍해졌다.“유나 씨 지금 무슨 상상을 한 거예요? 유나 씨를 부른 건 좋은 소식이 있어서예요.”유미선은 책상에서 서류 한 장을 집어들어 내게 건넸다.“이건 내가 소동진 팀장에게서 받은 건데, 이 사업은 다시 유나 씨에게 맡겨졌어요!”뜻밖의 전환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그분도 동의한 건가요?”“소 팀장이 동의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윗선의 결정이니까, 우리는 그대로 따를 뿐이에요.”유미선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위쪽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첫 인물은 문지성이었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문지성이 나를 도울 리가 없지.’“부장님...”나는 더 물어보려 했지만, 유미선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라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사업이 다시 유나 씨의 손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해내야 해요!”유미선은 나를 위해서 좋은 충고를 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유미선의 사무실을 나오면서도 전혀 실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눌러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제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렸다.“진윤아 씨, 할 말 없어요?”진윤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건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이 계획서와 자료는 회의실로 가져오기 전에 진윤아 씨가 정리한 겁니다. 당시 제가 확인했을 때, 진윤아 씨는 계획서와 자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 진윤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계획서와 자료를 진윤아 씨가 잃어버린 겁니까?”도건하의 날카로운 시선이 진윤아에게 꽂혔다. 진윤아는 더욱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이 사업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했고,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준비했다. 만약 실수로 문제가 생긴다면, 진윤아라고 해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진윤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연신 저었다.“아, 아니에요... 저는 계획서와 자료를 팀장님께 드렸고, 팀장님에게도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당시 유미선 부장이 회의를 서두르며 우리를 재촉했고, 나는 시간이 촉박해 회의실로 바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획서와 자료를 다시 확인할 시간이 도저히 없었고, 서로 믿고 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진윤아 씨, 제가 계획서와 자료를 확인하는 걸 봤어요?”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진윤아는 겁먹은 듯 고개를 숙이며 확실히 확인했다는 말도 아니고,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태도는 사실상 인정한 셈이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해 날카로워졌다. 나는 마치 수백 개의 가시가 내 등에 꽂힌 듯한 느낌이었다.팽팽한 긴장 속에서, 문득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대체 무슨 일인가요?”문지성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의 키는 크고 체격은 당당했으며, 잘생긴 얼굴에는 냉담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
내 피부는 희고 민감해서 한 번 생긴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점 때문에 문지성이 나를 애지중지했지만, 이제는 나조차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한 번 흘깃 보고 지나갈 뿐이었다.내가 카드를 집어 들고, 카드 뒷면에 붙어 있는 메모의 비밀번호를 확인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문 대표님, 이 카드에 정말 돈이 들어 있는 거 맞죠?”“내가 하 팀장을 속일 것 같아?”문지성의 표정은 극도로 불쾌해 보였다. 그의 말에 카드 안에 돈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마음은 마치 누군가가 움켜쥐고 후려친 듯 아팠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히 카드를 챙겼다.“문 대표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문지성은 비웃으며 말했다.“참으로... 돈을 위해선 어떤 모욕도 참아내고, 돈을 위해선 어떤 것도 포기하는구나. 정말 탐욕스럽고 역겹네.”나는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돈이 필요하니, 문지성의 말에 변명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의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에 내가 겪은 모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빚쟁이들 중 누가 나를 쉽게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가.”문지성은 마침내 내 무신경한 태도에 격분한 듯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섰다.문을 나서자마자 간신히 유지했던 강인한 모습과 차가운 태도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피로와 서러움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때, 마주친 사람은 안석현이었다. 그의 눈에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배려와 걱정이 담겨 있었다.“괜찮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저으기도 했다. 안석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오늘 회의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프로들의 세상에는 공평함이 없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네 잘못이 아니야.”그것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가 들은 유일한 따뜻한 말이었다.“날 믿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네.”“널 믿을 이유가 충
뒤를 돌아보니 진윤아가 문가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굳은 미소를 지었다. “문 대표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잠깐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문지성의 눈빛이 조금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문지성의 감정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나는 서류를 품에 안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서늘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짧은 순간 강렬했다가 점점 희미해지며 멀어져 갔다.멀어져 가는 내 발걸음 소리 사이로 진윤아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점심에 우리 나가서 파스타 먹을까요?” “그래.”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따랐다. 그 속에는 다정함과 애정이 가득했다.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두 사람의 대화가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자리하지 않도록, 애써 털어내려 했다.... 하루 종일 진윤아는 나에게 붙어 이것저것 질문을 퍼부었다.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런데 진윤아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언니, 이따가 제 남자친구가 저를 데리러 올 거예요. 우리 같이 저녁 먹으러 가요!”문지성과 진윤아와 함께 밥을 먹다가는, 나는 먹은 음식 한입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초대는 고맙지만, 윤아 씨와 남자친구의 달콤한 데이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서둘러 서류를 챙기고, 진윤아가 나를 붙잡기 전에 빠르게 사무실을 나섰다.차를 몰고 가는 중,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잠시 차를 세워 기다렸지만, 전혀 교통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이 노인네, 당신이 우리 마누라를 쳤으니 당연히 돈을 내고 치료비를 내야지. 돈도 안 내고 발뺌할 셈이야?”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그때 들려온 대화가 이러했다.고급차 한 대 앞에서 우아한 차림의 할머님이 서 있었고, 그 앞에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남자가 서서 그녀를
“대체 나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게 무슨 속셈이냐고?”문지성은 나를 바라보며 추궁하듯 물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는 의심과 탐색이 가득했고, 그 속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마치 나를 주먹으로 한 대 세게 후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남자의 시선은 말없이 나의 미약한 존재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길에서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어요. 여러 번 거절했지만...”“또 그 말이구나.” 문지성의 말에 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또’라니? 무슨 말이지?’“하유나, 이게 재밌기라도 하니?” 그는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워 물고,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후 천천히 내뿜으며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에게 말했던 거 기억나지?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이미 나는 너에게 충분히 관대하게 대하는 거야. 더 이상 선 넘지 마.”‘지금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니, 더 이상의 해명은 아무 의미도 없겠어.’“지금 바로 나갈게요.” 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더 이상 해명하는 건 불필요하다고 느꼈고,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그 순간, 주방에서 할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야, 매운 거 잘 먹지? 할머니가 고추를 좀 더 넣을게!” 할머님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설렘이 묻어 있었다. 내 발걸음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됐어.” 문지성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약간 흐트러진 소매를 정리하며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여기 있어도 돼. 하지만 명심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잘 구분해. 난 윤아가 너와 나 사이에 어떤 오해도 하지 않길 바라니까.”그때 진윤아가 화장실에서 나와 우리를 보고 멈칫했다. “언니, 오빠, 두 사람...” 문지성은 바로 한발 물러서서 진윤아에게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유리병의 파괴력은 가히 위력적이었고, 문지성의 고급 맞춤 양복은 찢어져 있었다. 유리 조각이 그의 팔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선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못돼 처먹은 계집애야, 네 아버지한테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구는 거냐!” 내 아버지 하재용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고, 오른팔은 붕대에 감긴 채 목에 걸려 있었으며, 마치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분명 나는 아버지의 손을 부러뜨리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자비로웠던 것도 아니고, 두려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 성격상, 정말 팔이 부러졌다면 오히려 그걸 핑계로 더 나와 외할머니에게 기대어 살려 했을 게 분명했다.“팔은 왜 그렇게 된 거예요?” “네가 돈을 안 줘서 이틀 동안 치료를 못 받다가 결국 이 지경이 된 거다. 이제 이 팔은 이렇게 걸고 다녀야 하고, 한동안은 무거운 것도 못 들게 생겼어!” 아버지의 얼굴엔 원망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 감정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듯했고, 방금 아버지가 나를 향해 던진 유리병이 내 머리를 겨냥한 것이 분명했다. 다만 문지성이 나보다 키가 커서 그가 나를 막아선 덕분에 그가 상처를 입게 된 것이었다. “내 목숨을 노리는 패륜아를 왜 신경 써야 하지?” “이 죽일 년아! 너 같은 불효녀가 어디 있냐!” 아버지는 나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아버지의 팔이 다쳤다면서도 여전히 깔끔한 옷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에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이전의 찌질하고 나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디서 돈을 구해 병원비를 냈어요?” “한번 맞혀 봐.” 아버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내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어서 말해요!
간호사는 바빠 보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뜨려고 했다.나는 급히 그녀를 붙잡듯 물었다.“혹시 누가 낸 건지 아세요? 결제한 분이 혹시 이름을 남겼나요?”외할머니의 치료비를 신경 쓸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내가 기대할 이유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간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이름은 안 남기셨습니다. 안경을 쓴 잘생긴 남자분이셨는데, 다른 볼일이 있었는지 결제 후 곧바로 가버리셔서 이름을 물을 틈도 없었습니다.”나는 손에 힘이 풀리듯 내려놓았다.간호사는 돌아서서 떠났고, 나는 그 짧은 순간의 실망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다른 한 사람이 떠올랐다.‘안석현?’안석현은 선이 뚜렷한 외모에, 늘 안경을 쓰고 다니며, 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나를 항상 잘 챙겨주는 평소 모습대로라면 십중팔구 그가 맞을 것이다.‘하지만 석현은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나도 곧 깨달았다. 안석현은 이전에도 여러 번 나를 도왔고, 매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그랬을 것이다.‘참...’한숨을 삼키고 외할머니를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집 안은 여전히 난장판이었고, 온몸이 너무 피곤해 집을 치울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러 백화점으로 나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석현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골랐고, 회사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어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병원 앞에서 안석현과 마주쳤다.“석현아!”내가 먼저 그를 불렀다. 석현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하 팀장님?”“지금 날 놀리는 거야?”그가 이렇게 웃으며 나를 부를 때마다 묘하게 불편했다. 사실 안석현의 경력으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전혀 나보다 뒤처지지 않기 때문이다.“같이 들어가자.”나는 안석현의 뒤를 따라가며,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석현은
진윤아는 내가 아까 무시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보조개가 살짝 드러나는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나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여기서 기다릴게요.”“남은 원하지 않는데 굳이 강요하지 마.”문지성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 나를 한 번 힐끔 본 것 외에는 시종일관 그의 시선은 진윤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남자에게서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까 문지성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가워서 내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였다.‘혹시 어젯밤 내가 이 사람을 다치게 한 것 때문인가?’‘사실, 이 사람에게 사과와 감사의 말을 해야 하는데...’그러나 문지성과 발랄한 진윤아를 보고, 나는 알아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아니에요. 사실 동료랑 약속이 있어서 얘기할 일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안석현?”문지성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냥 안석현이라는 걸 인정하면 이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걸 피할 수 있을까...’“어머나!”진윤아가 하며 한껏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안 대리님이에요? 두 분이 정말 사귀는 거예요?”“언니, 저한테만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같은 여자잖아요, 저 절대 말 안 퍼뜨릴게요. 사실 전부터 안 대리님이 언니 좋아하는 거 저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두 분이 출근할 때도 같이 왔잖아요. 보아하니 좋은 소식이 곧 들려오겠는데요!”그 순간,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솔직히 이 두 사람과 확실히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안석현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아니에요, 사실 여자 동료인데, 아까 전화받고 일이 생겨서 아직 못 올라온 거예요. 그래서 그냥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마침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드디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윤아는 내 팔을 덥석 잡으며 열렬히 말했다.“같이 타요, 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