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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는 내가 헛것을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요?”

“돈 좀 달라고. 아빠도 병원 가서 치료도 받고 약도 타야 해. 너에게 돈이 있다는 거 알아. 큰 회사에서 그렇게 오래 일했으니, 저축도 꽤 있을 거 아냐.”

아버지는 아까까지만 해도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듯했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꿈에 불과했다.

그 말투는 이제 나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변해버렸다. 마치 나에게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버지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가 갚아야 할 돈은 50억이에요, 50원이 아니라고요! 제가 어디서 그 돈을 마련했을까요?”

그 집은 190억의 가치가 있었지만, 부동산 매매 계약이 아닌 담보대출 계약이었기에 결국 내 손에 쥔 건 고작 50억여 원뿐이었다.

그 돈으로 겨우 빚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를 속일 생각 하지 마라. 돈 더 있는 거 알아.”

봄날의 따스한 날씨에도, 나는 마치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바로 내 아버지의 본모습이었다. 마치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자연스럽게 나에게 돈을 요구했고, 내가 그 돈을 얼마나 힘들게 벌었는지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없어요. 더 이상 줄 돈 없다고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멍이 들어 파래진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군가에게 맞아서 생긴 멍이었는데, 지금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불쌍한 척 연기를 하며 나의 연민을 구하고 있었다.

“우리 착한 딸아, 네가 아빠한테 이렇게 무정할 수 있니? 아빠 지금 돈 한 푼 없이,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다, 병원 치료받을 돈도 없는데 말이야?”

“그건 제 일이 아니에요.”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분노에 차서 거실에 남아 있던 유일한 멀쩡한 가구를 발로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에 외할머니가 깜짝 놀라 방에서 서둘러 나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고! 하재용, 제발 유나한테 손대지 마라! 이 짐승 같은 놈아, 네 딸이 얼마나 너 때문에 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으면 네 딸 건드리지 마!”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

내 아버지의 이름은 하재용이었다. 이분은 밖에서는 한없이 나약했지만, 집 안에서는 반대로 무척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나와 엄마에게는 더욱 그랬다. 엄마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나만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때린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제는 나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뿐이었다.

“저를 때리려고요? 그렇게 해보실래요?”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다시 차분하게 자기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어느 아빠가 딸을 때리겠냐? 너는 내 딸이자, 내 돈줄이니까. 아빠가 널 어떻게 때리겠니? 앞으로도 너에게 의지해서 살건데.”

나는 아버지에 대한 절망과 혐오감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며 참았다.

“빚 다 갚느라, 이제는 돈 없어요. 아버지도 빨리 가세요.”

하지만 아버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쳐들고 나를 보며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여기서 기다릴 거야. 우리 딸이 돈 줄 때까지 아빠는...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돈이 있다고 해도 아버지한테는 절대 주지 않을 거예요!”

만약 아버지에게 돈을 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다시 도박에 손을 댈 게 뻔했다.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포기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딸이 나한테 돈을 안 주면, 절대 여기서 안 나가. 나도 우리 딸과 같이 살고 싶지. 그리고 너희 그 늙은 할망구도 잘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 그냥 아빠가 이 일을 맡아서 할까?”

아버지는 절대 사람을 돌볼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향해 짓던 그 역겨운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지금... 이건... 분명한 협박이지.’

내 온몸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두고 보세요. 앞으로는 아버지의 빚을 절대 갚아주지 않을 거니까!”

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 내 협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말로 아빠를 겁주지 마라. 저 안에 있는 늙은 할망구와 네 미친 엄마가 있는 한, 네가 어디로 도망가도 아빠는 널 찾을 수 있어. 넌 내 자식이야. 평생 내 빚을 갚아야지! 날 부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너는 절대 벗어날 수 없어!”

그 순간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악랄한 말을 쏟아내고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돈만 주면 아빠도 더 이상 우리 딸한테 집착하지 않을게. 지금 바로 나가줄게. 딸,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니?”

아버지는 승리한 듯한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너는 아빠를 이길 수 없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서 결심이 섰다.

“정말 나가지 않겠다는 거죠?”

“안 나가! 오늘 돈을 안 주면, 저 늙은 할망구한테 가서 받을 거야!”

‘너무나 황당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황당하네!’

나는 가만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맞아요. 아버지의 말씀이 맞네요. 저는 평생 아버지에게 빚을 졌고, 이제는 벗어날 수 없나 봐요.”

“알면 됐다!”

아버지는 기고만장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래요. 이제부터 벗어나지 않을게요.”

“그래, 이제 돈을 줄 건가 보네?”

아버지는 즉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 전부 다 아빠한테 보내. 네가 대기업에서 일하는 거 알고 있어. 매달 월급이 꽤 되지 않니? 월급날은 20일쯤이지?”

예전에 아버지는 내가 월급을 받는 날마다 회사에 와서 돈을 받아가려 했고, 그 때문에 나는 몹시 괴로웠다.

결국 유 부장님은 나서서 아버지가 다시 와서 소란을 피우면 회사를 그만두게 하겠다고 말한 후에야 겨우 잠잠해졌다.

나는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시원시원했다.

[누구야?]

그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예요. 아까 돈을 드린 하유나예요.”

[아, 너구나. 무슨 일이야?]

“1억을 추가로 드릴게요. 우리 집으로 몇 사람을 보내서 제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담배를 물고 있는 듯 약간 흐릿하게 들렸다.

[돈만 맞으면 뭐든 해줄 수 있지.]

“그럼 해주세요.”

나는 아버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떤 사람의 팔을 부러뜨려 줘요.”

[누구야?]

“하... 재... 용 씨예요.”

나는 한 자 한 자 천천히 말했다. 전화기 너머가 순간 고요해졌다.

아버지의 얼굴도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 너 미쳤냐?”

나는 전화를 붙잡고 말했다.

“1억이면 가능해요?”

[가능하지. 후회만 안 한다면, 지금 바로 우리 형제들 보내줄게.]

그 순간, 아버지는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잘못했어, 유나야. 아빠가 잘못했어! 제발 저 사람들 불러서 아빠를 때리지 말아줘! 팔 하나 잃으면 아빠가 어떻게 살겠니?”

아버지의 울음소리는 몹시 듣기 싫었고, 머리와 귀가 동시에 욱신거렸다.

“이래도 저한테 돈을 요구할 거예요?”

“안 할게, 절대 안 할게!”

아버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이제는 정말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이 거래, 계속할까 말까?]

“일단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

외할머니는 이미 눈물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다가가 외할머니를 위로했다.

“울지 마세요.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고,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저 센 척 했을 뿐, 속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외할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엉망이 된 거실을 치울 생각이었다.

이때, 유미선 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유나 씨, 지금 당장 회사로 와요!]

유미선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엄중했다. 내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며칠 쉬라고 했던 계획이 갑자기 변한 것일까?’

‘혹시 이번에는 정말로 나를 해고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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