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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바로 답을 얻게 되었다.

공인중개사가 문지성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말씀하신 인테리어 업체들을 알아봤습니다. 각각 스타일이 다르지만, 신혼집을 꾸미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여기입니다.”

그 순간, 내 가슴이 조여오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나의 문장이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문지성... 곧 결혼하다니...’

문지성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예전에 우리가 결혼 후의 삶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보였던 냉정하고 무관심했던 태도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나는 문지성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다 잊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억눌린 분노와 억울함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버틸 수 없어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문득 계약서를 한 번 더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이것은 부동산 매매 계약서가 아닌, 담보 대출 계약서였다.

서명할 때 문지성의 차가운 표정을 보고 서둘러 사인을 했고,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문지성 같은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잘못된 것이다.

“문 대표님, 이 계약서가...”

“문제라도 있나?”

계약서의 변화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문지성의 차가운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서명한 건 부동산 매매 계약서여야 하는데, 이건...”

문지성은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서류를 덮어 테이블 위에 던졌다. 그의 눈빛에는 한층 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내가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해서 아무나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냉정한 시선 속에서,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집을 가리키는 건지, 나를 가리키는 건지 헷갈렸다.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이가 가장 큰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정말 맞았다.

우리 사이의 모든 친밀한 기억들은 문지성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도구가 되었고, 이제 그것은 나를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모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차피 네가 살았던 곳이니까, 다시 가져와도 내가 살려는 건 아니야.”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문지성의 날카로운 말에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 이제는 나도 무감각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그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문지성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얼음 송곳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네가 손댄 물건들은 더러워.”

“문 대표님께서는 귀하시니, 평범한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물건은 당연히 눈에 차지 않겠죠.”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그러자 문지성은 갑자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내가 이 집을 사는 이유가 너에게 미련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그 순간 이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가 나를 감싸는 것을 느끼자 내 몸은 굳어버렸다.

의식적으로 잊으려 애썼던, 내 영혼 깊숙이 새겨진 문지성과의 친밀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이 남자는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모든 기억을 산산조각냈다.

지금 문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차가운 시선은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내가 품고 있는 미련을 무언의 조롱으로 짓밟았다.

나는 무너진 듯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문 대표님, 오해 마세요. 그런 뜻으로 생각한 적 없습니다.”

나는 침착한 척하며 문지성을 바라보았다. 문지성도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나보다 훨씬 냉정하고 단호했다.

그때, 갑자기 울린 전화가 우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뜨렸다.

나는 문지성이 전화를 받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화면을 확인하던 문지성은 단 한 번의 눈길만으로 차갑던 그의 표정이 눈 녹듯 부드러워졌다.

‘이 사람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렇게 다정할 수 있구나. 단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는 너무나 차가웠는데...’

다시 한번 이 남자의 무심함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지성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서와 카드를 들고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부터 나는 이런 감정에 연연할 자격조차 없었고, 나에게는 처리해야 할 더 중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집에 돌아와서 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가난했던 우리 집 안에는 온통 깨지고 부서진 낡은 가구와 작은 물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깨진 조각들이 너무 많아서 방바닥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온 집안이 마치 벌레들이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난장판이었다.

그 난장판의 한가운데에는 죄인인 아버지가 비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구겨진 옷을 입고 초라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는 아버지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고, 외할머니를 먼저 뵈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집안이 이 지경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유나야, 많이 말랐구나... 밖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어휴, 얘야! 네 잘못이라고는 저런 아버지를 둔 것밖에 없다. 그놈이 왜 밖에서 죽지 않고 돌아왔을꼬!”

외할머니는 평생을 착하고 온화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이런 말까지 하시는 걸 보면, 외할머니가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 오래 울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여린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외할머니. 걱정 마세요. 이제 다 괜찮을 거예요.”

이때 아버지가 문 가에 서서 주저하며 말했다.

“유나야, 네가 빚쟁이들에게 빚을 전부 갚겠다고 했지? 돈은 구했어? 꼭 말한 대로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아빠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버지의 붕대 감은 손가락에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당연하지, 저런 일을 당해도 싸지. 차라리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손 전체를 잘라버렸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다시는 도박을 못할 텐데.’

내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계속 불평했다.

“내 말 안 들리냐?”

나는 짜증을 억누르며 대꾸했다.

“빚쟁이들이 곧 올 거예요. 제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으시면, 지금 당장 조용히 하세요.”

그제야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냉정하게 문을 닫고, 아버지의 탐욕스럽고 추한 얼굴을 외면했다.

...

30분 뒤, 빚쟁이들이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빚을 질 때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 무섭게 생긴 악당들이었고,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눈빛을 반짝였다.

그 눈빛은 마치 시장에서 고기를 고르듯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더 비싸게 팔 수 있을지 계산하는 듯해서 늘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지금 우리 집에 서 있는 빚쟁이들은 단지 돈만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들 중 한 남자는 키가 크고 목소리가 거칠었다.

“돈은? 네가 말했지? 원금이랑 이자 다 해서 50억, 한 푼도 모자라면 안 돼. 못 갚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는 목을 비틀고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딱딱 소리를 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보다 더 거친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가 별로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남자에게 카드를 건넸다.

“카드에 50억 들어 있어요. 한 푼도 부족하지 않아요.”

“은행에 가서 확인해 봐도 돼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남자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래, 네 가족이 다 여기 있으니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확인할 것까지는 없겠군. 다음에 또 돈 필요하면 찾아와.”

그는 아버지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몸을 움츠리며 마치 작은 메추리알처럼 위축되었다. 남자는 크게 웃으며 사람들을 끌고 집을 떠났다.

그 사람들이 떠난 뒤,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허리를 펴고 숨을 돌렸다.

“딸, 넌 정말 아빠의 구세주야! 네 덕분에 아빠가 살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난 아마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

아버지는 눈물을 쏟으며 감격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 감정 없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우는 것은 처음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 반복되니 나도 아버지의 눈물이 이제는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

“근데 딸아, 봐라, 아빠 손이 이렇게 다쳤잖니.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야 하고, 또 빚쟁이들이 아빠를 때려서 골병이 들었다. 아빠한테 병원비로 돈 좀 더 줄 수 있겠니? 네가 아직 돈이 더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아버지는 가식 하나 없는 눈빛 속에 담긴 탐욕을 나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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