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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진윤아의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말을 이었다.

“지금 남자친구랑 사귄 지 4년이 다 되어 가요. 오빠가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저를 남자친구 덕에 성공했다고 비웃는 게 싫어요. 제 힘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언니가 보기엔, 제 이런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사실 진윤아가 그 이후로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녀가 했던 한마디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 남자친구랑 사귄 지 4년이 다 되어 가요.”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였다는 사실.

그런데 나와 문지성이 헤어진 지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내 머릿속은 온통 문지성과 함께했던 시간들로 가득 찼다.

그때, 문지성은 정말 나에게 무척 차갑게 대했다.

집에 돌아오지도 않고, 내 메시지에 답장도 없었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몇 번씩이나 회사에 찾아갔을 때도, 문지성은 나를 문전박대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계속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또다시 문지성에게 돈을 요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엄마가 문지성의 회사에 찾아가 난동을 부렸던 걸까?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문지성을 화나게 했을까?

분명 그 모든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너무도 단순했다. 문지성은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문지성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왜 그때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이 끝없는 냉대에 지쳐 헤어지자고 했을 때, 문지성은 또 왜 그렇게 화를 내며 마치 내가 먼저 자기를 배신한 것처럼 굴었던 걸까?’

‘사실은 본인이 나를 배신했으면서...’

‘결국 이 배신자는 오히려 나를 비난하며, 내가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굴었어!’

그리고 문지성이 나에게 ‘이중적이다’라고 했던 그 말,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

어떻게 회사를 나왔는지, 또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들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홍수처럼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전부 억울함과 증오로 바뀌었다.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지고, 또 해가 뜰 때까지 나는 이틀 동안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외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나야! 할미가 살 수가 없구나... 더는 못 살겠다...]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우리 외할머니는 80이 넘은 나이에 암 중기 진단을 받아 힘겹게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정말 큰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절박하게 울며 전화를 걸지 않으셨을 것이다.

[네 그 못난 아비가 또 도박을 했어! 이번엔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왔단다... 그놈들이 네 아버지 손가락 하나를 잘랐어, 피가 철철 흐르고... 정말 사람을 놀래켜서 죽일 작정이야...]

우리 아버지의 손가락 하나 자르는 건 고사하고, 죽임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빚쟁이들이 집을 찾아오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다.

돈을 받지 못하면 그 빚쟁이들은 집안에 있던 물건들을 죄다 부수고 쓸만한 것들을 훔쳐갔다. 창틀까지 뜯어갈 정도였다.

정신상태도 좋지 않은 엄마와 병든 외할머니가 그런 일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괜찮아요, 할머니. 제가 있으니까 제가 해결할게요.”

나는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물었다.

“아버지 빚이 이번에 얼마나 된대요?”

[원래는 10억 정도였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지금은 45억이 넘었단다... 그 빚쟁이들이 말하길, 돈을 받지 못하면 목숨으로 갚으라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욕설과 폭력 소리, 그리고 외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말했다.

“전화 좀 그 사람들에게 넘겨주세요. 제가 직접 말할게요.”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거칠고 우악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많네. 돈이든 목숨이든 하나는 내놔!]

“돈은 전액 다 드릴게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실은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시간을 줄 리 만무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한 달만 주세요. 한 달 안에 50억, 원금에 이자까지 모두 갚을게요. 그쪽도 원하는 건 돈 아닌가요? 조금만 참으세요. 굳이 살인을 저질러 죄를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가치가 없을 테니까요.”

남자는 두 번 크게 웃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홈가드 공인중개사무소로 향했다.

내가 들고 있는 집문서를 본 공인중개사는 매우 반갑게 나를 맞았다.

“선생님, 집을 팔려고 하시나요?”

“옆에 있는 카사 노블레 아파트 시세가 대략 얼마예요?”

“평당 8,000만 원에서 9,500만 원 사이입니다.”

평당 8,000만 원으로 계산하면, 거의 200평에 달하는 내 집의 거래가는 160억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나는 집문서를 공인중개사에게 건넸다.

“최대한 빨리 이 집을 팔아주세요.”

사실,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미 이 집을 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이 집을 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문지성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 집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알겠습니다. 우선 등록부터 도와드릴게요.”

공인중개사는 내 집문서를 살펴보다가, 순간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고, 마치 유령을 본 듯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저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물 한잔 드시고 계세요...”

공인중개사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다시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선생님, 이 집은 층수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금방 팔릴 거예요.”

“여기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백 억짜리 집이니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다음 날 바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집을 사고 싶으신 분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나는 의아하면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럼 제가 집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먼저 구매자에게 집을 보여줘요.”

[집을 사고 싶으신 분은 집을 볼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평당 9,500만 원에 총 190억 바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계약서만 쓰면 즉시 송금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공인중개사의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세상에 이렇게 돈 많고 마음대로 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홈가드 공인중개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문지성을 보았다.

공인중개사는 열정적으로 문지성을 나에게 소개했다.

“선생님, 이분은 저희 본사 대표님이신 문지성, 문 대표님이십니다.”

문지성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는 긴 다리를 느긋하게 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었다.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나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탐내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어쩌지, 이제는 그 가식조차 귀찮아졌나 보네?”

나는 문지성을 다시 마주하면 참지 못하고 소리치며 그에게 따지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왜 나에게 이렇게 잔인했는지, 나를 정말로 사랑한 적이 있었는지 물어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놀랍도록 매우 차분했다. 아마 이 남자에 대한 모든 사랑과 그리움이 다 죽은 상태여서일 것이다.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문지성을 직시하며 말했다.

“제가 제 집을 파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만약 문 대표님께서 절 불러서 모욕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축하드립니다. 문 대표님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이제 저도 가보겠습니다.”

“거기 서!”

문지성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선 뒤에,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내 발밑에 던졌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집을 나한테 넘겨.”

홈가드 공인중개사무소의 공인중개사가 일을 매우 잘해서 바로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문지성이 정말로 그 집을 샀다는 게 실감났다.

‘근데 예전에 문지성은 그 집의 가구, 인테리어, 심지어는 공기조차도 혐오스럽다고 했었는데.’

‘술에 취해서 그 집에 간 건 그렇다 쳐도,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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