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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여기서 내가 사는 집까지는 적어도 10킬로미터는 넘는 거리였다. 걸어서 간다면 아마 해가 뜰 무렵에야 도착할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집에 가서 돈을 가져와야 차비를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핸드폰도 잃어버렸고, 수중에 현금도 없어요.”

“괜찮아요. 그 정도는 전혀 문제없어요.”

...

그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유미선을 찾아 나섰다.

“부장님, 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출근 체크를 못 했어요.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근처에서 새 폰을 사 올게요.”

“얼른 갔다 와요. 회의에 늦지 않도록 하고요.”

“네, 그럴게요.”

서둘러 회사를 나서는데, 길가에 주차된 익숙한 검은색 벤틀리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조각 같은 문지성의 얼굴이 보였다.

“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의 차로 다가가며 말했다.

“혹시 윤아 씨를 찾으러 오신...”

“타라고.”

나는 잠시 당황했다.

문지성은 다시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라니까.”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는 화살처럼 빠르게 출발했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와 거센 바람 속에서,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었다.

겨우 차가 멈췄을 때,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며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문지성은 나를 차갑게 훑어보며 비웃었다.

“어젯밤 어디 있었어?”

‘어젯밤?’

‘문지성은 완전히 취해서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내가 있었던 걸 알 리가 없잖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짓말했다.

“회식 끝나고 집에 가서 바로 잤어요.”

문지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는 재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핑크색 곰 케이스가 씌워진 아이폰이었다.

“이건...”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윤아가 이걸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문지성은 말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네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아니야.”

그의 말투는 명백한 위협이었다.

나는 억울한 마음이 차올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이 사람의 분노를 감내해야 하지?’

“어젯밤에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집에 물이 새고 있다고 연락이 와서 가봤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거기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는 그 집이 원래 문지성이 나에게 억지로 넘긴 집이었다는 걸 상기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을 받기 싫어서 3년 동안 방치했을 뿐, 내가 집주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필요 없다며 큰소리치더니?”

문지성의 눈빛에는 나를 향한 경멸이 가득했다.

“겉으로는 다 필요 없는 척해도, 관리사무실 전화 하나에 새벽까지 달려오다니, 속으로는 계속 그 집이 탐났던 모양이지?”

“아니에요...”

“하유나, 넌 여전히 이중적이군.”

‘이중적이라니... 이 사람은 나에게 3년 전에도 이런 말을 했지.’

‘도대체 언제부터 날 돈만 아는 사람으로 보게 된 걸까...’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설명할 길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내려.”

문지성은 핸드폰을 내게 던지며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더 이상 나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차창 밖르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자리에 더 머물렀다간 무슨 끔찍한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차에서 내렸다.

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서... 내 핸드폰을 윤아가 본 걸까, 안 본 걸까?’

이때, 안석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디야? 회의 곧 시작이야! 네가 책임자인데 왜 아직 도착 전이야?]

전화기 너머로도 안석현이 초조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적 없는 산속에 있는 걸 보니, 문지성이 일부러 이렇게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석현아, 부장님께 나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빨라도 한 시간은 걸릴 거라고 전해줄 수 있을까?”

안석현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리조트 사업 첫 공식 회의야. MS그룹 쪽 직원들도 와 있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다고?]

“최대한 빨리 가볼게.”

하지만 사실 한 시간이라는 말도 약과였다.

나는 벤틀리를 타고 왔고, 문지성이 차를 극한의 속도로 몰아 시간이 단축됐지만, 이제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타야 했고 출근 시간대의 교통 체증까지 겹쳤다.

원래 한 시간 거리였던 여정이 택시 기사 덕분에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회의가 끝난 뒤였다.

“유나 씨, 잠깐 내 방으로 와요.”

유미선의 표정은 어두웠다.

부장실에 들어서자 유미선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유나 씨가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쭉 유나 씨를 좋게 봐왔어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중요한 사업보다 더 우선시하는 거예요?”

“오늘 MS그룹에서 설계 도면을 가지고 왔는데, 유나 씨가 없어서 한 대표님이 급히 소동진 씨를 불러서 이 사업을 맡겼어요.”

소동진, 사업 1팀 팀장이자 42세.

얼마 전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그는 회사에서 평판은 좋지 않지만, 업무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내가 맡던 사업들이 소동진의 손에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만큼은 명백히 내 실수로 사업을 놓친 것이었지만, 결국 내가 맡은 중요한 사업이 다시 한번 그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이 순간, 나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럼 소 팀장님을 도와서 이 사업을 진행할까요?”

“한 대표님은 유나 씨가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며칠 쉬라고 하셨어요. 맡고 있는 사업들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 하셨고요.”

사업을 넘기라고 하니, 단순히 며칠 쉬라는 뜻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 무너짐, 그리고 절망...

몇 가지 복잡한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얽히고 있었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부장실을 나왔다.

점심시간이어서 사업팀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 역시 이렇게 초라하고 엉망인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켜고 안석현에게 현재 진행 중인 두 사업의 모든 자료를 이메일로 전송했다.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늘고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있어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차 문 옆 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진윤아가 있었다.

그녀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윤아를 이렇게까지 슬프게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진윤아에게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선의로 감춰온 것들이 전부였다.

솔직하게 말할 준비를 하고,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두 장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윤아 씨, 울지 마요.”

진윤아는 눈이 붉게 부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언니...”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나를 껴안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어떻게 해도 소 팀장님은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요?”

‘울고 있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나는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누구도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할 순 없어요. 천천히 배워가면 돼요. 너무 서두르지 마요.”

“언니가 저 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이젠 유나 씨를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는 한 대표님의 지시로 며칠 쉬게 됐다는 사실을 말했다.

진윤아는 내 말을 듣고 오랫동안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언니가 보기엔 제 남자친구가 저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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