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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문지성은 부드러운 눈길로 품 안의 진윤아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문지성은 원래 사람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진윤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회사의 내부 모임까지 참석할 수도 있는데, 이 남자...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한 대표님, 문 대표님, 저는 업무가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지성과 진윤아의 애정 넘치는 모습이 너무 눈꼴셨다.

그 자리를 피하려고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자, 진윤아가 급히 나를 뒤쫓아왔다.

“언니, 잠시만요. 저 일과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 후로 하루 종일 진윤아는 나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는 리조트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녀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퇴근할 때쯤 나는 이미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안석현이 내 피곤한 기색을 눈치채고 말했다.

“오늘 저녁 회식은 그냥 핑계 대고 빠지는 게 어때?”

나도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문지성은 지금 회사의 ‘갑’이고, 나에게 회의 시간 엄수조차 꼬집었던 그에게 괜히 눈에 띄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회식 장소는 회사 맞은편의 ‘운향재’였다.

안석현과 나는 약속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대부분 직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언니!”

진윤아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더니 장난스럽게 물었다.

“언니랑 안 대리님은 항상 붙어 다니시네요. 혹시 두 분 연애 중이신 거 아니죠?”

진윤아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동료들도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려요. 둘 다 싱글인데, 완벽한 조합이네.”

“석현아, 남자니까 먼저 고백해야지. 설마 유나 씨가 먼저 말하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

회사 분위기는 언제나 그랬다. 일할 땐 진지하고, 퇴근 후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변명하려 했는데, 안석현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제가 겁이 많아서요. 유나 씨가 저를 안 좋게 볼까 봐요. 노력해서 좋은 소식이 있으면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

안석현의 모호한 답변에, 나조차도 그 말을 믿을 뻔했다.

...

시간이 되자 모두 자리에 앉았다.

한명훈 대표는 연신 문지성에게 잔을 권했고, 우리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잔을 들었다.

나는 평소에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분위기를 맞추려고 몇 잔을 연거푸 마시니 이미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마시면 실수를 할 것 같았다.

“누가 물어보면 나 화장실 간다고 말해줘.”

나는 안석현에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오니, 그 매캐한 술과 담배 냄새에서 벗어나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벽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쉬었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나 한 사람 빠진다고 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는 다시 나가려고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뜻밖에 한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바로 문지성이었다.

그는 술에 취한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담배는 이미 손끝까지 다 타 들어가고 있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내 처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사람의 상태를 보고도 그저 서둘러 그 옆을 지나치려 했다.

“유나야...”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고, 마치 작은 속삭임이었다.

그 순간, 내 등은 얼어붙었고, 두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유나? 윤아?’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아니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지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멀리 있는 꽃병을 향하고 있었고, 반쯤 감긴 그의 눈은 술에 취해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문지성... 나를 부른 게 아니겠지.’

‘이 남자... 술에 취한 채로도 진윤아를 그리워하고 있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이렇게 마음을 쓰네.’

잠시 후, 나는 속에 맺힌 씁쓸함을 삼키고 돌아섰다.

그러다 마주친 것은 진윤아가 문지성을 찾기 위해 급히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문 대표님, 화장실에 계세요.”

“고마워요, 언니.”

...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문지성만 취한 것이 아니었고, 모두들 술에 잔뜩 취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명훈 대표가 가장 많이 마신 듯, 의자에 기대어 말을 할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요. 내일 또 출근해야 하니까, 다들 일찍 돌아가서 쉬는 게 어때요?”

유미선이 제안했고, 그제야 힘겨운 회식은 끝이 났다.

나도 술을 마셨기에 안석현을 집에 데려다 줄 수 없어서 대신 대리운전을 불러 준 후,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사람 없는 밤거리를 정처없이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예전에 살던 집, 아니, 나와 문지성이 함께 살던 집 앞에 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지성은 단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 나에게도 진윤아에게 하는 정도로는 후하게 대했다. 수십 억짜리 집을 나에게 아낌없이 넘겨주었으니, 마치 내 6년의 청춘을 돈으로 산 것 같았다.

나는 최근 3년 동안 이곳에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아마도 술기운 때문일 거야.’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집 비밀번호는 그대로였고, 여전히 문지성의 생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코끝을 찌르는 담배 냄새가 나를 덮쳤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눈앞을 스치더니, 순식간에 따뜻한 품이 나를 안았다.

문지성이었다.

“유나야, 왜... 말해줘...”

또다시 그가 부르는 이름은 ‘윤아’였다.

그가 이렇게 마음속에 진윤아만을 담고 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술을 너무 마셨어요. 들어가서 쉬게 도와줄게요.”

나는 불을 켜고, 이미 정신을 놓은 문지성을 소파에 눕혔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지막으로 떠났을 때와 집 안의 배치는 똑같았다. 단지 먼지만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듯했다.

그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마트에 다녀올게요!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과일이랑 숙취 해소제 사 올게요. 곧 돌아올게용! 사랑해용.]

글씨체는 단정하고, 글자 사이사이에 애정이 묻어났다.

진윤아가 곧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깨닫자, 나는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쪽지를 원래 있던 자리에 조심스럽게 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유나야, 유나야...”

방 안에서는 여전히 문지성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숫자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지금 문지성이 부르고 있는 그 이름... 아마 진윤아일 거고... 아니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진윤아가 내가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처받는 것은 막아야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직전, 나는 비상구 옆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어? 문이 열려 있네요? 오빠? 오빠?”

문 너머로 들려오는 진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스스로의 빠른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단에 주저앉았지만, 이와 동시에 머릿속에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문지성은 왜 이 집에 돌아온 걸까?’

‘그리고 진윤아와 문지성은 지금 뜨겁게 연애 중인데, 왜 진윤아는 이 집을 문지성의 집으로 알고 있을까?’

시간은 늦었고, 더 이상 머리를 쓰기 싫어 나는 그저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입구에 섰을 때, 바삐 지나가는 차들 사이로 택시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부르려고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핸드폰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난감해하던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어디 가세요, 아가씨? 태워다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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