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3년, 결혼 4년, 총 7년의 사랑. 서태윤은 내연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자신의 아내 고은채를 법정에 세웠다. “피고는 유죄를 인정하십니까?” 은채는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태윤에게 내연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굳은 결심을 했다. 결국 무죄로 석방된 날, 은채는 서태윤에게 단호히 말했다. “서태윤, 우리 이혼해.” “고은채, 후회하지 마라!” 은채의 사랑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태윤은 그녀가 단순히 반항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은채와 마주친 어느 날, 태윤은 물었다. “재혼하려고 날 찾아온 거야?” “착각은 병이야, 정신과라도 가보는 게 어때?” 은채는 항상 화가 풀리면 돌아오곤 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은채는 태윤처럼 법정에 서는 강력한 변호사가 되었고, 태윤은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제야 태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은채야,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해. 제발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줘.” 그러나 은채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지금보다 더 훌륭해질 거야. 네 덕분이긴 하지만, 너를 위해서는 아니야.” ‘서태윤, 이제 좀 비켜줄래? 난 네 삼촌을 만나러 갈 거거든.’
더 보기한결은 마치 승인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태윤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술 살게.” “안 가.” 한결은 거절했다. 태윤은 계속 말했다. “어차피 난 고은채랑 이혼했으니까, 좋아하면 얼마든지 노력해 봐. 다만, 네가 고은채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마지막 말에는 꽤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은채가 한결의 고백을 거절한 이유가 자신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태윤의 불쾌한 기분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은 내가 좀 심했어.” 태윤이 먼저 화해를 하려 했다. 한결은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고 태윤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형제 같은 관계였다. “네가 말했어. 노력해도 된다고.” 그도 줄곧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날의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한결은 태윤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래.” 태윤이 대답했다. 한결은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그날 일은 없었던 일로 해. 술 마시러 가자.”한결은 태윤의 차에 올라탔다.두 사람은 자주 가던 스타코스트로 갔다. 가는 동안, 한결은 경수와 이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경수와 이훈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한결은 웃으며 말했다. “빠르기도 하네.” 경수는 미소를 지었다. 태윤이 함께 있는 것을 본 두 사람은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들은 태윤과 한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또 싸우려는 건 아니지?”“좋은 술 두 병 가져와, 계산은 서태윤이 할 거야. 지난번엔 내가 배상을 했었거든.” 한결이 말했다. 태윤은 외투를 벗고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수는 이훈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두 사람 화해한 건가?” 이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아.” “내가 가서 술 가져올게.” 경수가 말했다. 이훈가 덧붙였다. “가
‘왜 이용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한결은 은채의 생각을 알아챈 듯 말했다. “이용당한 건 나야.” 은채는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한결아...” “이용당했다 해도 상관없어.” 한결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밝혔다. 은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언제나 내 좋은 친구야.” 이 말은 그의 마음을 거절하는 거나 다름없었다.한결의 눈빛은 어두워지더니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태윤은 길가에 서서 은채가 한결의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지는 길가에 서서 그에게 중지를 내밀었다. 태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수연을 위해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서윤은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 태윤은 한결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차에 올랐다. 태윤의 표정은 차갑고 침울했다. 운전대를 쥐고 있던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수연은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태윤은 표정을 고치며 대답했다. 그는 최대한 운전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은채의 모습이 가득했다.‘진짜 주한결의 차에 오르다니.’기씨 저택은 J시의 산장에 위치해 있었다. 산장 전체는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는 물이 둘러싸고 있었고, 뒤에는 산이 막고 있어 최고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 집은 기씨 가문의 선조가 큰 공을 들여 만든 집이라고 한다. 산장 자체가 기씨 가문의 소유로, 산 위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 100년 이상 자리를 잡고 살았다. 기씨 가문이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풍수지리가 실제로 좋은 효과를 발휘한 것일지도 모른다. 차로 산에 오르자, 도로는 넓고 잘 정비되어 있었고 양옆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산장은 매우 넓었다. 중앙의 본관과 서쪽의 별채가 연결된 구조로, 뒤쪽에는 전통적인 건물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삼각형 안에는
한결은 영지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한결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태윤을 화나게 만들고 싶었다. 사실 한결은 영지의 목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직 은채의 마음이었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은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은채야, 나한테 제발 기회를 줘. 나는 서태윤처럼 네 마음을 아프기 하지 않을 거야. 널 위해서라면 목숨도 줄 수 있어.”예전의 은채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 번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에, 이제 다시는 남자를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결의 마음에 상처를 주겠지만 은채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결아, 나는 이제 이혼한 지 얼마되지도 않았어. 내가 왜 이혼했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나는 아직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없어. 미안해.”한결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서두른 걸 수도 있어. 기회를 잡고 싶어서 네 마음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아.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진 말아줘. 네 마음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 번만 기회를 줘.” 영지는 은채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군가는 이혼하자마자 소개팅을 하는데, 뭘 그렇게 머뭇거리는 거야?” 은채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놈은 인간도 아닌데, 내가 왜 같은 짓을 하겠어?” 영지는 말문이 막혔다. 한결도 말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편, 태윤은 기수연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전혀 입맛이 없었다. 그는 가끔 은채 쪽을 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참았다. 그러자 수연이 은채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과 아는 사이에요?” 태윤은 조용히 수연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수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수연은 태윤보다 한 살 어렸지만, 귀여운 얼굴 덕분에 나이보다 훨씬 어
은채는 잠시 멍해졌다.그녀는 뒤로 물러나며 유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은채는 코트를 고쳐 입었다. 아마 지하 주차장이 너무 넓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던 것 같다. 은채는 머리를 움츠리며 출구로 걸어갔다. 위로 올라가니 더 추워졌다. 은채는 다시 로펌으로 돌아갔다. 1층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절판된 좋은 책들이라고 했다. 은채는 그 책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책을 읽자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사무실의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따르릉-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은채는 영지가 걸어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와, 밥 사줄게.] “왜 이렇게 패기가 넘치는 거야?”[응, 재벌들은 다 이렇게 말하지 않나?] 은채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소는?” [충청로 32번지.]“알겠어.” 은채는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30분만 기다려.” “오케이.” 은채는 전화를 끊은 뒤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닫았고 불은 자동으로 꺼졌다. 이곳에는 감지 센서 불이 설치되어 있었다. 은채는 택시를 타고 충청로로 향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영지 옆에 한결이 앉아 있었다. 은채는 발걸음을 멈췄다. 영지는 은채를 발견하고, 바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 “왜 이렇게 멍하니 서 있어?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은채는 눈살을 찌푸리며 영지를 옆으로 끌고 갔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왜 굳이 미리 말해야 돼?” 영지는 은채를 자리에 안내했다. 한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번 은채가 급히 떠났을 때, 그는 은채가 일부러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만약 그가 직접 은채를 초대했다면, 은채는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지에게 부탁해 은채를 불러냈다. 은채는 거부감을 느꼈다. 영지는 은채의 귀에 속삭이며 조용히
은채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시다.” “어디로 가는 거죠?” 은채가 물었다. “그냥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해요, 자꾸 묻지 말고.”유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은채는 그 뒤를 쫓으며 뛰어갔다. “기 변호사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유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천천히 걸어주실 수 있나요?” 유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점차 아래로 내려가 은채의 다리를 훑었다. “아, 다리가 짧으시네요.” 은채는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키가 여자들 중에서는 큰 편에 속했고 몸매는 모델처럼 비율이 좋았다. 그런데 다리가 짧다니.유현은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은채는 더 이상 뛰지 않아도 그의 걸음에 맞춰 갈 수 있었다. 유현이 만나러 간 사람들은 대부분 비범한 인물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은채도 알 수 없지만, 그가 만나고 이야기하는 방식과 장소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복잡한 다국적 사건이었다. 그렇게 비범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유현은 전혀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방과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지휘 능력, 시작부터 끝까지 전개를 다 지배하는 듯한 대화가 은채의 눈에 띄었다. 은채는 조용히 그 대화를 들었다. 한 시간 뒤, 대화가 끝났고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어 처음처럼 엄숙하지 않았다. 공적인 얘기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사건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남자가 갑자기 은채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분은 누구시죠?” 유현은 소파에 기댄 채 답했다. “비수입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기 변호사님께서 언제부터 비수를 두셨나요?” 어두운 조명 속에서 유현은 은채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거든요.” “하하.” 남자는 마치 웃긴 이야기를 들은 듯이 비웃었다.유현
태윤은 말을 마친 뒤, 로펌 안으로 걸어갔다. 강여정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자리를 마련하지.”기씨 가문의 아가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태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한춘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은채를 따라 걸어갔다. 은채는 한춘매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한춘매는 조심스럽게 은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은채야.” “왜요?” 은채가 소리쳤다. 한춘매는 깜짝 놀랐다. 오늘 그녀는 은채가 서씨 가문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딸이 겪은 모든 고통을 이해했다. ‘내가 엄마로서 하나뿐인 딸을 지켜주지 못하다니.’ “아마도 우린 가난할 운명인가 봐. 어쨌든 이혼했으니, 앞으로 더는 너한테 뭐라 하지 않을게.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진 마.”은채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한춘매를 바라보았다. 한춘매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구, 엄마가 다 잘못했어. 잠깐의 권력에 눈이 멀어서...”“엄마.” 은채는 한춘매를 세게 안았다.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딸, 그동안 고생 많았어.” 한춘매는 은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 엄마랑 아빠는 아직 일할 수 있으니 먹고 사는 덴 문제없을 거야...”“엄마.” 은채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가진 돈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으세요. 그냥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만 해도 돼요.”한춘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아빠한테 좀 잘해주세요. 자꾸 무능력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저 하나를 낳으셔서 할머니께서 줄곧 엄마한테 쓴소리를 한 것도 모자라, 아빠더러 이혼하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단 한 번도 할머니 말을 듣지 않았어요.”“다들 아빠에게 아들이 없다고 비웃었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엄마와 저를
강여정은 웃으며 무시하는 듯한 눈길로 한춘매를 쳐다보았다. “들었어요? 당신 딸과 내 아들은 이미 이혼했어요. 이젠 다시 네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한춘매는 떨리는 눈동자로 태윤을 쳐다보았다. “내가 은채 대신 사과할게.”태윤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당신 딸이 죽어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었거든요.”태윤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은채의 그 한 마디가 태윤을 마음 아프게 만들었다. 그에게도 자존심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듣고 계속 은채에게 재혼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세상엔 은채 말고도 여자가 많았고, 그녀보다 예쁜 여자도 차고 넘쳤다. “얼른 와서 사과해!” 한춘매는 은채에게 소리쳤다. 은채는 목구멍에 쓴맛이 올라왔다. 그녀는 한춘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엄마, 이만 가요.”“이제 이혼했으니까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난 처음부터 이 결혼 반대했었어. 지금이라도 이혼한 게 정말 잘된 일이야.”강여정은 변함없이 비꼬았다. 한춘매는 이에 반박하며 강여정을 노려보았다. “제 딸이 뭐가 어때서요? 예쁜 데다가 학벌도 좋고, 결혼한 4년 동안 태윤이도 잘 돌봐 주었잖아요.”강여정은 비웃으며 말했다. “예쁘긴 하죠, 안 그러면 내 아들이 왜 좋아했겠어요? 설마 가난한 집안과 별 볼일 없는 부모를 가져서 좋아했겠어요?”“당신...” 한춘매는 얼굴이 빨개지며 격분했다. 은채는 한춘매의 행동에 늘 피곤했지만, 다른 사람이 한춘매를 모욕당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은채는 날카롭게 강여정을 쏘아보며 말했다. “별 볼일 없는게 뭐가 문제죠? 저희는 도둑질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진 않았어요. 저희는 자기 능력으로 살고 있으니 돈 많은 것 빼고는 잘난 점이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고귀하죠.”강여정은 하얗게 질렸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딴식으로 말을 해?”강여정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태윤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갑게 변했
은채는 젓가락을 집어들고 고개를 들어 말했다. “엄마도 드세요.”‘그새 생각이 바뀐 건가?’은채는 속으로 의아했지만, 한춘매의 태도가 괜찮아 보였기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가 열심히 돈 벌어서 엄마랑 아빠 잘 모실게요. 물론 엄청 부유한 삶을 보장해드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는 데 걱정은 없을 거예요.”“은채야, 먼저 밥부터 먹어.” 한춘매는 웃으면서 말했다. 은채는 고개를 끄덕인 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당을 나섰다. 그때 한춘매가 갑자기 은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채는 깜짝 놀랐다. 밥 먹을 때는 괜찮았던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엄마, 왜 그래요?” “은채야, 제발 부탁이야. 태윤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 한춘매는 오늘 태윤을 찾아가 은채를 대신해 사과하려 했다. 원래 그녀에게 아주 잘하던 태윤은 아예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았다.결국 한춘매는 로펌의 경비에게 쫓겨났다. 그녀는 문 앞에 있던 계단에서 그녀는 미끄러져 넘어져 매우 불쾌했다.이전에 태윤을 찾았을 땐 모두가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며 차를 따라주던 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한춘매는 이 차이를 견딜 수 없었다. 은채의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엄마가 무릎 꿇어야만 엄마 말을 들어줄 거야?” 한춘매는 말하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은채는 그녀를 잡아당기며 눈물이 글썽였고 답답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은채는 한춘매가 아들이 없어서 할머니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윤을 찾아가는 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은채는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한춘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은채는 한춘매에게 끌려 태윤이 근무하는 로펌 앞에 갔다. 한춘매는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태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춘매는
“네.” 유현은 가볍게 대답하며, 잠시 은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고 변호사님은 어디 살고 있어요?”은채는 오른쪽에 있는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1동 2호, 원룸 아파트요.”“전 고 변호사님의 맞은편에 살아요.” 은채는 맞은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집을 구할 때 집주인이 아파트가 아니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은채는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다. 다 큰 성인이 울었던 게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알겠습니다.”유현이 대답했다. 은채는 물건을 들고 빠르게 계단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도망치는 듯한 뒷모습을 보던 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은채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단숨에 6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컵에 물을 따르고, 목이 마른 대로 마셨다. 은채는 숨을 고르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 민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 울었을 뿐이었다. ‘성인이라 해도 가끔은 약해질 수 있는 거 아니야?’‘그래, 난 신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우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을 거야.’은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기운을 차려서 물건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 후, 라면을 끓여 먹고 씻은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최근 며칠 간은 봉운구에 있는 작은 여관에서 지낸 데다가, 계속 사건 때문에 생각이 많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곳은 비싸지만 환경이 정말 좋았다. 밤에는 소음도 거의 없었기에, 은채는 곧 잠이 들었다. 그녀는 꿈도 꾸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깊은 잠에 들었다. 이혼 후 처음으로 제대로 잠을 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은채는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우유 한 컵을 데워 마셨다. 집이 로펌과 매우 가까웠기에 은채는 운전하지 않고 걸어서 갔다.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다 보니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은채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유현도 로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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