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은채의 바쁜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방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은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화면을 열자 카드 사용 내역이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 핸드폰을 항상 무음 모드로 해 놓는 태윤은 하나하나 내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신현은행]11/29 15:17 일시불 6,100,000원 결제 11/29 15:39 일시불 12,000,000원 결제 11/29 16:10 일시불 4,250,000원 결제 11/29 16:21 일시불 16,540,000원 결제 11/29 16:42 일시불 9,280,000원 결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비 내역에 태윤은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은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태윤은 이마를 더욱 세게 찌푸렸다.돈이 아까운 건 아니었다. 은채가 지금 옆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을 허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태윤은 답답함에 넥타이를 풀어보기도 했지만, 어쩐지 여전히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을 하려고 했다. 서재로 들어가니 책상 위에 놓인 이혼 서류와 결혼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반지는 은채가 4년 동안 한 번도 빼지 않았던 것이었다.태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다시 은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은채는 영지와 함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기에 전화 벨소리를 못 들었다.다음 날,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걸 발견했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숙취에 두통을 느꼈다.이쯤 되면 태윤은 이미 이혼 서류를 봤을 터였다. 그래서 은채는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윤이 바로 전화를 받자 은채는 조금 놀랐다. 예전의 태윤은 너무 바빠서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가끔은 아예 받지 않곤 했었다. ‘이번엔 빨리 받네.’“어제 어디 갔냐?” 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과거의 은채는 그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졌다면 항상 달래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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