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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은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이건 고은채 씨에게 배송된 퀵입니다.”

퀵 서비스 기사가 서명지를 건넸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은채는 서명지를 받아서 서명하고 다시 기사에게 돌려줬다.

기사는 그녀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은채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문을 닫았다.

서류 봉투를 열어보니, 그녀가 작성한 이혼 서류에 태윤이 서명을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찡긋거린 뒤 서류 봉투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켰다.

태윤이 서명한 것은, 재산 분할에 동의했다는 뜻이었다.

재산 분할은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은채의 주민등록증이 필요했고, 그녀는 이미 복사본을 준비해 놓았다.

또한 은행 카드 정보와 펀드 계좌를 열었고, 위임장을 작성했다. 위임장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개인적으로 출석하기 불편해서 태윤을 그녀의 이혼 변호사로 위임하여 이혼 절차를 진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은채는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해 서류 봉투에 담고, 퀵 서비스 기사를 불러 태윤의 로펌에 배송했다.

...

태윤은 로펌에 도착해 사무실에 앉았다. 그때 로펌의 유선호 변호사가 퀵 서비스 기사를 데리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현재 세아가 체포되어 있었기에 태윤에게는 잠시 비서가 없었다.

“고은채 씨께서 보낸 퀵 입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기사가 말했다.

태윤은 서명한 뒤 서류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서류를 펼쳐 보았다.

‘정말 끝까지 가보겠다는 건가?’

그런데 위임장을 보자 태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날 이혼 변호사로 위임해? 직접 출석하기 불편하다고?’

‘정말 웃기네.’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태윤은 여전히 은채가 화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태윤은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은채가 늘 너무 사랑해준 탓에, 태윤은 은채의 사랑을 끝없이 매몰아쳐도 된다고 착각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랑은 정말 사라질 수 있었다.

태윤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은채에게 줄 절반의 재산을 정리했다. 은채가 이미 은행 계좌와 펀드 계좌 정보를 모두 보냈으니, 이제 그는 역할은 은채에게 이체를 하면 됐다.

차량 두 대는 각자의 명의로 되어있으니 손을 대지 않아도 되고, 집은 은채가 준비한 서류를 따라 처리하면 됐다.

이혼은 역시 당사자가 직접 나설 수 없을 경우, 소송 대리인이 대신 참가하면 그만이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고.’

태윤은 은채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국내 최상위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인 태윤은 재빠르게 절차를 진행하여 이혼 증명서와 부동산 관련 서류를 함께 퀵 서비스로 보냈다.

퀵 서비스가 도착했을 때, 은채는 마침 차를 되찾기 위해 파출소에 가고 있었다. 이제 혐의를 벗어나게 되었으니 차를 돌려받을 때가 되었다.

은채는 호텔 앞에서 퀵을 받게 되었다.

영지는 차를 몰고 호텔 앞까지 찾아왔다. 은채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그녀는 은채가 차에 오르자마자 물어보았다.

“방금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거야?”

“퀵 서비스 기사.”

은채는 서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안에 담긴 것들을 보았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영지는 그 서류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정말 빠르네.”

은채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잘 된 거지.”

사실 은채도 이렇게 순조롭게 이혼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서태윤을 얕잡아본 건가? 아니면, 진작에 나랑 이혼할 생각이 있었던 걸까?

“괜찮아?”

영지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은채는 서류를 정리하며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따르릉-

그때 영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운전 중이라 영지는 블루투스를 이용해 전화를 받았다.

[내일 올 때 작은 흑송 화분 하나 사가지고 와.]

“알겠어요.”

영지는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은채를 보았다.

“마침 은채가 제 옆에 있...”

그러나 영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

“이 고집불통 노인네, 아직까지 화가 안 풀린 모양이네.”

영지는 통화 창을 끄며 말했다.

은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영지는 앞을 보며 말했다.

“서태윤은 정말 못된 놈이야. 네가 서태윤과 결혼한 탓에 우리 집 고집불통 노인네가 퇴직까지 앞당겼잖아. 네가 서태윤과 결혼할 때 우리 집 노인네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지금도 너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그런데 서태윤은 그걸 모른 채 계속 너를 아껴주지도 않다니.”

은채는 코끝이 찡해졌고 고개를 숙이며 죄책감을 느꼈다.

예전 하준석과 안영빈은 승진 자격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두 교수 모두 부교수직을 가지고 있었고,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준석에게는 은채가 있고, 안영빈에게는 태윤이 있었다.

그때 두 교수는 해외 연수 기회를 가지고 다투고 있었는데, 은채가 중도에 포기하고 물러난 탓에 하준석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를 가장 실망시킨 이유는,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키운 인재가 변호사 꿈을 포기하고, 안영빈의 제자에게 시집가 가사도우미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하준석은 더 이상 안영빈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었다.

결국 하준석은 심리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고, 일찍 퇴직하게 되었다.

“그거 알아? 서태윤이라는 제자 덕분에 안 교수는 재임용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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