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는 슬쩍 다가가 태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외상이어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영지는 매우 실망스러운 듯 혀를 찼다.“아쉽네.”그리고 은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 봤는데 죽진 않았어.]은채는 메시지를 보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내려놓고 마지막 술잔을 비운 후, 계산을 하고 바를 나섰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바 안에서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은채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예쁜 데다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은채를 보자 그들은 앙심을 품었다. 은채가 바를 나선 뒤, 그들은 은채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은채는 길가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길거리의 가로등 아래서 그녀는 둥글게 퍼져 나가는 빛에 휩싸였다. 그녀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아직 시간이 이른 편이었지만, 은채가 서 있는 곳은 바 뒤편의 골목이라 매우 한적했다. 마침 택시도 쉽게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은채는 어쩌면 스스로 집에 돌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지야, 나 좀 취했어, 와서 나 좀 데려가...” 은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은채야? 은채야!” 영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급히 은채의 이름을 불렀다. 은채는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그 순간, 그녀는 유현의 말이 떠올랐다. 유현은 그녀에게 언제나 침착하라고 했었다. ‘그래, 당황하면 안 돼. 당황할수록 일이 더 뒤틀릴 거야.’‘법정에서도, 위험에 처했을 때도...’ 은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빠르게 생각했다. 그녀는 뒤에서 접근한 남자의 발을 밟았다.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놓자 은채는 팔꿈치로 힘껏 밀쳐서 남자를 완전히 떼어놓고 재빨리 거리로 달려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젠장.”은채의 입을 막고
은채는 영지가 그렇게 빨리 와줘서 정말 감동되었다. 마치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기분이었다. “영지야, 고마워.” “우리 사이에 당연한걸.”영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앞을 쳐다보며 덧붙였다. “근데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않아?”은채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남자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조금 창피한 기분이었다. 은채는 앞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말했다. “기 변호사님, 고마워요.” “별말씀을요.”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갑고 담담했다. 차는 얼마간 달린 후 호텔에 도착했다. 영지와 은채는 차에서 내렸다. 영지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고마웠어요.” 유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은채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진정되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유현의 눈빛이 조금 깊어지더니 그저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떠났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유현이 떠난 것을 본 영지는 은채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너, 기유현이 누군지 알아?”“알지.” 은채가 대답했다. “국내 8대 로펌 중 선두인 JD로펌 소속의 톱 변호사잖아.”“아니, 아니, 아니, 변호사는 가장 눈에 평범한 신분일 뿐이야.” 영지는 은채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신비롭게 말했다. “사실은 J시...” “영지야.” 은채는 몸을 살짝 떼며 영지의 입을 막았다. 유현의 배경에 대해 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채는 유현의 가족사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일들을 잘 처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서 하준석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이렇게 유현이라는 엄청난 변호사를 소개해주며 길잡이가 되어준 것에 대해 하루빨리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만약 은채가 여전히 7년 전처럼 고마운 줄 모른 채 막무가내로 나섰다면 그녀의 인생은 끝났을 것이다. 영지는 은채의 기분이 안 좋은 걸 알아차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방에 들
한결은 은채를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은채는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그녀는 재빨리 입을 막았다. “주한결, 너 머리가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은채는 믿을 수 없었다. 한결이가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그들은 항상 좋은 친구였는데,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것만 같았다. “내가 서태윤과 결혼해서 억울함을 많이 당했다는 걸 알아주는 마음은 알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줄 필요는 없어.” 은채는 일부러 한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말했다. 그녀는 남녀 관계로 인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은채는 그저 한결과는 친구로만 지낼 생각이었다. 그녀는 태윤과 방금 이혼한 상태였기에, 다시 빠르게 다른 감정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남자를 믿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은채는 더 이상 사랑은커녕 결혼조차도 믿을 수 없다. “나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은채는 한결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식당을 빠르게 나갔다. 로펌에 들어서자, 은채는 유현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은채는 걸음을 늦추며 유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아직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지 않았다.“집 구했어요?” 유현이 묻자 은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로펌 근처의 집을 구했어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유현이 먼저 걸어 들어갔고, 은채는 그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자, 은채는 구석에 서서 유현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유현은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의 빛을 대부분 가리고 있었다. 그는 하얀 셔츠를 바지에 넣고, 검은색 벨트를 차고 탄탄한 엉덩이와 길고 탄력 있는 다리가 그의 남성적인 매력을 더욱 부각시켰다. 따르릉-은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녀는 급히 머리를 숙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 이제 좀 그만 말하세요. 전 지금 환자이니 휴식이 필요해요. 그리고 제가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은채는 이미 태윤에게 아이를 가지자고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러나 태윤은 아직 젊으니 벌써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은채는 분명 강여정에게 적지 않게 시달렸을 것이다.“그렇게 잘해주다가는 언젠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날뛸지도 몰라. 너는 도대체 왜 고은채를 좋아하는 거야? 집안이 가난한 데다가, 부모는 그냥 평범한 노동자야. 그래, 학력은 괜찮지만, 그게 너한테 뭐 도움이 돼?” “어차피 집에서 네 옷이나 빨고, 밥이나 해주는 것 빼고 뭘 할 수 있어? 어차피 애 하나도 못 낳잖아. 그때 기씨 가문의 아가씨가 널 마음에 들어 했을 때 엄마 말 듣고 결혼했으면 너한테도 엄청 도움이 되었을 거야.” “기씨 가문은 모두가 알다시피 엄청 부유한 데다가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 네가 그때 기씨 가문의 아가씨와 결혼했다면, 네 아버지의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됐을 거야. 우리 서씨 가문이 잘 나가긴 히지만, 기씨 가문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나와 네 아빠는 아들이 너 하나뿐이야. 넌 언젠가 가문의 기업들을 물려받아야 할 거고, 네 아내는 반드시 좋은 집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해. 모든 분야에서의 좋은 인맥을 가진 여자만이 진짜 훌륭한 내조야. 알겠어?” 강여정은 은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태윤은 은채가 결혼한 후로, 부모와 점점 멀어졌다. 결혼하고 나서 두 사람은 부모와 따로 살았기에, 강여정은 은채가 일부러 그녀와 아들 사이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태윤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강여정을 무례하게 대할 수도 없었기에 애써 참으면서 말했다. “어머니, 전 휴식이 필요해요. 그러니 이만 가주세요.” 강여정은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네 쓸모없는 아내가 돌봐줄 테니까,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거지.”
“닥쳐.” 태윤은 경수가 은채를 언급하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안색은 정말 보기 안 좋았다. 어쩌면 은채가 정말 마음을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태윤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말했다. “어쩌면 형수님은 널 화나게 만들려고 일부러 한결과 가까운 척했을 수도 있어.”“그래?” 태윤은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이훈도 서둘러 위로의 말을 했다. “한결은 자기가 은채 씨를 좋아한 시간이 너보다 더 오래됐다고 했었잖아. 하지만 넌 은채 씨와 연애 3년, 결혼 4년, 총 7년이나 함께 했잖아. 그럼 한결이가 몰래 8년동안 좋아했다는 거야? 난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이훈은 태윤을 위로하려 했지만, 동시에 8년 동안 한 사람을 짝사랑했다는 한결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정말 진정한 사랑 따위는 없을 것이다. 은채가 정말 예쁘고 몸매도 얼굴도 뛰어났지만, 8년 동안 몰래 좋아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태윤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너희들도 이만 가봐.”그는 혼자 있고 싶었다. “너 혼자서 괜찮겠어?” 경수가 물었다. “괜찮아. 도움이 필요하면 간병인을 구하면 돼.” 태윤이 대답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전화해.” “알겠어.” 경수와 이훈이 나가자 병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잠시 망설이다가 은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몇 분 기다린 후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태윤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총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하나는 상대가 전화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 또 하나는 번호가 차단된 경우.몇 분 뒤 다시 전화를 건 후, 그제야 확실히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윤의 안색이 엄청 어두워졌다.‘나랑 끝까지 싸우겠다는 거야?’‘그래, 좋아.’... 은채는 의뢰인을 만나 사건의 전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은채가 말했다.“요즘 많이 바쁘니 며칠이 지난 후 제대로 이야기 드릴게요...”“며칠 뒤? 미쳤어? 아니, 지금 바로 돌아와!” 한춘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은채는 태윤이 한춘매에게 가서 고자질을 한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냉소를 터뜨렸다. 이미 이혼했는데, 여전히 전 시어머니에게 가서 고자질을 하다니, 태윤은 점점 창피한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다.그것이 은채를 더 짜증나게 만들었다. 은채는 전화를 바로 끊었다.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그녀는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돌아갈 것이다.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은채는 부모님의 연락처를 잠시 차단했다. 그녀는 가족들이 집으로 찾아올까 봐 잠시 봉운구에 머물기로 했다. 옷이 부족하다면 새로 사면 그만이었다. 7일 후, 의뢰인이 법정에 섰다. 은채는 변호사로서 의뢰인과 함께 앉았다. 예상대로 의뢰인의 범죄 증거는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뢰인의 가짜 아내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무죄를 주장하였기에,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은채는 철저히 준비해왔기에 무슨 질문이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반박은 힘 있고,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유현이 맨 뒤 자리에 앉아 은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은채는 처음으로 혼자서 사건을 맡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부분을 모두 고려한 것이 눈에 띄었다. 결국, 예상대로 승소했다. 은채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야 유현을 발견했다. 외뢰인의 소송이 끝난 후, 은채는 길가로 나갔다. “기 변호사님, 언제 오셨어요?” “오늘.” 유현은 은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하 교수님께서 고 변호사님을 저한테 맡겼으니, 첫 재판인 만큼 당연히 어땠는지 보러 와야죠.”은채가 물었다. “그럼 잘한 건가요?” “간신히 합격이에요.” 은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승소했으니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간신히 합격이라니.’‘
한춘매는 서둘러 은채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은채야, 엄마도 너한테 화를 내고 싶진 않아. 하지만 너무 고집부리면 안 돼. 엄마랑 아빠는 눙력이 없어서 평생 먹고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하지만 네가 태윤이랑 결혼한 덕분에, 엄마랑 아빠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됐잖아. 지금 태윤이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연히 가서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서태윤이 다른 말은 안 했어요?” 은채가 물었다. “했지. 안 그래도, 너랑 싸웠다며 나랑 아빠한테 잘 좀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어. 은채야, 서로 함께 지내다가 싸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래도 태윤이가 먼저 사과했으니, 이만 병원에 가봐.”한춘매가 달래며 말했다. 은채는 차갑게 웃은 뒤 한춘매를 보며 말했다. “엄마, 저 서태윤과 이혼했어요. 이혼 소송도 모두 끝났는데 제가 왜 전남편을 돌봐주러 병원에 가야 하는 거죠?”한춘매는 깜짝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고성현도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은채를 바라보았다. “이, 이혼했다고?”“은채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서태윤이 바람을 펴서 이혼했어요.”은채는 이혼 증명서를 꺼내며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한춘매는 재빨리 그걸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은채와 태윤은 확실히 이혼한 사이였다.“너 정말 미쳤어?” 한춘매는 주먹으로 은채의 팔을 내리치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가서 태윤한테 사과하고 용서해달라고 빌어!” “왜 제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거죠? 전 잘못한 게 없잖아요!” 은채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한춘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람핀 건 서태윤이에요!”“태윤이가 평범한 사람이야? 국내 최상위 로펌 소속의 톱 변호사인 데다가, 집안도 엄청나고, 외동아들이어서 수조의 자산을 상속받을 사람인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어차피 바람을 피웠어도, 네가 자리를 지키면 여전히 본처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여보, 진정해.” 고성현은 한춘매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나서야
고성현은 한춘매를 달래며 말했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그만이잖아, 우리는 우리끼리 조용히 잘 살면 되는 거야. 굳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평생 큰일을 해내지 못하는 거야. 당신이 돈 있고 권력이 있었다면,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했겠어?” 고성현은 말문이 막혔다. 한춘매는 눈물을 닦으며 은채를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태윤을 붙잡아.” 은채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해!” 한춘매는 은채를 세게 밀었다. 은채는 비틀거리며 잠시 균형을 잃었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팔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쳤다. 고성현은 은채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이만 가 봐. 더는 엄마랑 싸우지 말고.” 은채는 고성현을 바라보며 이혼 증명 서류를 가방에 다시 넣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한춘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든, 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태윤이랑 다시 결혼해야 해!” 눈물이 은채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은채는 여전히 등을 곧게 펴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았다. 꽤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후, 마침내 엔진을 켜고 차를 몰았다. 은채는 호텔에 도착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묵고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태윤이 그녀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은채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태윤은 그녀를 보았다. “고은채.” 태윤이 물었다. “계속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은채는 턱을 조금 들고 그를 지나쳐서 걸어갔다. “도대체 뭘 원하는데?”태윤은 은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머리카락을 자른 탓인지, 예전의 부드럽고 순수한 느낌과는 달리, 지금의 은채는 강하고 차가운 모습을 지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태윤은 문에 기대어 서며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