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 태윤은 경수가 은채를 언급하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안색은 정말 보기 안 좋았다. 어쩌면 은채가 정말 마음을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태윤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말했다. “어쩌면 형수님은 널 화나게 만들려고 일부러 한결과 가까운 척했을 수도 있어.”“그래?” 태윤은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이훈도 서둘러 위로의 말을 했다. “한결은 자기가 은채 씨를 좋아한 시간이 너보다 더 오래됐다고 했었잖아. 하지만 넌 은채 씨와 연애 3년, 결혼 4년, 총 7년이나 함께 했잖아. 그럼 한결이가 몰래 8년동안 좋아했다는 거야? 난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이훈은 태윤을 위로하려 했지만, 동시에 8년 동안 한 사람을 짝사랑했다는 한결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정말 진정한 사랑 따위는 없을 것이다. 은채가 정말 예쁘고 몸매도 얼굴도 뛰어났지만, 8년 동안 몰래 좋아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태윤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너희들도 이만 가봐.”그는 혼자 있고 싶었다. “너 혼자서 괜찮겠어?” 경수가 물었다. “괜찮아. 도움이 필요하면 간병인을 구하면 돼.” 태윤이 대답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전화해.” “알겠어.” 경수와 이훈이 나가자 병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잠시 망설이다가 은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몇 분 기다린 후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태윤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총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하나는 상대가 전화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 또 하나는 번호가 차단된 경우.몇 분 뒤 다시 전화를 건 후, 그제야 확실히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윤의 안색이 엄청 어두워졌다.‘나랑 끝까지 싸우겠다는 거야?’‘그래, 좋아.’... 은채는 의뢰인을 만나 사건의 전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은채가 말했다.“요즘 많이 바쁘니 며칠이 지난 후 제대로 이야기 드릴게요...”“며칠 뒤? 미쳤어? 아니, 지금 바로 돌아와!” 한춘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은채는 태윤이 한춘매에게 가서 고자질을 한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냉소를 터뜨렸다. 이미 이혼했는데, 여전히 전 시어머니에게 가서 고자질을 하다니, 태윤은 점점 창피한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다.그것이 은채를 더 짜증나게 만들었다. 은채는 전화를 바로 끊었다.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그녀는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돌아갈 것이다.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은채는 부모님의 연락처를 잠시 차단했다. 그녀는 가족들이 집으로 찾아올까 봐 잠시 봉운구에 머물기로 했다. 옷이 부족하다면 새로 사면 그만이었다. 7일 후, 의뢰인이 법정에 섰다. 은채는 변호사로서 의뢰인과 함께 앉았다. 예상대로 의뢰인의 범죄 증거는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뢰인의 가짜 아내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무죄를 주장하였기에,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은채는 철저히 준비해왔기에 무슨 질문이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반박은 힘 있고,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유현이 맨 뒤 자리에 앉아 은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은채는 처음으로 혼자서 사건을 맡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부분을 모두 고려한 것이 눈에 띄었다. 결국, 예상대로 승소했다. 은채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야 유현을 발견했다. 외뢰인의 소송이 끝난 후, 은채는 길가로 나갔다. “기 변호사님, 언제 오셨어요?” “오늘.” 유현은 은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하 교수님께서 고 변호사님을 저한테 맡겼으니, 첫 재판인 만큼 당연히 어땠는지 보러 와야죠.”은채가 물었다. “그럼 잘한 건가요?” “간신히 합격이에요.” 은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승소했으니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간신히 합격이라니.’‘
한춘매는 서둘러 은채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은채야, 엄마도 너한테 화를 내고 싶진 않아. 하지만 너무 고집부리면 안 돼. 엄마랑 아빠는 눙력이 없어서 평생 먹고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하지만 네가 태윤이랑 결혼한 덕분에, 엄마랑 아빠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됐잖아. 지금 태윤이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연히 가서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서태윤이 다른 말은 안 했어요?” 은채가 물었다. “했지. 안 그래도, 너랑 싸웠다며 나랑 아빠한테 잘 좀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어. 은채야, 서로 함께 지내다가 싸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래도 태윤이가 먼저 사과했으니, 이만 병원에 가봐.”한춘매가 달래며 말했다. 은채는 차갑게 웃은 뒤 한춘매를 보며 말했다. “엄마, 저 서태윤과 이혼했어요. 이혼 소송도 모두 끝났는데 제가 왜 전남편을 돌봐주러 병원에 가야 하는 거죠?”한춘매는 깜짝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고성현도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은채를 바라보았다. “이, 이혼했다고?”“은채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서태윤이 바람을 펴서 이혼했어요.”은채는 이혼 증명서를 꺼내며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한춘매는 재빨리 그걸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은채와 태윤은 확실히 이혼한 사이였다.“너 정말 미쳤어?” 한춘매는 주먹으로 은채의 팔을 내리치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가서 태윤한테 사과하고 용서해달라고 빌어!” “왜 제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거죠? 전 잘못한 게 없잖아요!” 은채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한춘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람핀 건 서태윤이에요!”“태윤이가 평범한 사람이야? 국내 최상위 로펌 소속의 톱 변호사인 데다가, 집안도 엄청나고, 외동아들이어서 수조의 자산을 상속받을 사람인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어차피 바람을 피웠어도, 네가 자리를 지키면 여전히 본처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여보, 진정해.” 고성현은 한춘매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나서야
고성현은 한춘매를 달래며 말했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그만이잖아, 우리는 우리끼리 조용히 잘 살면 되는 거야. 굳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평생 큰일을 해내지 못하는 거야. 당신이 돈 있고 권력이 있었다면,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했겠어?” 고성현은 말문이 막혔다. 한춘매는 눈물을 닦으며 은채를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태윤을 붙잡아.” 은채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해!” 한춘매는 은채를 세게 밀었다. 은채는 비틀거리며 잠시 균형을 잃었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팔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쳤다. 고성현은 은채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이만 가 봐. 더는 엄마랑 싸우지 말고.” 은채는 고성현을 바라보며 이혼 증명 서류를 가방에 다시 넣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한춘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든, 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태윤이랑 다시 결혼해야 해!” 눈물이 은채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은채는 여전히 등을 곧게 펴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았다. 꽤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후, 마침내 엔진을 켜고 차를 몰았다. 은채는 호텔에 도착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묵고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태윤이 그녀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은채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태윤은 그녀를 보았다. “고은채.” 태윤이 물었다. “계속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은채는 턱을 조금 들고 그를 지나쳐서 걸어갔다. “도대체 뭘 원하는데?”태윤은 은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머리카락을 자른 탓인지, 예전의 부드럽고 순수한 느낌과는 달리, 지금의 은채는 강하고 차가운 모습을 지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태윤은 문에 기대어 서며 말했다. “
태윤은 여전히 예전의 은채가 좋았다. 그를 사랑해주고, 그에게 의지하며, 그를 언제나 생각해 주었던 고은채. 은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떤 말투로 말할까?”태윤은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은채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게 되자, 은채는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태윤의 팔이 그녀를 막았다. “고은채, 방이 이렇게 작은데, 어디로 도망갈 생각이야? 정말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은채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 설마 아직도 날 좋아한다는 말 하려는 건 아니겠지? 네가 날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바뀔 건 아무것도 없어.”그 순간, 태윤은 그녀의 턱을 꽉 잡았다. “고은채,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은채는 그의 손을 힘껏 떼어내며 이성을 잃은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한테 손대지 마!”태윤은 잠시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큰 반응에 놀란 것이었다. “우웩!”은채는 화장실로 뛰어가 세면대에 기대며 토해냈다. 태윤과 세아가 몸을 섞었다는 사실을 직접 들은 후부터, 은채는 태윤에게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그와의 접촉은 은채에게 역겨운 느낌을 주었다.태윤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날 이렇게까지 혐오하는 건가?’ 태윤은 입술을 깨물며, 한참 동안 은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은채, 내가 너와 이혼한 것은 잠시 충동적으로 행동을 한 것이었어.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니까, 그건 무효야.” 태윤은 말을 마친 후, 성큼성큼 방을 나갔다. 은채는 입술을 깨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쥔 채 쫓아가 소리질렀다.“서태윤, 네가 내 엄마를 미끼로 삼는다 해도 나는 절대 너와 재혼할 생각 없어!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절대!” 태윤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고 몸도 조금 흔들렸다. 그 후,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겨 떠났다. ...
“네.” 유현은 가볍게 대답하며, 잠시 은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고 변호사님은 어디 살고 있어요?”은채는 오른쪽에 있는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1동 2호, 원룸 아파트요.”“전 고 변호사님의 맞은편에 살아요.” 은채는 맞은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집을 구할 때 집주인이 아파트가 아니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은채는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다. 다 큰 성인이 울었던 게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알겠습니다.”유현이 대답했다. 은채는 물건을 들고 빠르게 계단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도망치는 듯한 뒷모습을 보던 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은채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단숨에 6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컵에 물을 따르고, 목이 마른 대로 마셨다. 은채는 숨을 고르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 민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 울었을 뿐이었다. ‘성인이라 해도 가끔은 약해질 수 있는 거 아니야?’‘그래, 난 신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우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을 거야.’은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기운을 차려서 물건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 후, 라면을 끓여 먹고 씻은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최근 며칠 간은 봉운구에 있는 작은 여관에서 지낸 데다가, 계속 사건 때문에 생각이 많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곳은 비싸지만 환경이 정말 좋았다. 밤에는 소음도 거의 없었기에, 은채는 곧 잠이 들었다. 그녀는 꿈도 꾸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깊은 잠에 들었다. 이혼 후 처음으로 제대로 잠을 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은채는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우유 한 컵을 데워 마셨다. 집이 로펌과 매우 가까웠기에 은채는 운전하지 않고 걸어서 갔다.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다 보니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은채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유현도 로펌으로
은채는 젓가락을 집어들고 고개를 들어 말했다. “엄마도 드세요.”‘그새 생각이 바뀐 건가?’은채는 속으로 의아했지만, 한춘매의 태도가 괜찮아 보였기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가 열심히 돈 벌어서 엄마랑 아빠 잘 모실게요. 물론 엄청 부유한 삶을 보장해드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는 데 걱정은 없을 거예요.”“은채야, 먼저 밥부터 먹어.” 한춘매는 웃으면서 말했다. 은채는 고개를 끄덕인 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당을 나섰다. 그때 한춘매가 갑자기 은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채는 깜짝 놀랐다. 밥 먹을 때는 괜찮았던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엄마, 왜 그래요?” “은채야, 제발 부탁이야. 태윤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 한춘매는 오늘 태윤을 찾아가 은채를 대신해 사과하려 했다. 원래 그녀에게 아주 잘하던 태윤은 아예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았다.결국 한춘매는 로펌의 경비에게 쫓겨났다. 그녀는 문 앞에 있던 계단에서 그녀는 미끄러져 넘어져 매우 불쾌했다.이전에 태윤을 찾았을 땐 모두가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며 차를 따라주던 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한춘매는 이 차이를 견딜 수 없었다. 은채의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엄마가 무릎 꿇어야만 엄마 말을 들어줄 거야?” 한춘매는 말하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은채는 그녀를 잡아당기며 눈물이 글썽였고 답답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은채는 한춘매가 아들이 없어서 할머니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윤을 찾아가는 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은채는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한춘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은채는 한춘매에게 끌려 태윤이 근무하는 로펌 앞에 갔다. 한춘매는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태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춘매는
강여정은 웃으며 무시하는 듯한 눈길로 한춘매를 쳐다보았다. “들었어요? 당신 딸과 내 아들은 이미 이혼했어요. 이젠 다시 네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한춘매는 떨리는 눈동자로 태윤을 쳐다보았다. “내가 은채 대신 사과할게.”태윤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당신 딸이 죽어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었거든요.”태윤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은채의 그 한 마디가 태윤을 마음 아프게 만들었다. 그에게도 자존심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듣고 계속 은채에게 재혼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세상엔 은채 말고도 여자가 많았고, 그녀보다 예쁜 여자도 차고 넘쳤다. “얼른 와서 사과해!” 한춘매는 은채에게 소리쳤다. 은채는 목구멍에 쓴맛이 올라왔다. 그녀는 한춘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엄마, 이만 가요.”“이제 이혼했으니까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난 처음부터 이 결혼 반대했었어. 지금이라도 이혼한 게 정말 잘된 일이야.”강여정은 변함없이 비꼬았다. 한춘매는 이에 반박하며 강여정을 노려보았다. “제 딸이 뭐가 어때서요? 예쁜 데다가 학벌도 좋고, 결혼한 4년 동안 태윤이도 잘 돌봐 주었잖아요.”강여정은 비웃으며 말했다. “예쁘긴 하죠, 안 그러면 내 아들이 왜 좋아했겠어요? 설마 가난한 집안과 별 볼일 없는 부모를 가져서 좋아했겠어요?”“당신...” 한춘매는 얼굴이 빨개지며 격분했다. 은채는 한춘매의 행동에 늘 피곤했지만, 다른 사람이 한춘매를 모욕당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은채는 날카롭게 강여정을 쏘아보며 말했다. “별 볼일 없는게 뭐가 문제죠? 저희는 도둑질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진 않았어요. 저희는 자기 능력으로 살고 있으니 돈 많은 것 빼고는 잘난 점이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고귀하죠.”강여정은 하얗게 질렸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딴식으로 말을 해?”강여정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태윤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갑게 변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