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군의 장군 황후: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황제가 떠난 후, 황귀비의 측근 춘화(春禾)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서 말했다.“마마, 황후가 만약 폐하의 승은을 입고 회임이라도 한다면 이 궁에서 마마의 독보적인 지위는 사라질 거예요.”쾅!침대머리에 놓였던 화분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춘화는 다급히 주변을 정리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마마, 고정하세요!”황귀비는 음침한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치를 떨었다.“폐하께서는 그 여인과 합방할 리가 없어!”입궁하기 전에 이미 더럽혀진 여자이고 뻔뻔하게도 총애를 달라고 황제를 강요한 여자였다.그 시각, 다른 비빈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황제의 승은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그들이었기에 황귀비보다 타격이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역시 황후의 수완이 대단하네요. 폐하께서 그런 요구를 받아들여 주시다니.”황귀비 쪽 사람인 비빈 강씨가 비꼬듯이 말했다.“그게 무슨 수완이야? 그냥 협박이지! 난 조건이 주어져도 그렇게 비열한 짓은 안 해! 두고 봐! 분명 폐하의 노여움을 사고 내쳐질 거니까!”성난 비빈들이 있는 반면, 현비는 여느 때처럼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입궁하면 다 같은 식구고 황후마마를 축복해 드려야 하는 게 맞아.”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비빈들은 질투와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자녕궁.태후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뭐라고? 황상이 타협했다고?”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황제처럼 강압적인 사람이 여자의 협박에 타협하다니.계 상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마마, 이게 다 황귀비를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황귀비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황후께서는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겁니다.”태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운이 좋았던 게 아니야. 오히려 황후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영리한 아이였던 거지. 어쩌면 황귀비를 대적하는데는 고상한 사람보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황후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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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소욱은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눈앞의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비빈 강씨가 얇은 잠옷바람으로 침대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첫날밤이라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황제의 노여움이 두려웠던 것인지, 그녀는 고개만 푹 숙이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신첩… 비빈 강씨,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전에 황귀비마마의 궁에서… 폐하를 한번 뵌 적이 있어요.”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황제의 질문에 대답했다.지옥 사자를 닮은 황제의 싸늘한 표정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소욱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황후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주변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강씨는 두려움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폐하, 황후께서 신첩을… 여기로 보냈사옵니다.”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온 유사양은 강씨의 말을 듣고 경악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황후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사실 갑작스럽기는 비빈 강씨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자신에게 황제의 시중을 들 기회가 돌아오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낮에 황제가 황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들었을 때도 엄청 불편함을 드러냈던 그녀였다.그런데 저녁이 되어 황후에게서 이런 전갈을 받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기대 되기도 하고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빼앗길까 봐 이 일을 황귀비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자진궁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녀는 기대와 흥분에 가슴이 설렜다.입궁한지 몇 년이나 되는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하지만 황제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를 보더니 죽일 듯이 노려보며 누구냐고 따져물었다.그녀는 자신이 그렇게나 존재감이 없었는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강씨가 눈물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폐하…”하지만 그녀가 그럴수록 황제의 눈빛은 더 싸늘하게 식을 뿐이었다.소욱은 짜증스럽게 등을 돌리더니 유사양에게 분부했다.“돌려보내거라!”그 말을 들은 비빈 강씨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그럴 순 없어요, 폐하! 신첩은 황후마마의 지시를 받고 시중을 들러 온 거예요. 신첩이 먼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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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황제가 영화궁으로 온다는 소식에 연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폐하께서 여긴 왜 오신다는 걸까요?”최 상궁은 마치 이종족을 보는 눈으로 연상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몰라서 물어? 우리 마마께서 대낮에 폐하께 대놓고 총애를 요구하셨잖아. 그런데 밤중이 되어 강빈을 침전으로 보냈으니 폐하를 농락한 거랑 뭐가 달라!”“고귀하신 폐하께서 이런 수모를 어떻게 참겠어?”“마마, 얼른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저희들 목숨이 마마께 달렸습니다.”봉구안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언제 내가 시중을 들고 싶다고 했지?”최 상궁은 더 어안이 벙벙했다.‘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하지만 오해한 사람은 최 상궁뿐이 아니었다.황궁에서 황제의 총애를 갈구하지 않는 후궁은 없었다. 그러니 어렵게 잡은 합방의 기회를 다른 비빈에게 양보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잠들지 못한 비빈들은 자진궁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뭐? 오늘 시중을 드는 사람이 황후마마가 아니었다고? 그럼 누군데?”“비빈 강씨? 강씨가 왜? 걔가 시중을 든대? 아니, 왜?”“그런데 폐하께 쫓겨났다지 뭐야? 강씨는 아마 며칠동안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생겼어.”“그것뿐이겠어? 아마 황귀비도 걔 가만히 안 둘걸?”녕비는 급급히 현비의 궁을 찾았다.두 사람은 평소에도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언니는 그거 들었어요? 오늘 황후께서 비빈 강씨를 폐하의 침전으로 보냈대요.”현비는 두꺼운 망토를 두르고 기침하며 말했다.“수완아, 솔직히 나도 황후께서 이렇게 하실 줄은 몰랐어.”“마마께서는 진심으로 후궁의 안녕을 걱정하셨던 거야.”“언니, 황후를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우리 고모께서 그러시는데 황궁에서 총애를 갈구하지 않는 여인은 없다고 하셨어요.”“황후가 정말 우리를 위해 그랬을까요? 어렵게 얻은 합방의 기회를 다른 비빈에게 양보하면서까지요?”“황후는 고단수예요. 폐하의 승은은 받고 싶은데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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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어떻게...’봉구안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을 쥐었다.그날 밤 그녀와 싸웠던 사내와 똑같게 생긴 얼굴이 지척에 있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동일 인물이었다!아름다운 눈동자에 담긴 살기마저도 그날과 똑같았다.처음 그와 대결한 뒤,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를 황제의 그림자 호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황제였다니!고귀한 제왕이 그런 놀라운 무공 실력을 가진 것도 예상밖이었다.반면 소욱은 그녀가 그날의 자객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황후, 언제까지 짐을 뚫어져라 쳐다볼 생각이지?”소욱이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봉구안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신첩의 결례를 용서하시옵소서.”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긴장에 떨고 있었다.소욱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황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지난 번에 봤을 때는 멀리서 말에 다칠 뻔한 태후를 부축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그는 손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황후의 턱끝을 들어올렸다.대대로 현명한 황후를 배출한 봉씨 가문이지만 역대 황후들의 용모는 청순하다고 할 수 있어도 절대 화려한 용모는 아니었다.그런데 이번 대에 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궁으로 보내다니!그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여자를 궁에 보내고 총애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시뻘건 거짓말일 것이다!그리고 황후가 궁에 들어온 이후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대체 누가 허락도 없이 비빈을 자진궁에 보내라고 한 거지?”봉구안은 고개를 들고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답했다.“신첩은 궁중 법도대로 일을 처리하였을 뿐입니다. 신첩이 뭘 잘못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소욱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황후는 짐의 원칙에 대해 전혀 모르나 보군. 그럼 내 친히 가르쳐 줘야겠지.”곧이어 그는 그녀에게서 손을 데고 유사양을 불렀다.“황후는 입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원칙을 모를 수 있어도 옆사람들이 일깨워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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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봉구안은 숨이 막히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가족들과 서신을 주고받다가 어깨너머로 들은 내용입니다...”“가족들과 서신?”소욱은 당연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는 사람을 시켜 황후와 가족들이 나눈 서신을 전부 가져오라 명하였다.밖에서 듣고 있던 최 상궁는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황후는 가족들과 서신을 주고받은 일이 없는 거로 아는데?’이때, 언제 온 건지 연상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연상은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최 상궁을 뒤로하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폐하, 이건 봉 대인께서 오늘 보내온 서신이옵니다.”소욱은 황후를 놓아주고 서신을 펼쳤다.전형적인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서신이었다.“사랑하는 딸, 장미에게. 시집 가기 전 황후의 소임을 다하고 여러 후궁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황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이 아비는 아주 흐뭇했단다. 그래서 너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서신을 쓴다.”그 뒤로는 비빈 강씨에 관한 것과 다른 비빈들의 집안 상황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그들이 입궁한 시간과 가족 중에 부모 형제와의 관계, 취향 등이 있었다.이 편지만 놓고 보면 황후가 진심으로 후궁들을 관심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편지를 다 읽고난 소욱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참으로 현명한 황후 납셨군. 아주 만반의 준비를 했어.”항상 의심을 품고 사는 그였기에 바로 사람을 시켜 필적을 대조헀다.결과를 기다리는 중에도 봉구안은 흐트러짐 없이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곧이어 유사양이 돌아와서 말했다.“폐하, 봉 대인의 필적이 맞다고 확인되었습니다.”소욱은 봉구안의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반면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옆에 있는 연상은 긴장으로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이 서신은 황후의 지시를 받고 그녀가 쓴 것이었다. 연상이 봉 부인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필적이나 그림을 감쪽같이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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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봉구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흔들림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폐하, 신첩이 마음이 앞서 심기를 어지럽힌 것에 대해 정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벌로 영화궁에서 반성하고 있을 것이니 폐하의 시중을 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소욱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그래도 아주 멍청한 것은 아니군.”“가마를 준비하거라. 영소전으로 간다.”황제가 돌아간 후, 연상은 다리에 힘이 풀러 풀썩 주저앉았다.“마마, 겁나 죽는 줄 알았습니다.”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걱정스럽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는 강빈을 매정하게 내치셨는데 이로서 우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네요.”“게다가 폐하와 황귀비, 강빈 모두 적이 되게 생겼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봉구안은 실패라고 생각되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강빈은 황귀비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니 만약 폐하께서 강빈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승은을 주었을 것이다.”“예? 그럼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 강빈을 폐하의 침전으로 보냈단 말씀인가요?”연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설마 마마,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죠?”봉구안이 말했다.“싸움에서 이기려면 인내심이 필요해. 적이 실수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마마, 소인은 아둔해서 잘 모르겠사옵니다.”봉구안은 고개를 돌려 연상을 바라보며 말했다.“폐하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약속을 미루기 전에 먼저 실수를 유도하는 거지. 잘못이 폐하께 있는 한, 주동권은 우리한테 있어.”“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네요.”연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기죽어서 말했다.“3일 안에 폐하는 다시 강빈의 처소를 찾을 거야. 이번에는 약속을 번복하시지 않을 거니까 두고 봐.”연상은 그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그 폭군이?’깊은 밤, 봉구안은 잠이 오지 않았다.자신과 두 번이나 맞붙었던 호위가 사실은 황제였다니. 게다가 황제는 천수독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일반 호위무사라면 절대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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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강빈은 놀랍기도 하고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나갔다.금빛 찬란한 상자들을 보자 그녀는 조금 전의 불쾌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옆에 있던 시종이 말했다.“마마, 폐하께서는 영화궁을 떠난 후에 영소전에 잠깐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마 황귀비께서 폐하께 뭐라고 말씀하시어 보상을 하사하신 것 같아요. 황귀비께 고마움을 표해야겠어요!”강빈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건 황귀비마마뿐이야. 그분은 황후랑 달라!”황후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다시 분노가 솟구쳤다.‘황후, 복수할 거야!’한편, 자진궁.대전 안은 삭막하게 고요했다.그날 밤.사내는 짜증을 못참고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소욱은 옷섶을 풀어헤친 채, 침상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영화궁에서 나눴던 대화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며 잠이 오지 않았다.‘뭔가 이상해! 난 분명 황후의 시종들을 곤장을 쳐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어.’‘그런데 어쩌다가 황후한테 말렸지?’아마 그녀가 강빈의 아버지와 형제들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시점인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사실 확인을 위해 서신의 필적까지 감정하면서 영화궁에 온 목적은 완전히 잊은 채, 황후에게 끌려다닌 것 같았다.그 뒤로 대화가 끝나기까지 그는 황후가 자진궁에 허락도 없이 비빈을 들여보낸 것에 대해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황후가 만약 진심으로 강빈을 위로할 생각이었다면 일찌감치 그를 찾아와서 상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먼저 저지르고 궁지에 몰리자 강빈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위기에서 빠져나갔다.아무리 생각해도 황후가 그의 실수를 유도한 게 분명했다.‘젠장!’소욱은 짜증스럽게 침대를 내렸다.소리를 들은 유사양이 안으로 들어와 촛불을 켰다.“폐하, 어디 나가시려고요?”소욱은 유사양을 보자 오늘 있었던 일들이 또 떠올라서 홧김에 발로 그의 배를 걷어찼다.유사양은 겁에 질려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폐하, 소인이 뭘 잘못했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저절로 벌을 받겠습니다. 소인 때문에 폐하의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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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황귀비는 제 귀를 의심했다.조검이 계속해서 말했다.“유 태감이 마마께 기다리지 말라고 전하셨으니 사실일 겁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강빈의 처소에서 저녁을 드시고 계신답니다.”황귀비는 갑자기 불쾌감이 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저녁을 같이 하더라도 어차피 황제는 강빈을 품어주지 않을 것이다.‘이런 일로 당황하지 말자. 난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귀비야!’황제가 강빈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뭇 비빈들은 충격에 빠졌다.가장 분개한 건 단연 녕비였다. 그녀는 홧김에 찻잔을 집어던졌다.“강빈이 입궁한지 얼마나 된다고! 왜 걔가 나보다 먼저 승은을 입는다는 것이냐!”그녀의 시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는 어쩌면 강빈의 부친인 강 장군이 전장에서 승리하였다고 하여 격려 차 가신 걸 수도 있어요.”녕비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고모 말이 정말 맞는 걸까? 황후가 뒤에서 강빈을 밀어주고 있다는 말 말이야.”시종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마마, 그건 저도 모르겠사옵니다.”“하지만 황후께서는 아직 출입금지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수로 강빈을 돕겠어요?”녕비는 이 상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황후가 정말 대단한 수완을 가진 지략가라면 자신이 아닌 강빈을 밀어준 것이 이상했다.그녀는 후궁에 황제의 총애를 바라지 않는 여자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가장 신이 난 사람은 당연히 비빈 강씨였다.입궁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황제가 그녀의 처소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폐하, 이것 좀 드셔보십시요. 진주삼계탕인데 폐하가 오신다고 하여 신첩이 직접 만든 겁니다.”“폐하는 매일 정무가 바쁘시니 피로에 좋은 차도 준비했어요!”“폐하…”소욱은 참다못해 젓가락을 내려놓고 싸늘한 눈빛으로 강빈을 보며 말했다.“강빈, 밥 먹을 때는 조용히 밥만 먹는 법이야.”강빈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소곳이 사과했다.“폐하, 무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신첩은 단지 너무 기뻐서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그녀의 쉴새없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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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심야의 자진궁.예리한 화살이 문틀에 날아와서 박혔다.순식간에 금위군이 출동했다.“자객이다!”내전.소욱은 비단 잠옷으로 갈아입고 흑발을 그대로 풀어헤친 채 침상에 앉아 느긋하게 물었다.“밖이 왜 이리 소란스럽느냐?”유사양은 두 손으로 화살과 그 위에 붙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내밀었다.“폐하, 자객이 이걸 남기고 갔습니다.”소욱은 손을 뻗어 쪽지를 확인했다.[내일 밤 해시에 화청궁에서 폐하의 독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소욱의 동공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쪽지는 그의 손에서 산산이 가루가 되었다.“감히 다시 올 생각을 하다니.”상대는 이미 그의 신분을 알고 쪽지를 대범하게 자진궁에 보낸 것이 분명했다.유사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군을 바라보았다.‘누굴 말씀하시는 거지? 설마 그날 밤 그 자객?’다음 날 저녁, 화청궁.그림자 호위들은 냉궁 근처에 잠복하고 자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해시 일각이 되자 궁녀 복장을 한 여자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곧 달려들어 그녀를 포위했다.이상한 건 자객이 그들을 보고도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봉구안은 태연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무사들을 바라보았다.제왕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니 예상했던 결과였다.‘고작 인원수가 이게 다라니. 날 무시해?’봉구안은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냈다.호위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신호를 보냈다.“다 같이 달려들어!”슉!곧이어 공기를 가르는 아찔한 소리와 함께 봉구안이 잡은 채찍이 뱀처럼 허공을 갈랐다.채찍은 정확히 한 호위의 복부를 가격했다.그녀는 상대에게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손목의 힘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채찍을 휘둘렀다.눈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주변에 십여 명의 호위가 쓰러졌다.실력이 황궁에서도 알아주는 그들이었지만 채찍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상대는 처음이었다.그녀의 보법은 안정적이고도 빨랐으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채찍이 춤을 추듯이 흐느적거리며 주변을 쓸고 지나갔다.슉!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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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봉구안은 사내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여봐라!”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호위무사들이 안으로 달려들어왔다.“자객을 잡아라!”호위무사들이 덮쳐오자 봉구안은 무릎을 뻗어 소욱의 아랫도리를 공격했다.소욱은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강자의 대결에서 방심하는 쪽이 지는 법이다.그가 잠깐 틈을 준 사이에 봉구안은 그의 속박에서 풀려나 바지에 동인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슉!호위무사들은 제왕의 난처한 순간을 보지 않으려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다.그 짧은 순간에 소욱은 바지를 잡으려고 손을 풀었고 그로 인해 봉구안은 완전히 그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봉구안은 날렵하게 몸을 남겨 속박에서 풀려난 뒤, 호위들이 멍하니 정신을 못 추는 틈을 타 창밖으로 뛰쳐나갔다.그녀의 동작은 물 흐르듯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도주에 실패했을 것이다.호위들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방 안 분위기가 차게 가라앉았다.소욱은 긴 팔을 뻗어 책상을 잡고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맸다.그리고 자객이 사라진 방향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저 여인을 보는 즉시 죽여라!”군왕의 허리띠를 풀은 발칙한 여자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자신의 독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잊고 오로지 그녀를 죽이고 싶은 생각만 있었다.정신을 차린 호위들은 다급히 그녀를 쫓아갔다.하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봉구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화청궁.소욱은 의자에 앉아 자객이 남기고 간 채찍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호위들은 그의 앞에서 바짝 긴장한 자세로 용서를 빌었다.“폐하, 소인들이 무능하여 자객을 잡지 못하였습니다!”제왕의 분노는 가끔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하지만 주변에 풍기는 살기는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소욱은 고개를 들고 자신의 호위들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각자 곤장 50대씩 맞거라.”곤장 50대면 목숨이 붙어 있어도 반 곤죽이 돼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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