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와 음모가 득실대는 궁중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복수! 쌍둥이 동생이 순결을 잃고 수모를 못 참아 자결한 뒤, 봉구안은 집안의 지시로 갑옷을 벗고 동생 대신 이 나라의 황후가 되었다. 폭군에게는 오래전 죽은 첫사랑이 있었고, 후궁 비빈들은 첫사랑의 대체품에 지나지 않았다. 첫사랑과 닮은 곳 하나 없는 봉구안이었기에 모두 그녀가 폭군에게 처참히 버려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혼인한 지 이듬해, 황제가 황후와 이혼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황제가 황후를 폐하는 게 아니라, 황후가 황제에게 이혼장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폭군은 황후의 옷자락을 꽉 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 “갈 거면 짐의 시체를 밟고 가라!” 뭇 비빈들도 처량하게 울며 황후에게 매달렸다. “마마,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가실 거면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View More10월 중순.무애산의 바람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겨울이 다가오며 산속의 기운도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러나 봉구안은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날이 아무리 춥더라도, 그녀는 매일 새벽 검을 들었다.그날도 그녀는 평소처럼 홀로 훈련을 하려 했지만, 우연히 현릉풍과 마주쳤다.그는 연못가에 단출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다.날카로운 찬바람이 옷깃을 휘날렸지만, 그는 마치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봉구안은 별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그 순간 현릉풍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이것이 운명이라면, 피할 수 없습니다.”봉구안은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운명이라니?그가 말하는 운명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혹시…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인가?그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소욱이 그녀를 찾아왔다.그는 아침부터 도성에서 온 밀서를 확인하느라 늦어진 상태였다.봉구안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본 그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봉구안은 차가운 바람을 등지고 그를 바라보았다.눈빛 속에는 한층 더 깊은 결심이 담겨 있었다.“폐하, 돌아가면 후궁을 공평하게 대하시옵소서.”소욱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그의 눈에는 불꽃이 스쳤다.그러나 이내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혹시 약이 너무 쓴 것이냐? 그렇다면 이제 그만 마시자.”“나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을 테니, 그냥 돌아가자.”그는 한숨을 내쉬며, 애써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하지만 봉구안은 한층 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폐하, 현릉풍 선생께서도 장담하지 못하셨습니다. 설령 치료가 가능하다 해도,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황실의 대를 잇는 것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해서, 폐하께서 양자를 들이시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그
서여국.최근 서여국에 한 명의 신의가 찾아왔다.그의 뛰어난 의술 덕분에 황제의 병세가 한결 나아졌다.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기쁜 일이 생기면 정신도 맑아지는 법이지.”황제는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숙연과 다시 재회하며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편전 안.그러나 유영의 얼굴은 어두웠다.분명 황제는 오래지 않아 죽을 터였다.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갑자기 병세가 호전되다니!그 빌어먹을 의원은 대체 어디서 굴러온 자란 말인가?이대로라면 황제는 당분간 죽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렇다면… 그녀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유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안 돼!’그녀는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유영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침전 안.황제는 막 약을 다 마신 참이었다.유영은 침상 앞까지 다가가,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언니.”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숙연이구나. 무슨 일이냐?”시녀가 둥근 의자를 가져오자, 유영은 자연스럽게 앉으며 말을 꺼냈다.“언니께서 건강을 회복하셨다니,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다만, 중요한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무슨 일이냐?”유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제 남제는 예전과 다릅니다. 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가 남제에 영토를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며, 수많은 상업 통로가 열렸습니다.”“심지어 동산국조차도 남제와의 교역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서여국에도 절호의 기회입니다.”황제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유영은 미소를 머금고 계속해서 말했다.“상업이 활성화되면, 남제는 본국의 물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고,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건 모든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우리 서여국 역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우리도 이
자신이 또다시 이상해지고 있음을 감지한 서왕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그 순간, 완부옥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불렀다.“전하~ 어디 가세요? 이리 와보시죠.”서왕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이 여자,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군!그는 이를 갈았다.반드시 이 ‘정충이’을 뽑아내고야 말겠다!……참장부.그즈음, 봉 부인이 장주에서 도성으로 돌아왔다.그러나 불과 두 달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그녀는 처음부터 유영이 봉 대인과 혼인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봉구안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봉 대인은 혼약을 파기했고, 유영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봉 부인은 얼굴이 굳었다.“유영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 그리고 황후는? 황후를 만나려면 어찌해야 하느냐?”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아들 봉안진을 찾았다.주씨가 그녀를 조용히 달랬다.“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이모님은 아마 강주로 돌아가셨을 거예요.”“황후마마께서는 폐하와 함께 각지를 순행 중이라 언제 돌아오실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들었어요.”“서방님께서 저녁에 돌아오시면 자세히 이야기해 드릴거예요.”……그날 저녁, 봉안진이 귀가하자, 봉 부인은 조급한 얼굴로 다그쳤다.“안진아, 솔직히 말해 보거라.”“네 아버지와 이모가 떠난 게 정말 황후 때문이냐?”봉구안은 분명 그녀에게 유영 모녀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이유는 무엇인가?봉안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어머니, 후궁은 정사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아버지가 강주로 부임한 것은 황후마마의 뜻이 아니라, 황제 폐하의 뜻입니다.”“그럼 이모는? 네 이모와 네 아버지는 왜 혼례를 안하기로 한 것이냐?”봉안진은 어머니의 말을 끊고 조용히 말했다.“어머니,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아버지와 이모께서 떳떳하셨다면, 황후께서 그들을 방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황후는 제 친누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친딸이죠.”“설마 어머니께 해를 끼칠 사람이라
남제 황성.봉부.임씨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내 아들의 명예가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그녀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그런데 그 옆에서 봉명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머니, 전 죽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임씨는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소리쳤다.“네가 봉가를 떠나, 청루의 여인을 맞아들인다고?!”“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봉명헌 역시 답답한 심정이었다.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더 이상 피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이는 그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이제 그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 상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겉으로는 봉가에서 쫓겨난 신세지만, 그의 몸에는 봉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언젠가 그가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면, 아버지와 형이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을 터였다.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통곡하고 있었다.임씨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서방이 떠나기 전, 그녀에게 내명을 맡기며 가정을 잘 다스리고 아들을 보살피라고 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한단 말인가?이제 그녀의 봉가 정실 부인이 될 꿈은 더욱 멀어진 듯했다.……강주의 관청을 순찰하던 봉 대인은 집에서 온 서신을 받아들자마자 눈이 뒤집혔다.“이 놈 자식이! 감히 청루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내가 죽은 줄 아느냐!”하지만 그는 강주에 있는 이상, 직책을 벗어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날 밤, 봉 대인은 급히 서신을 써서 봉안진에게 보냈다.장남에게 꼭 이 혼사를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봉안진 역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참장부.부인 주씨는 봉안진의 옷을 정리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서방님, 오늘 둘째 도련님의 혼례 초청장이 도착했어요. 자희도 가야 할까요?”봉안진은 묵묵히 책상 위의 초청장을 바라보았다.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에는 한숨과도 같은
서녀국 황제의 밀서에는 유영에 대한 모든 의혹이 담겨 있었다.봉구안은 조용히 서신을 읽었다.그리고, 문득 눈을 들어 소욱을 바라보았다.“서녀국에서도 유영이 진짜 숙연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이 예상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며칠 전, 그녀는 이미 유씨 가문의 초상화를 받아보았다.동방가문이 각종 정보를 취합해 그려낸 초상화 속 유씨 부부와 죽은 막내아들이 있었다.봉구안은 초상화를 면밀히 살폈다.유영과 그녀의 남동생은 부모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그러나 유영의 어머니만은 달랐다.그녀는 유씨 가문의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다.왜냐하면, 유영의 나이는 숙연과 정확히 일치했다.과연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분명, 이 안에는 숨겨진 진실이 존재할 터였다.봉구안은 조용히 서신을 접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황궁 내부.정희는 궁을 거닐며 어머니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어머니, 다들 그러던데요.”“황제 폐하께서 황위를 어머니께 넘기실 거라고요!”유영은 미소를 머금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이미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서녀국 황제는 젊은 시절 심한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태중의 아이를 잃었다.그 후로 병이 깊어져 더 이상 후사를 볼 수 없었다.그렇기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 서녀국을 이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유일한 후계자는 동생 숙연 뿐이었다.그렇지 않다면 나라를 위해 재능 있는 자에게 왕좌를 물려줘야 했다.그러나, 그 어떤 황제도 스스로 권좌를 포기하지 않는다.결국 서녀국의 황위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그녀는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유영은 차를 천천히 마시며, 정희에게 단단히 당부했다.“이 이야기는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특히, 네 이모 앞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정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알아요, 어머니. 성급하게 굴어선 안 되죠.”“폐하께서 직접 선포하기 전까지는 신중
무애산에 지내는 제자들은 서른 명 남짓.그중 다수는 소욱과 함께 자란 이들로, 서로 거리낌 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이날, 드물게 방에서 나온 소욱은 정면에서 한 사형제를 마주쳤다.상대는 약을 들고 있었는데, 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폐하, 약은 따뜻할 때 드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참자.’소욱은 묵묵히 약을 받아 들었다.그러나 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사형제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폐하, 그래서 그동안 후사가 없었던 거였군요. 진작에 스승님께 오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순간, 소욱의 이성이 흔들렸다.그가 고개를 홱 돌리는 순간, 그 사형제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저 놈들이 감히!!”이를 악문 소욱은 살기를 삼키며 방으로 돌아왔다.그러나 방 안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봉구안이 있었다.소욱은 즉시 얼굴을 부드럽게 풀며,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구안아, 약 먹을 시간이구나.”겉으로는 자신이 먹을 약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그녀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봉구안은 주저 없이 약 그릇을 들어 올렸다.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숨에 마셔 버렸다.소욱은 예전에 이 약을 맛본 적이 있었다.상상 이상으로 쓴 약이었다.그녀가 매일 이렇게 삼켜야 한다는 사실에 소욱은 속이 쓰려왔다.“괜찮느냐?”그러자, 봉구안은 덤덤하게 말했다.“약이 쓰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겠지요.”그러고는 바로 물었다.“소군주 역시 한때 한냉증을 앓았다고 들었습니다.”“그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적은 없으십니까?”소욱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당시 태의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기에, 먼 길을 오지 않았다.”“그리고, 소아의 병세와 너의 병세는 달랐다.”“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약재는 무애산에는 없었지.”“결국,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소욱이 그렇게 말하며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는 천지설산에서 있었던 그녀의 일을 떠올렸다.그의 시선이 깊어졌다.그
오양련은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에 단호한 기백을 담고 있었다.“황제께서는 숙연과 닮지 않았습니다.”“한 명은 어머니를, 한 명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셨지요.”“하지만 오늘 직접 확인해 보니, 저 아이는 황제 폐하의 부친을 닮은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그 아이는… 가짜입니다!”정전 안이 한순간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모신 상궁은 주춤하며 머뭇거렸다.“대인, 오늘은…”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숙연 대인을 찾은 날입니다.”“오늘 하루 황제께서 기분이 유독 좋아 보이셨고, 덕분에 병세도 호전될지 모릅니다.”“그런데 이렇게 바로 숙연 대인의 신분을 의심하신다면…”그러나, 황제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조용히 손을 들었다.그 순간, 모신 상궁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오양련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폐하, 저는 알고 있습니다.”“폐하께서는 그 아이를 후계자로 세울 생각이시지요.”“그러나, 그럴수록 그녀의 진짜 정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부디 신중히 조사하신 후,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황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좋다. 그렇다면 그 반쪽짜리 옥비녀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오양련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그 비녀가 진짜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증거였다.황제는 비녀가 가짜일 리 없음을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 단호한 이유는 단 하나.그녀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는 것이었다.황제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 옥비녀는 진짜다.”“그렇다면, 저 아이가 진짜 숙연의 행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오양련과 모신 상궁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황제는 이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아무런 의심도 드러내지 않고, 유영을 받아들였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진짜 숙연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오양련은 한숨을 내쉬었다.“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해 두셨군요.”그러나 그 순간
고요하던 수무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현릉풍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방금… 황후가 뭐라고 했는가?황제의 몸에 이상이 있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니?그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황제의 몸 상태는 완벽했다.그 어디에도 문제가 없었다.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소욱이었다.그는 봉구안이 한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내 몸이… 문제였다고?”한순간 혼란스러웠다.그러나 곧 깨달았다.부부는 하나다.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는 두 사람의 문제이다.그리고, 봉구안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소욱은 즉시 반응했다.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그는 바로 스승을 향해 말했다.“스승님, 제 몸을 진찰해 주십시오.”그 순간, 현릉풍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허…”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거, 참…”제자와 황후.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지.그러나, 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현릉풍이 이 진료를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그가 이미 두 사람의 방문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를 보내 직접 마중하게 했다면?그것은 이미 치료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다만, 무애산의 규율이 걸림돌일 뿐이었다.잠시 후. 현릉풍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허허허!”그는 흰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의 눈빛이 번뜩이며 소욱을 바라보았다.“겉으로는 황제를 위한 치료라니…”“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구나!”그러나, 소욱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했다.현릉풍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저 애송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군.’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황후의 단독 계획이었다.그녀는 이미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승부를 결정지어 놓았던 것이다.소욱을 키우며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릉풍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제자가 완전히 당하
하늘을 찌를 듯한 무림의 성지, 무애산 수무대.그곳, 깊은 고요 속에서 한 명의 백발 노인이 좌선하고 있었다.그는 바로 무애산의 주인이자 소욱의 스승인 현릉풍이었다.수무대 입구.한 제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스승님,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도착하셨습니다.”“지금 바로 뵙기를 원하시는데, 어찌 하시겠습니까?”세속의 규율대로라면, 황제가 직접 찾아왔다면 마땅히 문 앞까지 나가 맞이해야 했다.그러나 현릉풍은 속세를 초월한 은둔 고수였다.황제라 해도, 그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그렇다고 손님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그리고 평온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들을 들여보내거라.”“예, 스승님.”수무대 밖.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봉우리 위로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며 마치 신선의 거처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소욱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아름다우냐?”봉구안은 시선을 멀리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그야말로 인간계의 신선경이라 할 만하군요.”소욱은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버려진 아이였다.아버지에게 미움받고, 황궁에서 내쳐진 채 이 산에 던져졌다.그에게 무애산은 절망과 고립의 상징이었다.그는 무애산을 증오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 있었다.“너와 함께 이곳에 서 있다니… 감회가 새롭구나.”그는 조용히 손을 더욱 꽉 쥐었다.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구안아, 스승님은 인자한 분이지만, 규율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야.”“정말로 그분을 설득할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봉구안은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제가 언제 이 곳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까?”소욱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무슨 뜻이냐?”그때, 제자가
“장군! 급보입니다! 장미 아가씨께서 치욕을 당해 자결하셨으니 속히 경성으로 복귀하여 큰아가씨 대신 혼인하라는 노부인의 명이 있으셨습니다!”남제(南齊)의 변경, 준마가 금방 녹은 시냇물을 힘차게 밟으며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말을 탄 봉구안(鳳九顏)이 최전방에서 달리고 있었다. 흰색 소복에 검은 머리를 대충 비녀로 틀어 올린 그녀의 주변으로 귀티 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그녀와 동생 봉장미는 쌍둥이였지만 이 시대에 여자 쌍둥이가 태어나면 불길한 징조였기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깥을 떠돌며 자랐다.성품이 온화한 봉장미는 누구에게 원한을 살 여인이 아니었다.봉구안은 누가 그처럼 순수하고 착한 동생을 해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게 누구든, 범인의 가죽을 발라내서 개 먹이로 줄 것이다!호위대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에서 애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군, 벌써 강행군으로 말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전방에 객잔이 있으니 가서 좀 쉬고…”봉구안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따라오지 못할 거면 군영으로 꺼지거라! 이랴!”‘멍청한 놈들, 쉴 시간이 어디 있다고!’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것은 봉씨 가문 백여 명의 목숨이었다.호위대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상대는 북대영(北大營)에서 가장 빠르고 신출귀몰하기로 소문난 봉 장군이었다!그렇게 7일 후, 황성.봉가에서 일국의 황후가 나왔다는 것은 지고무상한 영광이었다.백성들은 천자의 혼인식을 구경하러 분분히 거리로 나왔다.하지만 영친 대오가 도착했지만 새신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구경꾼들이 차츰 술렁이기 시작했다.“봉가의 장녀는 얼마 전에 산적들에게 끌려갔다가 봉가의 친위대가 출동하여 겨우 구해왔다고 들었는데 순결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여인이 어찌 일국의 황후가 될 수 있단 말이오?”“봉가의 여인들은 참 팔자도 좋소.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가문 아니오. 이런 든든한 집안이 우리 남제를 지켜주고 있어서 우리가 이런 태평 성세에 살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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