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장군 황후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기고 욕조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봉구안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하지만 그녀의 등 전체가 바깥에 노출된 상태였다.소욱의 냉담한 시선이 그녀의 허리로 향했다.허리에 손바닥 자국이나 멍은 보이지 않았다.아주 깨끗하고 매끄러운 피부가 눈앞에 펼쳐졌다.하지만 소욱의 얼굴을 맴도는 한기는 흩어지지 않았다.봉구안은 손바닥에서 열이 나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내력으로 피멍을 흩어지게 했다.하지만 내력 소모가 심해서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폭군은 당연히 그렇게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곧이어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엄지손가락으로 허리에 대고 힘을 주었다.“윽!”봉구안은 갑자기 느껴진 극심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뼈가 부러지는 고통이었지만 그녀는 꾹 참고 인내했다.뒤에서 사내가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허리를 다친 것이냐?”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폐하.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옵니까?”“허리가 너무 뻣뻣해서 말이야.”사내의 손은 마치 시험하듯이 그녀의 허리 주변을 지그시 누르며 더듬고 있었다.멀리서 보면 애무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언제든 봉구안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봉구안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지에서 먹을 것도 없이 의지 하나로 살아남은 그녀였다.참군하여 장군이 된 후 쇠갈고리가 어깨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눈물 한번 흘리지 않았던 그녀였다. 오히려 상처를 치료해 주러 달려온 사모가 대성통곡했었다.그랬기에 폭군의 이 정도 시험을 그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단지 처음 남자의 손길을 받아서 그런지 간질간질하더니 갑자기 전율이 찾아오면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하얀 피부는 홍조를 띈 것처럼 분홍빛으로 반짝였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했지만 소욱은 그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그는 금세 흥미가 식었다.황후는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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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황제의 서재.상소문을 읽고 있던 소욱이 흠칫하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황후가 금인장을 요구한다고?”말을 전하러 온 태감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답했다.“예, 폐하. 마마께서 이 일로 대전 밖에서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금인장이 황귀비에게 있다는 건 온 황궁이 아는 사실이었다.황후가 대놓고 금인장을 요구한 건 모순을 크게 만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태감은 황제가 격노하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조마조마해서 식은땀을 훔쳤다.소욱의 음침하게 가라앉은 눈빛에서 위험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하거라. 얌전히 있지 않고 자꾸 소란을 부리면 그 자리를 폐해 버릴 수도 있다고.”“예, 폐하!”황실 서재 밖.봉구안은 여전희 희비를 알 수 없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태감의 전갈을 듣고 있었다.“마마,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금인장은 줄곧 황귀비 마마께서 관리하고 계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절대 그분의 손에서 인장을 회수하지 않을 겁니다.”“황귀비 마마께서 스스로 포기한다면 모를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태감의 말을 전해들은 연상은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금인장은 본디 황후가 관리하는 것이고 후궁 대권의 상징인 물건이었다.폭군은 법도를 어기면서 황후의 자리를 두고 넘보지 말라 협박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아마 소욱에게 있어 진짜 황후는 황귀비뿐일지도 모른다.‘이렇게까지 황귀비를 편애하다니! 마마가 무슨 수로 귀비를 꺾는단 말인가!’봉구안 역시 황제의 처사에 불만이었다.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지는 건 군영이나 황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정말 우매하기 짝이 없는 군왕이로군!’“연상아, 이만 돌아가자꾸나.”봉구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예, 마마.”연상은 이 걸음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속으로 한탄했다.영소전.황귀비는 기분이 좋은지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황후가 금인장을 대놓고 요구했다고? 멍청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정말 웃기는 여인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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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영소전, 황귀비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내전에서 태의가 통증을 완화하는 침술을 시전 중이었다.내전 밖 단나무 의자에 인상을 잔뜩 구긴 황제가 온갖 위험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앉아 있었다.“영화궁에 보낸 태감은 아직이더냐!”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전갈을 나갔던 태감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왔다.“폐하! 황후마마께서 말씀하시길, 가진 약이 많지 않아 그냥 줄 수는 없다고 하옵니다…”소욱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황후한테 이리로 오라고 전하거라.”황제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있는 상황이라 태감은 숨도 돌리지 못하고 바로 영화궁으로 달려갔다.그리고 잠시 후, 다시 영소전으로 돌아온 태감은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황후께서는… 이미 침소에 드셨다고 하옵니다.”쾅!소욱이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치자 여파로 상 위에 있던 유리잔이 산산이 부서졌다.그는 벌떡 일어서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영화궁으로 간다.”한편, 황귀비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몸서리치며 황제를 찾았다.밖으로 나가려던 황제는 다시 침실로 달려가서 그녀를 달래주었다.“연아, 짐이 곧 다녀올 테니 조금만 참거라.”변덕스럽고 성격 포악하기로 소문난 젊은 황제는 유독 황귀비 앞에서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황귀비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말했다.“신첩… 기다리고 있겠나이다.”잠시 후, 영화궁.오밤중에 황실 금위군이 궁을 포위했다. 기세를 보면 마치 황후가 큰 죄를 저질러서 잡으러 온 것만 같았다.연상은 문틈으로 바깥 동향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그녀는 다급히 침상 앞으로 달려가서 아직도 기를 운용 중인 봉구안에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금위군을 끌고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차라리 약을 그냥 내어주시는 게…”금인장 하나 바랐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봉구안은 내력을 거두고 눈을 떴다.싸늘한 살기가 담긴 그녀의 시선에 연상은 저절로 오금이 저렸다.폭군도 무섭지만 지금은 자신의 주인인 황후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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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자녕궁.태후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내가 뻔히 보이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황후, 이제 금인장을 손에 넣었으니 후궁 업무를 처리하기에 훨씬 쉬워졌을 게야.”“비빈들의 밤시중을 안배하는 일지를 작성하고 후궁의 기강을 잡을 때가 되었지.”“신인들이면 몰라도 입궁한지 오래된 비빈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현비와 녕비 같이 오래된 비빈들이 황실에 실망하는 일이 없게 네가 균형을 잘 잡아줘야 해.”“황상이 총애를 골고루 나눠줄 수 있게 한다면 비빈들도 자연히 너를 따르고 존경할 거야. 그래야 너도 후궁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법이고…”봉구안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어마마마.”“신첩, 친정에서 생활할 시기 어머니께서도 후궁이 평화로워야 폐하께서도 안심하고 정무에 몰두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요.”태후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황후가 그리 말하니 나도 안심이 되는구나.”자녕궁을 나오자 연상이 굳은 얼굴로 봉구안을 일깨웠다.“마마, 태후마마는 폐하의 생모가 아닙니다. 과거 영비의 죽음에 태후가 관련되어 있다는 말도 많이 돌았어요. 그래서 폐하와 태후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해요.”“태후는 폐하께서 황귀비만 총애하시는 걸 알면서도 방치하다가 입궁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마께 이런 큰 짐을 지우는 건 너무 뻔하지 않나요!”“녕비를 굳이 꼬집어 말한 것도 그래요. 녕비가 태후의 조카딸인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조카딸을 위해 마마를 사지로 내몰다니. 폐하께서 애초에 마마의 말씀에 귀 기울일 분도 아니고. 그런 말을 무리하게 꺼냈다가 마마만 다치실 거예요.”그래도 황궁에서 태후는 인자한 웃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연상은 오늘 부로 태후에게 무한한 실망만 남았다.물론 봉구안이 태후의 속셈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솔직히 매일 자녕궁에 불려와서 가르침을 빙자한 잔소리를 듣는 것도 지치던 참이었다.태후가 대놓고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도 그녀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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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태후는 소식을 전하러 온 궁인에게 다급히 물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싸움을 먼저 시작한 자가 누구냐?”궁인이 답했다.“몇몇 비빈 마마들이… 녕비마마께 불만을 품고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는 주먹질까지 하게 되면서… 녕비마마는 다른 비빈들 틈에 끼워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 하고 계십니다….”“뭐라고!”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태후는 조카딸이 맞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다시 조바심이 났다.“황후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황후는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냐!”영화궁.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녕비는 이런 치욕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입궁한 이래 황제의 총애도 받지 못하고 꽃 같은 어린 소녀에서 점점 나이만 먹어갔다.이제 한낱 후궁 비빈들마저 자신에게 태후를 등에 업고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랐다고 손가락질하니 참을 수 없었다.누가 먼저 주먹질을 시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뭇 비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고 누군가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심지어 그녀의 얼굴에 대고 침을 뱉는 자도 있었다.녕비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봉구안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군영에서 장령들끼리 비무하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여자들 싸움도 그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연상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후궁 비빈들은 성품이 온화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원숭이 떼가 자꾸 떠올랐다.궁에만 오래 갇혀 있어서 드디어 미친 것인가?연상은 서책에 자주 나오는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야 정서가 안정된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싸움에 가담한 비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빈들은 불똥이 튈까 멀리 피해 있었다.녕비는 혼자서 여러 명을 감당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그녀를 힘껏 밀쳤고 그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뒤통수를 바닥에 찧기 일보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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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좁은 지하실에서 적을 만나면 둘 중에 한 명은 죽기 마련이다.사내는 진한 살기가 진동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봉구안은 야행복이 아닌 궁중예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만약 일격에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고 스스로 그날 밤 자객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폭군과는 달리 무고한 자를 죽이는 습관이 없었다.‘어차피 주인 명을 받고 움직이는 자야. 악하다고 볼 수 없어.’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너 누구냐? 왜 여기 있어?”순간 소욱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는 황후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고작 두 번 만난 게 다였다.신혼밤에는 촛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이니 당연히 얼굴을 못봤을 것이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욕조에 앉아 그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렇게 생각하니 황후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만 황후가 자신의 비밀을 발견한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봉구안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상대를 관찰했다.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소욱은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척, 공중에 몸을 날려 그녀에게 접근했다.봉구안은 무공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비틀던 순간, 그녀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그의 목에 그어져 있는 은빛 띠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소매에서 은침을 꺼내 그의 뒷목 풍지혈에 꽂았다.순식간에 사내는 힘을 잃은 듯,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그는 침을 제거하려고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이때,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걸 뽑으면 넌 죽는다!”소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봉구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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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봉구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는 더 이상의 해명을 생략했다.천수독은 하루아침에 해독할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데 한번의 침술로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이 독을 누구한테 당했는지부터 말해 보거라.”하지만 그런 협박은 소욱에게 통하지 않았다.그는 강압적인 말투로 말했다.“일단 독부터 해독하거라.”서로를 믿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사내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더니 말했다.“독을 해독하지 않으면 이곳을 못 나갈 줄 알아.”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켰으니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그 말을 들은 봉구안의 표정도 차게 식었다.‘은혜를 원수로 갚다니!’그녀의 시선이 백옥 침상에 닿았다.그리고 그곳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치를 발견했다.더듬어서 그것을 누르자 아니나 다를까 출구가 생겨났다.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경공을 이용해 밀실을 신속히 벗어났다.소욱은 음침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쫓아갔다.하지만 그녀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유유히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뒤늦게 소리를 들은 호위대가 달려왔다.“자객이다!”잠시 후, 추적에 실패한 호위대는 잔뜩 기가 죽어 소욱에게로 돌아왔다.“폐하, 소인들이 무능하여 또 자객을 놓쳤습니다!”그 많은 호위가 지키고 있었는데 봉구안이 밀실에 들어간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에 그들은 큰 죄책감을 느꼈다.그나마 황제가 무사하여 다행이었다.소욱은 호위가 건넨 망토를 걸치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산 채로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예, 폐하!”영화궁.돌아온 봉구안을 본 연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마께서 나가고 얼마 안 돼서 계 상궁이 왔다갔습니다.”“태후께서 보석과 장신구들을 보내셨더라고요. 전에 폐하께서 마마의 일년 녹봉을 모두 삭감하시고 외출 금지까지 당하셔서 형편이 많이 어려울 터니 보태 쓰라고 하셨습니다.”“소인은 마마께서 편찮으시어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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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봉구안이 알고 있는 건 혼례식 때 어머니가 잠깐 얘기해 준 게 전부였다.채월이 말했다.“아가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계속 구토를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음식물찌꺼기가 아닌 인간의 배설물인 거예요! 놈들은 아가씨에게 오물까지 강제로 먹였던 거예요.”“그리고 뻘겋게 데운 철꼬챙이로 아가씨에게… 의원이 말하기를 아가씨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대요.”남제의 여인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채월은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더니 끝내는 통곡을 터뜨렸다.봉구안은 입술을 앙다물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창박을 노려보았다.한참이 지난 후, 겨우 안정을 찾은 채월이 봉구안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소인, 외람되지만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마마, 혹시… 황귀비를 죽일 생각이신가요?”봉구안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채월이 계속해서 말했다.“마마, 아가씨가 잠깐 정신이 돌아오셨을 때 소인께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요. 장미 아가씨는 마마께서 자신을 위해 살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황귀비는 폐하의 무한한 총애를 받고 있으니 분명 그 여인이 머무는 처소도 경비가 삼엄할 테지요. 아무리 마마께서 막강한 무술 실력을 가지셨다고 해도 꼭 성공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약에 작전에 실패하거나 어떤 단서라도 남긴다면 마마는 물론이고 봉가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장미 아가씨는 혼자 죽더라도 마마께서 더 이상 이 일에 엮이는 것은 싫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는 마마께서 아가씨를 대신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어요.”봉구안은 조용히 채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미의 팔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촛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섬뜩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장미야, 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어찌 나 혼자 좋은 것만 보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겠어!’하지만 동생의 유일한 소원을 거스르기도 난감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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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조검은 소인이라 칭하긴 했지만 표정은 아주 기고만장했다.그는 마치 그가 달라고 하면 황후가 당연히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그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또 한참이 지나 영화궁 최 상궁이 밖으로 나왔다.최 상궁의 얼굴은 무척 상해 있었다.모시는 주인이 총애를 받지 못하니 아무리 황후궁 내무를 관장하는 상궁이라도 영소전의 하등 노비보다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조검을 보자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조 태감 어르신, 너무 급해 마세요. 마마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신가 봅니다. 제가 가서 재촉 좀 하겠습니다.”조검은 턱을 빳빳이 치켜들고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어서 다녀오너라!”“예, 얼른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최 상궁이 내전에 들어섰을 때, 황후는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고 있었다.최 상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마마, 황귀비의 두통이 또 재발했다네요. 이 시기에 약을 내놓으면 폐하께서도 마마의 고마움을 알고 관심을 가져주실 겁니다.”봉구안은 느긋하게 머리를 빗으며 담담히 말했다.“약 이제 없어.”최 상궁의 얼굴은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마마… 한 번만 더 찾아보시면 어디 더 있지 않을까요?”옆에서 듣다못한 연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최 상궁!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마마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면 될 것이지 지금 마마를 의심하시는 겁니까?”최 상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살다 살다 상궁인 자신이 어린 시종에게 한소리 듣는 날이 올 줄이야!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영화궁을 뛰쳐나가 다른 궁으로 가고 싶었다.‘주인이 무능하면 아랫사람도 고생한다더니!’영소전, 황귀비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내전에서 태의가 통증을 완화하는 침술을 시전 중이었다.내전 밖 단나무 의자에 인상을 잔뜩 구긴 황제가 온갖 위험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앉아 있었다.“영화궁에 보낸 태감은 아직이더냐!”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전갈을 나갔던 태감이 숨을 헐떡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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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소욱은 입술을 앙다물고 분노를 다스렸다.황후가 준 처방전을 태의원에 연구하도록 하였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중요한 약재 몇 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처음부터 계략에 능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이걸 또 이렇게 이용할 줄이야!‘요망한 것!’소욱은 싸늘한 얼굴로 계속해서 물었다.“황후가 그러고 또 뭐라고 하였느냐.”조검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황후께서는 폐하께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황귀비는 고통에 시달릴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약을 빼앗으려 한다면 약을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드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그리고… 폐하께서 약속을 번복하실 리는 없지만 성지로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말을 마친 조검은 사지에 힘이 쫙 빠졌다.‘나 죽는 건 아니겠지?’조검의 말을 들은 소욱의 얼굴은 섬뜩하게 일그러졌다.영소전 내부에 삭막한 정적이 감돌았다.영화궁 쪽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최 상궁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약이 없다고 했다가 갑자기 약을 내놓으며 황제에게 조건을 제시한 건 자칫 잘못하면 군주를 기만한 죄를 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그는 황제가 얼마나 화가 나 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과거에 재상이 황제에게 총애를 골고루 줘야 한다고 간언했다가 그날 바로 참수를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참다못한 최 상궁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마마, 아무리 폐하의 총해를 원하셔도 이건 안 될 일이죠! 평생 두통약으로 폐하를 협박하여 합방을 강요하실 건 아니잖아요!”사실 연상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물론 봉구안이 확신이 없는 싸움을 벌이지 않았을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람들은 황후가 황제의 총애를 위해 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겠지만 황후가 요구한 것은 후궁을 골고루 살펴달라는 정당한 요구였다.소식을 접한 후궁 비빈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들었어? 황후께서 두통약을 빌미로 페하를 협박하셨대!”“황후마마는 정말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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