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이 가방을 챙겨 떠나려는 순간, 무거운 힘이 어깨를 짓누르더니 그녀를 차 문으로 밀쳤다. 이윽고 남자의 건장한 몸이 하윤을 바싹 내리 눌렀다.도준의 큰 키 때문에 그 밑에 깔린 하윤의 몸뚱어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아래로 하는 순간, 도준의 다리를 차는 가느다란 여자의 다리가 보일 뿐.하지만 하윤의 힘이 강하면 얼마나 강할까? 온 힘을 다해 버둥대 봤지만 도준의 눈에는 그게 오히려 새끼 고양이가 사람을 긁은 것에 불과하지 않았다. 심지어 하윤이 화를 내면 내는 대로 도준은 다 받아들이기만 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도준은 하윤에게 더 바싹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내 말 들어. 나 이미 흥분했으니까 더 건드리지 마.”그제야 뭔가 눈치챈 하윤은 더 이상 버둥대지 않았다.도준은 웃으며 하윤의 귀에 입을 맞췄다.“그 정신병자를 신경 쓰는 거 아니었어? 나랑 여기 단둘이 남겨 두고 떠나도 괜찮겠어? 그리고, 공은채 목숨을 원한다며? 남아서 나랑 계획을 세워야지. 안 그래?”장난스러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윤의 몸부림을 점점 무력화시켰다.도준의 말이 맞았다. 하윤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화가 난다고 훌쩍 떠나버릴 수 없었다.하윤이 조용해진 모습을 보자 도준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하윤의 머리를 토닥였다.“착하네.”……조관성과 약속을 잡은 곳은 마을의 한 생선요리 식당이었다.낮에 조관성 곁에 따라붙었던 간부들이 없는 걸 봐서 도준과 단둘이 약속한 식사 자리인 듯싶었다.도준이 하윤을 데려온 걸 보자 조관성은 의외라는 듯 도준을 힐끗거렸다.이에 도준이 턱을 까딱이며 하윤에게 조관성을 소개했다.“조 국장, 전에 본 적 있지?”두 사람의 악수가 끝나자 조관성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술 좀 마시려 했더니, 그걸 내 빼려고 사모님까지 데려온 겁니까?”도준은 하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집사람한테 잡혀 살거든요.”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던 하윤은 이 식사 자리가 단지 술을 마시려는
둘만 남은 순간부터 아예 하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앉은 도준은 갑작스러운 하윤의 질문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이윽고 하윤을 의자채로 끌어와 자기 다리 사이에 하윤을 가두었다. 남자의 튼튼한 다리 사이 여자는 가느다란 다리를 꼭 붙인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왜? 이제는 관심이 생겨?”하윤은 도준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바라봤다.“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요.”그 말에 도준이 피식 웃었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내 마누라한테 말 못할 게 뭐 있어?”다정한 말투가 차가운 귀속으로 흘러들어서인지 하윤은 오히려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도준은 더 이상 말장난을 하지 않고 곧바로 하윤에게 알려 주었다.“조 국장이 추형탁과 정권 다툼을 한 지 한참이 되거든. 그런데 전쟁터는 정권다툼만 있는 게 아니라 경제력 다툼도 있어. 조 국장은 그래서 내가 공씨 집안 껍데기를 쓴 채 꿍꿍이를 품은 재벌가들을 먹어 치우기를 원하는 거고.”“그러면 도준 씨가 세력을 키워 나가는 건 안심할 수 있대요?”의아한 듯 되묻는 하윤의 말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게 걱정이 돼서 나를 내세우는 거야.”그 말을 들은 하윤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준이 아무리 경성에서 하늘을 가린다 해도 그 세력은 고작 경성 내부에만 국한된다. 세력이 없는 해원에서는 동맹이라고 조관성 뿐이고.“설마 도준 씨를 칼로 쓰겠다는 뜻이에요?”고민을 마친 하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응.”진지하게 생각하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이제 알았으면 내가 공씨 가문을 봐준다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너무 손쉽게 도준한테 속마음을 들켜 버린 하윤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도준 씨 같은 사람들은 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달라요?”그 말에 도준은 긴 손가락으로 하윤의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다 이래.”……흥덕 마을은 밤 생활이 없는지라 저녁 8시 되
욕실의 물소리는 도준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리 멈췄다.솔직히 하윤이 샤워를 핑계로 안에서 시간을 끌다가 한참 뒤에야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 실로 놀라웠다.‘뭐 그래도 많이 착해졌네.’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결혼한 것도 꽤 좋은 것 같았다.도준이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문이 열리면서 안에 몰려 있던 습한 물안개도 함께 흘러나왔다.목욕 타월로 몸을 감싼 채 나온 하윤을 본 순간, 도준의 목 울대는 저도 모르게 꿀렁거렸다.하윤은 대충 말린 머리를 어깨에 드리운 채 침대를 쓱 훑어보더니 도준의 가슴을 훑었다.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에 두른 타월이 점점 느슨해져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 아래에 있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도준이 손을 벋기도 전에 하윤이 몸을 숙였다.하윤이 무엇을 하려는 지 깨달은 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하윤의 머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뭐 하는 거야?”하윤은 도준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시중을 들려는 거잖아요. 제가 응당 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순간 팍 식은 도준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새어 나왔다.“복수를 도와달라고 이러는 거야?”하윤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제가 뭐라 하든 안 믿을 거잖아요.”“하, 그래. 좋아.”도준은 연신 좋아라는 두 글자를 중얼대더니 하윤을 삼켜버릴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나는 하윤 씨를 아내로 생각하는데, 하윤 씨한테 나는 고작 거래에 불과하다 이거야?”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훤히 드러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동작만으로도 이게 바로 하윤의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도준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거래라면 나도 사양할 거 없겠네.”하윤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가슴에 찬 바람이 불어 왔다.힘껏 잡아당긴 목욕 타월은 하윤의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을 남겼고, 따끔거리는 고통도 함께 선사했다.하윤을 누르는 힘은 마치 그녀를 침대에 박제하기라도 할 것처럼 강렬했다. 하지만 하윤은 반항도
권하윤의 눈빛은 의아함으로 가득했다.“왜, 왜 돌아왔어요?”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는 유달리 투명해 보여 차마 모질게 대할 수조차 없었다.이에 도준은 얼른 하윤을 이불 속에서 끄집어 냈다.“자기가 또 혼자 숨어서 울까 봐 왔지.”하윤은 그제야 부끄러웠는지 이내 부정했다.“아니거든요.”“아니라고?”도준은 손가락으로 당장 떨어지려던 눈물을 받아 하윤의 앞에 쑥 내밀었다.“그럼 방금까지 계속 운 사람은 누구야?”“…….”하윤이 멍해 있는 사이, 도준은 욕실에서 가운을 갖고 나와 하윤에게 입혀 주더니 풀어지지 않도록 허리춤을 꽉 묶어 주었다.“됐어. 오래 울었으니 체력 소모도 많이 됐겠는데 뭐라고 좀 먹어.”테이블 위에는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둣국이 놓여 있었다. 그건 방금 전 도준이 사온 거다.그 만둣국을 한 술 먹는 순간, 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사랑은 참으로 이상한 거다. 한순간 한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고 한 사람에게 두꺼운 갑옷이 되어 주기도 하니까.심지어 닿는 순간 한 사람의 모든 의지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게 사랑이다.도준은 만둣국에 입도 대지 않고 담배를 문 채 오물오물 씹어 먹는 하윤을 바라봤다.하윤은 편식하는 고양이처럼 늘 밥은 제대로 먹지 않고 디저트나 아이스크림 같은 단 것만 쉴 새 없이 먹어댄다.그런데 웬일로 만둣국은 거의 다 먹어 치웠다.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렇게 맛있어?”솔직히 말하면 맛은 없었다. 껍질은 너무 두껍고 생강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게다가 가게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지 만두피가 국물에 오래 담겨 있어 쫄깃함도 사라졌다.하지만 꽁꽁 언 체온을 녹여줄 만큼 따뜻했다.하윤은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아까는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안해요.”“오?”도준은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더니 말 꼬리를 살짝 올렸다.하윤은 기운 없는 듯 그릇에 남은 만두 두 개를 멍하니 바라봤다.“도준 씨는 고작 저 한 번만 속였고 저는 전에
민도준에게 시달릴 마음의 준비까지 끝낸 권하윤은 도준이 저를 쉽게 놓아주자 오히려 어리둥절했다.이윽고 시선을 점점 아래로 내리더니 감전이라도 된 듯 고개를 돌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그, 그냥 자겠다고요?”도준은 남은 베개와 옷을 소파 위에 던져 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안 그러면? 혹시 뭐 할 거라도 있어?”하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도준이 하윤을 침대 옆에 앉히더니 하윤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자기 한번 달래는 거 충분히 힘들어, 두 번은 귀찮아.”하윤은 당장 반박하고 싶었지만 뭐라 반박할지 몰라 마지못해 자리에 누웠다.하지만 이 곳에서 하룻밤 묵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잠옷을 챙겨오지 못한 바람에 호텔 가운 차림으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고개를 돌려 확인해 봤더니 도준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끝내 참다 못한 하윤은 자기 옷으로 갈아 입으려고 어둠 속에서 더듬대며 창가 옆 소파로 다가갔다.커튼을 연 하윤은 달빛을 빌어 손쉽게 본인의 청바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청바지로 갈아 입으니 오히려 더 불편했다.그러던 그때, 하윤의 시선은 마침 도준이 입고 왔던 검은 티셔츠에 멈췄다.‘어, 먼저 이걸 입고 있다가 내일 돌려주면 되겠네.’하윤은 얼른 가운을 풀어헤치고 가는 팔을 소매에서 꺼냈다.그 시각, 어두컴컴한 방 안에 유일하게 흘러 든 달빛은 마침 여자의 몸에 떨어졌다.가운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마침 허리 라인 위로 떨어졌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으로 몸을 가린 여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색기가 넘쳐 흘렀다.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옷의 정면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하윤은 당연히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맹수 같은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그저 대충 정면을 찾고는 이내 옷을 몸에 걸치자 돌돌 말렸던 옷자락을 살짝 내렸다. 그 순간 헐렁한 옷과 가는 허리가 대비되어 한 손에 잡힐 듯한 허리가 더 잘록해 보였다.옷을 껴입고 긴 머리카락을 빼낸 하윤은 얼른 허리를 숙여 가운을 주었다.
검은 천에 팔이 묶인 채 시선까지 가려져 하윤의 눈에는 그저 희미한 실루엣만 보였다.벗어나려고 마구 버둥대도 보았지만 오히려 남자의 악랄한 웃음만 불러올 뿐이었다.“착하지? 이러는 게 예뻐.”화가 난 하윤이 다리를 올려 도준을 차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남자의 손에 잡혀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 도준은 커다란 손으로 꽉 잡은 하윤의 다리를 쓱 쓸어 올렸다.“그러고 보니 우리 혼인 신고하고 나서 합방도 안 했네?”“누가 도준 씨랑……, 읍…….”입을 가린 손바닥 사이로 하윤의 항의 소리가 흘러나왔다.“작게 말해. 목 아껴뒀다 이따가 소리 내.”“…….”하윤의 가슴에 떨어졌던 달빛은 결국 남자의 손에 부서졌다 남자가 원하는 모양대로 다시 빚어졌다.다시 샤워를 하고 난 뒤 하윤은 소원대로 편한 옷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하윤은 그것도 모른 채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곤히 잠들어 버렸다.다음날.도준이 깨어 났을 때, 하윤은 그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도준의 커다란 옷 때문에 넥 라인이 비뚤어져 어깨를 훤히 드러낸 모습으로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어른의 옷을 훔쳐 입은 어린아이처럼 우스꽝스러웠다.도준에게 안겨 다시 침대에 누운 하윤은 열원이 갑자기 멀어지자 추운 듯 몸을 움츠린 채 머리를 베개 밑으로 파고들려고 했다.도준은 그런 하윤의 머리를 다시 베개 위에 올려 놓은 뒤, 하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그 힘이 컸는지 하윤의 잘 다듬어진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딱 봐도 단잠을 방해받아 불쾌한 모습이었다.결국 도준의 방해에 하윤은 흐릿한 눈을 비비며 깨어나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 도준을 보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벌써 가요? 옷 돌려 줄게요.”하윤이 움직이려는 찰나, 도준은 하윤의 손을 잡아 다시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됐어. 이 옷 입고 있는 게 예뻐. 그대로 입고 있어.”하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내 앞에서 옷 마구 벗으면 나더러
두 사람을 번갈아 일으켜 세우며 진땀을 뺀 후에야 두 사람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장옥분은 여전히 격동된 마음으로 눈물을 훔쳤다.“동생, 걱정하지 마. 내가 가진 건 없어도 은혜를 꼭 갚는 성격이거든. 물론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퇴원하면 꼭 변호사 비용과 병원비를 갚을 게.”“그럴 필요 없어요. 그때 언니가 구치소에서 저 많이 챙겨줬잖아요. 언니가 없었다면 저 그 안에서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은혜 갚은 것뿐이에요.”“아니야. 이게 어떻게 비교가 돼?”장옥분은 흐느끼는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동생이 몰라서 그렇지, 동생이 나한테 정말 큰 도움을 준 거야.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동생이 다정이를 그 놈들 손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우리 다정이의 인생은 아마 그대로 망가졌을 거야.”“다정이 참 철들었더라고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하윤은 다정을 바라보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정씨 집안 사람들 쉽게 나가 떨어질 것 같지 않던데, 앞으로 또 귀찮게 하면 어떡해요?”그 말에 장옥분이 놀란 듯 물었다.“설마 모르는 거야?”‘뭘요?’하윤은 어리둥절했다.“정씨 집안 사람들 어제 일로 한바탕 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어제 동생과 같이 왔던 남자가 오늘 찾아갔더니 놀라서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대.”‘도준 씨 말하는 건가?’하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러니까 어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던 원인이 그 사람들 겁주러 가려던 거였어?’솔직히 도준의 성격에 장옥분과 다정의 생사를 걱정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 도준이 이렇게 번거로운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는 건 하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 거다.그걸 인지하는 순간, 차갑던 하윤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더 이상 도준을 차갑게만 바라볼 수 없었다.장옥분은 하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산전수전 다 겪어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그 사람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이지? 조금 무섭다 뿐이지 생긴 건 정말 잘생겼던데. 그래도
다시 병실로 돌아가는 정다정의 뒷모습을 보며 한민혁은 낮게 중얼거렸다.“그래도 두 모녀가 생각보다 단단해서 다행이네요.”“그러게요.”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두 사람은 권하윤의 도움으로 더 편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모녀는 그러지 않았다.장옥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자 하윤은 얼른 민혁에게 물었다.“오늘 아침 혹시 도준 씨와 함께 정씨 집안 식구들 찾아갔어요?”“네. 그 집 식구들이 도준 형 때문에 겁먹어서 헛구역질을 해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하윤 씨는 모르죠? 저는 그 자리에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민혁은 아무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심지어 하하 소리 내어 웃다가 이내 뭐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어, 혹시 도준 형이 말 안 해 주던가요?”“안 했어요.”하윤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민혁은 하윤의 기색을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하윤이 화를 내지 않자 또 다시 도준의 칭찬을 이어갔다.“솔직히 그 정도 일에 도준 형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는데, 그 사람들이 주제도 모르고 하윤 씨한테 손찌검했잖아요.”하윤은 어느새 마음이 풀려 저도 모르게 도준을 걱정했다.“그래도 그렇지 조 국장과 함께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아직 안 떠났는데 정씨 집안 사람들이 또 소란을 피우면 어쩌려고 그랬대요? 여긴 경성도 아닌데,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지.”하윤의 말에 민혁은 더 분발해서 말을 이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그러니까 도준 형한테 전화해서 좀 뭐라고 해요.”민혁은 하윤이 얼른 도준의 연락처 차단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에 열과 성의를 다해 도준 편을 들었다. 도준이 이미 직접 손을 썼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그렇다고 민혁의 그런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하윤이 한참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도준의 번호를 눌렀으니까.대기음이 약 두 번 정도 울리는가 싶더니, 통화는 이내 연결되었다.“혹시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전류에 섞여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가볍고 느릿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