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은 애정을 담아 권하윤의 귓불을 살짝 문지르며 말했다. “어떻게, 내 피가 충분히 흐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또 보고 싶은 거야?”“아니, 내가 묻고 싶은 건…….” 하윤은 도준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의 상처, 새로 생긴 거예요? 아니면 예전에 생긴 거예요?”하윤이 말을 뱉자 순간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조용했고 고요했다. 방금까지도 농담조로 말하던 도준의 웃던 얼굴은 서서히 굳어졌고 하윤의 얼굴을 잡고 있던 도준의 손이 내려와 목을 감싸면서 주도권을 다시 잡았다.“자기야, 요즘 이상한데 재미 붙인거야?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서 기분이 상해야 해?” 도준의 말이 맞았다. 도준이 같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하윤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에 고마워해야 했고 더 물으면 서로에게 상처 주는 꼴밖에 나지 않았다.하윤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건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인형 같은 거죠? 그 무엇도 알 필요 없고 그저 당신이 하라는 대로 말하는 대로 듣고 있으면 된다는 거죠?”도준은 날카롭게 반응하는 하윤에 다소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말한 적 없어.”“그럼 무슨 뜻인데요? 그냥 내가 순진하고 속이기 쉬운 강아지처럼 필요하면 시키고 완성하면 보상으로 사료 같은 거 던져주고 그런 존재인가요?”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오며 복도에서 하윤의 분노가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그럼 왜! 왜 나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왜 처음부터 당신 실종되었을 때 누구랑 같이 있었다는 걸 안 알려주는 건데요!”하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마지막에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도준은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방을 잘못 찾아온 의사는 빠르게 문을 문을 쾅! 하고 닫으며 마음속으로‘나를 보지 마라, 나를 보지 마라’ 라고 되뇌었다.도준은 하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울지 마, 집에 가서 얘기하자.”……문이 닫히는 소리에 유정인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사장님, 사모님,
“됐어.” 민도준은 쉽게 권하윤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벌써 결혼했잖아,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해? 넌 그냥 네가 내 와이프라는 것만 알면 돼.”도준의 회피하는 태도에 하윤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혼인신고를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야? 나에게 족쇄를 채워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도준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그의 무심한 목소리가 하윤을 뒤통수를 때리는 듯했다. “이게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나?”하윤은 순간 멈칫하며, 눈에 차오른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윤이 원했던 것? 그렇다, 하윤은 도준을 사랑했고, 그와 영원히 함께하길 원했다. 은채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도준이 자신을 단지 체스판의 나이트라고 여긴다 해도, 하윤은 여전히 도준과 결혼하길 원했다. 이미 스스로를 속박한 하윤이 어떻게 도준에게 따질 수 있단 말인가?도준은 하윤의 눈물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지만, 하윤은 반사적으로 도준을 피했다. 하윤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맞아, 당신이 말한 게 맞아요. 나는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결혼하고 싶어 했어요. 고고한 도준 씨가 나 같은 사람하고 결혼해 줬으니, 내가 불만이 있을 이유가 없지.”도준은 약간 짜증이 나서 말했다.“나는 그런 적 없어. 왜 굳이 그런 일로 모든 걸 부정하려고 해?”“나도 그런 생각 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요!”자신의 멘붕을 표출할 길이 없는 하윤은 등을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잠시 후, 떨고 있는 하윤의 등이 도준에 의해 뒤에서 감싸졌다.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하윤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고, 떨고 있던 그녀의 몸은 서서히 진정되었다. 결국, 하윤은 손을 내리고 눈물로 얼룩진 눈으로 도준을 바라보며 거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야, 제발, 말해줘. 공은채 살아있어? 당신이 사라졌을 때, 은채랑 같이 있었어요?”도준은 하윤이 거
“깨어나세요, 권하윤 씨.” 하윤은 눈을 뜨며 마른 눈을 비비자 한민혁의 얼굴이 보였다. 하윤이 깨어나자, 민혁은 안심하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안 깨어나면 병원에 데려갈 뻔했어요.”하윤은 천천히 일어나며 텅 빈 방을 둘러봤다. 하윤이 물어볼 틈도 없이 민혁은 뜻을 이미 알아채고 입을 열었다. “민도준 찾아요? 조관성이 급하게 찾아서 도준이는 먼저 해원으로 갔어요. 저에게 당신을 잘 보살펴 달라고 했어요. 뭐 좀 드시겠어요?”도준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하윤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오히려 보지 않는 게 나을수도 있었다.민혁은 하윤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밥을 데워 드릴게요. 드시고 나서 얘기하죠.”주방하윤은 식탁 위의 음식을 보았지만 식욕이 없었다. 하윤은 몇 숟가락을 먹은 후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전 배가 안 고프니까 민혁 씨 드세요.”민혁은 새 모이만큼 축이 난 그릇을 보고 일어섰다.“어디 가실 거예요?”민혁이 긴장한 모습을 보자 하윤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요,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고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요.”방문을 닫고 민혁은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민혁은 통화를 하며 침실을 흘끔거렸다. “하윤 씨 깨어났고, 식사도 했어.”“얼마나 먹었어?”“대략 쌀 십몇 알?”전화 반대편에서 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십몇 알의 쌀밥이라니, 새도 그보다 많이 먹겠네.”민혁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고 이어 도준의 목소리는 순간 딱딱해졌다. “내 말이 웃겨?”민혁은 자신의 볼을 때리며 웃었다. “하하, 내 스스로가 웃겨서 웃는 거뿐이야, 하하…….”어색한 웃음소리 끝에, 민혁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근데, 하윤 씨 네가 떠난 걸 알고 나서 좀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전화 한 통 해보는 게 어때?”“뚜뚜뚜…….”전화기 너머의 끊긴 소리를 들으며 민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다시 시끄러워지겠군.’해원도준은 호
사실상 죽었어야 할 공은채가 이 순간 민도준 앞에 서 있었다. 은채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하지만 민용현 삼촌과 진명주 이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내가 죽으면 그들도 완전히 사라져 버릴 거예요.”은채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도준은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처럼 무정했고, 은채의 몸에 이식된 심장과 판막은 도준을 깨우는 유일한 가족에 대한 유대감과 인간적일 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고 도준은 분명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금의 도준은 은채에게 예전처럼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고 은채는 도준이 다른 여자 때문에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은채는 처음 도준을 만났을 때, 도준이 어떤 남자인지 알았다. 본인이 원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남자였다. 그런 사람은 가장 무서운 존재였는데 통제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했다.하지만 지금, 도준은 다른 여자를 위해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그녀만을 지키고 있었다. 은채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질투인가, 아니면 안타까움인지. 은채가 도준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의 약혼녀로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분명히, 은채는 권하윤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도준과 더 깊은 유대를 맺고 있었기에 질 싸움이 아니었다.은채는 도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 곁에 서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내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나만이 당신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목격했고 나만이 당신을 이해해요. 왜 당신은 본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를 선택한 거죠?”은채는 도준의 앞에 섰다. “내 심장 거부 반응으로 당신이 나를 챙길 때,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살아남기를 바라지 않았나요?”은채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분명히 아름다웠다. 특히 지금, 은채는 마치 쓰고 있던 탈을 벗는 듯 그 어두운 면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드러냈다.“우리가 함께한 이 많은
한밤중, 권하윤은 온몸이 차가운지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수많은 생각들로 인해 혼란스러웠다.그들 가족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왜 공은채는 하윤의 아버지를 해하려 했을까?‘은채와 아버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주림 선배도 분명 은채와 접점이 있었는데, 그사이에 또 어떤 연관이 있을까?’하윤은 어떻게 은채에게 복수해야 하는 걸까?민도준이 하윤이 은채를 해치는 것을 허락할지는 둘째 치고, 은채 몸속에는 도준 부모님이 남긴 것이 있었기에 도준은 은채를 보호할 것이었다. 하윤이 은채의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동안 도준은 뭘 생각하고 있을까?천장을 올려다보며, 하윤은 자신이 이렇게 지쳐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 자신에게 은채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을까, 왜 자신에게 도준이 본인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까…….이 모든 시련 속에서 하윤과 그녀의 가족은 깊은 수렁에 빠졌고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하윤은 배후의 조종자들이 누구일지 감히 추려낼 엄두조차 없었다. 도준, 공태준……, 그들은 모두 은채가 가짜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하윤이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비로소 해답을 찾게 되었다. 태준과 도준이 주고받았던 메시지들, 그리고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은채.태준은 항상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부단히 도준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비밀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그들은 겁을 잔뜩 먹었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은채를 죽였다고 주장한 하윤이 얼마나 우스웠을까?우습게 느껴질 게 분명했다. 분명 피해자임에도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어 비참하게 벌을 받고 진범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서커스를 보는 것보다도 더 우스웠을 것이었다.과거를 회상하며, 하윤은 자조하며 웃었다. “하하……, 하하하…….”“…….”고막을 찌르는 하윤의 웃음소리가 밤중에 울려 퍼지자 더욱 스산하게 들려 소파에서 자던 한민혁을 놀라게 했다. 처음에 민혁은 집에 귀신이 들어
병원에서, 정다정은 권하윤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며칠간의 치료를 받은 후, 다정의 정신 상태는 많이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는데 심지어 기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언니, 오셨어요. 나 약도 잘 먹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으니까 화내지 마세요.” 다정이 용기를 내어 도준이 다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다정을 믿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권하윤은 마음이 쓰라렸다. 하윤은 다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 화났어. 미안해,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널 못 믿었어.”다정은 괜찮다는 하윤에 기뻐했다. “언니, 정말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언니를 속여서 뭐 해요?”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마을에서 도준 씨를 만났다고 했잖아.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나?”“그건 몇 년 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방학 때였어요.”시간을 계산해 보니 4년 전이었다. 이로써 공은채가 주림 선배와 먼저 교제했고, 그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관계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정과 조금 더 같이 있었고, 하윤이 떠나려고 할 때 다정은 갑자기 베개 밑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언니, 이거 줄게요.” 다정이 건넨 봉투를 열어보니 작은 봉지의 사탕이었고 하윤은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 맛있네.”다정은 하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언니가 좋아한다니 다행이에요.”……하윤이 병실을 나서며 다정에게 받은 사탕을 떠올렸고 마침 간호사가 다정에게 약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게 뭐죠?”간호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환자가 어려서 약 먹은 후에 사탕을 주는 거예요. 한 번 맛보시겠어요?”그러자 하윤은 단번에 이해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약을 먹어야 하나요?”“다섯 번이요.”하윤은 손바닥 위에 사탕을 올려놓고 세어보자 사흘동안 딱 15개였다. 다정은 쓴 약을 먹고 단 사탕을 하윤에게 주려고 남겨두었던 것이었다.갑자기 차가운 느낌이 든 하윤이 볼을 쓱 닦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윤은 눈물을 닦고 그녀를
권하윤은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고는 이내 물었다.“그렇다면 혹시 주림 선배가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아세요?”“휴, 말하기도 부끄럽네요. 어미가 되어서 아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르다니.”생각지도 못한 답에 하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주영애도 그 이유를 모른다면 주민수가 저한테 번호를 준 게 더 이해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하윤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주영애는 낮은 소리로 자책했다.“그동안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돈 버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주림에게 너무 무심했어요. 특히 여자친구를 사귄 후에는 집이라도 장만해 주려고 돈만 열심히 벌려고 더 열심히 일만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그게 너무 후회돼요.”여자친구라는 글자를 듣는 순간 하윤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더 꽉 움켜 잡았다.“여자친구요? 혹시 본 적 있어요?”“봤죠. 엄청 예쁜 아이였어요. 아들이 나 더러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고 했는데, 보통 집안 아이는 아니었어요. 우리 같은 집안은 쳐다도 못 볼. 하지만 우리 애가 좋다는데 어쩌겠어요.”“참,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이 교수 제자라고 하던데, 공은채라고. 하윤 씨도 본 적 있죠?”하윤은 눈을 감으며 애써 자기의 이상함을 숨겼다.“네, 봤어요.”주영애의 말을 들어보니 두 사람은 1년 정도 사귀었다고 한다. 그간 주림이 공은채를 두 번 정도 집에 데려왔는데, 나중에 졸업 공연 때문에 집에 들를 시간이 적어지면서 공은채의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한참 동안 말을 이어가던 주영애가 갑자기 기억을 더듬으며 제 생각을 덧붙였다.“어느 한번 새해가 다가와서 은채라는 아이에 대해 물어봤더니 주림이 크게 화내더라고요. 더 이상 그 얘긴 하지 말라면서. 아마 헤어진 것 같아요.”“…….”전화를 끊은 뒤 아무리 생각해도 하윤은 이해할 수 없었다.‘주림 선배가 공은채가 사귀었다면, 공은채와 아빠의 일을 듣고 나서 왜 오히려 아빠 편에 섰지?’이 전화로 궁금증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복잡해졌으니.‘역시 주
주림의 병실을 나서니 복도에서 한창 간호사와 얘기 중인 한민혁이 눈에 들어왔다.민혁도 마침 병실에서 나온 하윤을 봤는지 얼른 다가와 멋쩍게 웃었다.“하윤 씨, 병문안 잘 했어요? 그럼 다른 병실로 갈까요?”“선배 할아버지는 어때요? 혹시 많이 아픈가요?”“네?”병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민혁은 하윤이 단순히 주민수의 건강을 염려한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말아요. 도준 형이 이미 가장 좋은 약과 의료진을 붙여달라고 병원 측에 일러 뒀어요. 게다가 암 초기에 일찍 발견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암 초기라고?’‘어쩐지, 주림 선배의 의식이 또렷한데 한마디도 안 한다 했어. 누군가 선배의 입을 막은 게 분명해.’하윤의 표정에서 자기가 말 실수했다는 것을 눈치 챈 민혁은 당장이라도 자기 뺨을 때리고 싶었다.하지만 수습하기 위해 얼른 말 머리를 돌렸다.“도준 형이 두 사람한테 엄청 잘해줘요. 병원비도 면제해 주고, 먹고 자는 것도 최고급으로만 취급하고. 도준 형 아니었다면 두 사람 아마 깊은 산골에서 계속 시간만 끌다가 병만 악화했을 거예요. 안 그래요?”하윤은 더 이상 민혁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아고, 도준에 관한 그 무엇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만 알고 싶을 뿐.대충 고개를 끄덕인 하윤이 이내 다정의 병실로 걸어갔다.그 사이, 말없이 떠나가는 하윤의 뒷모습에 전전긍긍하던 민혁은 끝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어, 도준 형, 있잖아……, 혹시 형이 아주 믿는 부하가 말실수하면 용서해 줄 거야?”“…….”“다정아, 자, 선물.”정교한 상자를 받아 든 순간, 다정의 얼굴에는 마침내 즐거운 미소가 드리웠다.하지만 예쁜 리본을 풀기 전 습관처럼 한 번 더 확인했다.“언니, 이거 정말 저 주는 거에요?”“응, 그래.”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짓는 하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다정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 상자를 뜯었다. 작은 상자 안에 담긴 건 다름 아닌 손목시계였다. 붉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