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미 넘치는 민도준의 모습은 위험하고도 섹시한 아름다움을 띠고 있어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봤다.화면 맞은편에 있던 도준은 하윤의 몽환적인 표정을 보고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착하지, 숨소리 좀 들려줘.”하윤은 수치심이 극에 달했다. “안 돼요, 다정이 아직 거실에 있어요.”“우리 집은 방음이 잘 돼서 괜찮아, 말 들어.”결국 도준의 재촉에 못 이겨 이불을 머리위로 뒤집어썼다.화면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호흡이 서로 뒤엉키며 안개가 되어 휴대폰을 감싸며 피어올랐다.마침 이불 속에 있던 하윤이 숨막혀 죽을 것 같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 노크 소리는 아주 작아 마치 뼈마디로 문짝을 문지르는 것 같았다.“언니, 자요?”하윤이 이불을 들추려 하자 수화기에서 남자의 경고가 들려왔다.“가지 마.”“다…… 끝난 거 아니에요?”하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한 번 보고 올게요, 금방이면 돼요.”말을 마친 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머리에 있는 가운을 가지고 땅에 발을 붙였다.하지만 밖에서 들리던 노크 소리는 어느새 멈췄다.다정이 방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더니 그녀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에 놀란 하윤이 얼른 물었다.“다정아, 무슨 일이야?”다정은 서글프게 울며 말했다“미안해요 언니, 일부러 잠자는 거 방해하려던 거 아니에요, 엄마가 꿈에 나왔는데, 꿈에서 돌아가셨어요……, 언니 우리 엄마가, 엄마가…….”다정의 모습에서 하윤은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간 뒤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렸던 자기 모습이 보였다.꿈에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된 채 흩어져 아무리 붙여보려고 해도 붙일 수 없었다.다정의 모습이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하윤은 이내 쪼그려 앉아 다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너의 엄마는 지금 건강해, 내가 곧 엄마한테 데려다 줄게, 알겠지?”다정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언니.”“괜찮아, 가자.
방금 전 그릇 하나를 깨 버린 정다정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며 부엌에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본 권하윤이 얼른 다가가 걱정된 투로 물었다.“왜 그래? 혹시 다쳤어?”다정은 너무 놀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러다가 하윤이 허리를 굽혀 깨진 그릇 조각을 줍자 그제야 허둥지둥 치우며 끊임없이 사과했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 죄송해요.”손을 부들부들 떠는 다정의 모습에 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불안해 보이는 다정이 손이라도 베일까 봐 얼른 일으켜 세웠다.“무서워할 거 없어. 그릇 하나 깬 건데 뭐. 괜찮아.”하지만 어렵사리 다정을 부엌에서 데리고 나간 그때, 식탁 위에 차려진 아침상이 눈에 들어와 하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다 네가 한 거야?”“죄송해요. 언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했어요. 바로 버릴게요.”다정이 또다시 사과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하윤은 준비한 음식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며 애써 다정을 달랬다.그때 마침 돌아온 유정인도 풍부한 아침상을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다정이가 이 아줌마 직장까지 빼앗으려 하는 거 아니야?”기특해서 던진 농담일 뿐이었는데, 다정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질리더니 방으로 달려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그 모습에 유인정은 어리둥절했다.“다정이 왜 저래요?”하윤은 꼭 걸어 잠근 방문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낯설어 그러는 것이니 우리끼리 먹어요.”식사가 끝나고, 유정인도 퇴근한 뒤에도 다정은 여전히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심각한 상황에 하윤이 다정을 달래 보려고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민도준의 전화가 걸려왔다.그 순간, 하윤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도준 씨, 다정이가…….”“이모님한테서 들었어. 내가 민혁을 보냈으니 다정이 데리고 심리의사 한번 찾아가.”처음에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 스트레스를 받은 게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인
집에 도착한 권하윤이 전자 오르간 포장지를 뜯는 순간, 정다정의 눈이 반짝 빛났다.그 모습에서 다정이 얼마나 전자 오르간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할 뿐 손도 대지 않았다.그때 하윤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다정아, 와서 쳐봐.”다정이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손을 대지 못하자 하윤이 농담조로 말했다.“이거 너 주려고 산 건데, 네가 치지 않으면 옷 거치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어.”자기를 주려고 샀다는 말에 다정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틈에 하윤은 얼른 다정의 손을 끌어당겨 전자 오르간 위에 올려 놓았다.“자, 얼른 쳐 봐.”그제야 다정은 조심스럽게 건반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건반을 누르지는 않고 그 위만 맴돌았다.다정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하윤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이제 막 자리를 비켜주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리자 하윤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작은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도준 씨.”“뭐 잘못한 거 있어? 왜 그렇게 말해?”방문을 닫고 나서야 하윤은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왔다.“다정이 밖에 있거든요. 혼자만의 공간을 주려고요. 있잖아요. 의사 선생님이…….”하윤은 오늘 있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도준에게 말했다.도준이 당연히 이른 작은 일은 신경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한 거지만, 하윤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따가 내가 사람 보내서 다정이 데려 갈게. 다른 사람이 돌봐 주는 게 좋겠어.”“안 돼요.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애를 억지로 데려갔다가 악화라고 되면 어떡해요?”곧바로 거절하는 하윤의 말에 도준이 인내심을 잃었다.“악화되면 그것도 본인 팔자야. 지금 자기한테 너무 의존한다며? 그 상황에 만약 자기가 실수로 자극이라도 주면 애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겠어.”오늘 정신과 의사도 똑 같은 말을 한 적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붓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잘못하면 미친 짓까지 벌일 수
‘이건 아빠가 만들었던 동요잖아?’이 곡은 인지도가 높은 곡이 아니다. 더욱이 교재 어느 곳에도 실린 적 없다.‘그런데 다정이가 예전에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 곡을 알지?’권하윤이 문을 열고 방에서 나오자 정다정이 건반 위에 있던 손을 얼른 내렸다.다정이 놀라기라도 할까 봐 하윤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잘 치네. 계속 연주할 수 있어?”격려를 받은 다정은 조심스럽게 손을 건반 위에 다시 올려 놓았다.체계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아서인지 실력은 당연히 전문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그저 더듬더듬 멜로디만 따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하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이건 아빠가 만든 버전이 아니라 주림 선배가 리메이크 한 버전이잖아.’주림은 처음 이 동요를 듣는 순간 트레몰로 기법을 사용하여 이성호에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하지만 단순한 멜로디 때문에 창작의 여지가 많아 주림은 자주 다른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연주하곤 했다.다정이 연주를 끝내자 하윤은 다정의 옆에 앉아 수다를 떠는 투로 다정하게 물었다.“이 동요 누가 가르쳐줬어?”“주림 오빠요…….”분명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하윤은 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주림, 장옥분, 흥덕 마을…….’‘아, 주민수 할아버지의 딸이 있는 곳이 아마 흥덕 마을이라고 했지?’그제야 모든 퍼즐이 하나 둘 들어맞았다.“네가 말했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림 오빠였어?”“주림 오빠 어머니예요.”다정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런 거였어?’다정과 대화하는 도중, 하윤은 주림의 어머니가 주영애라는 여자이고, 흥덕 마을에서 분식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건 주민수가 말했던 것과 딱 들어 맞았다. 주림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 주영애의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때쯤, 주영애가 마을에서 분식집을 차리면서 형편이 좋아졌다.‘나와 다정이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니네.’하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이 노래 언니도 아는데, 내가 뒤에 부분 가르쳐
역시나 권하윤이 생각했던 대로 정다정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설마 선배가 밖에서 만난 사람인가? 누구지?’하지만 하윤이 핸드폰을 다시 받아 든 그때, 다정이 갑자기 액정 끝을 짚으며 말했다.“이 언니 같아요.”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웬 여자의 옆모습이었다.‘이 사람은…… 공은채?’공은채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데다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하여 단체사진을 찍던 날 먼저 떠났었다. 때문에 엉겁결에 옆모습만 걸린 모양이다.하지만 하윤은 믿기지 않았다.“다정아, 혹시 잘못 본 거 아니야?”하윤의 질문에 다정은 갑자기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죄송해요. 저도 제대로 본 건지 모르겠어요. 그게, 그러니까…….”너무 급한 나머지 다정이가 환자라는 것조차 잊은 하윤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얼른 달랬다.“괜찮아.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무서워하지 마.”한참 동안 다정을 달랜 뒤, 하윤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공은채라면 분위기가 독특한데다 평범한 생김새가 아니라 잘못 알 가능성이 극히 드문데.’‘설마 주림 선배가 정말 공은채 남자 친구였어?’‘그런데 도준 씨와 약혼한 사이 아닌가?’‘아니지. 아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었나? 그런데 왜 또 주림 선배 여자친구라는 거야?’하윤은 갑자기 몰려오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이윽고 한참 뒤, 다정이 평정심을 되찾자 하윤은 다시 물었다.“너 혹시 언제 이 언니 만났어? 혹시 흥덕 마을에서 만난 거야?”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주림 오빠가 이 언니 데려온 적 있어요. 제가 이 언니한테 예쁘다고 하니까 아주머니도 기뻐하며 저한테 사탕을 줬거든요. 이 언니가 자기 미래 며느리라면서.”하윤은 들으면 들을 수록 이 모든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그러면 이 언니와 대화는 해본 적 있어?”“네, 엄청 친절했어요.”‘친절하다고?’하윤의 기억에 공은채는 언제나 무뚝뚝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절대 친절이라는 단어와 매치가 되지 않았다.그러던 그때, 고은지가 했던 말이 갑자기 뇌리를
민도준의 대답 대신 들려오는 요란한 배경소리에 권하윤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다.“안돼요?”“돼.”도준은 가볍게 대답했다.“그것 때문에 돌아간 거잖아.”하지만 그 말투에 쉽게 눈치챌 수 없는 다른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안 하윤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도준은 해원에서 그녀가 엉망으로 만든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데, 그런 도준은 한마디도 관심하지 않았으니.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늘 빚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진짜로 빚진 하윤은 오죽할까?그제야 하윤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늘어 놓았다.“아니에요. 저는 도준 씨가 저 때문에 또 위험해질까 봐 집에서 기다리려고 돌아온 거예요.”하윤의 변명에 낮게 깔린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도준은 또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윤에게 장난치기 시작했다.“응. 착하네.”모든 감정이 도준의 행동에 달려 있는 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주동적으로 의견을 냈다.“그러면 도준 씨가 돌아오면 같이 만나러 가요.”“응? 이렇게 말 잘 듣는다고?”“도준 씨가 밖에서 고생하는데, 제가 또 사고 치면 안 되죠.”하윤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말은 잘해. 됐어, 나 바쁘니까 혼자 놀고 있어.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네.”도준이 더 이상 아까 일을 문제삼지 않자 하윤은 얼른 대답했다.이윽고 도준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도준 씨,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을 텐데 담배 적게 피우고 술은 마시지 마요. 싸움 나면 절대 직접 나서지 말고요.”하윤의 말에 도준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아주 다 컸네? 이제는 나한테 잔소리도 다 하고?”“안 돼요?”“돼.”도준은 목소리를 내리 깔며 말을 이었다.“나중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 줄게.”“…….”도준의 희롱에 전화를 끊은 뒤에도 하윤의 뜨거운 얼굴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하지만 문 밖에서 들려오는 연주 소리에 이내 걱정에 잠겼다.‘공은채에 관한 걸 도준 씨한테 물어봐도 될까?’도준은 하윤의 앞에서
케빈은 감옥에 7,8 년 정도 갇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딱히 그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처럼 후련한 표정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담배 좀 줄 수 있습니까?”눈썹을 치켜 올리며 담뱃갑을 꺼낸 도준이 검지로 담뱃갑 변두리를 툭툭 치자 케빈이 손을 내밀어 튀어나온 담배를 받았다. 수갑을 찬 불편한 손 때문에 두 손을 내민 채로 말이다.케빈은 오랫동안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는지 불을 붙이는 동작에서마저 어색함이 느껴졌다.매캐한 연기가 폐부로 흘러 들었고 알싸한 느낌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익숙한 냄새에 허벅지 안쪽에 있는 오래 된 담배 땜빵 자국이 찌근거렸다.그 순간 케빈의 기억은 그가 처음 담배를 배운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날 케빈은 민시영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햇살 같이 밝게 빛나던 아가씨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케빈 역시 등골이 부러졌었다.그날, 흡연실에서 누군가 케빈에게 담배를 건네주었다. 그 역시 불치병에 걸린 가족이 있어 슬퍼하는 줄 알고 위로하면서 말이다.“자, 한 대 피워요. 그러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시영이 담배 냄새를 싫어하여 전에 담배에는 손도 댄 적 없었는데, 그날 이후로 케빈은 허구한 날 담배로 기분을 달랬다.그러던 어느 날, 시영이 그 사실을 알고 케빈을 무릎 꿇게 하더니 손에 잡히는 물건을 미친 듯이 케빈에게 던지며 욕을 퍼부었다.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눈앞이 흐릿했지만 케빈은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심지어 시영이 주는 고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그건 시영이 그 일을 당하고 처음으로 이성을 잃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시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가족들과 웃으며 얘기하고 파티에 참석하고 수업을 했다.모든 울분을 토해낸 시영은 땅바닥에 널브러진 파편을 밟으며 케빈에게 걸어가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일어나서 키스해줘.”케빈은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시영이 발길질했다.“왜? 이제는 너도 내가 싫어
늦은 밤.권하윤은 잠이 들지 않아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가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했다.그렇게 11시까지 그 동작을 반복하다가 끝내 폭발한 하윤은 핸드폰을 이불 안으로 던져 버리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전화하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많이 보낸 문자에 답장도 안하고. 전화 와도 내가 대꾸하나 봐라.’그러던 그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머리까지 이불을 덮고 있던 하윤은 당연히 자기가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불을 걷어낸 순간, 문틈 사이로 빛이 흘러 들어오는 게 보였다.‘집에 누가 있어!’‘누가 들어왔나 봐!’하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움켜쥔 채 허리를 굽히고 문틈 사이로 밖을 관찰했다.그 순간, 커다란 힘이 침실 문을 확 열어 젖혔다.“아!”너무 놀란 나머지 하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 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소리치려던 찰나,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만 소리쳐. 나야.”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은 하윤은 문밖에서 흘러 드는 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장난기 섞인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자, 하윤은 화가 난 듯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오면 온다 왜 말을 안 해요? 놀랐잖아요.”도준은 피하지도 않고 하윤에게 맞아주면서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그랬지.”본인은 도준을 때리느라 손이 아픈데 도준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하윤은 구시렁댔다.“나빠 죽겠어.”“싫어? 그럼 나 간다?”도준이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굴자 하윤은 얼른 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안 돼요. 못 가요.”고개를 젖힌 채 만류하는 모습은 바로 입맞추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이에 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하윤의 이마를 콩 내리쳤다.“그래, 안 갈게. 그러면 어디 한번 나 붙잡아 봐.”하윤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끝내 도준에게 입을 맞추었다.분명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그리움에 병이 난 것 같았다.어느새 하윤의 등은 벽에 밀쳐졌고 허리를 끊어 안은 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