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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좋아했으면 좋겠어

이남기를 제지하고 난 공태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이번 훈련이 실패한 게 영향이 꽤 크고 또 기밀과 관련이 되어 있기도 하여 대외적으로는 비밀이거든요. 제가 한번 알아보고 소식이 있으면 알려 줄게요.”

그 말에 잠깐 생각하는 동안 이남기의 한마디가 권하윤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 태준은 하윤에게 빚 진 게 하나도 없다고, 하윤을 곁에 두는 건 오히려 함께 안 좋은 일에 연루될 수 있다고 말이다.

밖을 내다보던 하윤은 웬 호텔을 지날 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내릴 게. 당신 뒤에는 공 씨 가문도 있잖아. 당신과 있으면 내가 불편하니까 먼저 가 볼 게.”

말을 마친 하윤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잠깐만요.”

마침 그때 태준도 다른 차 문으로 내리면서 미소 지었다.

“불편할 거 없어요. 저 지금 공 씨 집안 가주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이지?”

“저는 지금 그저 공태준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 생각하고 잠시 얹혀 산다 행각하면 안 돼요?”

나무가 울창한 숲길, 태준은 놀란 듯 묻는 하윤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윽고 하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더니 약 한 걸음 정도 남은 거리에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던 씨도 지금 구조 작업 중이잖아요. 살아 있어야 좋은 소식도 듣지 않겠어요?”

“…….”

공씨 저택.

하윤은 제 발로 이 곳을 다시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두터운 대문, 담장 너머로 자란 나뭇가지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하윤의 기억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때의 어두운 기억들과 가족을 위해 죽어라 뛰어다녔던 나날들이 눈앞에 선했다.

문이 열리자 장미꽃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열의 붉은색이 기억 속 고풍스러운 석상을 대체했다.

하윤은 공 씨 저택에 이렇게 강렬한 색감이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장미꽃 정원뿐만 아니라 값비싼 나무로 만든 창문 틀마저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바뀌어 있었고 곳곳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한 번도 밝은 적 없던 하윤의 기억 한구석을 비추었다.

전혀 다른 인테리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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