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손에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민도준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부드럽지 않던 수건은 물기를 머금고 점점 부드러워졌고 남자의 머리가락을 스치며 점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는 머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닿은 탓인지 도준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특히 도준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하윤 때문에 도준은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도 하윤의 손이 두피를 스칠 때의 촉감이 너무 부드러워 위협감이 아닌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주림의 일을 생각하느라 하윤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하윤이 눈치챘을 때 손은 이미 꿈쩍도 할 수 붙잡혀 중심을 잃은 하윤이 도준의 등에 넘어졌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머리 닦아주고 있잖아요.” “다른 곳도 닦아주면 좋겠는데.” 도준의 말에 하윤은 귀밑까지 달아올랐다. “저리 비켜요.” 하윤은 화를 내며 도준을 밀어버리려고 했지만 너른 등 위에 엎드려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 쉽사리 말어내지 못했다. 쩍 벌러진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이어진 라인은 움직이지 않아도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윤은 두 팔을 도준의 목을 꼭 감았다. 심장이 쿵쾅댈 때마다 심장을 감싼 살갗이 따라 오르내렸고 마치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남자의 등에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심장 박동 소리에 하윤은 점점 긴장이 풀어졌다. ‘도준 씨도 너무 무서운 건 아닌데.’ 주림이 도준을 알지 못하지만 하윤은 도준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주림에게 도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줄 수 있었다. 더욱이 이미 관계를 확인한 지금, 하윤은 도준이 자기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론을 짓자 마음속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덜어진 듯 한결 편해졌다. 이에 하윤은 도준의 등에 더 바싹 몸을 붙인 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그때,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주림은 어떻게 할 거야?”
권하윤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반짝이는 눈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분해하는 것처럼 긴장되는 상황에 하윤은 심장이 쪼그라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어느 선을 잘라야 살수 있는지 하윤에게는 아직 미지수였으니까. 솔직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믿음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하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도준을 사랑할수는 있어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사랑하는 것이지만 믿음은 자기의 불확실한 미래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윤은 도박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신중을 가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진심을 내비치는 사람이다. 하윤은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있지만 이 싸움에서 절대 지면 안 되는 게 하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권하윤이라는 탈을 쓴 채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하윤은 이미 용기를 잃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기뿐만 아니라 주림의 안전까지 내걸어야 하니 하윤에게는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하윤은 끝내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사실 주림 선배를 던 씨한테 맡기고 싶어요. 던 씨한테 부탁해서 주림 선배를 해외로 이송했으면 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기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윤은 도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방이 어두운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볼 수 없어서 도준의 반응을 판단할 수조차 없었다. 하윤은 손을 더듬으며 도준의 팔을 잡았다. “화났어요?” “하.” 의미를 알 수 없는 짤막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하윤은 도준의 팔을 놓치고 말았다. “화나냐고? 내가 화 날 거 뭐 있어? 하윤 씨가 나보다 남을 더 믿는 것에 화를 낼까? 아니면 또 거짓말을 한 것에 화를 낼까?” 웃으며 반문하는 도준의 모습은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분명 화를 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하윤은 주위의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느낌이 들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에요.
이런 혼란 속에서 민도준은 한가롭게 흔들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윤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아, 일어났어?” 주림과 주민수가 헬기 안으로 끌려가자 하윤은 다급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급할 거 없어.” 도준은 땅콩 껍질을 손으로 갈라 땅콩 하나를 입 안에 넣었다. “하윤 씨가 힘들까 봐 부담을 나누는 거잖아.” 주민수는 나이 든 몸으로 젊은 경호원을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헬기 안으로 끌려갔다. “잠깐만요. 지금 할아버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 헬기 문이 닫히려고 하자 하윤은 얼른 막아서려고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팔을 세게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발걸음을 멈춘 하윤은 발걸음을 멈춘 채 두 사람이 헬기 안으로 끌려가는 걸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주민수는 헬기가 떠오르기 전 버둥대면서 하윤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고 손을 어색하게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헬기는 윙윙 소리 내며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문 밖에서 벌어진 상황에 놀란 눈치였지만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상황을 접한 이장이 뒤늦게 달려 나왔지만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는 놀란 듯 다리를 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내뱉었다. 하윤은 이장이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에서 자기와 도준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장은 순간 ‘동곽선생’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라 하윤과 도준을 거두어 들인 것을 못내 후회했다. 말할 수록 흥분한 이장은 하윤에게 따지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때 도준이 하윤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뒤에 보호했고 잔뜩 분노한 이장과 달리 하나도 꿀릴 거 없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도준을 바라봤다. “쯧. 이것 봐. 어쩜 하윤 씨 닮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따지고 들 생각부터 하다니, 이건 대체 무슨 취미야?” 얼굴
이장의 말을 들은 다솜은 용기를 내어 권하윤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허리를 숙이라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이 무슨 귓속말을 주고받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하윤은 할 수 없이 허리를 숙였다. “왜 그래?” 그때 다솜이 포동포동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언니, 만약 언니도 납치당한 거라면 눈 깜빡여 봐요. 우리가 도와 줄게요.” 다솜이 말을 전하는 사이, 이장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마치 용기를 북돋아 줄 것처럼 하윤을 바라봤다. ‘이 분위기는 뭐지? 이거 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윤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얼른 설명했다. “저 납치당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하윤은 귀찮은 듯 옆에 서 있는 도준을 힐끗 보더니 눈을 내리 깔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부부예요. 저 사람 제 남편입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담배를 물고 있던 도준은 똑똑히 들어 버렸다. 이윽고 도준은 희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하, 그래도 내가 남현이라는 건 인정하네. 많이 발전했네.’ 상황 설명을 마친 하윤은 반신반의한 이장을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몸을 돌렸다. 그랬더니 도준의 발 밑에는 그새 담배 꽁초가 몇 개 더 생겨났다. 하윤이 돌아오자 도준은 눈빛으로 자기 앞을 가리켰다. “이리 와.” 문 앞에서 2초간 머뭇거린 하윤은 천천히 도준에게 다가가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도준의 무릎 위에 앉아 버렸다. 도준의 의외라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불어볼 거 없어?” 이에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하윤은 끝내 용기를 내어 도준을 바라봤다. “도준 씨는 주림 선배 해치지 않아요.” 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물어보는 거야? 서술하는 거야?” “서술이요.” 하윤은 천천히 도준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댔다. “저 도준 씨 믿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든 저를 해칠 리 없으니까.” “…….” 고요한 산 속에서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자 주위의 모든 게 정
권하윤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민도준이 자기 다리 위에 앉은 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얼른 준비해. 이제 하산해야지.”하윤은 본능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준비를 할 뿐.얼마 뒤, 하윤은 가방을 멘 채 밖으로 나와 도준의 손을 잡았다.그런 고분고분한 모습에 만족했는지 도준도 하윤의 작은 손을 잡은 채 주물럭거렸다.“왜 어디 가는지 묻지 않아? 내가 하윤 씨 팔아버릴까 봐 무섭지 않아?”하윤은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그럴 건가요?”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윽고 하윤의 손을 잡아 차가운 하윤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아까워서 어떻게 그래.”뜨거운 숨결이 손등의 얇은 살갗을 데우고 뼈에까지 낙인을 새기는 듯했다.하윤은 본능적으로 흠칫 움츠러들더니 고개를 들고 도준을 바라봤다.“저도 도준 씨가 떠나는 게 싫어요.”……오붓하게 지내던 와중에 두 사람은 하산했다.분명 주림을 만났지만 도준은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남쪽을 향해 달렸다.하산 후, 오랫동안 조용했던 하윤의 핸드폰에도 마침내 신호가 잡히더니 갑자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여기는 해원 경찰서입니다. 조사기간 동안 무단으로 해원을 떠나 도주죄에 해당하므로 하루 내로…….”약 절반쯤 들었을 때 도준이 하윤의 핸드폰을 빼앗아 가더니 그 자리에서 꺼버렸다.하윤이 그런 도준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한 듯 바라봤지만 핸드폰은 어느새 도준에게 내팽개쳐졌다.“뭐 하러 그런 골치 아픈 얘기 듣고 자빠졌어? 경치나 구경해.”창밖의 경치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경성의 웅장하고 화려한 아름다움과 달리 안개 속에 있는 선경 같았다.하지만 그런 풍경에도 하윤은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방금 경찰의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하윤이 정말 죄를 짓고 도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범죄자를 대하는 태도였으니까?그런데 의아한 것은 도준이 자꾸만
권하윤은 민도준이 잠든 뒤 몰래 확인하려고 마음먹고는 도준을 등진 채 불을 껐다. 심지어 졸린 듯 눈까지 감은 탓에 촉감이 점점 더 민감하게 살아났다. 특히 도준이 손장난 칠 때 평소보다 더 민감하게 느껴진 탓에 하윤은 옷을 사이 둔 채 도준의 손을 붙잡았다.오늘 해야 할 ‘임무’가 있기도 하고, 도준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 사람이라 절대 시작을 하면 안 된다.이에 하윤은 완곡히 거절했다.“오늘 하루 종일 차 타고 달렸더니 피곤해요.”남자의 숨결이 귓가를 스치더니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귀 안을 파고 들며 하윤을 건드렸다.이윽고 커다란 손이 하윤의 허리를 쓸며 아래로 내려갔다.“착하지, 말 들어. 내가 피로 풀어 줄게. 안 그러면 내일 더 힘들 거야.”하윤은 이런 상황에 도준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특히 뒷덜미를 잡힌 채로 키스를 해댈 때면 더더욱.산에서 지낸 이틀동안 도준이 건드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남의 집에서 지내는 터라 많이 절제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도준은 마치 철창에서 꺼내진 짐승처럼 사냥감을 탐했다.도준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하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자기 공제를 벗어나 점점 고통과 흥분이 뒤섞인 감각 속에 빠진 하윤은 도준의 어깨를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흥분한 듯한 근육이 단단해졌고 혈관은 펄쩍펄쩍 뛰면서 살갗 위로 튀어 오를 것처럼 굴었다.깊은 밤, 하윤은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치켜 뜨며 도준에게 안겨 샤워를 했지만 그 과정마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그러다가 끝내 힘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도준의 가슴에 기댔다.결국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다음 날, 도준의 부름에 깨어난 하윤은 머리가 무겁고 멍했다.원래는 한밤중에 깨어나 몰래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왜 지금까지 잤는지도 의문이었다.도준은 여전히 흐리멍덩한 하윤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손을 들어 하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그만 정신 차리고 밥 먹자.”하윤은 도준을 바라보더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섰다.“내려가기 귀찮아요. 안 먹을
정리를 마친 뒤 권하윤은 곧바로 문을 열어주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문고리에 손이 닿으려던 찰나 문득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도준 씨는 이렇게 인내심 좋은 사람 아닌데?’예전에 하윤이 샤워하느라 문을 조금 늦게 열었다고 도준은 하윤을 달달 볶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재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게다가 밖에 나간 지 2분 만에 돌아온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이미 완성된 음식을 사온다 해도 이렇게 빠를 수는 없다.“쾅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그 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문이 공포감을 자아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을 보면 한 사람만은 아닌 듯했다.하윤은 점점 뒷걸음 쳐 창가로 물러나면서 몸을 지킬만한 도구가 있는지 사방을 둘러봤다.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은 탓인지 상대방도 자기 신분이 탄로났다는 것을 눈치채고 문을 더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문 여세요. 경찰입니다. 수사에 협조 바랍니다.”‘경찰?’하윤은 상대방이 말한 게 진실인지 아닌지 알 길 없어 창밖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도준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다.하지만 하윤이 소리를 내지 않으니 상대방도 인내심을 잃었는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낡은 벽과 문 사이의 흙먼지가 부슬부슬 떨어지기까지 했다. 이대로 가면 얼마 되지 않아 문은 아마 박살 날 거다.‘저 사람들 경찰 아니야.’경찰이라면 영장을 제출하고 사장한테 문 열어달라고 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폭력적으로 문을 부술 필요는 없다.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와 문을 부수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하윤은 진정해야 했다.‘이 문은 도준 씨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거야. 방법을 생각해야 해.’……쾅!쾅!‘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삐걱거리던 문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곧바로 세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맨 앞에 있던 남자가 텅 빈 방 안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어디 갔어?”그때 맨 마지막에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활짝 열린 창문
권하윤은 당황한 나머지 마구 몸부림 쳤다.“이거 놔.”“그만하고 사람 좀 확인해.”고개를 들어 민도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하윤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도준 씨…….”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놈들이 쫓아왔다.험상궂은 얼굴을 한 놈들은 도준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솔직히 놈들은 도준이 없는 틈에 하윤을 잡으려 했었다.여자 한 명을 덩치 큰 남자가 몇 명이 몇 분 내에 잡지 못할까 하는 오만함 때문에 그 틈을 노렸던 거다.그런데 하윤이 도준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놈들이 아니었다. 물론 고용주가 정면으로 도준과 마주치지 말라고 했지만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아 온 놈들은 도준을 자기들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도준은 한 명이고 놈들은 세 명이니까. 게다가 도준은 하윤이라는 ‘짐’까지 있으니 놈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그 뿐만 아니라 하윤을 겁탈하는 데 성공하면 20억, 하윤을 잡아 고용주 앞에 가져가면 40억을 더 받을 수 있는데, 그 돈을 포기할 놈들이 아니었다.맨 앞에 있던 형님이라는 놈이 거침없이 앞으로 돌진하며 도준에게 겁을 주었다.“이 봐, 우리가 그 여자한테 좀 볼 일이 있어 그러는데 여기로 넘겨. 그러면 댁은 곱게 보내 줄게.”하윤은 놈들이 바로 도망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외였는데 이렇게 간 큰 소리를 지껄이자 어안이 벙벙하여 도준을 바라봤다.놈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발언에 도준은 흥미진진한 듯 미소를 지었다.“어떡하지? 그러기 싫은데.”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미소에 놈들은 소름이 돋았다.그때, 형님이라는 놈이 겁먹은 걸 숨기려는 듯 일부러 소리를 높였다.“이 구역 실세가 누구인지 알아는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 여자 내놓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갈 생각 하지 마.”도준은 놈들의 겁 없는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움직였다.“죽인다는 말인가? 재밌겠는데? 어디 해 봐.”도준이 순순히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