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그렇게 천한 아비를 둔 계집과 결혼하면 뒤에서 헐뜯는 사람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괜찮겠나?”가족에 관한 말이 오가자 권하윤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끼어들었다.“당신들이 그때 사실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결론 짓고 결론을 짓고 아버지한테 죄를 뒤집어 씌운 거 제가 모를 줄 알아요?”“저 이미 다 알아냈어요. 당신들이 사람을 매수해 제 아버지한테 누명을 씌웠더군요. 그러면서 어떻게 제 아버지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죠?”민도준의 말에 자극을 받은 공미란은 이미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데 하윤마저 버럭버럭 따지고 들자 안색이 아내 어두워졌다.“허무맹랑한 말로 시비를 일으키다니, 이토록 교양 없는 계집을 봤나! 너 같은 계집은…….”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도준의 행동에 공미란의 말은 끊기고 말았다.이윽고 도준은 하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잔뜩 화가 난 하윤을 자기 쪽으로 잡아 끌며 공미란을 향해 웃어 보였다.“왕 사모님의 말이 이 사람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데.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왕 사모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탁 트인 홀은 순간 먹구름이 낀 것처럼 우중충해졌고 당장이라도 비바람이 몰아칠 것처럼 고요해졌다.이쯤 되면 이제 서로 감정이 틀어진 거나 다름없었다.하윤은 공씨 가문이 도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불안한 듯 도준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하윤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 주며 턱을 들어 올렸다.“이만하죠. 나이도 드신 분한테 따지는 것도 웃긴 일이니 사과만 받겠습니다. 만약 그 사과가 마음에 들면 용서해 드리죠.”“민도준!”분노를 한껏 억누른 공미란의 목소리는 귀청 찢어질 듯 거칠었다. 심지어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자 물고기 아가미가 움찔거리는 듯한 공포감을 더해줬다.더 이상 도준과 말할 생각이 없어진 공미란은 자기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냈다.“혼자 민씨 가문과 회사일을 맡아 하는 데다 칩
공미란은 꿋꿋한 태도로 밀어붙였다.“서로 좋자고 이러는 거네. 빨리 동의할수록 덜 고생할 텐데.”공미란의 말을 입증하듯 경호원들은 두 사람을 향해 몇 걸음 더 다가왔다.그러던 그때 하인 한 명이 도준 앞에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그건 당연히 칩 기술의 특허권을 공씨 가문과 나눠 가지겠다는 합의 서였다.앞에 놓인 합의서에 사인하느냐, 아니면 하윤을 데리고 빽빽이 둘러 싼 경호원을 상대하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의도였다.하윤은 공씨 집안 사람들이 도준을 정말 죽이기라도 하거나 갑자기 습격일도 할까 봐 도준의 뒤에 막아서며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했다.하지만 하윤의 작은 동작은 도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하윤의 그림자에 도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그 작은 몸으로 무얼 막는다고.’아니나 다를까 선명한 키 차이 때문에 하윤은 도준의 가슴을 막아주기도 역부족이라 머리는 그대로 적에게 노출되었다.“탕!’도준은 서류를 테이블 위에 던져 버렸다.“이런 합의서는 가주가 동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공태준은 어디 있죠?”공미란은 콧방귀를 뀌었다.“공태준의 가주 신분은 내가 준 거니 내가 공씨 가문을 대표하네.”“이미 다 늙어 빠진 몸으로 앞으로 몇 년 더 버틴다고 본인이 공씨 가문을 대표한다고 망발을 늘여 놓는지.”“공태준이 아무리 골골거려도 왕 사모님보다는 몇 년 정도 더 버틸 것 같은데, 왕 사모님이 저 세상 가기라도 하면 다시 공태준과 번거롭게 얘기하는 수고는 덜고 싶은데.”“건방진 것!”공미란의 낮은 고함에 앞에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총기를 꺼내 들고 도준의 머리를 겨냥했다.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하윤은 조급해서 무의식적으로 도준의 앞에 막아섰다.“당신들 뭐 하는 거야? 이 사람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민씨 가문에서 당신들 가만 안 둘 거야!”하윤은 겉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도준이 해원에 온 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도준이 말하지 않아도 하윤은 알 수 있었다. 물론 무엇 때문에 공씨 저택으로
민도준은 권하윤이 불안한 듯 헐떡이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면서 그녀가 놀라지 않기를 기도했다.이윽고 엄지 손가락으로 하윤의 손바닥을 쓸며 위로를 보냈다.하지만 이미 정서에 젖어 있던 하윤은 도준이 자기와 작별하는 줄 알고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상관하지 않은 채 도준의 품에 파고들었다.“미안해요, 다 저 때문이에요.”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하윤을 품에서 끄집어내려고 할 때, 하윤이 고개를 쳐들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도준을 바라봤다.“걱정하지 말아요. 도준 씨한테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저 기다릴게요. 도준 씨가 죽으면 같이 죽을게요.”‘듣기는 좋은데 시기가 좀 안 맞네.’하윤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적의 기세를 북돋아주고 자기의 위엄을 떨어트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뭐라 꾸짖으려고 했지만 도준은 하윤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이내 말머리를 틀었다.“음? 나를 따라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도준의 말에 하윤의 마음은 한층 더 식어버렸다.하지만 죽음 앞에서 체면 따위는 버려 두기로 한 하윤은 도준의 품에 매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도준 씨가 죽으면 저도 안 살래요.”아예 막 나가기로 한 하윤과 원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도준 때문에 공기는 순간 어색함이 맴돌았다.심지어 총기를 꺼내 들고 두 사람을 협박하던 경호원들조차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하지만 도준은 갑자기 하윤에게 장난치고 싶어져 자기를 끌어안고 있던 하윤의 팔을 풀며 떼어냈다.“내가 뭐라고 따라 죽는대?”“도준 씨는…….”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하윤은 후회하게 될까 봐 도준의 목을 팔로 두른 채 발꿈치를 들더니 도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제 남편이잖아요.”하윤은 말을 마치자마자 도준의 턱에 입을 맞추더니 도준이 듣지 못했을까 봐 남편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도준은 호칭에 크게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가끔 하윤을 놀리려고 부끄러운 호칭으로 불러대는 것 외에 하윤이 자기를 어떻게 부르던 크게
공미란은 도준을 고발하면서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조관성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조관성의 도움을 받아보겠다고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거절 당했었고.만약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도준을 자기 입맛대로 굴릴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조관성 때문에 공미란은 격지 않아도 될 번거로움을 겪었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성정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공미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남의 편도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더욱이 지금 증인과 증거 모두 있는 상황이라 민도준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공미란은 웃음이 절로 났다.공미란의 고발에 조관성은 이내 도준을 바라봤다.“사실입니까?”하윤은 조관성의 차가운 표정에 도준이 끌려갈까 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따라서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도준은 하윤이 놀라 기절할까 봐 하윤의 어깨를 꼭 잡은 채로 조관성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제 집사람이 겁이 많아서 그러는데, 혹시 저쪽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서로 안면이 있는 듯한 둘의 대화에 침착하기만 하던 공미란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자, 자네가 조 국장을 어떻게 아는가?”한편 하윤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자기가 손을 놓아 버리면 다시는 도준을 볼 수 없게 될까 봐 도준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저었다.“저 무섭지 않아요. 여기서 말해요.”조관성은 날카로운 눈매를 찌푸리며 물었다.“방금 폭발 민 사장님이 낸 겁니까?”도준은 통쾌하게 인정했다.“네, 맞아요.”그 말에 공미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준이 조관성과 아는 사이든 아니든 죄를 인정했으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거니까.군무기를 은닉하고 민가를 습격한 죄는 가볍게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이 아니다.이에 공미란은 거드름을 피우며 끼어들었다.“조 국장님, 해원에서 이런 악랄한 사건이 일어나 가족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으니 부디 엄벌해 주세요.”조관성은 도준을 힐
민도준은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았는지 외투 호주머니에서 4장의 종이를 꺼내 펼쳐 보이며 끝을 손가락을 툭 튕겼다.“여기 명확하게 적혀 있는데, 돋보기라도 껴야 잘 보이시려나?”종이에는 공씨 가문이 자발적으로 자택을 실험 기지로 내놓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게 명시되어 있었다.하지만 공미란은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특히 똑똑히 보이는 서명과 공인을 보자 더욱 황당했다.“조작하면 누가 모를 줄 알아?”그때 도준이 복도 끝에 나타난 인영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공 가주님, 그쪽 할머니께서 이 사인에 대해 묻는데요?”‘공태준? 공태준이 여기 있다고?’하윤은 도준의 눈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역시나 공태준이 어두운 곳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그 순간 하윤은 고은지와 공천하는 공태준이 벌을 받고 있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태준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외상도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니까.“합의서는 진짜예요. 제가 직접 사인했고요.”태준의 말에 공미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서운 표정으로 공태준을 죽일 듯 노려볼 뿐.그때 도준이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보세요, 조 국장님. 제가 말했잖아요. 저 착한 시민입니다.”조관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도준과 몇 초간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눈을 피하고는 떠나기 전 낮게 경고했다.“도 넘는 행동하지 마세요.”“당연하죠.”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우여곡절 끝에 조관성마저 떠나자 하윤은 그제야 이 모든 게 도준이 계획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면 아까 생이별하는 것처럼 군 것도…….모두 거짓이라는 소리다.아까 자기가 했던 ‘진심어린’ 말을 떠올리자 하윤은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하지만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라서 태준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몇 초 뒤, 태준은 눈을 내리 깔더니 공미란을 향해 걸어갔다.“짝!”곧이어 뺨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하윤은
민도준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옆에 앉은 권하윤이 목을 빼들다 못해 핸드폰 안으로 들어갈 기세를 보이자 도준은 아예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조관성은 겉치레 적인 말도 없이 바로 볼론부터 얘기했다.“오늘 정말 실험한 거 맞아요?”마침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도준은 핸들을 돌리며 대답했다.“당연하죠.”“흥.”조관성은 콧방귀를 뀌더니 도준을 차갑게 꾸짖었다.“공적인 이름을 빌어 사욕을 채우는 걸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조수석에 앉은 하윤은 조관성이 책임을 물을까 봐 불안한 듯 도준을 바라봤다.하지만 그러면서도 도준이 잘 설명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도준은 하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오히려 재밌다는 듯한 목소리와 말투로 장난기 있게 말했다.“역시 조 국장님의 눈은 못 속인다니까요.”“비행기 태우지 마세요!”조관성은 잠시 침묵하더니 경고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 번은 없다는 거 알아두세요.”전화가 끊기자 하윤은 긴장한 듯 도준을 바라봤다.“도준 씨가 실험 때문에 그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괜찮아요?”“실험 때문이 아니라니? 실험 때문 맞아. 상황을 설정해서 시뮬레이션 진행한 거고, 공씨 집안에서 동의했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하윤은 입을 뻐끔거리며 맞받아 치려고 했지만 좀처럼 뭐라 말해야 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보기엔 황당한 일이지만 도준은 확실히 오래 전부터 이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왔다.그걸 인지한 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더니 입을 삐죽거렸다.“그러니까 도준 씨가 꾸민 일인데 저만 도준 씨가 무슨 일일이라도 날까 봐 가슴 졸였던 거네요?”차가 마침 호텔에 도착하자 도준은 하윤을 차에서 끌어내리며 심장을 토닥여줬다.“마음을 제대로 내비치지 않았다간 안에서 곰팡이 끼겠어. 이건 나를 탓하면 안 되지.”하윤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기뻤다.도준이
던은 화를 내는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안쪽을 향해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좋은 시간 보내요.” “…….”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어깨를 으쓱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구애기에 있는 수컷은 참 무섭네.’ 신중을 기하기 위해 던은 다른 쪽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호텔을 나가기 전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던 씨, 아까는 죄송했어요. 혹시 공태준이 위험한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 문자를 보낸 뒤 화장실에 숨어 있던 권하윤은 민도준이 보기라도 할까 봐 얼른 기록을 지워버렸다. 공씨 저택에서 공미란을 본 하윤은 공씨 저택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있다. 더욱이 공태준이 어떤 상황에 직면할 것이며 오늘 일로 잔인한 일을 당하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도준에게 말하는 대신 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 새벽, 공씨 저택. 질질 끌리는 듯한 발소리가 적막한 사당에서 메아리치고, 신발 밑창이 무거운 쇠사슬처럼 바닥을 스치며 복도를 지나 사당 문 앞에 멈췄다. 높이가 십여 미터나 되는 사당 안에는 위패가 가득 놓여 있었고 한 층 한 층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갑고도 검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던 여인은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언제나 신사 같던 남자는 이 시각 이마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으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땀방울이 더해지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는 동시에 어두운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졌다. 고은지는 남자를 힐끗 보고는 다시 위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태준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피비린내를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준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는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당에서는 휴식할 수 없다.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면 망자에 대한 불경으로 보일 테니까. 그때 흰 알약 두 개가 태준 앞에 쑥 나타났다. “
몇 글자도 안 되는 문자를 본 순간 권하윤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전에는 그나마 공태준이 자기를 도와줬지만 속이기도 했으니 비긴 셈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지만, 지금 태준은 하윤을 위해 공씨 가문과 척진 상태다. 하윤은 태준이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도, 왜 이런 짓을 한지도 알지 못했다. ‘마음 때문인가?’ 하지만 하루도 함께 지낸 적이 없고 태준도 하윤에게서 즐거움을 얻은 적이 없는 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 ‘대체 뭐지?’ 순간, 공씨 저택을 떠날 때 문틈새로 보이던 장면이 반복적으로 하윤의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무릎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지만 귀청을 찢는 듯 크게 들렸었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하윤은 끝내 안부 문자를 보냈다. [어제 도와줘서 고마워. 왕 사모님이 괴롭히지는 않았어?] 하윤은 등을 돌린 채 침대에 누워 문자를 보냈다. 옆에 누워 있는 남자가 이미 눈을 뜬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지금 뭐 해?” 하윤은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핸드폰이 이불 위에 떨어지기도 전에 남자의 손안에 들어갔다. 커다란 손은 핸드폰을 꽉 움켜쥔 동시 하윤의 심장도 움켜쥐었다. 도준은 문자를 힐끗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왜? 공태준이 걱정돼?” 왠지 모르게 바람을 피우다 들킨 것처럼 하윤은 당황하여 말소리조차 작아졌다. “저는 그저 어제 우리를 도와준 게 고마워서…….” 도준의 눈에는 흥미로움이 더해졌다. ‘말은 참 잘 한다니까. 본인을 도운 건데 우리라고 선을 긋다니.’ 핸드폰을 쥔 도준의 손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안 하윤의 심장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고맙다고?” 하윤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 외엔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것을 강력 어필했다. 그 동작에 도준이 피식 웃었다. “그래?” 하윤이 겨우 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하려던 찰나, 도준은 핸드폰으로 하윤의 볼을 톡톡 두드리더니 위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옆에 누워서 딴 놈 달랠 정도로 고마웠어?” “아니, 그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