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진은 그제야 알아챘다. 눈 앞의 남자는 도리를 따지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을. 이 남자는 자기가 뭐라하든 자기 여자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민도준의 무서운 눈빛을 보자 이화진은 팔이 더 아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감히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에요. 전 저 여자 때린 적 없어요. 그냥 얘기 좀 하려던 것뿐이었어요.” 그때 도준은 권하윤을 잡고 있는 두 여자를 힐끗 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얘기만 했다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두 사람은 얼른 손을 뗐다. 하지만 하윤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팔에는 잡아당겨 남은 듯한 붉은 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 도준은 하윤을 자기 앞으로 끌어오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손가락으로 그녀 이마를 쿡쿡 찔렀다. “화장실 한번 다녀오는 것도 다치면 어떡해? 아주 키링으로 만들어 허리에 달고 다녀야 할 판이네?” 하윤은 여전히 분노와 흥분이 가시지 않아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설명을 했다. “저 여자들이 먼저 제 아빠를 말해서 흥분한 거예요.” 도준은 장난치는 듯 입을 열었다. “흥분한 것 같네. 집단 싸움도 하고.” 그제야 자기가 화장실에서 사람들과 싸웠다는 걸 알아챈 하윤은 어색해졌다. 그때 도준은 존재감을 숨기려고 애쓰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뜬금없는 찬사를 보냈다. “우애가 좋네.” 짧은 머리 여자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화진이 맞고는 흥분해서 저희는 그저 싸움을 말린 것뿐이에요…….” 도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람을 도운 거다, 이 말인가? 그러면 내가 오해했네. 아니면 이건 어때? 아까 어떻게 했는지 내 앞에서 다시 연기해 봐. 날 납득하게 하면 보내줄게.” ‘연기 하라고?’ 세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누구도 도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인내심을 잃은 도준이 포악해진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내 말 못 알아 들었어?” 그 때, 세 명 가운데서 키가
권하윤은 온갖 비명과 욕설이 난무하는 화장실 쪽을 힐끗 흘겨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벌이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입꼬리를 말아 올린 도준은 약간 사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윤은 그 말에 멈칫했다. “그러면 저 여자들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왜? 마음 아파?”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톡톡 쳤다. “걱정할 거 없어. 그냥 선물 좀 주려는 거니까.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사람까지 괴롭히면 어떡해? 안 그래?” 하윤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밖에서 다들 듣기 거북할 정도로 소문 내고 다니는 거예요?” 이화진을 포함한 세 사람이 했던 말은 마치 곱게 핀 솜을 들어 아래의 더러운 흙, 마른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을 보게 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존경과 경멸의 시선을 함께 보내오는 느낌 뭐라 단정짓기도 어려웠다. 도준만 곁에 있다면 하윤의 앞에 와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거다. 하지만 뒤에서는 누구나 하윤의 가정을 놓고 손가락질할 거고 겉으로는 사냥한 척 굴지만 사적으로는 이화진보다 더 심한 말을 할 지도 모른다. 그건 하윤뿐만 아니라 나중에 가족이 돌아와도 이어질 비난이다. 지금껏 돌아가고 싶어 하던 평범한 생활은 이미 하윤이 몸 담을 곳도 없어졌다. 한참 동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허리에 힘이 느껴져 하윤은 도준이 자기를 잡아 끄는 대로 그의 품에 반쯤 기댔다. “아직도 슬퍼?” 하윤은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자기의 목적을 생각하고는 이내 말을 바꾸었다. “네. 아빠의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저희 가족은 아마 한 편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 전 까지만 해도 하윤을 달래는 듯하던 도준의 눈빛이 이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하윤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으로 그녀를 도와 안마를 해주기 시작했다. “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두 사람
“혹시 화났어요.” 낮은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이토록 어리석은 질문을 한 하윤을 비웃었다. 지금 당장 하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마저 드는데 화가 났냐니? 등 뒤의 하윤은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런 요구를 제기하면 도준이 화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인사도 없이 몰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현재 직면한 문제도 충분히 많은데 또 새로운 문제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하윤은 반드시 도준을 설득해야 했다. 이 곳은 개발구라서 지세가 높아 뜨거운 바람이 휙휙 얼굴에 불어왔다. 그 순간 등 뒤가 뜨거워 나며 두 팔이 자기 허리를 꼭 껴안은 걸 느낀 도준은 담배를 피우던 손을 흠칫 멈췄다. 하지만 도준은 하윤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봤다. “뭐라고 말 좀 하면 안 돼요? 저 도준 씨랑 상의해 보고 싶어요.” 도준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윤이 숨을 죽이고 답을 기다리는 동안 손목이 꽉 조이더니 앞으로 당겨졌다. “그래. 상의하겠다고? 그러면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네?” 하윤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 하윤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도준은 멍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상의하자는 건 나더러 동의하라는 뜻이네?” 하윤은 입을 뻐끔거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에 하윤은 누그러든 태도로 부탁했다. “전 그저 잠깐 조사만 하고 다시 돌아올 거예요…….”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았는데 하윤의 몸은 남자의 가슴에 부딪혔다. 나른한 윗몸이 남자의 단단한 근육에 부딪히자 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도준이 담배를 낀 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사건만 조사하고 돌아오겠다고? 지금 나를 어린애로 보는 거야?” 하윤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민도준은 권하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중도에 민씨 저택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준이 전화를 끊자 하윤은 얼른 그를 바라봤다. “가는 거예요?” “먼저 하윤 씨부터 집에 데려다 주고.” “급한 일이라면 저 혼자 돌아가도 돼요.” 도준은 손을 뻗어 하윤의 손을 몇 번 주무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고 어디 가서 사고 치고 나를 불러내려고?” 그 말에 하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은 사고였어요.” “하윤 씨가 말만 잘 들었어 봐, 그런 사고가 자주 일어날 리가 없지.” 도준은 끝내 하윤을 집까지 바래다줬다. 하지만 하윤은 주차장으로 가는 대신 그저 아파트 단지 부근에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문을 열려는 순간 손목이 잡혀 돌아봤더니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린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냥 이렇 간다고?” 하윤은 순간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게, 도준과 다정한 행위를 할 때마자 아버지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으니까. 아버지의 죽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도준이 그 중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도 아직 모르기에 하윤은 이런 상황에서 도준과 연애 감정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도준이 자기에 대한 “통제”를 풀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너무 싸늘하게 대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하윤은 끝내 느릿느릿 다가가 도준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조심히 다녀와요.” 막 물려서려는 그때, 하윤의 목덜미에 힘이 가해지더니 순간 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덥쳤다. 너무나도 집요한 입맞춤은 하윤에게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어젯밤 꾹꾹 참았던 정욕은 이 순간 그대로 터져버렸다. 하지만 굳은살이 박힌 큰 손이 허리 라인을 따라 옷 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하윤은 있는 힘껏 도준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 마요…….” 이곳에서 그것도 이런 순간 이 짓을 하는 건 옳지 못했기에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그냥 입만 맞추려는 것뿐이야.” 그 뒤로 도준의 입맞춤은 많이 부
공태준은 권하윤이 화가 나 있다는 걸 눈치 채고는 얼른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미안해요. 조바심에 저도 모르게. 괜찮아요?” 태준이 손을 들자 하윤은 뒷걸음질쳤다. 거리를 두자 남자의 향기도 더 이상 맡을 수 없어 얽매인 듯한 느낌도 사라지면서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어찌 됐든 또 태준의 도움을 받은 터라 하윤은 깊은 숨을 들이켰다. “괜찮아. 아까는 고마웠어.” “아니에요.” 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하윤은 드라마 같은 상황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태준이 때마침 자기를 구하러 짠 하고 나타났다는 걸 당연히 믿을 리 없었다. 이 순간 드는 건 오직 태준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윤의 물음에 태준은 허공에 멈춰 있는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전 윤이 씨 속일 생각 없어요. 하지만 대답이 믿음이 안 갈지도 모르겠네요.” 태준은 하윤을 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묵은 호텔이 바로 요 앞이거든요.” 사실 그뿐만 아니라 태준은 이 근처에서 자주 배회했다. 그러면 하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차마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꽁꽁 숨겨둔 채 태준은 그럴싸한 변명을 늘여 놓았다. “아까 윤이 시가 넋 나간 모습으로 걸어가길래 사고라도 날까 봐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그러 우연히 차에 치일 뻔한 걸 본 거고요.” 태준의 말을 얼핏 들어보면 일리가 있었지만 하윤은 오히려 등골이 오싹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주위에서 시사각각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보이지 않는 두 눈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하윤은 태준이 점점 두려웠다. “공태준,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나 당신 안 좋아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고. 이런 짓 다 헛수고야.” “저도 소용없다는 거 알아요.” 알고 있으면서도 태준은 오히려 기꺼이 이러고 있다. 하윤을 보는 태준의 표정은 왠지 유쾌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하윤과 몇 마디 나눌
권하윤의 질문에 공태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짤막한 한마디를 뱉어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아니라고?’ 하윤은 의아한 듯 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봤지만 왠지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태준처럼 속셈이 깊은 사람이라면 이 모든 걸 연기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하윤은 여전히 따져 묻는 말투로 질문했다. “아니라고? 당신이 아니면 누군데?” 태준은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이렇게 급하게 저한테 죄를 뒤집어 쒸우는 게 민도준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게 제가 한 일이면 아무런 부담도 없이 민도준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하윤은 본능적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그저 자기 가족을 파멸로 이끈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윤이 넋을 잃고 생각할 때 태준이 말없이 다가갔다. “그렇게 많은 증거가 모두 민도준이 범인이라고 가리키는데 알아볼 생각도 없나 보네요. 진실을 좇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민도준의 죄를 씻어주고 싶은 건가요? 이런 생각을 갖고 좇은 진실이 정말 진실일까요?” 한 마디 또 한 마디의 질문에 하윤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마음은 확실히 편파적이다. 만약 처음부터 도준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도준과 엮일 일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하필이면 두 사람이 온갖 시련을 함께 겪고 겨우 행복해지려 할 때 이 모든 걸 알아버려 기계처럼 한순간에 지금까지의 감정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다. 하윤은 도준에 대한 감정을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마치 태준에 대한 혐오감을 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러다간 영원히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을 거다. 잠시 뒤, 하윤은 태준을 바라봤다. “시간 있어?” 태준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준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기쁨이 번졌다. 너무 많이 실망해서 갑자기 너무 기뻐할 수도 없었다. 이에 태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
식탁 건너편에 앉은 권하윤은 공태준의 느릿느릿한 어조에 짜증이 치밀어 애써 욕지거리를 삼켰다. 하지만 한참 동안 듣고 나서야 태준이 하윤의 입맛대로 물어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짜증을 내지 못해 쌓인 화가 가슴을 누르자 하윤은 단숨에 물 반컵을 마시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그때 태준은 마침내 음식 주문을 마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윽고 도자기 같은 손으로 앞접시를 꺼내 들어 뜨거운 물로 헹구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하윤의 앞에 내려 놓았다. 하지만 하윤은 그 접시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보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공씨 저택에서 겪었던 일이 당신 뜻이 아니었다는 건 무슨 말이야?” 접시를 닦은 태준은 두 손을 교차한 채 무릎 위에 올렸다. “저는 윤이 씨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에요.”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하윤은 우스웠다. 그때 하윤이 “징역”살이 하는 것처럼 지냈던 곳은 공씨 본가 저택이 아니라 태준이 살고 있던 개인 저택이었으니까. 만약 태준이 하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면 명령이라도 내려야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보고만 있지 말았어야 했다. 하윤의 질문에 태준은 눈을 반쯤 내리 깔았다. “맞아요. 그 곳은 제가 살던 개인 저택이 맞긴 하지만 공씨 가문이 관할한 곳은 공씨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없어요.” [해원의 공씨 가문]은 권력의 상징이자 고귀한 혈통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족쇄이기도 하다. 그 족쇄는 사람의 몸통과 목덜미를 칭칭 감아 숨조차 쉴 수 없게 하고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곤 한다. 하지만 태준은 그러한 어두운 주제는 상세하게 얘기하지 않고 진지한 눈빛으로 하윤을 바라봤다. 29년 동안 자기 생명에서 유일했던 빛을. “제 주변에 있는 모든 하인은 공씨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이지 저한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윤은 그 모든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민씨 가문의 본가 저택도 고용인들으 그저 직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직원은 고용인을 당연히 능가할
권하윤은 공태준이 아무렇지 않은 듯 음식을 먹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윤의 기억이 맞는다면 태준은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윤은 태준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태준은 냅킨으로 기침을 막으며 물 두 모금을 마셨다. “미안해요 사레가 들나 봐요.” 기침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됐으면서도 계속 젓가락질하려는 태준을 보자 하윤은 젓가락을 그대로 ‘탕’하고 내려놨다. “나 배불렀어.” 분명 이 기회에 태준을 골탕먹이려고 했지만 상대가 이 지경이 되자 하윤의 마음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은 하윤의 표정을 눈치채고 눈웃음을 지었다. 하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당했어도 하윤은 여전히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공씨 집안 사람들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어도 여전히 썩은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하윤은 태준의 눈빛이 적응되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계속 말해 봐.” “네.” 태준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아무리 간단한 동작이라도 태준은 언제나 예의범절을 지키곤 한다. 하지만 하윤의 인내심 잃은 듯한 눈을 보자 태준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리면 하윤이 화를 낼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가벼운 기침 소리로 웃음을 억누른 태준은 하윤의 불만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살던 개인 저택의 사용인들은 모두 저를 감시하는 눈이었어요. 때문에 공씨 가문에는 비밀이 없죠.” 태준의 말에 하윤은 갑자기 공은채가 생각났다. 이승우는 하윤한테 전대 공씨 가문 가주가 공은채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떠올린 순간 하윤은 등골이 오싹했다. ‘설마 그 일도 공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나?’ 하윤이 넋을 잃고 있을 때 태준의 말이 다시 그녀의 정신을 현실로 끌어 내왔다. “게다ㅏ가 그때 공씨 개인 저택에 머무른 사람은 저 말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