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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1화 우스운 건 나였네 

장 집사는 권하윤이 자기의 의도를 이렇게 빨리 파악했다는 것에 놀라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민상철 곁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인지라 그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이렇게 시윤 씨를 찾아온 건 다른 할 얘기가 있어서입니다.”

장 집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까 재혁 도련님과 얘기를 하는 걸 봤는데 그 뒤로 표정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아서요.”

장 집사는 애매모호하게 말했지만 하윤은 이내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내가 민재혁 말 때문에 영향받을까 봐 이러는 거구나.’

‘아니지, 내가 뭐라고. 도준 씨가 영향받을까 봐 이러는 거겠지.’

하윤은 마음 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애써 원래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무슨 뜻이죠?”

“이 얘기는 저 같은 일개 집사가 하기엔 주제 넘지만 어르신께서는 늘 도준 도련님과 이시윤 씨를 걱정하셨습니다. 시윤 씨도 어르신의 임종 직전에 약속 하셨잖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도준 도련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그러니 부디…….”

“부디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잠깐 멈췄다가 이어진 간절한 말투는 장 집사가 하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는 걸 말해줬다.

사실 민상철이 했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하윤은 감동했었다. 한 노인이 임종 직전까지 손자의 행복을 바라는구나 하고.

하지만 이 순간 되새겨보니 본인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게 되었다.

민상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도준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그때 병실에서 바보는 하윤 한 사람뿐이었다.

더욱 우스운 건 그때 하윤은 아무것도 모르고 영원히 도준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다는 거다.

‘진짜 불쌍할 정도로 바보 같았네.’

이 순간 하윤은 어떤 변명으로 자기를 설득해야 할지도 몰랐다. 설득할 수록 허튼 생각이 드니까.

도준이 자기 아버지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도 우스웠다.

하윤은 더 이상 억누르고 있던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민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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