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라는 소리에 권하윤의 심장은 콩닥거리며 뛰기 시작했고 기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물론 이런 결과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민도준이 의심이라도 할까 봐 권하윤은 곧바로 대답하지는 못하고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그냥 해본 소리는 아니겠죠?”겉보기에는 그런 거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쾌재를 불렀다.“싫어? 아, 그럼 됐어.”민도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내뱉은 말에 권하윤은 마음이 조급해져 아예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원해요. 원해요. 갖고 싶어요.”“하.”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민도준의 목소리에는 야릇한 느낌이 묻어있었다.“응? 그렇게 원해?”민도준이 자기의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걸 인식하자 권하윤은 흥분에 겨워 민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던 손을 스르르 풀었다.“누가 그걸 말했어요? 핸드폰 말하는 거예요.”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나도 핸드폰 말하는 건데 뭘 생각한 거야?”“하!”민도준한테 말로는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권하윤은 아예 이불을 끄집어 올리고 뒤로 홱 돌아누웠다.“저 피곤해서 잘래요.”그런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이불을 사이에 둔 채 뒤로 돌아누워 있는 권하윤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뭐야? 목적을 달성했다고 이젠 내 시중은 안 들어?”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찔렸는지 이내 고개를 슬쩍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누가 그랬다고 그래요. 저 안 그랬어요.”하지만 확신도 없고 민도준이 말을 다시 거두어들일까 봐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일어나 옆으로 쓱 다가갔다.이윽고 턱을 민도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그럼 어떻게 시중을 들까요?”민도준은 자기 가슴을 쓱 문질러대는 권하윤의 손을 잡더니 옆으로 눈을 흘깃거렸다.“그렇다면…….”권하윤의 심장이 콩닥거리던 그때, 민도준은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마사지 해줘.”마사지?권하윤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그런 의미로 말하는 건가?’잠깐 생각하
“뭐가?”“그러니까…… 어…….”권하윤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혹시 속세를 꿰뚫어 봐서 이젠 욕망도 욕심도 없어졌어요?”“어떨 것 같아?”갑자기 손을 잡는 민도준의 동작에 권하윤은 손을 뒤로 뺐다.“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젠 제가 싫어졌나 보죠. 어쩐지 늦은 밤 술 마시러 간다 했더니. 술 마시는 건 핑계고 여자 만나러 간 게 진짜 목적 아니에요?”괴상야릇한 말투에 민도준은 권하윤의 이마를 쿡 찔렀다.“하윤 씨한테 그런 쓸모밖에 없다고 누가 그래? 내가 하윤 씨 건드리기라도 하면 또 울며불며 내가 자기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거잖아.”권하윤은 민도준의 답에 멈칫했다. 솔직히 이런 원인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제야 권하윤은 뭔가를 알아차린 듯 몸을 일으켜 세워 민도준을 바라봤다. 그 순간 긴 머리카락이 등 뒤에서 흘러내렸고 희고 가는 발가락이 위로 한껏 치켜 올라왔다.“그러니까 저 아직도 사랑한다는 뜻이죠?”민도준은 끝없이 들이대는 권하윤의 모습에 재밌는 듯 피식 웃었다.“아주 끝없이 기어오르네.”민도준이 부인하지 않자 권하윤의 마음에는 순간 온기가 퍼졌다.모든 걸 제쳐두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상대의 응답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권하윤의 모든 행동이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감정만은 진짜였으니까.다행인 것은 지금은 민도준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에 그나마 탄로 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지금 이 순간도 권하윤은 민도준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때문에 민도준의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슬그머니 다가가 말랑한 입술을 민도준의 입술 위에 포갰다.“그런 건 몰라요. 도준 씨가 직접 말하는 거 듣고 싶어요.”민도준은 자기 어깨에 자꾸만 비벼대는 권하윤의 머리를 잡으며 모르는 척 물었다.“뭘?”“하. 일부러 이러는 거죠?”조급해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됐어. 그만해. 한밤중에 오글거려 죽겠어.”머리가 눌려
민도준은 권하윤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얼른 내려가 밥부터 먹어. 다 먹으면 줄게.”겨우겨우 침대에서 일어난 권하윤은 절뚝거리며 욕실로 들어갔지만 샤워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게다가 아침을 먹으면 핸드폰을 주겠다는 민도준의 말 때문에 음식도 눈 깜짝 할 사이에 먹어버렸다.그 결과 결국 목에 걸려 기침을 해대며 물을 마셨다.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급하게 행동하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티슈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천천히 먹어.”“콜록콜록…… 저 다 먹었어요.”권하윤은 두 손을 민도준 앞에 쑥 내밀며 마치 눈으로 말하기라도 하는 듯 깜빡거렸다.결국 민도준은 약속대로 권하윤의 손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았다.하지만 전에 사용하던 게 아닌 새것이었다.이에 권하윤은 조금 실망했지만 며칠동안 집에만 갇혀 있다가 이런 핸드폰이라도 차려진 거에 만족했다.권하윤은 핸드폰을 받아 들자마자 사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는 확인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민도준을 바라봤다.“고마워요. 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그 말투는 대충 들어도 성의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민도준은 순간 권하윤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감사 인사가 이것뿐인가?”“어제 감사 인사는 했잖아요. 그거로도 모자라요?”권하윤은 불만인 듯 투덜거렸다.목적에 도달하자마자 다시 할 말을 따박따박 내뱉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그래. 이젠 아예 모른 척 하겠다 이건가?”“누가 그렇대요…….”권하윤은 민도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얼른 핸드폰을 보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호주머니 안에 넣고는 민도준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교부렸다.“제가 핸드폰을 달라고 한 것도 그저 도준 씨랑 대화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왜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확실해?”“네. 확실해요.”권하윤은 진심이라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오호, 나한테 전화하려고 그랬구나.”민도준은 권하윤의 말을 다시 반복하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나한테 전화
권하윤은 핸드폰 안에 있는 걸 이것저것 뒤져봤다.‘이거 그냥 시중에 나와 있는 신형 휴대폰인 것 같은데. 기능도 완비되어 있고.’하지만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이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벌써 일주일이나 연락하지 못한 어머니께도 연락해 공태준이 가족을 안전하게 데려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오빠가 무사히 새 병원으로 옮겨졌나?’‘아니야. 공태준이 아직 경성에 있으니 아직 해외에 있을 걸야. 그러면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인데.’만약 이 핸드폰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 전화하면 권하윤은 스스로 계략에 걸려드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면 가족의 위치도 폭로될 거고.‘공태준은 더 안 돼.’공태준의 번호를 전혀 모르는 건 둘째 치고 만약 민도준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앞으로 자유는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그 생각에 권하윤은 번호를 누르던 손가락을 잠깐 멈췄다.그러다가 가장 안전한 사람을 선택했다. 바로 권희연.‘전에 희연 언니를 불러 나를 돌봐주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 희연 언니와 연락하는 건 괜찮겠지?’하지만 그렇다 해도 권하윤은 민도준의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이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은 전화를 받아버렸다.“왜?”권하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머리를 잠깐 굴리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내가 나온 지 이제 5분 지났어.”“5분이 뭐 어때서요? 5초라도 보고 싶어요.”“말은 잘해. 할 말 있으면 해.”곧바로 속마음이 들통나 버린 권하윤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혹시 희연 언니 전화번호를 주면 안 돼요? 저 너무 오랫동안 대화를 안 해서 수다 떨고 싶어요.”“난 사람 아닌가?”“에이, 그건 다르죠.”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조급해 났는지 재촉해 댔다.“돼요 안 돼요?”“심심하면 내가 사람 보내줄게.”사람?권하윤은 의아한 듯 물었다.“누구요?”그리고 반 시간 뒤, 권하윤은 그 답을
대문에 다가갈수록 나이 든 어르신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귀에 들려왔다.“어르신께서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온 거라니까 그것도 못 들어가게 해?”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아 문틈으로 확인했더니 장 집사였다.그 시각 장 집사는 네모난 상자가 든 채로 대문 밖에 있는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하지만 경호원들은 누구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민도준의 명령을 받았기에 온 사람이 아무리 민씨 집안 어르신의 곁에서 일하는 장 집사일지라도 칼같이 거절했다.그때 권하윤이 문을 비스듬히 열었다. 어찌 됐든 장 집사는 민상철 쪽 사림이기에 민도준이 민씨 집안과 더 사이가 틀어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집사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권하윤이 밖으로 나오자 팀장으로 보이는 경호원이 얼른 앞에 막아섰다.“권하윤 씨,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여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경호원들이 장 집사가 마치 권하윤을 죽이러 온 사람인 것처럼 대하자 권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민상철이 만약 권하윤을 죽이려면 장 집사를 혼자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권하윤도 경호원들이 난감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에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모든 경호원들의 관심이 권하윤에게 쏠렸을 때 장 집사는 상자를 든 손으로 권하윤에게 손짓했다.암시가 담긴 듯한 손짓에 권하윤은 잠깐 멍해 있다가 눈이 살짝 흔들리더니 입을 열었다.“집사님께서 그저 물건만 전해주러 오셨다니 물건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민 사장님께는 제가 대신 전해줄게요.”권하윤은 장 집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예 집안으로 쳐들어가기보다 물건을 전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는지 장 집사는 경호원들의 눈빛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니 이걸 대신 도준 도련님께 전해주세요.”그저 특별할 것 없는 상자였지만 경호원들은 권하윤에게 전해주기 전 조심스럽게 안을 훑어보고 위험한 물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권하윤에게 건넸다.이윽고 권하윤은 그 상자를 받아
권하윤은 순간 의문이 생겨났지만 민상철과 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어찌 됐든 민상철은 진작부터 권하윤을 처리하려고 했었으니까. 지금껏 손을 못 쓰고 있는 것도 단지 민도준이 권하윤을 너무 곁에 붙여두고 있어 손 쓸 기회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더욱이 민상철처럼 몇 년 동안 비즈니스계를 휩쓸던 사람을 대응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권하윤은 아예 헛소리로 대답했다.“할아버님께서 박민주 씨를 손주며느리로 드리고 싶어 하셨잖아요. 민 사장님께서도 효도하시는 분이니 저는 아마 대중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숨겨둘 겁니다. 저도 정부라는 제 위치를 알고 있어요.”이 말을 듣는 순간 전화 건너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바로 전화가 끊어졌다. 아마 평소 접촉하는 명문가 사람들과 달리 뻔뻔하게 나오는 권하윤에게 화가 난 모양이다.하지만 권하윤은 민상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았다.오히려 이미 미움을 사 자기가 무릎을 꿇어도 상대가 용서하지 않을 걸 알기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물론 민상철한테서 받은 핸드폰은 잘 숨겨두었다.그 핸드폰은 그저 전화와 문자만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거였기에 도청 앱을 설치할 수 없는 데다 기능이 간단하다 못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핸드폰에는 그저 번호 하나만 저장되어 있었는데 이름은 없었다. 민상철과 대화한 것으로 보아 그 전화번호는 공태준의 것일 거라고 권하윤은 짐작했다.그리고 그 순간 권하윤은 공태준이 자기의 모든 걸 민상철에게 말해 버렸다는 걸 알아버렸다.‘하지만 왜 그랬지?’분명 권하윤이 민도준의 제수씨여야 두 사람을 찢어놓을 가능성이 더 많겠는데.그 문제의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권하윤은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이 생각났다.‘설마 민승현도 공태준이 잡아간 건가?’권하윤은 당장이라도 공태준에게 전화해 따져 묻고 싶었지만 자기가 또 새로운 함정에 빠지기라도 할까 봐 생각을 멈췄다.권하윤은 자기가 지금 지뢰 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
민도준은 옆에 난 자리에 앉으며 권하윤의 엉덩이를 때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점점 기어오르지? 매일 성깔만 부려대기나 하고.”그때 또다시 관문을 넘는 것에 실패한 권하윤이 맥 빠진 듯 소파에 축 늘어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작 정부인 제가 어떻게 감히 도준 씨한테 성깔을 부리겠어요? 죽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제대로 말해.”민도준은 인내심이 다했는지 권하윤을 잡아당겼다.하지만 아무리 잡아당겨도 권하윤은 눈을 허공에 이리저리 굴려대며 민도준의 얼굴만은 끝까지 보지 않았다.그러다 민도준은 끝내 권하윤의 어깨를 잡은 채로 몸을 돌려놓고는 경고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제대로 앉아.”그제야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똑바로 앉았다. 권하윤도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그때 민도준이 테이블 위에 놓인 박스를 보더니 그 안에 든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할아버지가 보내오신 거야?”‘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보고 받았을 거면서 나한테 왜 묻는대?’권하윤은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 콧소리를 냈다.하지만 민도준은 사진첩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테이블 위에 던져 버리고는 권하윤을 돌아봤다.“이 사진첩 하나뿐이었어?”민도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권하윤은 손가락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턱을 민도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뜻이에요? 저 같은 정부가 도준 씨 물건까지 훔쳤을까 봐요? 하긴, 전 대단한 명문가 출신도 아니라 도준 씨와 신분 차이가 있으니 그런 의심 하는 것도 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옷 벗을 테니 몸수색해 봐요.”그저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괴상야릇한 말로 비꼬아 대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순간 화가 나서 웃음이 났다.이윽고 손을 뻗어 옷을 벗으려 하는 권하윤을 품에 끌어안았다.“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그리고 뭐가 불만인데 자기를 정부라고 비하해? 듣기 거북하지 않아?”권하윤은 민도준의 다리 위에 편히 앉아서는 발뒤꿈치로 민도준의 다
생각하다 보니 권하윤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더해졌다.심지어 젓가락을 든 손에 힘이 빠져 반찬을 집으려 했지만 음식이 자꾸만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이에 망연자실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먹기 싫으면 먹지 마.”민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권하윤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지금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과 아까 전 상황이 더해지니 민도준에게는 아마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심술을 부리는 모습으로 비쳤을 거다.그제야 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를 귀찮아할까 봐 감정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취했다.“안 먹는다고 하지 않았거든요.”이윽고 젓가락을 뻗어 음식을 집으려 할 때, 민도준이 아예 권하윤의 젓가락을 밀어버렸다.그러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치키를 집어 들었다.“일어나. 데려갈 곳이 있어.”밖으로 나간다는 소리에 권하윤은 순간 자기 귀에 이상이 생겼나 의문이 들었다.‘밖에 나간다고? 이젠 나갈 수 있나?’이런 생각이 들기 바쁘게 권하윤은 민도준이 말을 번복할까 봐 다급히 옷을 갈아입고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얼른 가요.”폴짝폴짝 뛰면서 기뻐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의 눈은 약간 어두워졌다.이에 권하윤의 손이 대문에 닿은 찰나, 뒤에서 민도준의 기분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에 나가는 게 그렇게 즐거워?”민도준의 목소리는 원래도 낮은 데다 밤바람에 살짝 흩어져 한층 더 낮게 들렸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 속에 숨은 위험함을 알아챘다.그제야 권하윤은 문을 밀고 있던 손을 슬며시 내리며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도준 씨랑 같이 나가니까 기쁜 거예요.”그러고는 불편한 다리를 움직이며 민도준의 곁으로 다가가 익숙한 듯 손을 뻗어 민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오늘 늦게까지 힘들었겠는데 우리 다시 들어가요. 먹지 말아요.”권하윤은 한참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민도준의 모습에 자기 손을 슬쩍 뻗어 민도준의 손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저 데리고 들어가 줘요. 네?”그렇게 원하던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