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경적 소리와 격렬한 부딪힘에 이어 중력이 사라지더니 차는 강물에 빠져버렸다.순간 사방의 물이 차 안으로 들어와 미처 반하기도 전에 물에 잠겨버렸다.숨을 쉬고 싶었지만 코와 입으로 물이 자꾸만 들어오고 심지어 시선마저 강물 때문에 흔트러져 그 순간 권하윤은 처음으로 죽음의 고비에서 허덕이는 느낌을 경험했다.그러다가 이대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 누군가 권하윤을 차 안에서 밖으로 꺼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하필 그때 발이 시트 사이에 끼여 빼낼 수 없게 됐다.시간은 사람을 기다리는 법이 없다. 일분일초 흘러가는 내내 생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권하윤을 잡은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뻐금거렸지만 권하윤은 그저 상대의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버블만 보였다.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권하윤은 겨우 상대의 도움으로 차에서 빠져나왔지만 두 사람은 이미 기진맥진했다.사방이 온통 물이었다. 겉으로는 고요하기만 하던 강이었는데 그 아래는 위험한 암류가 흐르고 있었다.수영을 할 줄 모르는 권하윤에게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밟히지 않은 채 둥둥 떠 있는 느낌은 공포의 극치였다.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누군가 자기를 꽉 안고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권하윤이 물 때문에 허우적댈 때면 남자는 끊임없이 말했다.“저 꼭 잡아요.”“절대 놓으면 안 돼요.”하지만 끝내 차가운 강물 속에서 절망적인 익사감이 휘몰아쳤다…….그러다 눈을 떴을 때.가슴을 잡으며 크게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권하윤은 그 시제로 겪은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그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해 연속 이틀 동안 악몽이 되어 권하윤을 괴롭혔다.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아직 혼미해 있는 공태준이 옷 위에 누워 있었고 권하윤은 그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그날 두 사람은 물살에 휩쓸려 이름 모를 황야로 떠내려갔다. 심지어 주위에는 겨우겨우 휴식할 수 있는 폐수 수질 측정소만 있었다.공태준은 다쳤는지 물에 빠졌는지 계속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에 반해
지친 나머지 권하윤은 다시 몸을 뒤에 기댔다.다리를 움직여 봤지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다쳤는지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를 파고드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하지만 한번 생사를 경험하고 나서 그런지 권하윤은 오히려 냉정해졌다.생사의 갈림길에 놓았을 때는 모든 걸 잃은 것 같았는데.확실히 목숨이 없어지면 다른 건 아무것도 의미가 없게 된다.그저 멍하니 기둥에 한참을 기대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모 위에 갑자기 옷 하나가 덮였다.이윽고 손등이 이마의 온도를 체크했는데 그 따스한 촉감에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도준 씨…….”부르고 나서 민도준의 체온은 이것과는 달리 조금 뜨겁다는 걸 인식한 권하윤은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떴다.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공태준이 언제 깨어났는지 손등으로 권하윤의 체온을 체크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렸으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몸에 열이 좀 남아 있어요.”권하윤은 공태준의 손을 물리치고 입을 뻐금거렸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이건 공태준을 마주하고도 처음으로 욕설을 퍼붓지 않은 거다.권하윤은 공태준이 미웠다. 하지만 공태준은 생사의 고비에서 권하윤을 구해줬다.때문에 한참 뒤 권하윤은 큰 숨을 들이키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구해줘서 고마워.”공태준의 눈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지금 감사 인사하기엔 이르지 않아요? 우리 아직 완전히 구조된 건 아니잖아요.”그 말에 권하윤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지금껏 공태준을 증오하는 데 더 익숙했던 지라 이 시각 둘 사이에 찾아온 평화에 권하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때.“콜록콜록…….”공태준이 고개를 돌려 답답한 듯 기침을 해댔다.그래도 공태준의 은혜를 입었으니 예의상 몇 마디 물어봐야 했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원한이 남이 있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공태준도 권하윤의 복잡한 심경을 간파했는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이해해요. 제가 구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거. 하지만 이건 제가 윤
그 말에 아무런 흥미도 없던 권하윤의 심장이 확 쪼그라들었다.‘뭐든 대답해 주겠다고?’권하윤은 공은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버지가 왜 뛰어내렸는지, 공은채의 죽음이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그리고 민도준과 공은채가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였는지도…….확실히 공태준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단 한마디로 권하윤이 내기에서 이겨야겠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니.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이 말해주건대 공태준과 내기를 하면 지든 이기든 모두 그 꾀에 넘어가는 셈이 된다.때문에 권하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그럼 내가 지면?”“같아요. 제가 질문 하나 하면 윤이 씨가 답해요. 하지만 답하지 않아도 돼요.”권하윤은 공태준의 신사다운 이런 모습이 싫고 짜증 났다.“그럼 불공평하잖아.”순간 잡을 수 없는 작은 미소가 공태준의 입가에 피었다 사라졌다.“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건데 불공평할 게 뭐 있어요?”어찌 됐든 밑지는 장사는 아닌지라 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이 몇 마디 대화 덕에 얼어붙었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어둠은 빛을 뒤덮은 동시에 두 사람에게 고요함을 안겨주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 공태준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민 사장 쪽 사람이 오면 따라갈 거예요?”“…….”권하윤은 공태준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에 눈을 감고 잠자는 척 연기했다.다행히 공태준도 계속 묻지 않았다.하지만 그 물음은 권하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만약 민도준이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를 찾아오면 따라가야 하나?감정만 따진다면 권하윤은 민도준이 좋다. 결혼하고 싶고 함께 오래 있고 싶다.하지만 결혼식 전날 밤 민도준이 했던 앞으로 자기만 봐야 한다는 말만 떠올리면 권하윤은 몸이 떨렸다.심지어 결혼식 당일에도 권하윤은 마치 감옥에 압송되어 가는 죄수 같았다.그런 무형의 감금은 아마 권하윤의 남은 인생 따라다닐 수 있다. 권하윤이 민도준과 함께 돌아간다면 앞으로 선택할 권리
공태준도 권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분명 무덤덤한 사람이지만 권하윤을 바라볼 때만큼은 감정이 밖으로 흘러나왔다.“만약 이 모든 일이 없었더라면 저를 좋아했을 수 있나요?”권하윤은 공태준의 질문이 당황했다.“이 모든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상관없는 사람이었을 텐데 좋아할 리가 있을까?”“그럼 만약이라면요?”공태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황을 그려주었다.“만약 제가 마침 권하윤 씨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첫눈에 반했다면, 저를 좋아했을 수 있어요?”권하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공태준을 바라봤다.“공태준, 머리가 어떻게 됐어? 그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나와?”분명 혼났으면서도 권태준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즐거운 표정을 내비쳤다.“말 같지 않은 건 아니죠.”어찌 됐든 그날 공태준은 정원에서 정말로 권하윤에게 첫눈에 반했으니까.아름다운 몸짓과 요염한 웃음, 춤이 끝나자 얼굴을 손에 파묻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백조 같았다.하지만 권하윤은 백조보다도 더 아름다워 잊을 수가 없었다.권하윤은 공태준이 왜 갑자기 기뻐하는지 알 수 없었다.“당신이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 해도 공씨 가문에서 권력도 없는 집안 자녀와 같이 있도록 허락했을까? 아마 진짜 그랬다면 내 꼴은 지금보다 더 비참했겠지.”공태준 얼굴에 흔치 않게 드리운 웃음기도 그 한마디에 점점 사라졌다. 오랜만에 느낀 진심 어린 기쁨도 다시 흩어져 버렸다.“하긴.”29살인 지금도 가문에서 원하는 대로 자아를 잃은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때문에 어떠한 가정에서도 공태준에게 주어진 행복한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가주님? 권하윤 씨?”그때 소리가 점차 멀리에서 들려왔다.이남기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이 아직 있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차 한 대를 빌렸는데 같이 마을로 가요.”차라고는 말했지만 밖에 나가보니 세 바퀴짜리 농업용 오토바이였다.이남기는 앞에서 운전하고 공태준과 권하윤은 뒤쪽
짤막한 한마디에 권하윤의 마음에 큰 파도가 일었다.‘공태준이 아니라면…… 도준 씨?’이제 막 이렇게 생각했는데 시선 속에 무서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남자는 헬기 앞에서 담배를 문 채 세 사람이 있는 쪽을 빤히 쳐다봤다.분명 이 거리에서 민도준의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권하윤은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 같은 으스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심지어 옆에 있는 큰 산도 조금 전처럼 무게감을 주지 않았고 엔진 소리도 갑자기 작아진 것 같았다.하지만 칸막이도 없는 차인지라, 짐칸에 앉아 있는 권하윤의 모습은 고스란히 민도준의 눈에 들어갔다.똑같이 위기를 느낀 이남기는 자기도 모르게 차를 후퇴했다. 하지만 그러기 무섭게 뒤에 차 두 대가 멈춰 서며 퇴로를 막았다.그와 동시에 민도준은 인내심이 바닥 난 것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만하지 그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귀에 익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실려 오자 권하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민도준의 얼굴이 시선 속에서 점점 또렷해지다가 턱밑에 난 검푸른 수염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겁이 덜컥 났다.민도준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권하윤은 경성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그렇다면 그저 죄명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 된다.권하윤은 목을 움츠린 채 당장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민도준의 눈을 피했지만 그가 앞으로 내미는 손까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내려와.”짤막한 한마디에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다.권하윤은 본능적으로 움직였지만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공태준이 먼저 막아 나섰다.“민 사장님, 우선 윤이 씨한테 같이 가겠는지 물어봐야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민도준은 그제야 공태준을 발견한 것처럼 시선을 돌리더니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아, 공 가주님이 내 결혼식에서 내 사람을 데려갔다는 걸 깜빡할 뻔했군.”다음 순간 민도준은 공태준의 멱살을 꽉 잡아당겼다.“다른 사람 걱정하기 전에 오늘 내 손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하는 게 어때요? 공 가주님.”공태준은 목
최수인은 권하윤을 별장으로 데려다주고는 입구에서 한참을 아쉬워했다.“또 이렇게 이별해야 하다니. 윤이 씨도 이번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랄게요. 정 안 되면 저한테 와요. 제가 민도준보다 더 예뻐해줄 테니까.”권하윤은 최수인이 일부러 농담한다는 걸 알았기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생각해 볼게요.”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이곳은 여전히 권하윤이 떠나던 날과 똑같았다.하지만 권하윤은 이미 뭔가 변해 있다는 걸 느꼈다.다리가 불편해 그런지 정원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짧은 거리도 걷기 힘들었다.그렇게 계단 앞까지 다가와 어떻게 할지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권하윤이 눈물범벅이 된 모습으로 달려 나왔다.“하윤아, 왜 이제야 왔어? 몸은 어때? 어디 다친 데 없어?”“괜찮아.”권하윤은 권희연을 잡고 물었다.“언니랑 로건 씨는 괜찮아?”그 물음에 권희연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우리는 아무 일 없어.”권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날 쓰러진 뒤 권희연이 민도준한테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어쩔까 걱정했었다.“참, 그런데 언니가 여긴 웬일이야?”“그게…… 민 사장님이 나더러 와보라고 했어. 네 다리가 불편하다고 돌봐주라고.”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멍해지더니 코끝이 시큰거렸다.분명 이렇게 많은 잘못을 했지만 민도준은 매번 이렇게 권하윤을 모른 체 하지 않으니…….샤워를 마친 권하윤은 권희연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식사를 마치자마자 권하윤은 권희연을 돌려보냈다. 권희연은 더 남고 싶다고 했지만 권하윤은 민도준이 돌아와 권희연을 곤란하게 할까 봐 돌아가라고 고집을 부렸다.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은 어두워졌다.몇 날 며칠을 고생하고 난 뒤 이렇게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으니 권하윤은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기분은 몸처럼 가볍지 않았다.그 자리에서 바로 따져 묻기보다 이렇게 사라져 버리니 권하윤은 오히려 더 조마조마했다.민도준이 올까 봐 두렵기도 하고 또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게다
민도준은 무서운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권하윤이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옆에 앉았다.“도망치는 게 재밌었어?”권하윤은 아래로 푹 숙였던 고개를 마구 저었다.그렇게 흔들다가 뭔가를 인식한 듯 고개를 쳐들고는 불쌍한 눈빛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저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날 약 때문에 쓰러졌어요.”이윽고 권하윤은 그날 있은 일을 곧이곧대로 설명하고는 자아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저도 알아요. 이번 일은 제가 잘못했다는 거. 제가 얌전히 있기만 했어도 공태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잘못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권하윤은 창백한 얼굴로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반성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하.”갑자기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다음 순간 권하윤은 턱에 전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권하윤의 당황한 눈빛에 민도준은 기분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결혼식 날 도망가는 건 예전에도 했었으니까.”권하윤은 민도준의 관대함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겁에 질린 채 다음 질문을 기다릴 뿐.그때 턱에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더니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빨개진 피부를 문질렀다. “무서웠지?”부드러워진 목소리에 호박색 눈동자가 흔들렸다.“네?”민도준은 인내심 있게 다시 물었다.“강에 빠졌을 때, 무서웠지?”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물에 빠졌을 때 느꼈던 질식감이 다시 휘몰아쳤다.그때 물결치는 강물 속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허우적대며 점점 가라앉았었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어요.”뒤늦게 밀려오는 서러움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물도 차갑고 난 수영할 줄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안 잡히고. 저 요즘 매일 매일 악몽 꿔요. 물에 빠져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악
“왜 말이 없어?”커다란 손이 권하윤의 목덜미를 꽉 잡는 바람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민도준의 목소리는 표정과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헬기 소리 들었을 때 무슨 생각 했어? 응? 왜 나한테 잡혔나 생각했어? 아니면 나한테 잡히면 공태준과 어떻게 해원으로 돌아갈지 걱정했어?”한마디 한마디 말은 권하윤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어 도망칠 수 없게 했다.모든 설명은 사실 앞에서 변명만 될 뿐이었다.말문이 막힌 권하윤의 모습은 마침 민도준의 눈에 들어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효과를 더해줬다.목덜미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 권하윤의 목을 더 꽉 조였다.“말해 봐. 왜 말 안 하지? 나는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데 공태준과 어떻게 도망칠지를 생각했어? 어디 말해 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몇 날 동안 쇠약해진 몸은 남자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 힘에 종잇장처럼 펄럭이다가 확 내팽개쳐졌다.가슴속에 쌓여 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모두 흘러나왔는지 권하윤을 밀쳐내는 힘을 빼지 않은 터라 권하윤은 철퍼덕 넘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민도준은 여전히 침대 옆에 서서 권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그늘에 가려져 알 수 없는 빛을 비춰냈다.그렇게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려 떠나갔다.권하윤은 다급히 손을 뻗어 민도준을 잡으려 했다.“잠깐만요.”하지만 제대로 잡지 못한 탓에 다급히 침대에서 내리느라 자기의 발이 다쳤다는 것도 잊어버렸다.“아-”권하윤이 눈을 감고 침대 아래에서 고통을 참고 있을 때 힘 있는 손이 권하윤을 들어 올려 다시 침대 위에 던져버렸다.이윽고 귀찮은 듯 꾸짖었다.“다리도 다쳤으면서 왜 이래?”하지만 권하윤은 다른 걸 관계할 겨를도 없이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민도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제 말 좀 들어 봐요.”권하윤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를 악물었다.“제가 공태준과 같이 간 건 제가…… 제가 권하윤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