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으면 어쩔 건데?”“할아버님이 도준 씨를 얼마나 아끼는데 손주가 이런 오해를 받는 걸 당연히 보고 있을 수 없으셨겠지. 당신같이 이기적인 여자만 도준 씨를 위해 생각하지 않아!”박민주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할 때 마침 은우가 돌아와 의아한 듯 쓱 훑어보더니 권하윤 앞으로 다가갔다.“권하윤 씨, 약 가져왔어요. 민 사장님이 권하윤 씨 건강 염려하셔서 밖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 얼른 돌아가요.”역시나 그 말에 박민주의 눈가는 붉어졌다.“당신 같은 여자는 도준 씨 짝으로 안 어울려!”잔뜩 화가 나서 떠나가는 박민주를 보더니 권하윤은 의아한 듯 은찬을 살폈다.“도준 씨가 그랬어? 그런 말 못 들었던 것 같은데?”“이건 민 사장님이 마음속으로 한 얘기인데 제가 들었어요.”헤실 웃으며 말하는 은찬을 보자 권하윤은 피식 웃음이 났다.“말은 참 잘해.”권하윤은 이미 결심을 내렸지만 박민주의 말을 듣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검사 끝났어?”“네.”목소리를 듣는 순간 민도준은 권하윤의 기분이 울적하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또 어디 가서 괴롭힘당했어?”권하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기왕 함께하기로 결정했으니 속이고 싶지 않아 박민주를 만난 일을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응? 그래서 그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또 물러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그 말을 들은 민도준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워졌다.그 목소리에서 위험함을 감지한 권하윤은 다급히 설명했다.“그런 뜻 아니에요. 그냥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요. 만약 도준 씨가 백제그룹을 물려받으면 이 사실들은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날 테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살을 붙여 안 좋은 안 좋은 여론을 만들 수 있잖아요…….”“그건 하윤 씨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지훈이랑 얘기가 끝났으니까. 그룹을 물려받는다 해도 지훈이가 대표직에 올라갈 거고 공관도 책임질 거야.”순간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혔다.결국은 박민주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귓불을 톡 튕겼다.“그러게 누가 귀가 그렇게 얇으랬어? 겁도 많고 놀라는 일만 있으면 달팽이처럼 숨어버리고.”“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귀가 간지러웠는지 목을 움츠리더니 턱을 민도준의 가슴에 대고 올려다봤다.“왜 안 물어봐요?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의사가 이미 하윤 씨의 심장이 1분에 몇 번 뛰는지까지 알려줬는데 두 번씩이나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그 의사가 민도준이 소개해 준 거라는 걸 안 순간 권하윤은 마음이 따뜻해나 발꿈치를 들고 민도준의 목에 팔을 둘렀다.“고개 좀 숙여 봐요.”민도준은 고분고분 협조하더니 권하윤의 허리를 잡은 채 입을 맞췄다.그 때문에 신호 차단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멍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진소혜는 오히려 하던 일을 한참이나 멈추고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차단실 밖의 상황을 구경했고 민도준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일부러 바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은 민도준과 함께 차단실로 들어가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했다.“할아버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하지만 어르신은 대충 얼버무리기만 할 뿐 고개도 들지 않았다.이에 의아해진 권하윤은 이번에는 두 외삼촌과 인사했지만 두분의 얼굴에도 선명한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 길 없어 의아해하던 권하윤은 진소혜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웃음을 참으며 창문 쪽을 보라고 사인을 보내는 진소예의 눈빛을 따라 뒤로 돌아보는 순간, 권하윤은 창문이 밖에서 볼 때처럼 컴컴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두 사람이 아까 밖에서 했던 짓이 그대로 생중계됐을 걸 생각하자 권하윤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민도준을 봤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그 덕에 권하윤은 그곳에 남아있기 너무 난처한 나머지 몇 분 버티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민도준에게 바로 잡혔지만.“왜 도
“핑크 다이아몬드?”최수인은 약 2초간 아무 반응도 못하더니 따져 묻기라도 하는 듯 오히려 민도준에게 물음을 돌렸다.“핑크 다이아몬드라…… 민도준, 네 제수씨가 묻잖아.”권하윤은 그제야 시선을 다시 돌려 민도준을 빤히 쳐다봤다.하지만 민도준은 대답 대신 이마를 쿡쿡 찔러왔다.“괜히 트집 잡지 마.”그 한마디가 들리는 순간 권하윤은 이마도 아팠지만 마음이 더 아파 고개를 숙인 채 손톱을 뜯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마침 한민혁이 들어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민도준을 불렀다.민도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권하윤은 최수인을 힐끗 봤고 그 눈빛을 받은 최수인은 알겠다는 눈빛을 돌려줬다.권하윤은 벌써 민도준이 나가면 모든 걸 물어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하지만 웬걸?“최수인.”민도준이 갑자기 최수인을 불렀다.그 목소리에 권하윤과 눈빛을 주고받던 최수인은 몸을 움찔했다.“어? 왜?”“어디 좀 놀러 가자.”민도준은 분명 선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최수인은 머리가 쭈뼛쭈뼛 곤두섰다.“나 갑자기 생각났는데 우리 이웃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는데 도와주러 가야 해. 먼저 갈게!”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꺼내고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쏙 빠져나가려 했지만 두 걸음 정도 내딛자마자 옷깃이 조여왔다.민도준은 최수인은 민도준의 옷깃을 뒤에서 잡아당기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네 자식을 낳은 것도 아닌데 네가 급할 거 뭐 있어?”최수인은 오늘 재앙을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울상이 되어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제야 민도준은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없는 척 연기하는 권하윤을 바라봤다.“나 밤까지 일해야 하니까 별장에서 기다려.”“네.”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대답하고 모두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입을 삐죽거렸다.‘그래, 말하지 마!’솔직히 진실을 알고 싶으면 USB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확인하면 그만이다.하지만 지난번 생일을 함께 보내는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죽을 것처럼 힘들었기에 더 봤다가는 마음이 더 혼란해질까 봐
최수인은 민도준을 10몇 년 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이기에 민도준이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심지어 예전에도 절대 마음씨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민도준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아마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여자는 아무리 사랑했어도 곁에 두지 않으려 할 거다.이건 사랑하느냐의 문제로 간단히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다. 이미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건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여지조차 없는 거니까.최수인의 말에 민도준은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상관없냐고? 하, 내가 부처님인 줄 알아?”“그러면 왜 결혼하려고 하는 건데?”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에서 나는 연기는 민도준의 조각 같은 얼굴에 조금 그윽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안 그러면? 공태준이 공씨 가문 사람들을 처리하고 와서 권하윤을 쏙 빼내 가기를 기다리라고?”최수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활짝 웃었다.“아하, 그냥 먼저 선수 치겠다는 거였어?”그 말에 민도준은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먼저 선수 칠 거 있나? 이미 따먹었는데.”“얼씨구, 아직 하윤 씨 애인의 목숨을 가질 때가 아니다 이건가?”민도준의 잘난체하는 모습에 최수인도 잘난체하며 분석했지만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뜨거운 담뱃불에 데이고 말았다.“헉, 젠장!”최수인의 옷은 이미 구멍이 뚫렸지만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다.“지금 나 죽이려는 거야?”“좋은 기운을 먼저 나눠주는 거야.”민도준이 나른하게 한 대꾸에 최수인은 잿빛이 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이런 기운은 혼자 즐기셔!”이윽고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마구 비비며 뭔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참, 나 오늘 청첩장 받았는데 민승현이 이번 주말에 약혼식 올린다던데, 그 약혼식은 네 할아버지가 밀어준 거고. 하하, 너 제수씨 제대로 숨겨야겠다? 안 그랬다간 사람들이 뱉은 침에 익사할 수도 있어.”민도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앉으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왜 숨겨야 하지?”최수인은 미친놈 보듯 민도준을 힐끗 봤지만 또 생각해
별장.권하윤은 소파에 앉아 여러 가지 디자인을 앞에 놓고 멍때렸다.지금 권하윤이 보고 있는 주얼리는 모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인데 한민혁이 놓고 간 것들이다. 권하윤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고르면 디자이네에게 제작을 맡겨야 한다면서.솔직히 모든 디자인이 예뻤지만 마음이 이곳에 있지 않았기에 하나를 골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현재 권하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안 괜찮아. 그런데 권하윤을 포기하는 것도 안 괜찮아’라던 민도준의 말이 떠올랐다.민도준은 들어왔을 때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권하윤을 보고 은찬을 밖으로 내보냈다.그러더니 손가락을 탁 소리 나게 튕겨댔다.“정신 차려.”역시나 효과가 있었는지 권하윤은 깜짝 놀라며 민도준을 바라봤다.“언제 왔어요?”권하윤은 얼른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치운 뒤 민도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힘들었죠? 제가 어깨를 주물러줄게요.”대답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작은 손은 벌써 민도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민도준은 주인한테 꼬리를 흔드는 듯한 권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이윽고 별로 감각도 없게 내리치는 권하윤의 작은 손을 끌어왔다.“또 무슨 꿍꿍이야? 왜 이렇게 아부해?”권하윤은 편안한 자세를 찾아 민도준에게 기댔다.마음속에 꽉 찬 감동이 마구 흘러넘쳤지만 내리깐 눈에는 극도의 불안함과 불확실함이 담겨 있었다.“도준 씨, 혹시 언젠가 저를 죽이고 싶어지면 어떡해요?”민도준은 어이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와 권하윤의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왜? 심장을 보고 나니 이젠 머리에 문제 생겼어?”권하윤은 민도준에게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손발을 함께 사용해 애써 가리면서 민도준의 품에 파고들었다.그러고는 민도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무서워서 그래요. 만약…….”말을 하려고 보니 목이 메어 권하윤은 침을 여러 번 삼켰다.“만약 제가 실수로 잘못을 저지르면 혹시 저 버릴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민도준의 눈매는 살짝 가라앉았다.“그러면 어떤 잘못인지에 달
민도준은 실소하여 권하윤의 코를 살짝 쥐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나 주얼리 디자인도 배운 적 없어. 못생긴 작품이 탄생하면 어떡해? 그래도 하고 다닐 거야?”권하윤은 못생기든 예쁘든 그런 건 상관없었기에 민도준의 목을 두른 채 애교를 부렸다.“전 못생긴 게 좋아요.”권하윤이 소파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민도준은 권하윤의 허리를 꼭 잡았다.“그만해. 이러지 마.”민도준의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낀 권하윤은 실망한 듯 손을 풀었다.“네.”풀이 죽어 옆에 놓인 설계도를 봤지만 순간 기운이 없어졌다.그런 모습에 민도준은 재밌었는지 권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왜 그래? 동의하지 않았다고 성깔 부리는 거야?”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도준 씨한테 누가 감히 성깔 부리겠어요.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은 이상.”“내가 너무 오냐오냐했나 보네.”권하윤은 자기가 사실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반지라는 두 글자에 왠지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이거로 민도준의 마음속에 자기가 얼마만큼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민도준의 마음속에 오직 자기만 있다는 걸 확인하면 용기가 더 생길 것만 같았다.민도준한테 자기의 모든 걸 털어놓을 용기.늦은 밤.샤워를 하고 나온 권하윤은 바로 이불 속에 들어가 슬금슬금 민도준에게 가까이했다. 하지만 살이 닿으려 할 때, 인간 난로는 바로 권하윤에게서 멀어지더니 방 안의 불이 바로 꺼져버렸다.“이제 자.”‘응? 이렇게 잔다고?’“아니면 어쩔 건데?”민도준의 말에 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하지만 말은 이렇게 했으면서 속으로는 남자는 역시 손에 넣은 것에는 흥미를 잃는 동물이라고 구시렁댔다.한참을 누워 있었지만 권하윤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약 두 번 정도 뒤척였을 때, 민도준의 긴 팔이 권하윤을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자지 않고 뭐해?”허리에 닿는 뜨거운 손이 잠옷
민도준의 수단을 권하윤은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단순한 수단을 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분명 권하윤을 생각하는 척 배려하는 척했지만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권하윤을 손으로만 툭툭 건드렸다.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 권하윤은 속도가 늦어지는 게 오히려 더 괴롭다는 걸 알아차렸다.한바탕 제대로 교육을 마친 민도준은 나른해진 권하윤을 품에 안았다.“도준 씨.”“응.”“혹시 괴로워요?”권하윤은 작은 얼굴로 민도준의 어깨를 비비며 애교 부리듯 물었다.그 동작에 민도준은 권하윤의 허리를 살짝 주물렀다.“그걸 말이라고 해?”“아니면 저도 해줄까요?”얼굴은 부끄러움에 이미 빨개졌지만 손은 벌써부터 대기하고 있었다.하지만 오히려 민도준의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그 정도 실력으로 오늘 밤을 새우려고 그래?”“저도 실력이 늘었다고요. 게다가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는데. 어디가…… 안된다는 건지…….”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지만 민도준은 똑똑히 들어버렸다.이윽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민도준은 일부러 뜻을 왜곡하며 되물었다.“뭐야? 내가 괴로울까 봐 걱정된 게 아니라 아직 성에 안 차서 그러는 거였어?”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부끄러워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민도준은 오히려 더 놀려댔다.“욕구 불만인 건 알겠는데 사흘 동안 약 잘 챙겨 먹어. 다음번에 재검사했을 때 아무 문제도 없다면 제대로 한 번 놀아줄 테니까.”점점 더 어이없어지고 수위도 높아지는 농담에 권하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저 잘 거예요!”솔직히 이번에는 정말로 피곤했다.침대에 누어 있다보니 눈꺼풀이 자꾸만 맞붙으며 끝내 꿈나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설렘은 꿈속에서도 이어졌다.꿈속에서 권하윤은 또 그 복도에 서 있었다.제대로 보이지 않던 낮의 장면이 꿈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였다.고개를 돌린 민도준의 얼굴 반쪽에 그늘이 드리웠고 입꼬리는 매력적인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민도준이 보고 있는 건 권하윤이 있는 방향이었다.꿈속에서 떨
“안 그려준다면서요?”한참 숨을 돌리다가 자그마한 머리통을 들고 물은 권하윤의 물음에 민도준이 코웃음을 쳤다.“안 그리면 결혼식 때까지 삐질 거잖아.”그제야 권하윤은 부끄러웠는지 눈길을 돌려 민도준이 그린 반지를 바라봤다.여우 모양의 디자인에 삼각형 모양의 루비가 심장처럼 가운데 박혀 있어 눈길을 끌었다.“내 수준은 딱 이 정도니까 마음에 안 들면 디자이너 찾아.”“아니요. 전 도준 씨가 그려준 게 좋아요.”사실 민도준이 디잔인 한거라면 어떤 모양이 됐든 괜찮았다.민도준이 디자인한 걸 손에 낄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녹을 것만 같았으니까.더욱이 디자인은 아주 훌륭하고 예뻤다.이걸 보고 나니 권하윤은 더 울고 싶었다.민도준은 그런 권하윤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거지 왜 울고 그래?”“마음에 들어요. 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흐느끼며 말하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재밌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양심은 있네.”권하윤은 민도준의 손을 따라 반지 디자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이거 제작하면 얼마나 걸려요?”“사흘 정도.”“그걸 도준 씨가 어떻게 알아요?”“쓸데없는 질문은. 당연히 물어봤지. 이런 걸 그려본 적도 없는데 당연히 스승님이라도 모셔야 하지 않겠어?”가뜩이나 이미 완전히 녹아버린 권하윤의 심장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라 민도준에게 꼭 기댔다.“도준 씨.”“응.”“반지가 다 제작될 때쯤 저 도준 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권하윤의 뒷덜미가 잡혀 고개가 쳐들렸다.“응? 뭔데 이렇게 입맛을 돋우실까?”살짝 장난기 섞이고 부드러운 말에 권하윤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씩 웃었다.“왜요? 안 돼요?”그 모습은 마치 자기한테 주권이 있다고 우쭐해하는 것 같았다.이에 민도준은 미소가 핀 권하윤의 작은 얼굴을 세게 들어 올렸다.“돼.”다시 침대로 돌아오자 권하윤은 마치 껌딱찌처럼 민도준의 옆에 꼭 붙었다.하지만 민도준도 권하윤을 밀어내지는 않고 손으로 권하윤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