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은 뒤로 넘어질 것처럼 젖힌 권하윤의 작은 머리를 받쳐 들고는 무심한 듯 대답하더니 잇따라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하윤 씨가 그렇게 불쌍한 척하는데 체면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어?”“아니,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목욕하다가 감기에 걸린 것뿐이라고요…….”권하윤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하필 이 타이밍에 아팠다는 것도 솔직히 의심스럽긴 하겠지.하지만 민도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권하윤의 고개를 꾹꾹 밀더니 장난기 섞인 말투로 속삭였다.“내가 씻겨 주지 않았다고 지금 탓하는 거야?”권하윤은 그 말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저 조심하지 않아…….”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민도준이 갑자기 권하윤을 밀어버리며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입고 나오더니 권하윤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밖으로 걸아 나가기 시작했다.권하윤은 떨어질까 봐 무의식적으로 다리로 민도준의 허리를 감싸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어디 가요?”“데려다주려고. 내가 보살펴 주지 않았다고 또 며칠 병나면 안 되잖아.”‘진짜 왔었나 보네.’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권하윤은 온몸이 찌릿해 났다.그런데 아직 밤도 아닌데 이런 자세로 민도준의 품에 안긴 채 나간다면 사람들이 그야말로 대 충격에 휩싸일 걸 생각하자 권하윤은 정신을 차린 듯 버둥대기 시작했다.“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내려 줘요.”하지만 버둥대기 바쁘게 민도준의 손바닥이 엉덩이를 내리쳤다.“계속 움직이면 사람들 앞에서 다른 거 할 수 있어.”권하윤이 순간 얼어붙자 민도준은 손으로 권하윤의 엉덩이를 가볍게 문질러댔다.“착하지.”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찬은 두 사람이 나오는 걸 보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길을 내주며 문까지 열어주었다.그 순간 권하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민도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어떡해, 쪽팔려서 이제 다른 사람들 얼굴 어떻게 봐.”몸을 한껏 움츠린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선심 쓰
강수연은 민도준의 포악한 눈빛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시각, 권하윤 역시 민도준 눈에 드리운 살기와 목덜미에 툭 튀어나온 핏줄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민도준의 가슴을 살살 긁었다.지금 같은 다사다난한 시기 강수연에게 뭔 짓을 했다간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도 골치아플게 뻔하기에 권하윤은 민도준이 말썽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았다.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작은 손이 마침 눈에 들어온 순간 민도준은 눈을 살짝 들어 권하윤을 바라봤다. 이윽고 걱정 가득한 권하윤의 눈빛을 마주하자 그제야 들끓던 화가 조금이나마 사라졌다.품속의 여인을 살짝 주무르다가 눈꺼풀을 든 순간 다시 건들건들하는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이만합시다. 저도 우리 제수씨 재워야 해서요. 만약 보고 싶다면 내일 아침 일찍 방에 들어오시던가요.”민도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수연한테서 빠득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심지어 민도준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때 너무 빠르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하지만 민도준은 앞에 넘어진 사람을 무시한 채 가로 지나며 긴 다리로 문을 닫아버렸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수연의 몸도 부르르 떨렸다.분노와 공포 그리고 울분의 감정이 뒤섞인 채 강수연은 주먹으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그 시각, 복도 끝에서 지팡이를 짚고 있던 민승현이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난장판이 된 밖과는 달리 방안은 조용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작은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갈 거예요?”베개 위에 누운 자세로 애타게 바라보는 권하윤의 눈빛에 민도준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권하윤을 자기의 팔 사이에 가두었다.“그러면 뭘 더 원하는데?”광선이 민도준의 넓은 어깨에 가려져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안전감이 들었다.이윽고 손을 뻗어 민도준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저 재워준다면서요?”민도준은 손목시계를 힐끗
“네? 뭘 들었다고 그래요?”권하윤은 순간 뻣뻣하게 굳어 공태준한테서 USB를 받았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는 못하고 모르는 척 연기했다.잇따라 민도준의 입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찔렸는지 이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저 이제 졸려요. 아 졸리다.”“일어나, 씻고 자.”민도준은 손을 들어 누에고치가 되어버린 권하윤을 툭툭 건드렸다.그 말에 엉기적거리며 몸을 일으킨 권하윤은 샤워하고 난 뒤 약을 챙겨 먹었다.그러고 나니 어느새 민도준이 떠날 시간이 되어버렸다.더 이상 민도준을 남겨둘 핑계를 찾을 수 없자 권하윤은 베개에 머리를 푹 파묻고 반짝거리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민도준을 훔쳐봤다.웃옷을 챙겨 입은 민도준은 마침 그 모습을 발견했다.훔쳐보는 모습이 들키자 권하윤은 재빠르게 고개를 다시 파묻으며 자는 척 연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머리를 굴리는 새끼 여우가 따로 없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자는 척을 하던 권하윤은 방안에 더 이상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침을 꼴깍 삼켰다.‘갔나?’의아한 마음에 눈을 슬쩍 뜬 순간, 권하윤은 눈앞에 있는 민도준의 모습에 놀라 “아”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놀랐잖아요.”이윽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권하윤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그 모습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찡그러진 미간을 펴주었다.“요즘 일이 많으니 얌전하게 있어. 알았지?”권하윤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민도준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도준 씨도 조심해요.”“응, 갈게.”민도준이 떠나자 방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그 순간 꽉 차 있던 마음마저 텅 비어버렸다.그날 밤, 권하윤은 몸을 뒤척였지만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머릿속으로 민도준이 했던 말과 민용재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했다.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다.심지어 울고불고 난리 치는 소리였다.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생각을 하기 바쁘게 쾅 하는 문소리가
권하윤을 본 순간 민상철의 안색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민상철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권하윤을 겨우 처리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강민정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무너져 골치 아픈 거겠지.권하윤은 인사만 간단히 하고는 눈치껏 뒤로 슬쩍 물러나 강민정에게 무대를 넘겨주었다.하지만 웬걸? 강민정은 권하윤을 보자마자 이내 달려오더니 또다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울기 시작했다.“언니, 정말 미안해요. 절대 승현 오빠를 탓하지 마세요. 언니가 오빠한테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속상해하는 걸 보고 제가 위로해 줬을 뿐이에요. 언니도 오빠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 사랑 축복해 줘요.”강민정이 모든 잘못을 자기한테 전가하는 걸 보자 권하윤은 담담하게 웃었다.“그렇게 말할 거 없어요. 두 사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으니 승현이 민정 씨를 더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죠. 어찌 됐든, 약혼한 날 밤까지 두 사람이 만났잖아요. 그러니 저도 두 사람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권하윤의 말에 강민정은 표정이 굳더니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분노 섞인 호통 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다들 그만해!”“콜록콜록-”민상철은 버럭 소리 지르기 바쁘게 마치 당장 쓰러지기라도 할 듯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아침에 본채에 찾아와 민상철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민용재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자 얼른 메이드를 불러 차를 올리도록 했다.“아버지, 손주며느리는 누가 됐든 상관없지만 아버지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그때 옆에 있던 강수연도 흐느끼며 끼어들었다.“아버님, 저도 이제 반백을 훨씬 넘은 나이인데 제발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 승현이 몸도 이제 성치 않은데 대는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승현이도 아버님 손자잖아요. 이대로 저 아이 대가 끊기는 걸 지켜보실 건가요?”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권하윤은 민용재의 방법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이 아이의 등장에 민용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강수연과 민승현 스스로 파혼하게 한
본채를 나오기 바쁘게 아니나 다를까 권하윤은 남쪽 별채로 초대받았다.심지어 저택 안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권하윤은 민용재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나는 이미 약속을 지킨 것 같은데. 칩에 관한 소식은 알아냈나?”권하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민 사장님 손에 확실히 부모님이 남겨주신 칩이 있습니다.”말을 마친 권하윤은 눈에 띄지 않게 민용재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그러자 역시나 사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날카로운 시선이 그나마 조금 느슨해졌다.“칩이 어디 있는지는 아나?”또다시 직설적으로 던진 물음에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혔다.민도준이 설령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민용재는 조 사장과 달리 민도준을 진짜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권하윤이 더 많은 사실을 흘릴수록 민도준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니 긴장될 수밖에.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흘러지났지만 권하윤은 끝내 민도준의 경고를 떠올리며 깊은숨을 들이켰다.“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블랙썬에 있는 것 같아요.”하지만 권하윤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 다른 물음이 뒤를 이었다.“민도준을 도와 그 칩을 개발하는 사람이 누구지?”그 질문을 듣는 순간 천진난만한 얼굴이 떠오르면서 진소혜의 자기한테 환하게 웃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 권하윤은 애가 끓었다.‘이걸 진짜 말해도 되나? 말하면 소혜 씨가 위험해지는 건 아닌가?’수많은 생각이 정신을 괴롭혀 육체적으로 느껴졌던 고통보다 백배 괴로웠다.특히 자기의 말 한마디가 가져올 풍파를 생각하니 불안하고 초조했고 민용재가 자기를 시험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소식을 알아보는지 모르다 보니 미칠 지경이었다.하지만 끝내 꽉 잡은 주먹을 스르르 펴면서 목구멍으로 어렵사리 한마디를 뱉어냈다.“블랙썬에서 민 사장님의 사촌 여동생을 본 적 있어요.”“진소혜?”민용재가 곧바로 진소혜의 이름을 뱉어내자 쪼그라들었던 폐에 겨우 공기가 흘러드는 느낌이었다.‘역시 알고 있었네.’하지만 이대로 긴장을
권하윤의 닭살 돋는 말투에 민용재의 미간은 움푹 파이더니 권하윤을 보는 눈빛에 경멸이 한층 더 뒤덮였다.그 눈빛은 권하윤을 권세에 아부하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자를 꼬시는 여자로 보는 게 틀림없었다.순식간에 고요해진 공기에 권하윤은 잔뜩 긴장한 채 폐가 쪼그라들 정도로 숨을 참았다.그렇게 한참이 흘러서야 전화 건너편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뭐야? 아침부터 발정 났어?”민도준의 말에 권하윤은 귀가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여상스러운 말투에서 도대체 자기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때문에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느라 애를 썼다.“보고 싶어서 그랬죠. 여보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보고 싶었지. 당장 덮쳐버리고 싶을 만큼.”“…….”민도준의 노골적인 말에 권하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가장 말문이 막힌 건 아마 옆에서 두 사람의 닭살 돋는 멘트를 듣고 있던 민용재일 거다. 심지어 원래도 싸늘한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진 채 권하윤에게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사인을 보냈다.그제야 권하윤은 숨을 들이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지금 밖이에요? 뭐 해요?”살짝 올라간 끝 음은 권하윤의 심장마저 목 끝까지 들어 올렸다.“박씨 일가를 방문하려던 참이야.”너무 진지한 대답에 권하윤은 순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하지만 눈을 들어 민용재를 관찰하니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박씨 일가는 경성 재벌가 중 하나인데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가문이다. 그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집 사람들이 원체 소박하기 때문이다.게다가 일전에 박씨 일가 막내딸이 민도준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끝내 인연이 닿지 않아 해외로 유학하러 갔다는 소문도 돈 적이 있다.‘설마 민도준이 박씨네 막내랑 결혼하려는 건가?’민용재는 순간 경각심이 생겨났다.한편 권하윤은 민용재가 더 이상 지령을 내리지 않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알았어요. 그러면 일 봐요. 끊을게요.”전화를 끊자 권하윤은 온통 민도준에게 소식을
“필요 없다.”어르신의 안색은 어두울 대로 어두워졌다.“우리 진씨 저택은 너무 작아서 민 사장님 같은 분은 모실 수 없겠네.”“얘들아 손님 배웅해 드려라!”어르신의 말에 옆에 있던 노부인이 극구 말려댔다.“도준이도 어렵게 왔는데 왜 그렇게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이래요?”“흥, 민씨 가문에서 도련님으로 있던 사람이 우리 같은 작은 가문이 어디 눈에 들겠나?”“영감, 말을 해도 어쩜 그렇게 해요? 도준은 우리 명주 아들이자 우리 외손자인데.”진명주라는 이름을 듣자 어르신의 표정에는 노기가 서렸다.“애초에 명주 그 애가 민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반대만 했어도, 명주 걔가 그렇게…… 그렇게…….”심지어 민도준의 두 외삼촌의 눈시울도 이내 붉어졌다.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민도준의 얼굴을 보자 어르신은 더욱 진노했다.“소혜가 어리석게 일을 찾아 한다면 난 안 말려. 하지만 우리 가문 전체가 민씨 가문의 권력 다툼에 끌어 들일 생각이걸랑 하지도 마! 꿈 깨!”“…….”어리석다고 한 소리 들은 진소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심지어 저택을 떠날 때마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가운 귀를 파댔다. 보아하니 민도준이 떠난 뒤에 또 한바탕 꾸중을 들은 모양이었다.그렇게 오전 내내 꾸중을 듣고 나서인지 차에 오른 진소혜의 눈은 이미 흐릿해 있었다.“내가 뭐랬어? 할아버지는 절대 칩 개발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그러게 왜 욕을 사서 먹고 그래?”“네가 좀 쓸모 있으면 나도 아침부터 재수 없게 이러지 않았지.”담배를 피우며 한심하다는 듯 힐끗거리는 민도준의 눈빛에 진소혜는 억울했는지 자기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나 밤낮없이 소처럼 일했어. 게다가 나 혼자서 어떻게 생산팀을 이끌어? 내가 기계인 줄 알아?”진소혜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혼자서 개발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책임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적어도 팀 하나 정도 있어야 현실성이 있었다.그리고 그걸 실현하려면 제일 좋은 선택지는 바로 진씨 가
권하윤은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난 뒤에야 진소혜가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다.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간단한 물음표를 보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긴 문장 하나가 도착했다.간단히 말하면 민도준의 영웅담이었고 상세하게 말하자면 4년 전 민도준이 조 사장의 손에서 웬 부잣집 아가씨를 구했다는 내용이었다.진소혜의 말에 의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 조 사장이 약을 타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의 손아귀에 놀아날 뻔했는데 마침 민도준이 나타나 구해준 덕에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한다.하지만 그때 민도준이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 그 부잣집 아가씨는 해외로 멀리 떠나버렸고…….진소혜의 생동한 설명에 권하윤은 당시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아하, 이랬다 이거지?’이윽고 진소혜가 보낸 문자를 찰칵찰칵 캡처하고 나서 [고마워요. 모자라면 소혜 씨한테서 빌릴게요]라는 문자를 보냈다.‘뭐 사람을 구해주는 건 좋은 일이라지만…… 이렇게 흘리고 다녀서야!’물론 조금 질투가 났지만 권하윤은 이일을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현재 가장 걱정되는 건 민도준의 안위뿐이었으니까.‘전화할 때 도준 씨가 내 암시를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모두 사실대로 말한 거잖아.’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어 권하윤은 밤에 제대로 캐물으려고 결심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건 약속했던 저녁이 되기도 전에 민도준을 만나고 말았다.-“저더러 민 사장님과 박민주 씨가 만나는 걸 방해하라는 말씀인가요?”민용재의 긍정적인 답변에 권하윤은 핸드폰을 꽉 그러쥐며 미간을 찌푸렸다.상황을 보아하니 민용재는 이미 민도준이 박씨 가문과 협력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된 것 같았다.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협력 건으로 박민주를 내세웠다는 것에서 박씨 가문의 의도가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나 마나 두 사람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거겠지.’이런 상황에서 권하윤이 나서면 박씨 가문과 척지는 거나 다름없다.하지만 민용재가 이미 두 사람의 협력을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