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이 벙벙한 박민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 시선 속에 웬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분명 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왠지 보면 볼수록 남자를 홀리는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하지만 박민주가 감탄할 새도 없이 권하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민도준과 아는체 했다.“어머,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민 사장님도 여기 차 마시러 오셨군요.”민도준의 시선은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권하윤의 새하얀 종아리에 떨어지더니 한참 맴돌다가 점차 잘록한 허리, 그다음으로 깜빡이는 눈에 멈췄다.노골적인 시선에 권하윤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의자에 기대앉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참 공교롭긴 하네.”아직 나이가 어린 박민주는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몰라 곧바로 적대심을 얼굴에 훤히 드러냈다.“누구시죠?”권하윤은 협력 건이 틀어지기라도 할까 봐 얼른 자기 정체를 밝혔다.“안녕하세요, 저는 민승현의 약혼녀 권하윤이예요. 그쪽은 박씨 가문 막내딸 맞죠?”권하윤도 민씨 가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자 박민주는 이내 경계를 늦추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네, 박민주라고 해요.”하지만 적대감을 숨겼다고 해서 권하유을 반기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옆에 서 있는 권하윤을 보면서 자리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박민주는 어렵사리 차려진 기회에 민도준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건 원치 않았다.권하윤도 당연히 박민주의 생각을 눈치챘기에 민도준에게 슬그머니 눈빛을 보내며 뭐라고 말하라는 암시를 해댔다.“이미 파혼했으면서 약혼녀는 무슨.”어렵사리 입을 여는 민도준의 모습에 기뻐하려던 것도 잠시, 자기의 거짓말을 바로 까발리는 모습에 권하윤은 순간 욱했다.하지만 마음속에 차오른 화를 드러내지는 않고 민도준 옆의 빈자리에 앉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에이, 그건 그저 싸우면서 한 얘긴데요 뭘. 커플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요.”“오, 그래? 뭐 싸우고
권하윤이 아무리 세게 기침해도 박민주가 민도준의 말을 듣는 걸 막지는 못했다.심지어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를 뽑아 거리낌 없이 권하윤의 가슴께를 닦아주는 동작은 그야말로 야하기 그지없었다.그 때문에 고개를 들지 않아도 박민주의 분노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어린 나이인지라 박민주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끝내 참고 있던 한마디를 버럭 내뱉었다.“도준 씨, 남녀가 유별난데 어떻게 막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요?”민도준은 그제야 종이를 테이블 위에 던지며 입을 열었다.“남녀가 유별나면 민주 씨는 어떻게 생겼는데요?”입을 열어 뭐라고 말하려던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또 한 번 사레가 들고 말았다.민도준의 시비 거는 말투와 행동에 아름다운 환상이 완전히 깨져버린 박민주는 부끄럽고 분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도준 씨, 설마 우리 가문과 협력하기 싫어요?”위협적인 한마디에 권하윤은 끝내 절망했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도준의 표정도 그새 날카로워졌다.“하, 지금 나 협박하는 건가?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박씨 가문에 나랑 협력할 기회를 준 거지, 박씨 일가가 나를 선택한 거 아니에요. 알겠어요? 그리고, 민주 씨 아버지가 민주씨와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해 1%의 이익을 내준 건 알아요?”민도준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박민주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그도 그럴 게, 민도준이 그런 조건으로 자기를 만나줬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순간 사랑에 눈이 멀었던 소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심지어 옆에서 지켜보는 권하윤마저 박민주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박민주의 아버지가 딸을 위해 그렇게 희생했다는 걸 듣자 저도 모르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권하윤의 아버지는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였는데 권하윤이 애교만 부리면 이내 마음이 약해졌고 그걸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고 항상 엄숙한 표정으로 “다음은 없을 줄 알아”라는 경고를 하곤 했다.지난 기억을 떠올리자 권하윤은 괜히 코끝이 시큰거렸다.심지어 추억에 빠져 박
권하윤이 엉덩이를 들기 바쁘게 민도준의 손이 권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아주 끝이 없네. 연기에 맛 들였어?”민도준의 말에 원래도 가려는 마음이 없었던 권하윤은 이내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투덜거렸다.“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도준 씨와 박씨 가문의 합작 건에 안 좋은 영향이라도 끼칠까 봐 그런 거잖아요. 제가 한 발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는데도 불만이세요? 참 비위 맞추기 어렵네요.”“아주 점점 기어오르지?”민도준은 권하윤의 삐진 모습을 흥미로운 듯 바라보더니 턱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이에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머리를 돌렸다.“그런데 박민주 씨가 저렇게 화난 상태로 떠나면 도준 씨와 박씨 가문의 합작 건이 무산되는 거 아니에요?”“누가 박씨 가문과 손잡겠다고 했어?”권하윤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무심코 벌어진 일이지만 간접적으로 민용재가 바라던 걸 또 이뤄준 셈이니 미안함과 죄책감이 한순간 마음속에 퍼졌다.“제가 또 도준 씨 일 망친 거 아니에요?”자기가 한 일을 떠올리자 고개를 저절로 숙여졌다.하지만 그때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걸 알긴 아나 보네?”잇따른 민도준의 한마디에 괴로워하던 그때, 커다란 손이 권하윤의 목덜미를 잡더니 권하윤의 입가에 숨결을 불었다.“이리 와, 내가 만회할 방법 가르쳐 줄게.”“저…… 읍…….”난폭한 입맞춤에 목소리가 묻혀버리기도 잠시, 이내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그 시각, 민도준은 당황한 듯 도망치는 그림자를 힐끗 보더니 권하윤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더 끈질기게 몰아붙였다.-한편 찻집에서 뛰쳐나온 박민주는 너무 급하게 달린 나머지 계단에서 발이 접질려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솔직히 박민주는 방금 자리를 박차고 나오자마자 바로 후회했다.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민도준이 자기를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 돌아가 사과하려고까지 결심했다.방
방금까지 의연한 얼굴로 자기 생각을 어필하던 권하윤은 순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그러다 한참 뒤, 자신감이 없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정말 그럴 거예요?”아까까지만 해도 부추기더니 이내 태도를 바꾸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흥미로운 듯 말을 이었다.“내가 뭘 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투하는 거야? 내가 만약 앞으로 합작건 때문에 박민주를 매일 만난다면 어쩌려고 그래?”“제가 설마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권하윤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여전히 대인배인 척 쿨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민도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피식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민도준의 말소리가 잇따라 들렸다.“계속 그렇게 연기 해봐 어디.”권하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민도준이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건 더 견딜 수 없었다.민용재는 민상철 곁에서 수십 년 동안 일을 해온 사람인지라 회사 내부에서의 세력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게다가 회사에서 가장 알짜배기인 인수팀은 민시영과 민승현이 관리하고 있고 대외무역팀은 민용재 손에 있는데 만약 과학기술 단지마저 빼앗기면 민성철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는 날에 회사와 가문은 고스란히 민용재한테로 넘어갈 거다.이런저런 가능성을 고려하느라 권하윤은 한참 동안 눈알을 굴렸다.그 모습을 옆에서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민도준은 권하윤의 코를 잡은 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또 무슨 궁리를 하는 거야?”권하윤은 갑자기 민도준의 손을 잡으며 눈을 반짝였다.“도준 씨, 아니면 저를 도준 씨 외갓집으로 데려가 줘요.”민도준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떴다.“음? 부모를 만나려고?”그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이해한 권하윤은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도준 씨와 외갓집 식구들의 관계를 회복해 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정말이야? 미리 말해두는데 하윤 씨가 내 제수씨라는 사실을 외갓
옛날 가옥으로 된 진씨 저택은 운치가 넘치고 심지어 문 앞에 세워둔 자전거 두 대마저 따뜻한 생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갓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어디선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준? 네가 왜 또…….”하지만 민도준의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는 순간 그 목소리는 그대로 뚝 끊기더니 권하윤과 민도준을 번갈아 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이 아가씨는 누구야?”“아, 우리 제수씨. 제가 지난번에 한 번 보여주겠다고 했잖아요.”민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그 말에 진명제는 어색한 듯 손을 비볐다.“아, 이렇게 빨리 잡아…… 아니, 이렇게 빨리 데려왔구나. 얼른 들어와.”거실에 들어서자 권하윤은 슬며시 주위를 둘러봤다.진씨 저택은 민씨 저택처럼 화려하기보다는 심플하고 소박했다.간단한 테이블과 의자,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한참을 보고 있을 때, 허리에 손이 둘리더니 귓가에 희롱하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서워?”권하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흠칫하더니 다급하게 민도준의 손길을 피했다.“이러지 마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하지만 권하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민도준은 상황이 더 재미있어 권하윤한테 입을 맞출 것처럼 굴었다.이에 화가 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 나머지 권하윤은 손을 퍼덕거리다가 민도준을 물려고 입을 벌렸다.그렇게 투덕거리는 사이, 갑자기 문소리가 들려왔다.권하윤은 얼른 민도준을 밀어버리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씨 집안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더니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그 순간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괴이해졌다.상석에 앉은 어르신은 돋보기를 끼고 있었는데 주름 하나하나마저 권하윤을 배척하고 있었다.다행히 민도준의 외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는 태도가 괜찮았지만 여전히 걱정 가득한 모습이었다.사람들의 눈빛이 한데 모여들었는데도 민도준은 여전히 장소 불문하고 권하윤을 품에 안고 있었다.“얼른 인사하지 않고 뭐해?”권하윤은
권하윤은 이를 악물고 겉치레적인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민 사장님이 민씨 저택에서 암살당하여 크게 다쳤을 때 저게 마침 발견하고 구해줬거든요.”“뭐?”할머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물었다.“다쳤다고? 어디가 다쳤는데?”심지어 어르신마저 몸을 앞으로 기웃거렸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고 몰래 민도준을 힐끗거렸다.권하윤은 두 분이 민도준을 걱정한다는 걸 바로 보아내고 기회를 잡았다는 듯 위험천만했던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뭐 손바닥만 한 상처가 났다느니, 피가 바닥에 흥건해졌다느니 하면서 말이다.그 시각 민도준은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로 열성을 다해 설명하는 권하윤의 모습을 재미나는 듯 바라봤다.‘바닥이 아니라 침대가 흥건해졌겠지.’그날의 상황 설명을 끝낸 권하윤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둘째네 식구는 민 사장님뿐이라서 혼자 모든 걸 버텨야 한다는 게 참 안됐죠. 민 사장님한테는 아무런 뒷배도 없으니까.”솔직히 불쌍한 척하려던 것뿐이었는데 이 모든 걸 말하고 나니 권하윤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 민도준을 돌아봤다.그 시각, 민도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권하윤을 빤히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사람을 미혹했다.그 눈빛과 미소에 매료된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민도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어떻게 그런 일이. 도준아, 그걸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어?”할머니의 한마디에 권하윤은 잠에서 깨기라도 하듯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나도 참, 사람들 이렇게 많은 데서 뭐 하는 거야!’잠깐 드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지자 권하윤은 아쉬운 듯 민도준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맞아요. 민 사장님은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민도준은 예민한 만큼 위험하다.현재는 물론 모든 사람이 민도준을 두려워한다지만, 갓 경성에 왔을 때는 어떠했을까?민용재가 민도준의 부모님께 그런 짓을 하고 그동안 민도준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는 만무하다.그런데 민도준은 그렇게 위험천만한
권하윤은 어안이 벙벙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네? 제 말 진짜예요.”권하윤의 표정을 보자 할머니는 빙그레 웃을뿐 계속해서 간파하지 않았다.“똑똑한 아가씨네. 두 사람이 그런…….”“하.”할머니가 말을 분명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권하윤은 한 순간에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자기가 민도준의 제수씨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하윤 양이 참한 아가씨라는 건 나도 아네. 우리 도준이한테 진심이라는 것도.”할머니는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앞으로 사람들이 손가락질해 대고 뒤에서 말들이 많을 거네. 두 사람이 앞으로 아이를 가져도 그 아이마저 손가락질받을 수 있겠지. 두 사람이 보통 사람이면 모를까, 하필이면 민씨 가문과 얽힌 사람이니 누군가 일부러 안 좋게 여론을 만들 것도 뻔하고. 이런 것들은 생각해 봤나?”안 생각해 봤을 리 없다.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권하윤을 동생과 몸을 섞고 또 그 형과도 섞은 가벼운 여자로 볼 거라는 것도 안다.심지어 민도준마저 인륜을 파괴하는 파렴치한이라고 말을 듣겠지.권하윤이 고개를 숙이자 할머니는 끝내 마음이 아팠는지 권하윤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하윤 양, 내 말에 마음이 안 좋을 거란 거 아네.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며 서로를 원망하기보다 지금 서로 놓아주는 게 더 좋지 않겠나? 만약 두 사람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나도 더 말하지는 않겠다만.”할머니는 심한 말도, 꾸짖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권하윤이 가장 숨기고 싶고 가장 모른 체 하고 싶었던 문제를 앞에 내놓았다.하지만 이럴수록 권하윤의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했다.민도준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쓰는 것도 싫었고, 자기 때문에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것도 싫었으니까.그러던 그때, 숙였던 고개가 갑자기 들리며 자의 눈빛과 마주하게 되었다.민도준은 권하윤 눈가에 아직 가시지 않은 물기를 보자 눈썹을 들여 올렸다.“누가 이랬어? 아주 땅 파겠네.”말
민씨 저택에 도착했는데도 권하윤은 여전히 눈을 가린 채 울부짖었다.“어떡해, 너무 쪽팔려.”민도준은 권하윤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권하윤의 손을 내렸다.하지만 진짜로 눈시울을 붉힌 권하윤을 보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권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진짜 울었어?”권하윤은 그저 살짝 답답한 것뿐이었는데 민도준이 이렇게 묻자 눈시울이 더 붉어졌다.“도준 씨 외가 식구들이 제가 도준 씨 제수씨라고 마음에 안 들어 하는데 이제 이미지가 더 나빠졌잖아요.”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민도준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내 외가 식구들이 하윤 씨를 어떻게 보든 그게 뭔 상관이야?”권하윤은 순간 말문이 막혀 물기 촉촉한 눈을 들어 민도준을 바라봤다. 그 순간 호박색 눈동자에 드리운 막연함과 서러움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다른 사람한테 잘 보일 시간에 오늘 밤을 어떻게 버틸지나 생각해 보는 게 어때?”권하윤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은 아래로 쓱 내려와 권하윤의 가는 목덜미를 야릇하게 비벼댔다.“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 거 하윤 씨가 말했던 거 맞지?”‘어, 맞는 것 같기는 한데…….’순간 권하윤은 등골이 오싹해 났다.하지만 권하윤이 잔뜩 긴장해서 오늘은 망했다고 울상을 지을 때 민도준의 전화가 울렸다.두 마디 옆에서 엿들어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차에서 내린 권하윤은 민도준을 빤히 쳐다봤다.“어디 가게요?”“응.”이상하게도 방금 전까지 민도준이 너무 자기를 몰아붙이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는데 이제 가봐야 한다고 하니 오히려 아쉬워졌다.“지금 가요?”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채 권하윤은 민도준을 바라봤다.그 모습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권하윤을 자기와 차 사이에 가운 채로 입을 열었다.“왜? 아쉬워?”권하윤은 그 자세 그대로 민도준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네”라고 속삭였다.그 순간 얼굴에는 남자의 손이 문지르는 촉감이 전해지더니 장난기 섞인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