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잠에서 깨어난 권하윤은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았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밖으로 달려 나간 그녀는 소파 틈새에서 밤새도록 외롭게 있었던 알약을 찾았다.그걸 손에 꽉 움켜쥔 찰나 어제의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제야 그녀도 어제의 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생각해 보니 한민혁이 두 사람이 이벤트를 하는 줄 알고 일부러 그런 술로 준비한 것 같았다.‘진짜 자업자득이네.’씁쓸한 웃음이 저도 모르게 잇새에서 흘러나왔다.이벤트를 해줄 것처럼 술을 요구했으니 흥을 돋아주는 술로 골라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이미 정돈된 탁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다행히 어제 술에 취해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아침 뜨는 태양도 보지 못했겠네.’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으니 단기간 내에 더 이상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초조한 한편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그렇게 한창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로건이 그녀에게 아침을 배달하러 온 거였다.요즘 매일 그가 음식 배달을 하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오늘은 왠지 걱정거리가 있는듯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이었다.이에 권하윤이 무심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네?”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멍하니 쳐다보는 로건을 보자 권하윤은 다시 한번 물었다.그때 로건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속상해서요.”“왜요?”“희연 씨가 속상해해서요.”“희연 언니요?”권하윤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희연 언니가 왜요?”“희연 씨가 일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데, 일자리가 희연 씨를 안 찾아요.”한참을 되새기고 나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희연 언니가 일자리를 찾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네.’하지만 권씨 가문의 일은 너무 떠들썩해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받아두지 않았다.면접 당시에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알고 나면 모두 완곡히 거절했다.그 때문에 권희연은 며칠 동안 우울
말로는 결혼 날짜를 정하자고 했지만 권하윤은 자기를 부른 건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곧 저녁 시간이라서 아마 그곳에 남아 저녁 식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먼저 민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의 차는 이미 수리되었지만 차에 오른 순간 또다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이에 그녀는 택시를 타고 민씨 저택까지 이동했다.그녀와 강수연만 자리에 나올 줄 알았지만 본채 밖에 민승현도 서 있었다.물론 잠시 멈칫했지만 권하윤은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민승현은 많이 여위었다.준수한 얼굴이 더 날렵해졌고 옷도 패션 브랜드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옷이 아니라 멀끔한 정장이라서 한층 더 성숙해진 분위기를 풍겼다.권하윤을 보고도 민승현은 버럭 화를 내며 따지지 않았고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역시나 권하윤이 생각했던 것처럼 민상철은 이미 날짜를 정해놓고 그들에게 통보한 거였다.“이번 주 일요일이 좋더구나. 청첩장은 이미 돌렸으니 며칠 동안 할 일이 많을 거다. 결혼식 전까지 둘이 함께 여기서 지내거라.”너무 갑작스러운 요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든 찰나, 권하윤은 민상철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안되는 이유라도 있느냐?”생각해 보니 요 며칠 블랙썬에서 지냈던 일이 민상철의 귀에 들어가 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이곳에 붙잡아 두려는 모양이었다.잠시 생각을 마친 그녀는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아닙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승현이 너는?”민상철의 물음에도 한참 동안 들려오는 답이 없었다.곁눈질로 확인하니 역시나 민승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데다 민승현도 그녀와 자기 형님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권하윤과 결혼하라고 하는 건 그에게 모욕이나 다름없었다.권하윤은 당연히 민승현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한참 동안 침묵을
민승현이 떠난 뒤 권하윤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민도준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송신 버튼을 누른 뒤에야 전에 보냈던 문자에도 그가 답장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뭐야? 내가 상황 다 설명했잖아. 일부러 안 간 것도 아닌데.’잠깐 드는 생각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던져버렸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민상철은 그녀와 민승현의 결혼 날짜를 발표했다.약혼한 지 오래 지났으니 결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그저 강수연만 화를 눌러 참으며 권하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뿐.두 사람의 결혼에 관한 얘기가 잠시 오가더니 이내 화제는 회사 일로 넘어갔다.오늘은 힘이 조금 나는지 민상철도 이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아서 대화에 끼어들었다.“플라스틱 용액 공장을 매수해 들이는 기획안 잘 봤다. 전자 부품 쪽은 나도 전에 확실히 소홀히 했었는데 시영이가 그 부분을 마침 잘 메워줬더구나. 잘했다.”“지난번 할아버지가 저한테 영감을 준 덕분이에요. 전자제품은 점차 많아지는데 사람들이 모두 완제품에만 관심을 두고 부품을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윤으로 봤을 때 단기간 내에는 완제품보다야 못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브랜드의 브랜드 패키징을 하면서 가늘고 길게 가면 전망이 좋더라고요.”살짝 미소를 띤 민시영이 진지하게 생각을 풀어내자 민상철은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칭찬했다.“시영이 네가 비즈니스에 소질이 있구나.”민시영의 얼굴에 더욱 환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민상철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만약 시영이가 남자애였다면 나도 회사 일에서 빨리 손을 뗐을 텐데.”그 말과 함께 민시영의 얼굴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때 민시영이 자기 아들의 기회를 모두 채가 불만을 품고 있던 강수연이 마침 기회를 잡고 끼어들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게다가 나이도 있는데 하루빨리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제 조카 중에 강민우이라는 애가 있는데 요즘 마침 회사 경영에 돌입했거든요
나무그늘 아래에 있던 권하윤이 덤덤하게 대답했다.“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게 제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하긴, 할아버지가 하윤 씨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아마 도준 오빠랑 관련되었을 거예요.”권하윤의 묵인에 이시영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할아버지도 참 종잡을 수 없다니까요. 아마 연세가 드셔서 이제 마음도 약해지셨나 봐요.”들어보니 의아했다.집안에 추문이 생겼는데 자기를 놓아준 것도 모자라 손자와 결혼까지 시키려 하다니.그건 진짜 접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없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권하윤은 가던 걸음을 멈췄다.“솔직히 저도 조금 의아해요. 시영 언니가 저를 도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민시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 일은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그 사이 하윤 씨도 조심해요. 이 일은 수소문하는 대로 알려줄게요.”“고마워요.”민시영은 싱긋 웃으며 권하윤의 팔짱을 끼더니 농담조로 말했다.“고마워할 거 없어요. 나중에 결혼식에서 나한테 술이나 따라 줘요.”“술이요?”권하윤은 순간 흠칫했다.하지만 민시영은 그런 권하윤의 속마음을 모르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몰랐어요? 새색시는 시가댁 사람들한테 술 한 잔씩 권해야 하잖아요. 다행히 우리 집에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술 깨는 약이라도 준비해 둬요. 결혼식 시작 전에 취하지 말고.”“모든 분께 권해야 하나요?”살짝 놀란 권하윤의 반응에 민시영은 재밌다는 듯 눈을 찡긋거렸다.“네, 한 명도 빠짐없이. 물론 도준 오빠도 포함이에요.”‘응? 왜 멍해 있지? 설마 도준 오빠가 난처하게 굴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갑자기 든 생각에 민시영은 얼른 설명을 보탰다.“걱정하지 마요. 하윤 씨가 권하는 술 도준 오빠가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러면 할아버지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그렇다면 다행이네요…….”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희미한 목소리
욕실 안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권하윤은 생각이 복잡해졌다.하지만 얼마 안 되는 사이, 침대 옆이 웊푹 파이더니 민도준이 옆에 누워버렸다.그러다가 여전히 또렷한 권하윤의 눈을 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왜 아직도 안 자? 나 기다린 거야?”남자의 품에 안긴 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그 대답에 민도준은 웃음을 자아냈다.“오늘 왜 이렇게 착해?”권하윤은 시선을 내리깔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왔어요?”“하윤 씨가 들떠서 혼자서 잠 못 이룰까 봐 왔지.”부드러운 말투에 권하윤의 마음은 점차 불편해졌다.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제가 애도 아니고.”“비슷하지.”민도준은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이보다도 손이 더 많이 가긴 해. 때리지도 못하고 꾸짖지도 못하고 달래기만 해야 하잖아.”남자의 말에 권하윤의 눈시울은 왠지 모르게 점점 촉촉해지더니 눈가에 고이다가 끝내 또르르 흘러내렸다.그 촉촉함이 손에 느껴지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이것 봐.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또 울기나 하고. 여자는 물로 만들어졌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어디 봐, 물이 어디에 제일 많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게 가까이 와 봐.”“아-”권하윤은 거절할 힘도 없었다.점차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 가자 권하윤은 민승현이 옆 방에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얼른 민도준의 팔을 꽉 잡았다.“옆 방에 사람 있어요.”“응, 그러니까 소리 작게 내.”뜨거운 입술이 점차 물의 원천을 찾는다는 핑계로 권하윤의 몸 위를 이리저리 훑었다.며칠 동안 떨어져 지낸 터라 두 사람은 점차 걷잡을 수 없었다.도중에 민도준은 마지못해 권하윤의 입을 막더니 낮은 웃음을 지어내며 밭은 숨을 쉬었다.“자기야, 계속 소리 내다간 사람들 깨겠어.”하지만 이미 반쯤 넋이 나간 권하윤은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저 작게 흐느낄 뿐.어쩌면 이럴 때만 권하윤은 자기 자신을
소파 중앙에는 민도준이 주인인 것처럼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고 민승현은 그 옆에서 어두운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이러한 광경은 너무 고요하고 이상했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은 마침 계단에서 머뭇거리는 권하윤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젖힌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그래? 계단 내려오는 법도 잊었어?”그제야 권하윤을 발견한 민승현의 얼굴을 확 구겼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권하윤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쭈뼛쭈뼛 걸어 내려왔지만 한동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권하윤의 멍한 표정에 민도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향해 턱을 들었다.“와서 봐.”잡지 위에 있는 웨딩드레스와 정장 사진을 보고 나서야 권하윤은 오늘 드레스를 골라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빠듯한 준비 시간 때문에 당연히 맞춤 제작이 아닌 이미 완성된 드레스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모두 유명 디자이너의 회심작이기에 디자인은 당연히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민도준의 말투였다.분명 민승현과 권하윤의 결혼인데, 말투로 봐서는 민도준이 주인공인 듯싶었다.역시나 민승현이 그 태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권하윤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것을 민도준이 제것인양 손에 쥐고 주무르려 하는 게 남자의 자존심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끝내 참지 못한 민승현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먼저 양복부터 골라. 드레스는 양복에 맞춰서 고르면 되잖아.”이건 자기가 주인공이고 권하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자기 결혼식이니 민승현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민도준이 끼어드는 게 이상하지.하지만 민도준은 원체 자제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권하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사람 좋은 말투로 끼어들었다.“드레스에 맞는 정장은 찾기 쉬워. 네가 먼저 고르고 있어, 내가 너 대신 우리 제수씨 드레스 좀 골라 줄게.”권하윤에게 멈춰 있던 시선이 자기 옆자리를 슬쩍 가리켰다.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관계를 숨기려는 듯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곧이어 민승현은 두 눈 시퍼
다시 생각해 보니 남성 정장은 모두 비슷한 디자인이니 민도준이 결혼식 하객으로서 옷을 고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이에 권하윤은 얼른 잡지를 손에 들었다.열심히 정장을 고르고 있는 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탓에 가는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고 긴 머리카락은 나른하게 흐트러져 부드러움을 더해주었다.모든 페이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는 모습은 심지어 꽤 진지해 보였다.민도준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더니 손에 쥔 담배를 꺼버리고는 권하윤을 뒤에서 안으며 그녀의 손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다 골랐어?”“네.”권하윤은 검은 정장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이거 어때요?”민도준의 온 신경은 옷이 아니라 축 늘어진 그녀의 진주 귀걸이에 집중됐다.“검은색은 경사스럽지 못하잖아.”말투마저 가볍고 느릿했다.권하윤은 이번에 회색 정장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어때요?”“회색? 별로.”“그렇다면 다크그린은 어때요?”“오, 이건 승현이 한테 어울리겠네.”“…….”민도준이 자기를 놀린다는 걸 알아차린 권하윤은 잡지를 덮어버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민도준의 눈에도 살짝 뿔 나 있는 권하윤의 모습이 들어왔는지 경망스럽게 그녀의 귀걸이를 톡톡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인내심이 이것밖에 안 돼?”애석하게도 진주마저 주인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 듯 신이 나서 흔들거리며 권하윤의 속을 뒤집었다.“그저 격식 차리는 것뿐이니 도준 씨도 신경 쓸 거 없어요.”“응?”민도준은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권하윤의 진주 귀걸이를 괴롭혔다.“격식 차리는 거라니? 그건 모르는 일이지.”“네?”권하윤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린 순간 마침 민도준의 고혹적인 눈과 마주쳤다.이윽고 남자의 눈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무슨 뜻이냐면, 하윤 씨가 죽기 살기로 나한테 시집오겠다고 하면 내가 승현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순간 멍해졌다.물론 농담조로 한 말 같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이윽고 애초의
권하윤은 민도준이 당연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울리지 않으면 됐어. 나중에 결혼 선물 좋은 거 챙겨줄게. 어때?”이토록 변덕스러운 민도준의 성정 때문에 권하윤은 오히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그렇다면 미리 감사드립니다.”어색한 미소로 대답하며 어디에 둘지 몰라 허공에서 헤매던 손을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잡지 위에 올렸다.“저기, 정장은 계속 고를까요?”“필요 없어.”민도준은 가볍게 웃으며 손등으로 권하윤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드레스나 잘 골라.”이윽고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먼저 일어났다.권하윤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민도준의 외투를 손에 든 채 조건반사적으로 물었다.“가시려고요?”“응.”“그러면 밤에 올 거예요?”민도준은 차키를 움켜쥐며 권하윤을 흘겨보았다.“아니.”남자의 단호한 말투에 권하윤은 한참 동안 입을 뻥긋거리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내리깔았다.“네. 조심히 가세요.”민도준이 떠나자 거실은 다시 적막이 흘러들었다. 정교한 천장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권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테이블 위에 엉망진창으로 널린 잡지를 다시 펼쳐 들었다.그러다가 결국은 민도준이 예쁘다고 했던 드레스를 고르고 식 끝나고 입을 한복을 골랐다.민씨 가문이 아무리 유서 깊은 집안이라 할지라도 전통 혼례를 치를 건 아니기에 호텔 식장을 빌려 손님을 맞이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을 치러야 했다.그렇다고 디자인만 고른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옷을 권하윤의 사이즈와 이미지에 맞게 수선해야 하기에 디자이너와 연락을 취해야 했다.하지만 권하윤은 매원에 계속 남이 있고 싶지 않아 직접 웨딩 숍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그러다가 권하윤은 고민 끝에 권희연도 불러냈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권씨 집안의 일을 잘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웨딩 숍.“드레스에 어울리는 베일은 총 세 가지가 있는데 서로 다른 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