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워시 냄새가 욕실 안 열기에 흩어지면서 신경을 자극하던 피비린내를 겨우 덮어버렸다.하지만 침대에 누운 지 한참이나 흘렀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컴컴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그도 그럴 것이, 눈을 감으면 자꾸만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찢긴 채로 애원하고 울부짖던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성은우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솔직히 요 며칠 동안 그녀는 매일이다시피 꿈에서 성은우를 만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루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민도준 옆에 붙어있다 보면 언젠가 그와 술을 마실 기회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원래부터 술을 좋아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민도준은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설마 내가 여기 있어서 술 마시러 갈 시간이 없나?’하지만 이곳에 있지 않는다면 기회를 엿볼 수가 없다.솔직히 술에 이렇게 집착하는 건, 술이 약효를 촉진하는 원인도 있지만 민도준에게 술을 먹이지 않으면 예리한 그를 상대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더 이상 기회만 기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밤새도록 그 문제에 시달린 권하윤은 다음날 민도준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멍해 있었다.“권하윤 씨, 왜 안 먹어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침을 배달해 온 한민혁을 바라보더니 대충 둘러댔다.“죽이 뜨거워서요.”“아. 그럼 천천히 드세요 저는 나가볼게요.”“잠깐만요.”권하윤은 한민혁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네?”한민혁은 괜히 겁을 먹었지만 아예 블랙썬에 눌러앉다시피 살고 있는 권하윤을 보더니 이제 곧 사모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하지 않았다.“무슨 부탁인데요?”“그게, 여기를 조금 색다르게 꾸며 줬으면 해서요…….”‘아, 뭐 이벤트 해주려는 거구나?’그제야 한민혁은 안도의 한숨
민도준의 말에 권하윤은 일순 난처해졌다.사실 얼마 전 차에서 미친 듯이 하고 난 뒤로 며칠 동안 걷는 것조차 불편해 엉기적거렸었다. 당연히 민도준이 눈치채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녀의 착각일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워할 때가 아니기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손목을 살짝 잡아당겼다.“앉아요.”민도준은 그녀가 잡아당기는 대로 자리에 앉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으로 눈길을 돌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이건 흥을 돋우는 용도인가?”권하윤은 이내 손을 뻗어 와인을 집어 들더니 민도준이 보는 앞에서 빈 잔에 따라 그에게 건넸다.하지만 민도준은 그걸 받지 않고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마시는 건 너무 시시하지 않아?”권하윤은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와인잔을 내려놓았다.“무슨 뜻이죠?”“게임 하나 할래?”민도준은 서랍에서 주사위 하나를 꺼내며 제안했다.“주사위 게임 알아?”권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억지를 부리려 했다.“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이거 나 괴롭히는 거잖아요.”“간단해. 큰 수인지 작은 수인지 알아 맞추는 게임이야. 하윤 씨가 이기면 내가 마시고 내가 이기면 하윤 씨가 마시고.”‘운에 맡기자고?’그렇다 한들 확률은 같기에 민도준이 어떻게든 마실 확률은 있었다.한참 생각하던 끝에 권하윤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나마 권하윤의 “편리”를 생각해 민도준은 주사위 하나만 사용하기로 했다.핏줄이 불룩 튀어나온 팔뚝은 주사위를 흔드는 동작에 맞춰 움찍대다가 권하윤의 김장한 시선 속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잇따라 주사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민도준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뒤로 기대며 흐트러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하윤 씨가 먼저 맞춰 봐.”권하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큰 수 혹은 작은 수 중의 하나인데 간단한 문제를 그녀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작은…… 수요.”“직접 열어 봐.”민도준이 고개를 까닥이며 내뱉은 말에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컵을 열어 봤다.하지만 아쉽게도
벌써 취했는지 눈동자가 흐릿해진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흥미로운 듯 그녀의 무거운 고개를 받쳐 들었다.“계속할래?”한참이 걸려서야 초점이 맞춰진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더니 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민도준의 엄지가 와인색을 입은 그녀의 입술을 슬쩍 문질러댔다.“뭐야? 나 그렇게 이기고 싶어?”“빨리요. 저 작은 수자요.”권하윤이 나지막하게 웅얼거렸다.민도준이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주사위 컵을 잡았다. 하지만 그러기 바쁘게 그의 품속에 있던 권하윤이 갑자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멈추지 마요. 제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 돼요.”이윽고 그녀는 주사위가 컵을 치며 “짤그락”대는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민도준의 팔을 잡아당겼다.“멈춰요.”술에 취해 잔뜩 높아진 그녀의 톤과 명령하는 말투에도 민도준은 화를내지 않고 고분고분 따랐다.그리고 그때, 권하윤이 자신만만한 듯 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 판은 무조건 이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하지만 컵 아래의 주사위는 6을 가리키고 있었다.어지럽던 머리는 숫자를 확인하고 난 뒤 더 어질거렸다. 이윽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너무 취해서 잘못 봤나 보네.”민도준은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권하윤을 다시 잡아 오더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설마 룰을 안 지킬 거야? 진 사람이 마시기로 했잖아.”연거푸 와인 몇 잔을 들이켠 권하윤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가슴이 답답하고 더워져 정신이 혼미해졌고 심지어 본인이 뭘 하려고 했던지조차 잊어버린 채로 민도준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내일 마실게요. 내일…….”하지만 얼마 피하지 못하고 민도준에게 다시 잡혔다.“자기야. 도박을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오늘 일은 오늘 끝을 봐야지. 자, 마셔.”곧이어 술잔이 입가에 닿는 바람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다.민도준도 당연하다는 듯 그녀가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권하윤이 갑자기 그의 목덜미를 팔로 감더니 술을 머금은 채 입술을 그의 입
다음날.잠에서 깨어난 권하윤은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았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밖으로 달려 나간 그녀는 소파 틈새에서 밤새도록 외롭게 있었던 알약을 찾았다.그걸 손에 꽉 움켜쥔 찰나 어제의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제야 그녀도 어제의 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생각해 보니 한민혁이 두 사람이 이벤트를 하는 줄 알고 일부러 그런 술로 준비한 것 같았다.‘진짜 자업자득이네.’씁쓸한 웃음이 저도 모르게 잇새에서 흘러나왔다.이벤트를 해줄 것처럼 술을 요구했으니 흥을 돋아주는 술로 골라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이미 정돈된 탁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다행히 어제 술에 취해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아침 뜨는 태양도 보지 못했겠네.’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으니 단기간 내에 더 이상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초조한 한편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그렇게 한창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로건이 그녀에게 아침을 배달하러 온 거였다.요즘 매일 그가 음식 배달을 하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오늘은 왠지 걱정거리가 있는듯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이었다.이에 권하윤이 무심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네?”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멍하니 쳐다보는 로건을 보자 권하윤은 다시 한번 물었다.그때 로건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속상해서요.”“왜요?”“희연 씨가 속상해해서요.”“희연 언니요?”권하윤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희연 언니가 왜요?”“희연 씨가 일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데, 일자리가 희연 씨를 안 찾아요.”한참을 되새기고 나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희연 언니가 일자리를 찾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네.’하지만 권씨 가문의 일은 너무 떠들썩해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받아두지 않았다.면접 당시에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알고 나면 모두 완곡히 거절했다.그 때문에 권희연은 며칠 동안 우울
말로는 결혼 날짜를 정하자고 했지만 권하윤은 자기를 부른 건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곧 저녁 시간이라서 아마 그곳에 남아 저녁 식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먼저 민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의 차는 이미 수리되었지만 차에 오른 순간 또다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이에 그녀는 택시를 타고 민씨 저택까지 이동했다.그녀와 강수연만 자리에 나올 줄 알았지만 본채 밖에 민승현도 서 있었다.물론 잠시 멈칫했지만 권하윤은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민승현은 많이 여위었다.준수한 얼굴이 더 날렵해졌고 옷도 패션 브랜드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옷이 아니라 멀끔한 정장이라서 한층 더 성숙해진 분위기를 풍겼다.권하윤을 보고도 민승현은 버럭 화를 내며 따지지 않았고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역시나 권하윤이 생각했던 것처럼 민상철은 이미 날짜를 정해놓고 그들에게 통보한 거였다.“이번 주 일요일이 좋더구나. 청첩장은 이미 돌렸으니 며칠 동안 할 일이 많을 거다. 결혼식 전까지 둘이 함께 여기서 지내거라.”너무 갑작스러운 요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든 찰나, 권하윤은 민상철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안되는 이유라도 있느냐?”생각해 보니 요 며칠 블랙썬에서 지냈던 일이 민상철의 귀에 들어가 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이곳에 붙잡아 두려는 모양이었다.잠시 생각을 마친 그녀는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아닙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승현이 너는?”민상철의 물음에도 한참 동안 들려오는 답이 없었다.곁눈질로 확인하니 역시나 민승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데다 민승현도 그녀와 자기 형님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권하윤과 결혼하라고 하는 건 그에게 모욕이나 다름없었다.권하윤은 당연히 민승현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한참 동안 침묵을
민승현이 떠난 뒤 권하윤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민도준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송신 버튼을 누른 뒤에야 전에 보냈던 문자에도 그가 답장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뭐야? 내가 상황 다 설명했잖아. 일부러 안 간 것도 아닌데.’잠깐 드는 생각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던져버렸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민상철은 그녀와 민승현의 결혼 날짜를 발표했다.약혼한 지 오래 지났으니 결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그저 강수연만 화를 눌러 참으며 권하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뿐.두 사람의 결혼에 관한 얘기가 잠시 오가더니 이내 화제는 회사 일로 넘어갔다.오늘은 힘이 조금 나는지 민상철도 이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아서 대화에 끼어들었다.“플라스틱 용액 공장을 매수해 들이는 기획안 잘 봤다. 전자 부품 쪽은 나도 전에 확실히 소홀히 했었는데 시영이가 그 부분을 마침 잘 메워줬더구나. 잘했다.”“지난번 할아버지가 저한테 영감을 준 덕분이에요. 전자제품은 점차 많아지는데 사람들이 모두 완제품에만 관심을 두고 부품을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윤으로 봤을 때 단기간 내에는 완제품보다야 못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브랜드의 브랜드 패키징을 하면서 가늘고 길게 가면 전망이 좋더라고요.”살짝 미소를 띤 민시영이 진지하게 생각을 풀어내자 민상철은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칭찬했다.“시영이 네가 비즈니스에 소질이 있구나.”민시영의 얼굴에 더욱 환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민상철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만약 시영이가 남자애였다면 나도 회사 일에서 빨리 손을 뗐을 텐데.”그 말과 함께 민시영의 얼굴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때 민시영이 자기 아들의 기회를 모두 채가 불만을 품고 있던 강수연이 마침 기회를 잡고 끼어들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게다가 나이도 있는데 하루빨리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제 조카 중에 강민우이라는 애가 있는데 요즘 마침 회사 경영에 돌입했거든요
나무그늘 아래에 있던 권하윤이 덤덤하게 대답했다.“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게 제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하긴, 할아버지가 하윤 씨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아마 도준 오빠랑 관련되었을 거예요.”권하윤의 묵인에 이시영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할아버지도 참 종잡을 수 없다니까요. 아마 연세가 드셔서 이제 마음도 약해지셨나 봐요.”들어보니 의아했다.집안에 추문이 생겼는데 자기를 놓아준 것도 모자라 손자와 결혼까지 시키려 하다니.그건 진짜 접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없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권하윤은 가던 걸음을 멈췄다.“솔직히 저도 조금 의아해요. 시영 언니가 저를 도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민시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 일은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그 사이 하윤 씨도 조심해요. 이 일은 수소문하는 대로 알려줄게요.”“고마워요.”민시영은 싱긋 웃으며 권하윤의 팔짱을 끼더니 농담조로 말했다.“고마워할 거 없어요. 나중에 결혼식에서 나한테 술이나 따라 줘요.”“술이요?”권하윤은 순간 흠칫했다.하지만 민시영은 그런 권하윤의 속마음을 모르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몰랐어요? 새색시는 시가댁 사람들한테 술 한 잔씩 권해야 하잖아요. 다행히 우리 집에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술 깨는 약이라도 준비해 둬요. 결혼식 시작 전에 취하지 말고.”“모든 분께 권해야 하나요?”살짝 놀란 권하윤의 반응에 민시영은 재밌다는 듯 눈을 찡긋거렸다.“네, 한 명도 빠짐없이. 물론 도준 오빠도 포함이에요.”‘응? 왜 멍해 있지? 설마 도준 오빠가 난처하게 굴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갑자기 든 생각에 민시영은 얼른 설명을 보탰다.“걱정하지 마요. 하윤 씨가 권하는 술 도준 오빠가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러면 할아버지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그렇다면 다행이네요…….”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희미한 목소리
욕실 안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권하윤은 생각이 복잡해졌다.하지만 얼마 안 되는 사이, 침대 옆이 웊푹 파이더니 민도준이 옆에 누워버렸다.그러다가 여전히 또렷한 권하윤의 눈을 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왜 아직도 안 자? 나 기다린 거야?”남자의 품에 안긴 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그 대답에 민도준은 웃음을 자아냈다.“오늘 왜 이렇게 착해?”권하윤은 시선을 내리깔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왔어요?”“하윤 씨가 들떠서 혼자서 잠 못 이룰까 봐 왔지.”부드러운 말투에 권하윤의 마음은 점차 불편해졌다.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제가 애도 아니고.”“비슷하지.”민도준은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이보다도 손이 더 많이 가긴 해. 때리지도 못하고 꾸짖지도 못하고 달래기만 해야 하잖아.”남자의 말에 권하윤의 눈시울은 왠지 모르게 점점 촉촉해지더니 눈가에 고이다가 끝내 또르르 흘러내렸다.그 촉촉함이 손에 느껴지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이것 봐.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또 울기나 하고. 여자는 물로 만들어졌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어디 봐, 물이 어디에 제일 많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게 가까이 와 봐.”“아-”권하윤은 거절할 힘도 없었다.점차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 가자 권하윤은 민승현이 옆 방에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얼른 민도준의 팔을 꽉 잡았다.“옆 방에 사람 있어요.”“응, 그러니까 소리 작게 내.”뜨거운 입술이 점차 물의 원천을 찾는다는 핑계로 권하윤의 몸 위를 이리저리 훑었다.며칠 동안 떨어져 지낸 터라 두 사람은 점차 걷잡을 수 없었다.도중에 민도준은 마지못해 권하윤의 입을 막더니 낮은 웃음을 지어내며 밭은 숨을 쉬었다.“자기야, 계속 소리 내다간 사람들 깨겠어.”하지만 이미 반쯤 넋이 나간 권하윤은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저 작게 흐느낄 뿐.어쩌면 이럴 때만 권하윤은 자기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