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권씨 가문은 사람들 몰래 해서는 안 될 짓을 수도없이 해온 게 틀림없다. 더욱이 그런 일을 많이 했으니 겁이 났을테고 조 사장과 모종의 거래를 해 뒤처리를 부탁했을 거다.그리고 보름 전이라면 마침 권희연이 권미란에게 떠밀려 조 사장을 접대한 그때와 일치하다.‘어쩐지 조 사장과 급하게 관계 회복을 했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던 거였네.’자료를 많이 모을수록 권하윤은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문제도 따랐다.권씨 가문의 일이 터진다면 그녀가 했던 일은 언젠가 권미란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러면 그녀 손에 잡혀 있는 가족들이 위험할 수 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권하윤은 갑자기 대담한 계획을 떠올렸다. 경성이 복잡한 틈을 타 해외에 오빠를 찾으러 가려는 계획.권씨 가문 사람들이 사건을 수습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면 그녀를 주시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니 먼저 해외로 가서 다음 계획을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더욱이 이틀 뒤 민도준의 약혼식 전까지 떠나지 않으면 공태준과 마주칠 수 있으니 말이다.‘공태준이 내 정체를 까발리기라도 하면 나 절대 도망치지 못해.’이런 생각이 들기 바쁘게 그녀는 최수인에게 전화했다.“이게 누구에요? 우리 예쁜 윤이 씨가 웬일로 전화를 다 주고? 민도준 걔가 약혼한다니까 이제 겨우 제 차례가 온 거예요?”“저 편하게 지내고 싶거든요.”“도준이 곁을 떠나 나한테 오는 게 얼마나 좋아요.”권하윤은 그와 쓸데없는 얘기를 할 겨를이 없는지라 얼른 진지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저기, 최수인 씨가 인맥 하나는 넓잖아요. 혹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방법 알아요?”“당연히 알죠.”최수인은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재밌다는 듯 되물었다.“혹시 도망치려는 거예요?”“뭐…… 비슷해요.”그 대답에 최수인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렇다면 당연히 도와야죠. 도준이 걔가 윤이 씨가 도망친 걸 알게 된다면, 하하하…… 그 표정 너무 보고 싶네요.”“제가 만
권하윤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권희연이 갑자기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하윤아, 아무리 그래도 너는 민씨 집안 며느리이니 앞에 나서는 건 내가 할게.”권하윤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그게 무슨 뜻이야? 언니가 나서겠다니?”“이런 일들은 집안 식구 중 누군가가 직접 나서서 말해야 더 설득력이 있어.”그제야 권희연이 뭘 하려는 지 눈치챈 권하윤은 몇 초간 멍해 있더니 믿기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언니 설마 직접 나서서 권씨 가문을 고발하겠다는 뜻이야?”“응.”권희연의 표정은 여전히 물처럼 부드러웠지만 눈빛만큼은 이미 수많은 고난을 겪고 난 것처럼 태연했다.“이로써 작별 인사 하는 셈 치려고. 권씨 가문과 어…… 권 사모님한테…….”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삼키는 순간 권희연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지난 20년 동안 어머니의 인정을 얻으려고 해왔던 희생들이 너무 우스워졌고 허무했다.끝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자 권하윤은 이내 휴지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휴지를 꺼내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티슈를 케이스째로 가져가더니 두 장을 뽑아내 권희연의 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희연 씨, 눈물 떨어져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동에 젖어 있던 권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권희연은 오히려 그의 행동에 일부러 삐진 듯 투덜댔다.“왜요? 제 눈물 때문에 이불이 더러워질까 봐 그래요?”로건은 그의 말에 놀랐는지 몸을 곧게 세우며 강력하게 부인했다.“아니요. 저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저는…….”하지만 말로 설명을 할 수 없자 이내 그녀의 울음을 부추겼다.“희연 씨 마음껏 우세요! 속 시원할 때까지 울어도 돼요!”권희연은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휴지를 받아 눈가를 닦았다.“저 안 울 거예요. 제가 왜 울어요?”살짝 애교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권하윤은 의외라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병실을 떠나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봤다.머리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헤실 웃는 로건의 옆에 거울을 들고
권하윤은 그의 말에 갑자기 경계했다.‘안 온다고?’솔직히 민도준은 지금껏 오거나 안 온다는 걸 그녀에게 미리 말했던 적이 없다.하지만 마음속으로 다른 일을 꾸미고 있어서 그런지 민도준의 한마디에 그녀는 한참 동안 끙끙댔다.그런데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자면 모레 약혼이 있으니 내일 바쁜 건 당연했다.더욱이 그녀가 도망칠 때 민도준이 없다면 오히려 더 편리할 뿐이다.‘하지만…….’권하윤은 고개를 돌려 어둠에 가려진 민도준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만약 내일 안 오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겠네.’아마 앞으로 두 사람은 다시는 이처럼 같은 침대에 누워있지 못할 거다.그렇게 한참 멍하니 있을 때, 남자의 팔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꽉 조였다.“잠이 안 와?”곧 헤어질 때가 와서인지 권하윤은 모처럼 순종적으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긴 머리카락은 그의 어깨를 따라 축 흘러내려 침대 위에 흐트러졌다.“네.”짤막한 대답을 한 뒤 권하윤은 민도준이 또 다른 생각을 할까 봐 얼른 말을 보탰다.“내일 성공하지 못할까 봐 겁나서요.”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윤 씨도 겁날 때가 있어?”“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도준 씨처럼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줄 아세요?”민도준은 그녀의 심술 섞인 한 마디에 피식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꼬집었다.이윽고 그녀가 간지럼을 타며 피하려 할 때 다시 품속으로 끌어들였다.“난 하윤 씨가 겁 없는 줄 알았는데.”“아니거든요.”“아니라고?”“겁 없이 행동하는 건……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예요…….”권하윤은 잠이 밀려왔는지 뒷말을 흐렸다. 오늘 하루 너무 지쳤는지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비몽사몽한 상황에서 그녀의 귓가에는 남자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다음날, 권하윤이 눈을 떠보니 시계는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놀란 나머지 허둥지둥 준비를 마치고 옷을 입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녀는 곧바로 문을
권씨 저택에서 나온 권하윤은 곧바로 여고를 찾아갔다.그렇지 않아도 요즘 매일 찾아오는지라 그녀를 본 권효은은 놀란 기색이 전혀 없었다.“오늘 신입생 심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좀 바빠서 그러니 오늘은 네가 따라가 봐.”“네, 언니.”그녀가 왜 따라갈 수 없는지 알고 있었기에 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대화가 끝났는데도 권하윤이 여전히 떠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권효은은 이내 인내심이 바닥난 듯 입을 열었다.“또 무슨 일 있어?”“전에 저와 가족이 재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 지 벌써 며칠이 지나서요…….”권효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네 가족을 요양원에서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이모가 눈치챌까 봐 아무래도 기회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의 대답에 권하윤은 놀랍지도 않았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권효은이나 권미란이나 모두 같은 부류 사람이니까.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약점을 쉽게 놓칠 리가 없었다.다행히 권하윤은 그녀에게 의존하려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기에 그저 일부러 잔뜩 서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낮게 중얼거렸다.“언니 말대로 할게요.”“착하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미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꼭 도와줄게. 먼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해야 할 일만 생각해.”“네. 믿을게요. 그런데…… 저 내일 가족 보러 가고 싶은데 언니가 대신 말 좀 잘해줄 수 있어요? 저 정말 가족들 걱정돼요.”이미 한번 거절한 권효은은 작은 요구마저 거절할 수 없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뭐 큰일이라고. 내가 요양원 쪽이 미리 말해둘 테니 네 출입을 막지 않을 거야.”심지어 그녀를 회유하기 위해서인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전화했다.이에 권하윤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야 사무실을 떠났다.-어느덧 오후가 되어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신입생 심사를 하러 간 권하윤은 그 자리에서 최설아를 만났다. 하지만 어디에도 임주빈은 없었다.이에 남몰래 그녀에게 어디에 있는지 문자를 보냈더니 [쥐구멍]이라는 답변을 받게 되
이미 안을 이 잡듯 헤집은 장 형사는 권하윤의 말에 이내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다시 방 하나하나, 심지어 모든 벽면까지 두드리며 수색하기 시작했다.방마다 일상생활에서 보지 못할 법한 잔인한 도구들이 즐비해 있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한다면 결과는 그저 모든 사람을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권하윤도 그 사실을 앓았기에 차 안에서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솔직히 이번 체포에 성공한 건 상대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기습한 덕분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을 끌면 끌수록 권씨 가문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더 많아질 테고 일이 더 복잡해질 거다.게다가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불안해 임주빈에게 한번 또 한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는 계속 통하지 않았다.한편 장 형사도 권하윤의 재촉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갑자기 클럽 안쪽에서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건물 내부에 있던 경찰들은 두리번거리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고 그러던 그때 또다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한 형사가 머리 위를 가리키며 다급히 소리쳤다.“팀장님!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다락방이 있습니다!”시간을 오래 끈 바람에 밖에 정보가 새어 나갈 우려가 있어 형사들은 꼼꼼히 입구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이에 장 형사는 결심을 내린 듯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폭파시켜!요란한 폭파 소리는 건물 밖에까지 전해졌다.이런 폭파는 그저 벽을 허물기 위함이기에 적당한 양의 화약만 사용되었지만 권하윤은 그 소리에 학교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을지 걱정했다.그로부터 몇 분 뒤, 형사들에게 들려 밖으로 나오는 임주빈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혔다.임주빈의 검은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어 있었고 흰 원피스는 피에 젖어 원래의 색상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그녀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또 여러 명의 학생이 함께 들려 나왔다.그녀들의 상태 또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처참했지만 잔뜩 경악한 표정으로 차에서 경찰의 제지를 당하며 버둥대는 권효은을 보
권하윤 혼자서 당연히 두 남자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더욱이 품에 임주빈을 안고 있은 탓에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차로 끌려갔다.하지만 차 문이 닫히려는 순간 커다란 손 하나가 문을 막아서며 확 열어젖혔다.머리에 검은 마스크를 뒤집어쓴 남자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분노한 듯 고개를 쑥 내밀었다.“대체 어떤 놈이 겁도 없이…… 아!”이윽고 반쯤 내민 그의 머리는 하마터면 문에 끼여 박살 날 뻔했다.눈 깜짝할 새에 코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그는 뼈가 없는 듯 차 문을 통해 주르륵 밖으로 흘러나와 인사불성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민도준은 신발 끝에 묻은 피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남자의 머리에 있는 마스크에 쓱쓱 닦으며 중얼거렸다.“쯧,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직도 이런 걸 머리에 쓰고 다니는 거야?”이윽고 차 안에서 웬 여자를 안고 있는 권하윤을 본 그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이건 또 뭐야?”민도준이 갑자기 찾아왔다는 놀라움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멍하니 있을 때 그가 갑자기 권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내려와.”그의 동작에 권하윤은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임주빈을 데리고 내려가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가 내리려고 하기 바쁘게 임주빈이 그녀를 끌어당겼다.민도준의 잔인한 모습에 이미 반쯤 넋이 나간 그녀는 권하윤이 내려가는 건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위험하니 나가지 마요.”민도준은 그 상황에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권하윤을 돌아봤다.“뭐야? 내가 나쁜 사람 취급당하는데 설명도 안 하는 거야?”권하윤은 이내 심호흡하더니 입을 열었다.“이분은 민 사장님이셔.”“!”그러던 그때, 로건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미 상황을 마무리 지은 장 형사가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민 사장님, 고생하셨어요.”민도준은 씩 웃으며 장 형사가 내민 손을 잡았다.“공민으로써 응당 해야 할 일인 걸요.”“아, 네…….”너스레를 떠는 민도준의 대답에 장 형사는 갑갑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써 바
낮에 권효은의 명령이 있은 덕에 권하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어머니를 본 순간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라는 부름 소리에도 약간의 콧소리가 담겨 있었다.딸의 목소리를 들은 부녀의 눈에서도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딸.”하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딸을 부르며 고개를 돌린 순간 언제 울었냐는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양현숙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권하윤의 손을 잡은 채 이리저리 살피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여위었네. 왜 이렇게 여위었어?”어머니의 눈길은 언제나 사람의 가장 여린 부분을 건드리곤 한다. 그 때문인지 속전속결로 계획을 말하려던 권하윤도 눈물범벅이 된 채 한참을 울었다.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겨우 진정한 그녀는 찾아온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양현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건 너무 위험해. 만약 발각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걱정하지 마요. 지금 권씨 가문은 일을 수습하느라 우리 상관할 겨를 없어요. 게다가 저 이미 보든 준비 마쳤으니까 내일 아침 5시 이 주변의 마을로 이동하면 전용기가 우리를 오빠한테로 데려다 줄 거예요.”“그래도…….”“걱정할 거 없다잖아요.”그때 마침 문 앞에서 듣고 있던 어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이곳에서 저 하루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고요.”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포동포동한 얼굴에 입을 삐죽 내민 채로 아이는 불만을 표하는 듯 투덜댔다.“언니는 밖에서 즐겁게 지내서 좋겠지만 난 진짜 답답해 죽을 것 같다고.”“으이그.”동생의 푸념에 권하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하지만 동생이 늘 제멋대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은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오히려 양현숙이 권하윤더러 혼자 가족을 책임지게 했다는 죄책감에 이시영에게 버럭 화를 냈다.“시영, 너 그만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헛소리 하기만 해봐!”하지만 지금껏 부드럽기만 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화를 내자 이시영은 얼굴을 붉히며 끝까지 반항했다.“내가
권희연이 던진 마지막 한 방에 지금껏 병원에 입원했던 기록, 그리고 친자 확인서 등 자료들은 권씨 가문의 마지막 희망까지 모조리 꺼버렸다.하루아침에 권씨 가문은 재벌가에서 사람마다 손가락질하는 길가의 쥐새끼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가문 명의로 된 사업들은 모두 가압류되었고 관련자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며 서원 여고 역시 폐쇄되었다.이러한 변화에 골치 아파진 사람은 권씨 집안사람들뿐만 아니라 또 있었다.병원 VIP 병실에서 이 사실을 접한 강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선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젠장! 어쩜 그 애는 도움이 되지를 않아? 권씨 가문이 무너지는 건 상관없다지만 그 집 애를 며느리로 들이려 했던 우리 집은 어떻게 머리를 들고 다니겠어? 그렇게 더러운 집안에서 자랐으니 권하윤도 얼마나 깨끗하겠어? 생각할수록 구역질이 다 나네!”한참 동안 떠들었지만 아들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강수연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려 아무 말도 없는 민승현을 바라봤다.“승현아, 너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이 흙탕물에서 빠져나와야 할 거 아니니! 얼른 방법을 생각해! 만약 다른 사람이 너도 권씨 가문의 그 더러운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려고 그래?”말하면 말할수록 그녀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안돼. 내가 당장 네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파혼부터 하자. 그리고 대외로는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계속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되잖아.”“엄마.”민승현은 눈을 들어 강수연을 바라봤다.“권씨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이상하다고?”하긴, 그래도 재벌가인데 아무리 사건 사고가 터졌다 하더라도 지금껏 알고 지낸 인맥이 있을 텐데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했다.하지만 강수연은 그게 뭐가 됐든 관심이 없었다.“아마 건드리지 말아야 할 누군가를 건드렸을지도 모르지.”“맞아요. 누군가를 건드려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거예요.”민승현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그런 아들을 보자 강수연은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