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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폭풍우 직전의 고요함

성은우의 일이 없었다면 권하윤은 그나마 용기라도 조금 가질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이미 한 그녀로서는 민도준에게 피도 눈물도 심지어 연민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미루는 것뿐이었다.

본인이 죽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가족은 살아야 하니까.

이 생각에 권하윤은 민도준을 꼭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저를 믿지 못하겠다면 손 놓으세요.”

공기가 삽시간 고요해지더니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왜? 이대로 죽으려고? 아니면 넘어가 달라고 협박하는 건가?”

한참 동안 긴장한 권하윤은 마치 오랜 시간 당겨져 탄력을 잃은 고무줄처럼 축 늘어진 채로 눈을 감았다.

“도준 씨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죠.”

정적이 다시 밀려왔다.

어둠이 시간을 삼켜 몇분이 흘렀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손을 놓아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권하윤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절벽 밖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 찰나, 민도준은 그녀를 잡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이번에 그녀가 선 위치는 안쪽이었다.

그렇게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섰을 때, 권하윤은 그제야 식은땀에 등이 흥건하게 젖었다는 걸 자각했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그녀는 자기 몸에 떨어진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어두워진 하늘 때문에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권하윤은 오히려 민도준을 직면할 필요 없다는 사실에 적절한 때 내려진 이 어둠이 감사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숨을 돌린 권하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우리 어떻게 내려가요?”

“내려갈 필요 뭐 있어? 여기 좋잖아.”

수려한 풍경에 아름답기만 하던 산은 어둠이 깃들자 음산하게 변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여기서 묵어요?”

민도준은 매끄럽고 평평한 돌 위에 털썩 앉으며 권하윤을 바라봤다.

“이리 와.”

그의 모습이 권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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