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시영이 이렇게 말한 건 아까의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게다가 평소에도 가끔 농담을 섞어 말하는 터라 과하지도 실례가 되지도 않았다.하지만 말수가 적은 고은지도 웬 영문인지 입을 열었다.“부탁드립니다.”그 한마디에 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입 한번 여는 게 쉽지 않네.”문을 나서던 권하윤은 마침 그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이윽고 입꼬리를 올리며 문을 닫은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민도준의 시선을 막아버렸다.그 시각 이미 몇 걸음 걸어간 민승현은 꾸물대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그녀를 보자 참지 못하고 홱 잡아끌었다.“서둘러. 뭘 그렇게 꾸물대?”그는 권하윤을 잡은 채로 레스토랑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다급히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아까 전 권씨 저택 앞에서 기다릴 때도 귀찮고 조급했다면 지금은 조급할 뿐만 아니라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초조하고 두렵기까지 했다.하지만 그의 행동에 권하윤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그를 밀어냈다.“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으니까 여기에서 헤어져.”마지막 단계만 남은 계획이 이대로 무산되게 둘 수 없었기에 민승현은 당연히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안 돼. 너 무조건 나랑 같이 가야 해!”“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다고 이미 말도 해뒀어. 너 혼자 돌아가.”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그녀를 보자 권하유은 그가 무슨 일을 꾸민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아 곧바로 몸을 틀었다.“안된다니까! 거기 서!”“민승현! 너 어디 아파?”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약효가 돌았는지 권하윤은 눈앞이 흐릿해졌다.게다가 머리는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무거웠으며 발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너 괜찮아?”민승현은 그 기회를 틈타 그녀를 걱정하는 듯 조수석에 밀어 넣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그 짧은 찰나 권하윤은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분명 네 팔다리가 몸에 붙어 있었지만 그녀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몸속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마치 명을 재촉하는 부적처럼 육체의 고통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민승현에게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졌다.하지만 등이 밟힌 터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저 눈으로 곁을 힐끗거리며 민도준과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도준 형…… 콜록콜록…… 지금 뭐 하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마치 따져 묻는 듯 분노에 차 있었다.‘분명 나도 같은 민씨 가문 사람인데 왜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데!’만약 민승현의 앞에 있는 사람이 민씨 가문 다른 식구들이라면 그들이 가족의 정을 봐서라도 그의 설명을 들어줄 테지만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하필이면 민도준이었다.때문에 대답대신 돌아오는 건 발에 실린 힘이 더 강해진 것뿐이었다.그리고 곧이어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무리 그래도 지금껏 호의호식하며 도련님 대접을 받고 또 강수연이 아들이랍시고 매사 그를 위해 모든 일을 해결해 줘 왔기에 민승현은 이런 고통을 견딜 리가 없었다.이윽고 지독한 고통에 그는 끝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눈물을 흘렸다.“아! 아파! 이거 놔!”“어디가 아픈데?”민도준은 조금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의아한 듯 되묻더니 발로 민승현의 허리를 꾹 눌렀다.“여기?”“아! 살려 줘!”그러던 그때, 민승현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는 바람에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약병이 밖으로 빠져나왔다.곧이어 민도준이 병을 주워 들고 한참을 관찰하더니 아직 반 정도 남은 약을 보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 아직 많이 남았네? 이런 걸 떨어트리다니 낭비 아니야?”민승현은 상대가 뭘 하려는 지 깨닫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쯧.”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의 손이 그의 턱을 콱 잡았다.“읍!”짤막한 비명과 함께 턱이 빠지는 바람에 민승현은 더 이상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고통스러운 신음만 내뱉었다.이윽고 닫히지 않는 입안으로 약이 흘러 들어갔고 병이 바닥났다.그제야 민도준은 만족한 듯 일어서며 손을 툭툭 털더니 옆에 떨어진 민승현의 핸드폰을 발로 차버렸다.그리고 비로소 조
병원.“검사 결과 환자분께서 임신을 하기 위해 배란촉진제를 투여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성분을 봤을 때 국내에서 생산된 약이 아니라 부작용도 확인이 어렵고요. 게다가 곧바로 자극성 약물을 복용한 바람에 이상 반응이 생겨 자궁 경련을 유발한 겁니다.”한참 동안 설명하던 여의사는 안타까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확인된 성분만 봤을 때 임신을 촉진할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많고 환자분의 몸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성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 촉진제까지 먹었으니 목숨을 건진 게 천만다행이에요.”고통스러운 듯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평소와 달리 여의사의 질책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언제 깨어날 수 있나요?”“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약물을 함께 복용한 것에 대한 임상 사례가 없다 보니 환자분 몸이 버텨주는 데에 달렸습니다.”“음-”때마침 들려오는 권하윤의 신음소리에 민도준은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검사의 편리를 위해 이미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권하윤은 헐렁한 소매 사이로 가느다란 손목을 빼내 자기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고 머리는 어느새 베개에서 미끄러져 팔 안에 파묻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극도로 불안한 듯한 자세였다.분명 고통이 극에 달했을 법한데도 그녀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파도 조심성을 잃지 않는 모습.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운 몸 때문에 입까지 말라 침을 넘길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한참 지켜보던 민도준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민 사장님?”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권미란의 목소리에는 조심성이 가득 묻어있었다.그때 민도준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빙빙 돌리며 건방진 목소리로 대답했다.“권 여사님, 바쁘신가요?”-권하윤이 깨어났을 때 주위는 온통 캄캄했다.막 움직이려 했을 때 가슴에 가로 놓인 팔이 꽉 누르고 있어 꿈쩍도 할
권하윤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이내 부정했다.‘아니야, 아닐 거야. 권미란이 이렇게 쉽게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말했을 리 없어.’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눈을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희 어머니랑 무슨 대화 했는데요?”“맞혀봐.”“설마 우리의 일은 아니겠죠?”“음흠.”씩 웃으며 말하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혀왔다. 그녀는 심지어 권미란이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권희연을 열심히 교육하여 소문까지 만들어 냈는데도 민도준을 꿰어내지 못했는데 오히려 가짜인 그녀가 민도준의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것보다도 권미란이 이제 자기와 민도준의 관계를 알았으니 자기를 이용해 민도준에게서 이것저것 떼어내려 할 거라는 게 더 걱정스러웠다.권미란의 손에 가족이 잡혀 있는 이상 그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이것 또한 그녀가 민도준과의 관계를 권미란한테 들키지 않으려 애쓴 이유다.자유를 얻기 전에 그녀가 쥐고 있는 패는 오히려 권미란이 그녀를 부려 먹을 이유가 될 테니까.권하윤의 저촉된 정서를 단번에 눈치챈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장난쳤다.“어린 나이에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아는 게 그렇게 무서워?”“그게…….”잠깐 머뭇거리던 권하윤은 끝내 입을 열었다.“권씨 가문에서 저를 내세워 도준 씨한테 뭐라도 뜯어낼까 봐 그래요.”그녀의 대답이 재밌었는지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문지르더니 웃음기 섞인 낮은 목소리를 뱉어냈다.“하윤 씨도 그랬으면서 권씨 가문 하나 늘어난다고 달라질 것 없어.”“…….”그의 말에 놀란 권하윤은 호박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런 그녀의 멍한 표정이 귀여웠는지 민도준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마구 흐트러뜨렸다.“됐어, 놀란 것 좀 봐. 이제 놀리지 않을게.”그러더니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그저 하윤 씨가 마음에 들었다고 알아서 하라고 했어.”“그것뿐이었다고요?”“당연히 아니지. 그 외에 하
꾹 눌린 머리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민도준의 가슴에 얼굴을 바싹 붙인 채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 우리의 관계는 도준 씨가 결정한다던 말 잊지 않았어요.”서늘하고도 약한 기류가 남자의 턱에 흩뿌려져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졌다.“음?”살짝 올라간 말꼬리는 약간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그러니까 그 말은 고은지 씨를 동정한다는 뜻인가?”“저한테 다른 사람을 동정할 자격이 있기나 한가요?”‘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을 동정한다니 우습네.’“그래?”민도준은 말끝을 늘어트리며 권하윤의 등에 놓인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나랑 헤어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고은지 씨를 동정하는 것도 아니면…… 내가 고은지 씨랑 결혼하는 게 싫은 거야? 응? 제수씨?”등에서 느껴지는 힘이 분명 부드러운 편이었지만 권하윤은 매우 불편했다.이윽고 민도준이 물어보는 순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부인했다.“아니요. 도준 씨가 누구랑 결혼하든 도준 씨 자유죠.”“음, 내 자유인 건 맞지.”“…….”“그런데 하윤 씨가 만약 울며불며 난리 치면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있는데.”허리에 닿은 손이 주물럭거리는 사이 권하윤의 눈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제 주제는 누구보다도 잘 아니 두 분 절대 방해 안 해요.”권하윤이 말을 꺼내자 공기는 순간 고요해지더니 한참 뒤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주제를 잘 안다면 다행이고. 이번 달 말 나랑 고은지 씨랑 약혼할 건데 할아버지가 나더러 날짜를 고르라고 하네. 하윤 씨도 나를 도와 날짜 좀 골라주는 건 어때? 23일과 30일 중 어느 날이 좋을까?”그녀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순간 민도준의 농담 섞인 말에 고은지와 결혼하지 말라고 대답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날짜까지 정해졌는데 당연히 그녀의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여상스러운 말투로
“네?”너무 놀란 나머지 권하윤은 순간 심란해졌다.“해외라고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죠?”권미란은 그녀의 예의 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이어 그녀에게 맡길 일을 생각해서 꾹 눌러 참았다.“전에 모셔 온 의료진들이 말하길 너의 오빠 다리가 완전히 감각을 잃은 건 아니라더구나. 해외 실험실에서 치료받다 보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했거든.”오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말에 권하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권미란이 자기 오빠에게 좋은 치료환경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아마 그녀가 민도준이라는 뒷배를 두면 자기의 공제를 벗어날까 봐 오빠와 접촉하지 못하게 격리해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거다.오빠가 불편한 몸으로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권하윤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이윽고 눈을 내리깔며 애써 감정을 숨긴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바쁘신 와중에 저희 가족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알면 됐다.”권미란은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그녀가 여전히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확인했는지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아졌느냐?”권하윤은 민도준이 대체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민 사장님이 너한테 약까지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잠깐 멈칫한 권하윤은 그제야 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했을 거라는 걸 알아채고는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네,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민 사장님은 승현이의 형이신데 그런 일을 하다니. 다행히 가정의가 저한테 놓은 주사와 배척반응을 일으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녀의 말에 권미란은 난감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의 뜻을 내비쳤다.“물론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민 사장님이 너를 마음에 들
예전 같으면 권하윤은 그런 물음은 절대 묻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권효은도 그녀를 다리로 이용하려 하기에 분명 뭔가 털어놓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잠깐 멈칫하던 권효은은 끝내 입을 열었다.“그냥 간단한 운수업이야.”‘운수업…….’‘평범한 물건을 운송하려 한다면 권씨 가문 자금과 능력으로 충분할 텐데, 왜 하필 도준 씨를 거치려는 거지?’“뭘 운송하는데요?”끝내 참지 못하고 뱉어낸 그녀의 물음에 권효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명령했다.“먼저 민 사장님 태도를 살핀 다음 정말로 도와줄 마음이 있는 것 같으면 움직여.”“알았어요. 그러면 저 먼저 가볼게요.”그녀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권하윤은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하지만 권하윤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권효은이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너, 권하윤 맞아?”“그게 무슨 말이에요?”흠칫 놀라 되묻는 말에 권효은은 어느새 여상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왔다.“아니야, 나가 봐.”사무실을 나선 권하윤은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애초에 권미란은 그녀를 비밀리에 경성으로 데려온 데다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에게 행동 하나하나를 가르쳐줬었다.그 일은 심지어 권희연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지금껏 그녀를 진짜 여동생으로 생각하는 거고.하지만 권희연은 그렇다 쳐도 권씨 가문 후계자인 권효은은 당연히 내막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까의 한마디로 그녀도 모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렇다는 건 권효은과 권미란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는 걸 말하는 건가?’피어오르는 의심을 던져버린 권하윤은 여고를 떠난 뒤 과일과 디저트를 사 들고 권희연을 보러 병원을 향했다.“희연 언니, 나 왔어…….”그녀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산만한 등과 그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권희연이었다.심지어 로건이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병상에 기대 책을 보고 있는 권희연과 로건의 손에 쥐어진 털실
광선을 등진 병실에 복도의 햇빛이 살짝 비집고 들어왔다. 물론 곤혹스러워하는 로건의 얼굴까지 함께 말이다.그의 표정을 보면 탕수육과 깐풍기 중 뭘 먹을지 고르는 일이 아주 중차대한 일인 것만 같았다.심지어 대답을 들으면 바로 식당으로 달려갈 것만 같은 결의가 보였다. 하지만 그때, 권희연이 갑자기 얼굴을 감싸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갑작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로건은 많이 놀라 허둥댔지만 여전히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애먼 문짝만 손톱으로 긁어댔다.“왜 그러세요? 혹시 탕수육과 깐풍기가 다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럴 리가 없는데, 어제 점심에는 분명 맛있다고 했잖아요…….”점수를 딸 좋은 기회에도 바보처럼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로건을 보자 권하윤은 한심한 듯 탄성을 자아내더니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안으로 들어와 말하면 안 돼요?”“아? 들어가도 돼요? 알겠어요.”로건은 얼른 병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희연 씨, 울지 마세요.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닭갈비도 있고, 닭볶음탕, 양갈비, 그리고 제육볶음도 있어요…….”메뉴를 하나하나 열거하는 로건을 보고 있자니 권하윤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다행히 더 사납게 우는 권희연의 모습에서 이게 아니라는 걸 알아챈 로건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권희연을 보니 그의 마음은 답답하고 괴로웠다.그런 느낌은 민도준의 주먹에 열 대 정도 맞았을 때보다 더 아팠다.이윽고 그의 몸은 머리보다 먼저 권희연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더니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난 누구? 여긴 어디? 나 지금 권희연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이상한 생각이 난무하던 그때 권희연이 갑자기 울면서 몸부림 쳐댔다.“저 만지지 마요, 더러워요.”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코가 찡했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위로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로건이 손을 풀었다.그것이 서러웠는지 권희연의 흐느낌은 더 심해졌다. 두 눈은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