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장미꽃으로 장식된 테이블에 놓고 과일 주스를 따르는 민승현의 모습을 본 권하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의아한 듯 퉁명스럽게 던진 말에 민승현은 고개를 돌려 권하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그의 눈에는 분노와 한이 스쳐 지나갔다가 이내 가라앉혔다.“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아침을 차렸으니 얼른 와서 먹어.”“네가? 나를 위해 준비했다고? 너 괜찮아?”권하윤의 반응에 화가 치밀어 오른 민승현은 버럭 소리쳤다.“내가 계속 집에 안 들어온다고 했으면서 다시 들어와 아침까지 차려줬는데 이런 태도야?”하지만 그의 말에 권하윤은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내가 어떤 태도였으면 좋겠는데? 평소에 관심도 없이 밖에서 술 마시고 여자 끼고 놀다가…….”옆에 뜯어놓은 배달 음식 포장지를 힐끗 바라보더니 그녀는 말을 이었다.“배달 음식을 아침이랍시고 준비해 준 거에 무릎 꿇고 절이라도 해야 해?”그녀는 민승현이 당연히 그녀의 말에 여느 때처럼 호통을 치며 문을 부수고 나갈 줄 알았는데 민승현은 오히려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화를 참고 있었다.그리고 몇 초 뒤.“내가 전에 널 너무 냉대했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야. 먼저 앉아서 밥 먹어.”민승현의 이러한 변화가 권하윤은 너무 놀라워 귀신이라도 들린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하지만 어찌 됐든 민시옇은 명의상으로 그녀의 약혼남이었기에 권씨 집안의 위험을 해결하지 않은 한 여전히 다섯째 작은 사모님 타이틀이 필요했다.때문에 권하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올라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올게.”그 순간 민승현은 권하윤의 슬립원피스에 가려진 허리를 보며 음침하게 눈을 접었다.식탁에서 먹는 아침은 어색할 만큼 조용했다.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게 얼마 만인지 가늠도 안 갈 지경이었으니까.게다가 민승현은 권하윤이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그녀는 오늘 베이지색 목폴라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섹시한 차림은 아니었
[다음번엔 꼭 그럴게.]“…….”문자를 삭제하기 바쁘게 차는 어느새 권씨 저택에 도착했다.민승현이 당연히 자기를 이곳에 내려주고 떠나갈 줄 알았지만 따라 내리는 걸 보고 권하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랑 같이 들어가게?”“약혼한 사이에 내가 들어가는 것도 안 돼?”그의 말에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집에 온 건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권미란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인데 민승현이 따라 들어가면 당연히 불편할 게 뻔했다.“너도 같이 들어가겠다면 내가 먼저 어머니한테 말해놓을게. 네가 왔는데 점심은 같이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아참, 그리고 할머니도 전에 너 보고 싶다던데 오늘 나랑 같이 할머니 뵈러 가는 건 어때?”일부러 이것저것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민승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어르신들을 만나는 것도 귀찮은 일인 데다 권씨 가문 같은 말단 재벌가에 예의를 차리며 대접하는 척해야 하는 것조차 귀찮고 가치가 없었으니 말이다.“됐어. 그걸 다 끝내려면 하루도 모자라겠네. 혼자 들어갔다가 나와, 밖에서 기다릴게.”권하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권미란은 집에 없었다. 그저 그녀의 검진을 맡을 사람만 집에 남겨뒀을 뿐,권씨 가문은 집안 여자들의 몸에 대해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했다.때문에 이런 검진도 권하윤은 처음 겪는 게 아니었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그저 어제 민도준이 너무 몰아붙여 가정의를 마주하기 껄끄럽고 어색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생리는 언제 끝났어요?”권하윤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대답했다.하지만 의사는 그 말을 듣자 다짜고짜 그녀에게 주사를 놓았다.뾰족한 바늘을 피부에 찔러넣으면서 의사는 아무 감정 없는 로봇처럼 말을 이어갔다.“이건 임신 확률을 높이는 주사예요. 이걸 맞으면 몸이 약간 불편하고 배와 허리가 아플 수 있는데 정상 반응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사모님께서 사흘에 한 번씩 임신할 때까지 맞으라고 하셨으니까 주기적으로 집에 오시고 여기 주의사항대로 잠자리를 가지면 임신에 도움이
민도준도 온다는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갑자기 묘해졌다.하지만 민승현의 반응은 권하윤보다 훨씬 컸다.이에 이상함을 느낀 민시영은 눈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내뱉었다.“뭐야? 도준 오빠가 온다니까 고양이 만난 쥐처럼 왜 그래? 이렇게 컸으면서 아직도 오빠가 무서워?”그저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민승현은 마침 꼬리라도 밟힌 듯 펄쩍 뛰며 반응했다.“누가 무섭대? 그저 놀랐을 뿐이야! 됐어, 얼른 들어가자.”말을 마친 민승현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민시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그 시각 권하윤도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이 일이 있은 뒤 레스토랑으로 들어간 네 사람의 분위기는 여전히 이상했다.다행히 민시영이 계속 대화를 이어간 덕에 분위기가 너무 싸해지지 않았을 뿐.하지만 대화 도중 권하윤은 민시영이 고은지와 약속을 잡고 함께 다닌 게 이번 한 번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하긴. 고은지야말로 민도준과 어울리는 진정한 재벌 집 아가씨이니 민시영이 그녀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당연했다. ‘나 같이 명분 없는 사람은 그저 옆으로 물러나야지 어쩌겠어.’그렇게 대화를 나눈 지도 약 반 시간 정도 지났는데 민도준이 여전히 얼굴을 비치지 않자 민시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도준 오빠가 또 우리 바람맞히려나 보네. 아니면 우리 먼저 음식부터 주문해요.”나머지 세 사람도 그녀의 말에 다른 의견이 없었다. 특히 민승현은 민도준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마치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듯 가벼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잠시 뒤, 웨이터가 어떤 음료를 주문하겠는지 물을 때 민시영은 권하윤을 바라보며 장난조로 말했다.“다섯째 숙모가 두 사람 곧 좋은 소식 있을 거라던데, 두 사람은 술 먹지 마.”“그래. 그럼 아무 음료나 시켜 줘.”민승현은 마음이 흔들린 듯 대충 얼버무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고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술집에서 알게 된 친
“도준 오빠, 왜 이제야 왔어?”민시영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난 또 바람맞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그럴 리가. 다들 모여있는데 와야지.”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은 민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던져버렸다.“탕”하는 소리에 놀란 권하윤은 심장이 쪼그라들어 미처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민시영이 잿빛이 된 민승현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 거기 승현이 자리야.”아까 그들 넷만 있을 때 권하윤의 왼쪽에 민승현, 오른쪽에 민시영이 앉았었는데 민도준이 갑자기 나타나 민승현의 자리를 꿰차는 바람에 왼쪽에 고은지 오른쪽에 권하윤이 앉은 셈이었다.다행히 원형 테이블이라서 고은지 옆에 앉았다고 볼 수도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민승현만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민시영의 말에 민도준은 그제야 발견한 듯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이런. 진작 말해주지. 그랬으면 여기 앉지 않았을 텐데.”하지만 내뱉은 말과는 달리 일어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다행히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민승현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옆에 놓인 주먹을 그러쥐며 참을 뿐이었다.“자리가 뭔 대수라고. 형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그는 말을 마친 뒤 권하윤의 오른쪽으로 걸어갔고 민시영이 옆으로 자리를 내준 덕에 그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지금껏 잘 대처하기만 하던 민시영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오늘 이런 자리를 만든 걸 후회했다.하지만 애써 표정을 유지한 채 웨이터를 불러 민도준의 입맛에 맞을 요리를 몇 가지 더 주문했다.그리고 그 시각 민시영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사람은 또 있었다. 민도준이 곁에 앉은 뒤로부터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진 권하윤은 멍하니 테이블을 쳐다보며 민도준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섰다.하지만 민도준의 담배 연기가 하필이면 자꾸만 그녀 쪽으로 불어와 코끝을 자극하는 바람에 쉽게 무시할 수
다른 사람의 귀에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었지만 민승현의 귀에는 거슬리기만 했다.하지만 대놓고 반박하지도 못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권하윤은 민승현이 뭔가 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와 동시에 민승현의 성격상으로 당장이라도 약혼을 엎으며 날뛰어야 할 텐데 계속 참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어색함이 민시영한테까지 전해지자 그녀는 어두운 표정의 민승현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느릿느릿 음식을 짚는 민도준을 번갈아 바라봤다.“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권하윤에게 암시를 보냈다.이에 권하윤도 곧바로 그녀를 뒤따랐다.“시영 언니, 저도 같이 가요.”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화장실 안에서 민시영은 권하윤의 손을 잡은 채 따져 물었다.“하윤 씨, 오늘 승현이와 도준 오빠가 너무 이상하던데 혹시 눈치챈 거예요?”“저도 잘 모르겠어요.”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고개를 젓는 권하윤을 보자 민시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낮게 속삭였다.“내가 하윤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승현이가 도준 형보다 아직 젊다고 해도 민씨 가문 다섯째 도련님이에요. 도준 오빠 때문에 승현이와 틀어지는 것보다는 잘 달래서 다섯째 작은 사모님 신분이라도 유지하는 게 하윤 씨한테 더 유리하지 않겠어요? 하윤 씨만 원한다면 민씨 가문에서 자리 잡는 거 제가 도와줄게요.”말없이 민시영의 말을 듣고 있던 권하윤은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나요?”“솔직하게 말할게요. 며칠 전 고씨 가문 어르신이 왔었을 때 사실 오빠와 고은지 씨의 약혼에 대한 말이 오갔었는데 오빠가 거절하지 않았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화장실에 놓인 장식 암석 위로 흘러가는 물소리가 일순 멀어지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멍해지는가 싶더니 권하윤은 자신의 상황이 왠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이미 짐작했었는데 직접 듣고 나니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그녀
뜨거운 열기가 몸에 닿자 권하윤은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허둥지둥하던 찰나 마침 민도준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어두운 빛을 마주친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민승현도 밖에 있어요. 우리 나가요.”몇 번 버둥댔지만 그녀는 민도준의 품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강박적인 힘에 눌려 그의 가슴에 바싹 붙었다.딴딴한 몸과 부드러운 몸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 심장이 쿵쿵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승현이가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내가 보냈던 문자 잊었어? 다음번에 꼭 그렇게 하다던 거.”“그건!”장난기 섞인 남자의 목소리에 권하윤은 수치스러운 동시에 화가 나 귓불까지 붉어졌다.“저를 꼭 이렇게 놀려야 속이 시원해요?”민도준은 그저 권하윤에게 가벼운 장난을 칠 생각이었는데 자기 품에 안겨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더 건드리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비좁은 공간과 희미한 불빛은 민도준의 짓궂은 면을 증폭시켰고 그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놀란 권하윤은 황급히 그를 밀어냈다.“이러지 마요.”“말 들어. 그래야 빨리 끝나지.”야릇한 손길에 권하윤은 진짜로 겁을 먹었다.그도 그럴 것이 민도준이 매번 흥이 날 때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만약 민승현 혹은 고은지가 기다리다 못해 그들을 찾으러 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던 권하윤은 작은 손을 민도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한껏 누그러든 태도로 그를 달랬다.“어제…… 저 아직도 아파요.”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권하윤의 태도에 민도준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정말 여우 맞네. 어쩜 이리 상황 파악이 빠르지?’“왜? 내가 어제 아프게 했다 이거야?”“네.”상대가 아까처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자 권하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가 잘못했네.”시원하게 사과하는 민도준을 보자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자기의 그런 예감이 들어맞았
방 안.순식간에 빈 세 개의 좌석을 보자 민승현은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물론 권하윤이 민시영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민도준도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한번 충격을 받은 머리는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밀회하는 장면을 그려내기 시작했다.‘설마 시영 누나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의식하지 않는 건가?’권하윤이 민도준의 품에 안겨 오던 장면을 본 뒤로부터 그의 가슴에는 마치 불덩이가 쌓인 듯 쉽게 꺼지지 않았고 오장육부도 매일매일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입을 열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것만 같아 참다못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만 고은지도 옆에 있었기에 대충 변명거리를 찾아 던졌다.“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제가 그쪽이라면 지금 가보지 않을 거예요.”거의 식사 내내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고은지가 갑자기 던진 말에 민승현은 잠시 멍 해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죠?”차가운 눈빛이 민승현에게 떨어지더니 잇따라 감정 하나 섞이지 않는 목소리가 민승현의 가슴을 후벼팠다.“우리 다 알잖아요. 두 사람 뭘 하고 있는지.”체면이 갈기갈기 찢어진 민승현은 순식간에 버럭 화를 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고씨 집안사람이 알긴 뭘 안다고. 그렇게 헛소리하면서 우리 집안에 발 들일 생각을 하는 거예요?”분노 가득한 그의 모습에도 고은지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당연하죠. 그래서 더 가보지 않는 거예요.”너무나도 냉정한 고은지의 반응에 민승현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저 창피한 일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들켰다는 것에 쪽팔리고 화가 났다.“그쪽은 언제 발견했는데요?”“방금요.”고은지는 말하면서 텅 빈 자리를 쓱 둘러봤다.하지만 발견했다는 건 어찌 보면 정확하지 못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민도준은 지금껏 숨길 생각조차 없었으니까.만약 그가 권하윤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
민시영이 이렇게 말한 건 아까의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게다가 평소에도 가끔 농담을 섞어 말하는 터라 과하지도 실례가 되지도 않았다.하지만 말수가 적은 고은지도 웬 영문인지 입을 열었다.“부탁드립니다.”그 한마디에 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입 한번 여는 게 쉽지 않네.”문을 나서던 권하윤은 마침 그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이윽고 입꼬리를 올리며 문을 닫은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민도준의 시선을 막아버렸다.그 시각 이미 몇 걸음 걸어간 민승현은 꾸물대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그녀를 보자 참지 못하고 홱 잡아끌었다.“서둘러. 뭘 그렇게 꾸물대?”그는 권하윤을 잡은 채로 레스토랑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다급히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아까 전 권씨 저택 앞에서 기다릴 때도 귀찮고 조급했다면 지금은 조급할 뿐만 아니라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초조하고 두렵기까지 했다.하지만 그의 행동에 권하윤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그를 밀어냈다.“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으니까 여기에서 헤어져.”마지막 단계만 남은 계획이 이대로 무산되게 둘 수 없었기에 민승현은 당연히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안 돼. 너 무조건 나랑 같이 가야 해!”“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다고 이미 말도 해뒀어. 너 혼자 돌아가.”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그녀를 보자 권하유은 그가 무슨 일을 꾸민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아 곧바로 몸을 틀었다.“안된다니까! 거기 서!”“민승현! 너 어디 아파?”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약효가 돌았는지 권하윤은 눈앞이 흐릿해졌다.게다가 머리는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무거웠으며 발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너 괜찮아?”민승현은 그 기회를 틈타 그녀를 걱정하는 듯 조수석에 밀어 넣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그 짧은 찰나 권하윤은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분명 네 팔다리가 몸에 붙어 있었지만 그녀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몸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