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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적게 입어

“저…….”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싸늘한 기운이 권하윤을 감쌌다.

그제야 그 침묵 때문에 꼬리를 숨기려다 들킴 여우 신세가 됐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녀가 묻지 않았던 건 성은우가 이미 민도준 쪽 사람이 뒤를 밟고 있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다.

민도준은 재촉하지도 않고 여유로운 듯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아까만 해도 민도준에게 끌려 무릎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던 권하윤은 잠깐의 경악 뒤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작은 얼굴을 쳐들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도준 씨가 사람을 보내 저 보호해 주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제저녁에도 갑자기 나타난 거잖아요.”

말하는 동시에 손을 살살 움직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준 씨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저 다 알아요.”

그때, 옷깃이 살짝 흔들며 느끼지 못 할 정도의 작은 바람이 불었다.

멀리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야시장의 불빛이 권하윤의 눈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기름에 튀긴 길거리 음식처럼 해롭지만 유혹적이었다.

두 쌍의 눈이 한참을 말없이 마주 보고 있었고 오래 지속되는 침묵에 권하윤의 호흡은 어느새 흐트러졌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 실낱같은 설렘이 억지로 밀려 들어오더니 갑자기 환한 야시장의 불빛이 커다란 손에 가려졌다.

이윽고 권하윤이 놀라 입을 살짝 벌린 틈으로 남자의 말캉한 혀가 비집고 들어왔다.

조금 전 보여줬던 침략적인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일 민씨 저택 갈 때 안에 옷 적게 입어. 하기 편하게끔.”

키스로 이미 뜨거워진 귀와 얼굴은 민도준의 말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그런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민도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그녀의 심장이 저릿해 날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살짝 웃었다.

“점점 더 밝히네.”

그리고 그는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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