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들어오기 바쁘게 목격한 장면에 민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눈치 없이 왔나?”익숙한 목소리에 권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그때 민도준은 목덜미에 이빨 자국이 난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확실히 눈치 없긴 하네. 말 안 듣는 강아지 혼내려던 참이었는데.”그의 말에서 위험을 감지한 권하윤은 마치 감전되기라도 하듯 펄쩍 뛰었다.“하하, 두 분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전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민도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바람 같이 달아났다.민지훈은 재밌다는 듯 도망치는 권하윤을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민도준에게 물었다.“안 쫓아가?”소파에 앉아 있던 민도준은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쫓아가지 않아도 저 정도로 놀라는데 쫓아갔다가 놀라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민지훈은 피식 웃었다.“형은 권하윤 씨 꽤 마음에 드나 봐?”“저렇게 재밌는 사람 또 찾기는 어렵지.”담배를 한 모금 길게 들이킨 민도준이 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그 말에 민지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형, 설마…….”“설마 뭐?”주위의 연기가 흔터지자 민도준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심지어 매캐한 연기에도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그 모습에 민지훈은 이내 웃었다.“아니야,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어.”“응.”민도준은 무심한 듯 대답했지만 눈 속 깊은 곳에서 미세한 변화가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북쪽 별채에서 도망친 권하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원래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다가 문득 뭐라도 생각났는지 걸음을 멈추었다.케빈이 왔던 방향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마음이 동했는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케빈이 어디에서 왔고 왜 그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지 궁금했다.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눈앞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그녀 앞에 놓인 건 다름 아닌 남쪽 별채였다!때마침 드리운 먹구름에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눈앞의 모든
난원.민시영은 일반 손님을 대하듯 권하윤을 거실로 데려가지 않고 곧장 본인의 침실로 끌고 갔다.일반 부잣집 아가씨들 방과는 달리 그녀의 방에는 진귀한 보석 대신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자리에 앉은 권하윤은 한참 동안 할 말을 고르다가 끝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영 언니, 아까 한 말은…….”“하윤 씨.”민서영은 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지금껏 봐 왔던 웃는 가면을 벗어던진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하윤 씨는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갑자기 전환된 화지에 권하윤은 몇 초간 머물더니 되물었다.“불공평하다고요?”“네.”민시영은 궈하윤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윤 씨만 놓고 봐도 그래요. 명문가에서 태어났는데도 원하지 않는 약혼으로 예비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약혼남을 노리는 여자들의 계략에 대처하느라 온갖 신경을 쏟아부어야 하잖아요.”잠시 뜸을 들이던 민시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게다가 집안을 위해 혼인 관계가 어떻게 되든 영원히 묶여 살아야 하잖아요. 그거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고요?”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민시영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그래도 일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걸 누리니까 그게 대가인가 보죠.”“하긴.”민시영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느닷없이 물었다.“하윤 씨, 혹시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 않아요?”이거야말로 민시영이 말하려는 본론이라는 생각에 권하윤은 속으로 경계하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하윤 씨 총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을 백으로 두려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남자는 쉽게 흥미를 가지지만 또 쉽게 잃기도 해요. 도윤 오빠는 특히.”화제가 다시 민도준으로 돌아오자 권하윤은 정신을 바짝 차린 채 생각하지도 않고 부인했다.“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 민 사장님과 그런 관계 아니
민시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우선 해줘야 할 게 있어요. 도준 오빠와 공씨 가문이 협력하는 걸 막아줘요.”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민시영의 꿍꿍이를 파헤치려던 권하윤은 민시영의 계획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만약 민도준이 공씨 가문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공씨 가문 가주도 경성에 오지 않을 테고 그러면 그녀가 걱정하던 일도 쉽게 해결되어 어찌 보면 윈윈인 상황이다.잠시간 마음을 가다듬은 권하윤은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왜죠?”민시영은 그녀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전 민씨 가문 권력의 중심에 들어갈 기회가 필요하거든요. 요 며칠 할아버지가 그 건으로 도준 오빠가 여러 번 불러냈어요. 할아버지는 동림 부지를 입찰받고 싶어 하는데 도준 오빠는 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거든요. 만약 제가 그 건을 해결하면 백제 그룹으로 들어갈 입장권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예요.”그녀의 말에 권하윤이 눈살을 찌푸렸다.“이미 결정을 끝내 할아버님 말씀도 듣지 않는 사람을 제가 어떻게 설득하겠어요?”“사실 이 일 어렵다면 어려운데 간단하다면 또 간단하거든요. 저는 일의 성공 여부는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어요.”민시영의 말은 권하윤의 걱정을 떨쳐내지 못했다.그녀는 민도준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본인마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민시영도 그녀의 마음을 꿰뚫었는지 다시 말을 바꿨다.“이 일 확실히 어렵지 않은 거 알아요. 그러면 먼저 간단한 일부터 해결하자고요. 둘째 숙부와 숙모의 유골이 곧 국내로 운송될 거라는 거 알고 있죠?”“네.”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도준이 했던 정말 무사히 운송될 수 있을 거라고 믿냐던 말이 떠올랐다.“재혁 오빠가 이렇게 일을 벌이는 건 아마 그걸 볼모로 도준 오빠한테서 뭔가 뜯어내려고 그러는 걸 거예요. 제가 듣기로 유골은 내일 밤 8시에 개인 비행기로 경인 지역의 개인 별장으로 옮겨질 거래요.”민시영은 권하윤을 향해 싱긋 웃었다.
매원.권하윤이 매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속이 안 좋다는 말만 남기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강수연은 그녀의 태도에 못마땅해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민상철의 말이 떠올라 생각을 참았다.그리고 권하윤이 사라지자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화난 말투로 중얼거렸다.“저것 봐. 이래도 내가 쟤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문제 돼 보여? 다른 집 며느리들은 몸이 아프더라도 시어머니 옆에서 시중을 들더구만 쟤는 어쩜 한마디 말만 내뱉고 쌩 올라가 버린대?”한참 동안 푸념했음에도 민승현이 넋이 나간 채로 반찬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듣지도 못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강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내 말 듣기는 한 거야?”“네?”민승현은 그제야 반응했는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식사 한 번으로 뭐 그렇게까지 말해요?”아들이 권하윤의 편을 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강수연은 버럭 화를 냈다.“이것들이 아주. 그래, 너희가 뭘 든 난 이제 상관하지 않을 테니가 둘이 알아서 해!”“누가 상관하라고 했어요?”낮은 목소리였지만 강수연의 귀에 콕 박힌 한 마디에 그녀는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다.“내가 누굴 위해서 이러는데!”하지만 민승현도 울컥했는지 비아냥대기 시작했다.“아무리 저를 위한다고 해도 민정이 배웅도 못 하게 할 건 없잖아요!”“그년 배웅이 하고 싶었어? 네 할아버지가 걔를 뭐라고 부르는지 듣고도 배웅하겠다는 말이 나와? 설마 할아버지한테 대적하겠다는 거야?”…….아래층은 시끄러웠지만 위층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2층으로 올라올 때 마침 민도준이 묵었던 방문이 아직 열려 있는 걸 본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댔다.‘아직도 안 갔나?’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로 마치 우연히 지난 듯 그 옆을 지나쳤다.“작은 사모님.”그때 마침 안에서 청소하고 있던 메이드가 권하윤을 향해 인사했다.방 안은 이미 텅 빈 채 침대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어 사람이 묵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민 사장님 갔어요?”“
권하윤은 목을 움츠러뜨렸다.일이 이렇게 되자 그녀는 민도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가 버티고 앉아 가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확 들었다.게다가 민승현이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기라도 할까 봐 할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며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어디 물려고요?”민도준은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듯 결연한 권하윤의 표정에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디를 물겠냐고?”“네.”권하윤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지 어리바리한 말투로 물었다.“아까 복수하고 갈 거라면서요?”민도준은 그녀의 말에 또 한 번 피식 웃었다.그는 단지 권하윤을 놀리려던 것뿐이었는데 그녀가 이토록 고분고분 자기 말을 따르니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그래, 어디 보자. 어디를 고르면 좋을까?”민도준은 권하윤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키가 큰 원인 때문인지 앉아 있는데도 시선이 마침 그녀의 쇄골에 닿았다.그는 손가락으로 연약한 목덜미를 슬슬 문지르더니 손바닥으로 그녀의 목을 잡았다.뜨거운 열기가 취약한 부분을 감싸더니 손아귀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었다.권하윤은 자연스레 민도준이 그곳을 물겠다는 뜻인 줄 알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서둘러요.”그녀의 조급함을 눈치챈 민도준은 일부러 그녀를 놀려댔다.“이렇게 가는데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무슨 헛소리예요?”권하윤은 조급한 마음에 계속 시계를 쳐다봤다. 그녀는 너무 오래 지체되었다간 민승현이 식사를 다 하고 올라오기라도 할까 봐 아예 민도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놓고는 고개를 든 채 그의 앞으로 자기 목덜미를 내밀었다.“빨리 서둘러요. 물게 한다니까요.”열정적인 권하윤의 행동에 민도준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더니 옴폭 파인 그녀의 쇄골을 깨물었다.갑자기 전해지는 고통에 참지 못한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약 두 걸음 물러난 그때 허리에 힘이 가해지더니 그녀가 주동적으로 몸을 바친 것처럼 그의 가슴에 폭 기댔다.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며 괴롭히는 동작은 콱 깨물 때보
“문 앞에 막고 서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비켜.”발을 떡 붙이고 선 채 움직이지 않는 권하윤을 보자 강수연은 버럭 화를 냈다.‘뭐야? 들어오려는 건가?’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민승현의 행동에 그녀는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하지만 강수연의 앞에서 그녀의 아들을 밖으로 내쫓을 수 없는지라 권하윤은 이를 악문 채 몸을 비켰다.생각지도 못한 건 강수연도 아들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는 거였다.권하윤은 순간 마음이 불안했다. ‘민승현 하나로도 충분히 벅찬데 어머님까지 들어오려 하다니…….’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강수연을 향해 미소 지었다.“어머님, 오랫동안 얘기도 나누지 못했는데 안으로 들어오세요.”안으로 들어가려던 강수연은 그녀의 말에 이내 표정을 구기며 걸음을 멈췄다. 항상 본인을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권하윤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거절했다.“됐다. 네가 우리 승현이 잘 돌보는 게 나에 대한 효도야.”“알겠습니다.”강수연은 그녀를 째려보고는 몸을 홱 돌려 떠나버렸다.그제야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겨우 한 명 보냈네.’하지만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뭐 하는 거야?”화장실 문을 열려고 하던 민승현은 그녀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씨발, 깜짝 놀랐잖아. 왜 소리 지르고 그래?”사실 몇 분 전, 방 안에 있던 권하윤은 민승현 모자의 목소리를 듣기 바쁘게 가운을 걸치고 머리를 적신 뒤 겨우겨우 빌며 사정해 민도준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원래 계획은 민승현과 몇 마디 나눈 뒤 그를 못 들어오게 막는 거였는데 강수연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이에 권하윤은 눈을 딱 감고는 죽기 살기로 욕실 문을 막아섰다.“안에 내 속옷 있으니까 들어가지 마.”“여기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해?”민승현은 참고 있던 화가 끝내 폭발하여 권하윤을 삿대질하며
나란히 있는 두 문자메세지는 마치 정신이 분리한거마냥 민 씨 저택을 빠져나온 민도준을 다시 한번 기쁘게 했다.그는 어려서부터 민 씨 저택에서 자랐으면 얌전하지 않은 탓에 어느 길은 어떻게 가는지 눈을 감고도 만져낼 수 있었다.그가 원하지 않는 한 자연히 아무도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다른 한편 권하윤은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을 기다리지 못했다. 전화를 내려놓자 그제야 전화가 들어왔다. “자기야 방금 재미있었어?”전화한 편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머금고 말 했다. “재밌긴 개뿔!”권하윤은 두 번이나 “흥”하고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무서워서 혼이 다 나갔다고.”가벼운 웃음소리가 감전되어 귀로 들어오면서 오슬오슬 감겼다. “듣기에 아주 재미있던데.”눈을 부라렸다. 이런 양심 잃은 인간 조만간 벼락을 맞을 것이다. “속으로 나 욕하는 거야?” “크크……”침에 사레가 들려 권하윤은 감히 인정하지 못했다. “그럴 리가요. 민 사장님이 절 구해 주셨는데. 제가 감사해도 모자랄 따름인데요?” “그래? 난 또 네가 최수인이랑 들러부터서 내가 필요 없을 줄 알았지.”몇 초 동안 멈춘 후 권하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 사장님 농담도 참 잘하시지. 제가 최 사장님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들러붙다니요.” “그래?”민도준은 운전대를 돌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널 그렇게 도와줬다고? 나까지 속이고. 보아하니 언제 최수인이랑 친분을 좀 쌓아야 할 것 같네.”그의 호의를 품지 않은 말투를 듣고. 권하윤의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끝은 굳어졌다. “저, 최 사장님 사람 좋으신 분인데, 무슨 오해가 있으면……” “최수인은 좋고. 난 나빠?” “그런 뜻이 아니라.“권하윤은 설명할수록 무기력해졌다. 말을 많이 할수록 잘못이 커졌다. 그는 목소리를 살살 녹이고 애교를 부리기 시도했다. “민 사장님 내가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화내지 말아요. 네?“ “다음에 만나면 너희들이 사기 친돈
화제가 너무 딱딱하게 전환되어 권하윤 자신조차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니 민도준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최수인의 지나치게 정중한 호칭에서 그의 암시를 알아들었다. 민도준이 이미 도착했다는 암시.그녀가 건 전화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았다.그야말로 맞기도 전에 자백을 한 셈이었다.권하윤이 한창 당황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 민도준의 목소리가 유유히 울려퍼졌다."핑계가 너무 구려. 새로운 거로 생각해서 다음에 같이 얘기해줘."전화가 끊겼다.권하윤은 최수인이 걱정되기도 하고 자신도 걱정이 되어 길 잃은 어린양마냥 방안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하지만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천천히 냉정해졌다.이렇게 된 이상, 민도준 부모님의 유골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쨍그랑!"송나라 때의 여요 다구가 하나하나씩 땅에 팽개졌다.다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최수인은 심장이 후들거렸다.지금의 르네시떼는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도자기들이 최수인의 심장처럼 산산조각이 났다.그러다 민도준이 다시 도자기병을 들자, 최수인이 얼른 울상인 얼굴로 빌었다. "민 사장, 제발! 그것만은 절대 안 돼!""그래?"민도준이 듣더니 손으로 도자기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최수인의 취약한 심장도 따라서 흔들렸다.그는 두 손을 쩍 벌린 채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중한 도자기병을 보호하고 있었다."민 사장,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내가 다시는 민 사장의 제수씨를 꼬시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그 꽃자기만 살려줘."“꽃자기?”최수인이 말한 게 자신의 손에 들린 도자기병이라는 것을 깨달은 민도준이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자네가 좋아하는 윤이랑 비하면 이 꽃자기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젠장! 그가 권하윤을 윤이라고 부르는 걸 들어버렸다니.참 운도 지지리 없네."민 사장, 내가 정말 잘못했어. 이번 한번만 용서해줘. 내가 남은 인생, 민 사장을 위해 소가 되고, 말이 될게...""그래."도자기병이 다시 민도준의 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