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인은 무기력하게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민도준이 알려고 한다면 오래 속일 수 없을 거야."그는 동정의 눈길로 권하윤을 바라보았다."먼저 무슨 수를 대서든 그 사람을 막아. 아니면 너도 다른 사람과 별다르지 않을 거야."이는 권하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녀가 제일 걱정되는 건 민도준에게 돈을 빼돌렸다는걸 들키는 게 아니라, 그 돈이 문태훈의 입을 막기에 쓰였다는 걸 들키는 것이었다.최수인이 말했다."당신은 남자 보는 눈이 참 없어. 만약 선택한 게 나였다면 이런 마음고생은 하지 않았겠지."권하윤이 허탈하게 웃음을 보였다."그러게요. 눈이 삐었나 보죠."두 사람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최 사장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뭔데?""혹시 민도준씨 부모님 사고 원인을 아시나요?"최수인이 뜨끔 놀라며 물었다."갑, 갑자기 그건 왜 물어."권하윤도 본인이 너무 뜬금없었다는 걸 느꼈다."그냥 궁금해서요. 답하기 불편하시면 안 물어본 거로 할게요.""불편하다기보다는, 그냥..."최수인은 한참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너무 참혹했던 상황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그의 난처한 얼굴을 보며 권하윤은 말을 삼켰다.르네시떼를 떠나며 권하윤은 어딘가 마음이 불안해졌다.참혹하다라...그렇다면 그녀가 이 발을 내딛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저녁 7시 40분.올블랙 크로스컨트리 차 한 대가 경인 지역의 마운틴뷰 빌라 근처에 도착했다."여기까지만이에요, 더 이상 들어가면 카메라에 찍혀요."이는 케빈이 처음 권하윤에게 한 말이었다.케빈이 그녀를 차에 태운 후 그 둘은 내내 침묵을 지켰었다.케빈은 평소 말수가 적었고, 권하윤은 남평 근처에서 그를 본 후 계속 의심하고 있었으니 둘은 서로 대화가 없었다.케빈의 말을 들은 권하윤이 뜸을 들였다."그러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케빈은 무전기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앞길을 가리켰다."저기까지 운전해서 가요, 거기서 만나죠.""좀 더
총소리가 어두운 밤에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권하윤은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어떻게 총소리가 들리는 거지.이미 벌어진 일과 그 뒷 일은 어둠 속에서 흐릿해져 갔다.그녀는 그 한 발의 총알이 케빈의 목숨을 이미 앗아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그리고 지금이라도 돌아서야 하는지도.만약 지금 돌아선다면 여태껏 벌인 일은 모두 물 건너 가는 게 아닌가.케빈이 죽은 게 아니라 생사를 오가는 순간인데 만약 그녀의 외면으로 한 생명이 끝을 다한다면...권하윤은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자신을 보호할 부적을 가지려 했던 것이지만 이게 다른 사람의 생명의 대가가 되게 해서는 안되었다.그녀는 마음을 먹고 멈춰서서 아까 그들이 몸을 숨겼던 나무숲 뒤로 운전했다.먼 곳의 총소리가 귀를 울렸다....케빈은 침착하게 앞서 쫓아온 몇 명을 물리쳤다. 다른 경비원들이 잠복을 선택하고 더 이상 공격하지 않자 그는 도망칠 최적의 경로를 계획하기 시작했다.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경비원들이 공격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그는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서 도망쳐야 했다.행동에 옮기려는 찰나 먼 곳에서 검은색 승합차 두 대가 질주해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케빈의 표정이 굳었다.그들이 생각보다 더 빨랐다.전술 따위는 접고 케빈은 빠르게 외곽을 향해 달렸다.총소리가 또 울렸다.무심결에 들어낸 약점에 어깨에 총을 한 방 맞았다.그는 멈춰 서지 않고 계속해서 쏜살같이 달렸다.나무숲까지 달려가는데 두 대의 승합차는 거의 그를 따라잡을 듯 다가왔다.케빈이 저주를 퍼부으며 총을 피하려 몸을 숨기려는 찰나 한 여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빨리 타요!"케빈이 고개를 확 돌리자 권하윤이 숲속에 주차한 차가 보였다.더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는 차의 루프를 잡고 뒷좌석으로 올라탔다.막 들어서는데 몇 발의 총성이 뒤따랐다."거기 서!"총알을 맞은 방탄유리에 금이 갔다.권하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풀 액셀을 밟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승합차 중 한 대가 뒤쫓아왔고, 무섭게 그들의 차로 돌진했다.권하윤는 갈비뼈가 운전대에 부딪혀 고통에 얼굴이 파래졌다.하지만 빠르게 판단한 그녀는 두 번째 승합차의 돌진은 피할 수 있었다.그와 동시에 케빈이 말했다."큰길로 가세요."긴 경적을 뒤로 하고 권하윤의 검은색 차가 숲을 빠져나갔다.그러나 큰길로 나가자 장애가 없어진 두 대의 승합차도 기승을 부렸다.그들은 넓은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했다.액셀을 밟는 다리가 너무 긴장되어 후들후들했지만 그녀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승합차와의 거리가 이미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에.총소리가 바로 귓전을 때리자 권하윤은 온몸이 덜덜 떨렸다.귀 옆 창문이 거미줄처럼 조각조각이 나기 시작했고 저 총알이 언제 관통될지 알 수 없었다.또 한차례의 돌격에 차체가 일그러지며 길가의 가드레일을 드리박을뻔했다.귀를 찌를듯한 마찰음이 들려왔다.겨우 몇초 사이에 승합차 하나는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다른 하나는 유령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그러자 차는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이번 생은 여기서 끝이겠구나 생각하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눈 부신 빛이 보였다.자동차 네 다섯 대가 연이어 오고 있었다.딱 보아도 쉬워 보이는 상대가 아니자 승합차에서 내렸던 사람들은 빠르게 다시 차에 올라타서 허겁지겁 도망쳤다.드디어 끝이 났다.요단강에 발을 빠뜨릴뻔한 권하윤은 운전석에 풀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헐떡였다."똑똑-"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권하윤씨?"권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꺼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한민혁씨의 연락받고 왔습니다. 안전하게 모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운전석에서 내려온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았다. 이어서 내리는 케빈을 살피는데 그제야 그녀는 그가 상처를 입은 것을 발견했다.선홍빛 피가 그의 왼쪽 팔을 물들였고 손가락을 따라 피가 한 방울씩 땅에 떨어졌다.권하윤이 기겁하며 말했다."손 좀 봐요! 빨리 병원부터 가
민도준은 탁 트인 창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로이 담뱃불을 태우는데 쓸쓸함을 숨기지 못 하였다. 그의 얼굴도 이 방의 분위기도 침울하기 그지없었다권하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을 느끼고 침을 삼켰다.“왜 불도 켜지 않고 이러고 있어요.”그녀는 급히 스위치를 키려고 했다.불이 켜지고 방 안이 밝아지자 그제야 민도준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어두운 눈동자는 더없이 짙었다.그녀는 여태껏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소리 없는 위험을 내뿜고 있었다.민도준은 움직이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천천히 훑더니 시선은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에 떨어졌다.미소를 짓기는 하였는데 온도가 없는 웃음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그녀는 오늘 민도준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았다.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손에 들고 있는 거 뭐야?”“네?”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권하연은 왠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네 부모님이라고 내가 어떻게 말해...... .”하여 그녀는 상자를 침대 위에 펼쳐 놓았는데 안에는 유골단 두 개가 있었다.그의 질문에 소리 없이 대답한 것과 마찬가지다.그녀는 옆에 서서 목을 움츠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민도준은 마침 마지막 담배를 다 피우고 담배꽁초를 끄고 손짓을 했다.“여기 가져 와봐.”권하연은 머뭇거리며 상자를 들고 왔다.민도준은 힐끗보던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죽은 사람을 방패로 써서 돈의 행방을 더이상 추궁하지 말라는 뜻인?”“아니면 두 분 다 모셔왔으니,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마음속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자 갑자기 우스워졌다.만약 이때 보물을 잘못 눌렀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민도준을 따른 시간이 헛된 것과 마찬가지다.하여 그녀는 오물거리며 말했다.“지난번에 북편원에 갔을 때 도준씨가 그랬잖아요. 거기서 자랐다고...... 그래서 난
권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 몇 방울을 짜냈다.“아니요.”“정말로 잘못했습니다. 도련님께 잘 보이려는 제 생각이 분에 넘쳤어요.”“그래?”민도준은 마침내 멈추고 농락하는 말토로 물었다.“근데 방금 날 위해서 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 기쁘게 해준다고.”“날 속이는 거야?”권하윤은 중력에 의해 뒤로 젖혀져 언제든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그의 손목을 잡고 안정감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감히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도준씨한테 사랑받고 싶었습니다.”“허.”그는 얇은 입술로 조롱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뭘 생각하고 있는지 훤히 다 보이니 쓸데없는 거 하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알았어?”병아리가 쌀을 쪼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민도준은 그녀를 창밖에서 끌어 올렸다.두 발이 다시 지면으로 떨어지자, 권하윤은 마치 재생한 것처럼 한참을 헐떡이고 나서야 호흡이 평온해졌다.무의식적에 권하윤은 그를 그냥 가게 할 수 없다고 느꼈다.예전에 아주 작은 미움을 샀을 때도 거의 반쯤 죽을 정도로 괴롭혔는데 오늘 이 일로 얼마 동안이나 괴롭힐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예전의 경험으로 보면 오늘 그를 잘 달래지 않으면 고생길이 열리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가는 건가요?”민도준은 눈썹을 들썩이더니 그녀를 힐끗 보았다.“왜? 뭐가 더 남았어?”방금전의 포악한 기운이 좀 사그라든 걸 보고 권하윤은 대담해져 조심스럽게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그럴 리가요...... 정말로 놀랬단 말이에요.”눈물은 아직도 고여있어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말고 아련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못했다고 빌던 사람이 지금은 슬그머니 작업을 걸고 있다.오늘이 지나면 그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운 것이 분명하다.민도준은 비웃었다.“참 대담도 하지.”“아닌데요...... 무서워 죽겠는데요.”마
권하윤은 민도준의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늦었는데 우리 일찍 잘까요?”그녀의 말에도 민도준은 담배꽁초가 끝까지 타들어 갈 때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던 권하윤은 두 손을 침대에 받히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를 건드리지도 않은 채 손을 뻗어 침대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끄며 자기 아래에 있는 권하윤을 바라봤다.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꿍꿍이를 꾸미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가관이었다.민도준은 일부러 상체를 숙여 권하윤을 누르더니 그녀가 몸을 지탱한 손에 힘이 빠져 바들바들 떨자 그제야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자는 건 너무 이르지 않나?”권하윤은 그의 말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그럼 저 샤워하러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말과 동시 큰 손이 거의 침대에 닿을 듯한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안 씻어도 돼. 하윤 씨가 어떻든 난 다 좋으니까.”그의 숨결이 귀를 간지럽히자 권하윤은 고개를 돌리며 민도준의 입맞춤을 피했다.“저기, 그래도 저 씻을게요. 아까 땀을 흘렸거든요.”순간 커다란 손이 그녀의 고개를 다시 돌려놓았다.“민재혁 때문에 놀라서 그래?”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거리에 이르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낮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아까 전 일 때문에 본인이 민재혁 별장에 숨어들었던 일을 민도준이 다시 언급하는 게 조금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말을 너무 많이 하면 또 민도준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걱정되니까.권하윤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민도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구조 당할 때까지 버텼다니 운 좋네. 민재혁 손에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솔직히 마음대로 내뱉은 말이었다.“죽는다고? 너무 좋게 생각했네.”권하윤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이 점점 등 위를 타고 올라갔다.“그 자식은 하윤 씨를 괴롭히고 하윤 씨의 몸과 정신을 망가트린 다음 약점을 찾아
민도준이 자기를 데리고 나가려고 한다는 걸 눈치챈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우리 어디 가요?”“당연히 사람 죽이러 가지. 아직 캄캄할 때 하윤 씨를 고기밥으로 강물에 던지려고.”민도준이 무심코 던진 말에 권하윤은 농담인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의 인내심이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따랐다.정원을 지날 때 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몇 번 더 뒤돌아봤다.지금까지도 그녀는 민도준이 유골함 두 개를 모두 깨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대체 사람이 얼마나 뒤틀려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도준 오빠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에요’라던 민시영의 말이 떠올랐다.‘그래, 부모님마저 이렇게 대하는데 나는 어떠할까? 만약 내가 계속 자기를 속인다는 걸 알면…….’“추워?”운전을 하던 민도준은 조수석에서 몸을 떨고 있는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고 그의 물음에 깜짝 놀란 권하윤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바꿨다.“우리 어디 가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는 병원 문 앞에 멈춰섰다.‘민도준 씨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다 오다니.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나?’차에서 내린 권하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표정이 너무 이상했는지 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채 하지도 못하고 하윤 씨 뼈가 부러지는 건 원치 않거든.”“…….”당연하게도 그녀는 골절이 아니라 그저 조금 타박상이 있을 뿐이었다.“갈비뼈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만 안정을 취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순간 의사의 눈에 싸늘한 빛이 언뜻 지나갔다.“아무리 그래도 인체가 강철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적당히 하세요. 젊다고는 해도 몸이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어요. 애인 소중히 대하세요.”의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충고였지만 검사할 때 권하윤 몸에 난 야릇한 흔적을 이미 봐버린 뒤 이런 말을 하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사람들에게 설교를 당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
권희연은 이런 곳에서 민도준을 만난 것에 매우 놀란 듯 그에게 어디 다친 곳이 있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마침 그녀 뒤에 숨어 있는 여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만약 여자의 다리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민도준의 큰 키에 완전히 가려진 여자를 발견할 수도 없었다.권희연은 민도준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궁금했지만 숙녀로써 그런 것을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기에 그저 담담한 미소만 지었다.“친구분이 계신 것 같으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전 이만…….”“방해 안 돼요.”민도준은 오히려 자리를 피하려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어디 다쳤어요?”권희연은 민도준이 자신한테 보이는 관심에 기쁘기는커녕 상대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몰라 당황했다.하지만 놀란 건 민도준의 등 뒤에 숨어 있던 권하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속으로 민도준을 수백 번도 욕했지만 발각되기라도 할까 봐 그의 등에 바싹 붙어 자기 몸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그때 마침 잠시 멈칫하던 권희연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관심해 주셔서 감사해요. 부주의로 넘어졌는데 이제는 괜찮아요.”등 뒤의 옷이 권하윤의 작은 손에 꽉 잡혀 쭈그러들 대로 쭈그러 들자 민도준은 그제야 나지막하게 “아하”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대답했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상대의 흥미가 깨진 듯하자 권희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도준의 등 뒤를 힐끗 보더니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그녀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권하윤은 민도준을 등 뒤에서 밀어댔다.“얼른 가요.”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손을 힘을 주며 밀어도 민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에 권희연에게 발각될까 봐 겁이 난 그녀는 민도준을 버려둔 채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잡혔지만 말이다.“하윤 씨 토끼야? 뭘 그렇게 빨리 도망쳐? 걱정하지 마. 보아하니 어젯밤 아주 고생한 것 같으니 바로 나오지는 않을 거야.”그의 말에도 권하윤은 잔뜩 긴장한 듯 계속 뒤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더니 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