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원의 장례식이 잘 준비되어 있었지만, 시작되자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사람이 떠나면 차가 식는다. 사람이 죽으니, 상황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곽도원의 죽음을 정말 애도하는 사람들이 왔다 가고 신옥영이 와서 꽃을 놓았다.자신을 30년 동안 묶어 놓은 남자를 보며 별 느낌은 없었지만, 눈을 감았을 때 눈물이 흘러나왔다.눈앞에는 그녀가 곽도원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대학교 때, 잘생기고 아우라가 넘치는 젊은 남자가 귀빈으로서 제일 앞에 서 있었다.그때 신옥영이 옆에 있던 룸메이트와 얘기하느라 지나가다가 부딪혀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 떨궈버렸다.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봤을 때, 그녀는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책을 줍는 것도 잊어버렸다.곧이어 교장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국장님을 치다니!”“괜찮습니다.”그 남자는 허리를 숙여 책을 주워 주었다. 신옥영의 손보다 훨씬 큰 손이 그녀의 책을 쥐고 먼지를 털어주면서 웃었다.“이 책은 내용이 너무 깊을 텐데? 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소설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신옥영은 그때 그저 학생이었기에 곽도원처럼 큰 인물이 물어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귀를 붉히며 책을 건네받았다.그녀는 며칠을 곽도원과 마주했던 장면에 대한 꿈을 꾸었다.신옥영은 이 인연이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인 줄 알았다.그러나 룸메이트와 파티에 참석했을 때, 곽도원을 또 만났다.곽도원은 공식 대표로서 무대에서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갔다.그날 신옥영이 그의 이름이 곽도원이라는 것을 알았다.신옥영의 인생도 좋다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곽도원의 장례식이 끝나고 준호는 자리로 돌아갔다.해성시로 갔다가 곽도원이 힘을 써줘서 높은 자리로 올라올 수 있었다.곽도원이 죽은 뒤, 지위는 변함이 없지만 실권이 없는 자리로 옮겨졌다. 준호는 남한성으로 가겠다고 신청했고 마치 준호를 쫓아내듯 바로 통과됐다.두 쪽에서 준호의 이동에 대해 준비하는 사이에 준호는 휴가를 한 달 냈다.휴가 첫날에 준
현재의 곽씨 집안과 공씨 집안은 동병상련인 상황이다. 다 예전에 해성시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던 집안이 지금은 평범하게 변했으니 말이다.공씨 저택에 도착한 준호가 태준을 만나려고 했는데, 안에서 남기가 나왔다.“저희 가주님께서 준호 도련님께서 오신 걸 알고 계십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한테 얘기하세요.”준호가 차갑게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랑 얘기해? 공태준 어디 있어? 나 공태준 만나야 해.”남기가 눈썹을 찌푸렸다.“가주님께서 편찮으십니다.”“왜 하필 이때 아프다는 건데? 누굴 속이려고?”“공태준, 나와!”“너 고은지가 우리 아버지 죽일 거 진작 알고 있었지? 네가 도와줘 놓고 발 뺄 수 있을 줄 알았어? 당장 나와!”남기는 준호가 막 말을 뱉는 것을 보고 다급히 막아 나섰다.“도련님! 여긴 곽씨 저택이 아닌 공씨 저택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비켜!”준호는 남기를 밀쳐냈다.준호가 남기를 발로 차려고 하는데, 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남기야, 먼저 물러나 있어.”태준은 코트를 걸치고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준호는 그런 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설마 진짜 아파?”태준이 미소를 지었다.“도련님께서는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어요? 들어오세요.”두 사람이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태준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침하기 시작했다. 비록 서른 살이 조금 넘은 나이지만 몸이 안 좋아 태준은 숨을 쉬는 것도 가빠 보였다.“도련님, 물어보세요.”“당신 고은지 예비 남편 아니야?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태준은 준호가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라 깜짝 놀랐다. 태준은 고개를 저었다.“전 그냥 은지 씨에게 신분을 빌려줬을 뿐입니다. 저희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전 마음속에 다른 사람 품고 있거든요.”준호는 전에 이런 소문을 들었기에 태준의 말을 믿고 말을 이었다.“그래서 훨씬 전부터 계획한 거잖아? 빨리 말해! 뭘 계획한 거야? 왜 우리 아버지 죽인 거냐고!” “도련님께서 다 조사하고 오셨으니 더
고진태는 해성시에서 이성희를 만났는데, 그녀의 얼굴에 흉터가 많았지만, 고진태가 그녀를 갖고 놀기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희가 임신해서 고진태가 자신을 데리고 나가길 원했다. 그러나 고진태는 곽도원의 권력이 무서워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성희가 기녀니, 뱃속의 아이가 누구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이 이야기를 들은 준호는 화가 나, 이가 간지러웠다.“이 아이가 고은지야?”“네.”“이성희 씨가 두 번의 버림을 받고, 곽도원의 사랑을 받다가 기녀가 된 충격에 정신병에 걸려 은지 씨에게 화를 표출했어요.”은지 등에 난 상처를 떠올린 준호는 마음이 아팠다.“이성희 씨는 지금 어떻게 됐어?”태준은 한숨을 쉬었다.“그 당시 이성희 씨가 병에 걸려 은지 씨가 고씨 집안에 가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고씨 집안에서 은지 씨를 마음에 들어 해서 그 집에 남게 되었어요. 그 뒤에 개명해서 고은지가 되었고요. 그 뒤로 이성희 씨는 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돌아가셨습니다.”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호는 형제자매가 없어서 이런 것들을 잘 모르지는 않았다.고씨 집안에서 은지 출생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데려다 키운 것이 뻔했다.그래서 은지가 고씨 집안을 그렇게 미워했다.그러나 그녀는 티를 내지 않고 고씨 집안 사람들이 완전히 자신을 믿게 한 뒤에 치명적인 공격을 해서 무너지게 한 것이다.고씨 집안에 복수를 했으니, 사건의 시작인 곽도원도 가만히 둘 수 없다.준호의 머릿속이 마치 곽도원을 향한 마음처럼 복잡했다.객관적으로 보면 곽도원은 준호의 아버지이고 곽도원의 센 능력을 우러러봤다.그러나 감정적으로 보면 곽도원은 신옥영에게 상처를 준 좋은 남편도 아니고 좋은 남자도 아니었다.신옥영이 곽도원에게 버림을 받아 준호는 분노했고, 은지는 이성희가 흙무지에서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분노했을 것이다.준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눈빛은 아주 차가웠다.“이렇게 자세히 얘기해 준 건 나보고 널
형탁이 혀를 내둘렀다.“이걸 뭐 누가 말해야 아나? 너 얼굴에 다 씌어 있구먼. 누가 새엄마를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겠냐! 그리고 이렇게 계속 찾아다니고.”형탁이 눈치채자, 준호도 더 이상 속이지 않고 대답했다.“맞아, 내가 고은지 좋아해.”“뭐?”형탁은 깜짝 놀랐다.“진짜야? 좋아했으면 됐지, 왜 이래?”준호가 말했다.“전에 은지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어.”준호의 진지한 모습에 형탁은 손으로 준호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면서 말했다.“열 안 나는데? 왜 헛소리를 하지?”준호가 형탁을 손을 쳐내며 말했다.“나 진지해. 근데 그건 걔가 우리 아버지 독살하기 전 얘기야.”“뭐?”형탁은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잠시만, 고은지가 아저씨를 독살했다고? 나보고 조사하라고 했던 향수가 고은지 꺼야?”“응.”“아니, 어?”형탁은 말문이 턱 막혔다. 준호가 새엄마를 좋아한 것도 모자라 새엄마가 아저씨를 죽였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형탁이 한참 후에야 말했다.“그럼, 네가 지금 고은지를 찾는 건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려는 거야, 아니면 대를 잇겠다는 거야?”준호가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어떻든 일단 찾아내야 해!”‘후자네.’형탁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새삼 느꼈다. ‘이 자식은 학교 다닐 때도 연애에 관심이 없던 애가 왜 지금?’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사고 당일 기사가 뛰어내린 뒤 도망치는 장면을 녹화한 차를 찾았습니다.”형탁의 눈에서 빛이 났다.“그 사람...”“보고 당장 오라고 해!”그 경찰은 옆으로 밀린 형탁을 보고 준호를 봤다. 형탁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쟤가 말한 대로 해.”반 시간 뒤, 블랙박스 영상이 보내졌다.사고가 난 뒤, 준호가 처음 그때 장면을 보는 것이다.늦게 감기는 영상에서 기사가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다리에서 떨어졌다.그 장면을 다시 봐
형탁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피해자의 목이 이상하잖아! 차에 탔을 때부터 이미 죽어 있었던 거야!”준호는 깜짝 놀랐다.차에 탔을 때부터 죽었다면, 다리에서 떨진 뒤에 살 희망이 전혀 안 남은 것이다.전에는 은지가 다리에서 떨어지기 전에 이미 도망갔다고 상상해서, 다쳐서 소식이 없는 거로 생각했었다.‘차에 탔을 때부터 죽어 있었다면 정말 죽은 건가?’준호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다 내 탓이야. 걔를 혼자 차에 두지만 않았다면.”“내가 눈 뜨고 은지가 잡혀가는 걸 놔뒀어. 은지가 날 원망할 거야.”준호가 혼이 나간 것을 보고 형탁이 급히 말했다.“정신 차려. 난 처음부터 이 사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만약 납치라면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근데 사람을 잡고 나서 어디에도 연락하지 않았어.”“복수라면 더 말이 안 돼. 복수할 거면 바로 죽이면 되지, 왜 시체를 가지고 갔겠어?”요즘 곽도원의 죽음과 은지의 실종,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준호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준호는 진정하고 이 사건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았다.은지는 차갑고 온정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복수를 할 만큼 미움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이렇게 오랜 시간 복수를 계획했다면 달아날 노선도 짜놨을 것이다.전에 신경 쓰지 못했던 디테일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곽도원이 죽은 뒤에 은지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일.원래대로라면 준호 곁을 돌면서 변명해도 모자랬다.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말을 안 했던 이유는 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진작에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준호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은지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너 오래 살 거야, 준호야, 미안해.”그 당시 준호는 은지가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생각을 다 정리하자, 준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쟤 안 죽었어!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잘 살아 있어!”...무진에는 어디에나 다 차나무가 있었고 분위기
해성시 공씨 저택에서 준호는 발로 문을 차면서 소리쳤다.“공태준! 당장 나와! 너 고은지 어디로 보냈어?”아무리 불러도 태준은 물론이고 남기도 보이지 않았다.준호가 너무 화가 나 저택을 불에 태워버리고 싶을 때, 한 도우미가 우물쭈물하며 걸어왔다.“도련님, 저희 가주 여기 안 계세요.”“어디 갔어?”“가주께서 경성에 결혼식 참석하러 간다고 하셨어요.”준호는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얼쑤? 저번에는 곧 죽을 것처럼 하더니, 다 내 경각심을 늦추려고 그랬던 거구나. 지금은 또 결혼식 참석하러 가? 고은지랑 한편 아니라며?”준호는 도우미의 멱살을 잡았다.“당장 말해! 전에 고은지가 자주 여기 와서 공태준이랑 데이트했지? 걔네 둘이 같이 도망친 거 아니야?”도우미는 준호의 말을 듣고 머리가 뗑 해졌다. 도우미는 준호가 새엄마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다.도우미는 참을 수 없어 태준을 위해 얘기했다.“그, 전에 은지 씨께서는 가주의 예비 아내셨기 때문에 몰래 데이트한 건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국장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저희 가주님이랑 은지 씨가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죠...?”도우미는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왜냐하면 준호의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졌기 때문이다.도우미가 한 말이 맞았다. 곽도원이나, 태준이 은지랑 명확한 관계가 있었기에 준호가 은지를 뭐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준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이 나쁜 여자는 시종일관 나한테 아무런 자리도 주지 않는구나! 고은지는 자기가 이렇게 사라지면 내가 걔 죽음에 얼마나 슬퍼할지, 찾지 못해서 얼마나 급해할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건가?’‘아, 아니! 걔는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거지! 고은지가 우리 아버지 죽이고 날 갖고 놀았는데, 이렇게 사라졌으니,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하늘이든 땅속이든 끝까지 찾아낼 거야!’...은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준호는 은지에 관련된 각종 교통이나 소비 기록을 찾아봤다.동시에 준호는
형탁이 영상을 보자, 정말 준호의 말이 맞았다. 형탁이 두 영상이 다름을 발견한 것은 다년간 수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호가 이것을 찾아냈다는 것은 은지와의 관계가 정말 깊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또 준호가 정말 은지를 사랑한다는 것이 분명했다.은지가 어느 지점에서 차를 바꿨는지 알아냈기 때문에 수사에 아주 유리해졌다.다음날, 그들은 거리 옆에 있는 가게들을 찾아, 가게의 CCTV를 찾아봤다. 그중 한 CCTV 영상에 단서가 있었는데, 검은색 차가 작은 거리에서 30초 멈춰 서 있었는데, 옆에 딱 붙어있던 흰색 차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시간이 아주 짧았지만, 이 뒤에 바로 검은색 차에 은지가 타고 있지 않았다.이날 형탁은 수사팀에 연락해 흰색 차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라고 했다.흰색 차의 최종 목적지는 공항이었다....“왜 공항이지? 이날 분명 고은지가 나간 기록이 없는데?”준호가 말했다.“설마 날개 달고 날아갔나?”형탁도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내가 공항 쪽에 연락해서 고은지가 나타난 CCTV 영상이 있는지 물어볼게.”CCTV 영상은 다음날에 바로 왔고 준호는 그 영상을 계속 돌려보다가 그중 한 명을 짚어냈다.“이 사람 뒷모습이 익숙해.”형탁이 준호가 짚은 사람을 봤다.“이 짧은 머리한 사람? 너희 새엄마 이런 스타일이었어? 아저씨가 이런 스타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네.”준호가 형탁을 노려보자, 형탁이 기침했다.“이 사람이 확실하다는 거지?”준호는 눈썹을 찌푸렸다.“나도 확신은 못 하겠어. 이 사람 고은지랑 스타일이 많이 달라, 근데 내 느낌에는, 이 사람이 고은지 같아.”“아, 애인의 직감.”이번에 준호는 반박하지 않고 스크린 속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어디 도망치려면 한번 쳐봐! 난 네가 재가 돼도 알아볼 거니까!’...무진에 비가 많이 와, 촉촉한 안개에 자연이 섞여 아름다움을 뽐냈다.은지의 사탕 가게는 카페를 개조한 것이어서 이층에 경치를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해성시에서 형탁이 자료를 들고 빠른 속도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한 경찰이 그에게 인사를 했고 형탁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사무실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그는 마구 뛰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야, 중요한 소식 있어!”준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중요한 소식 아니기만 해봐? 너 죽일 거야.”형탁이 전에 가끔 일손이 부족해서 작은 일을 큰 일로 속여 준호를 불러 도와주게 했다. 형탁은 준호가 계속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는 것을 보고 머쓱한 듯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이번에는 진짜야. 절대 너 속이는 거 아니야.”반 시간 후, 준호가 오고 형탁이 항공편 정보가 적힌 서류를 보여주었다.“이거 봐봐.”준호는 그 자료를 받지 않았다.“그날 모든 항공편에 고은지의 정보가 없다면서?”“맞아! 근데 너 생각해 봐. 고은지의 정보는 없지만 한 사람의 이름이 정은지야. 그쪽에서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정은지라는 사람이 네가 익숙하다고 했던 그 사람이야!”준호가 그제야 반응했다.“그럼 고은지가 가짜 신분증을 썼다는 거야?”“음, 가짜 신분증은 아니고, 정은지의 정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주 완벽히 씌어있어. 가짜라고 하면 고은지의 정보가 가짜겠지.”고씨 집에서 은지를 데려간 것은 도준을 위해 준비한 것이기에 은지가 기녀의 딸이라는 것을 들키면 안 됐었다.그래서 은지에게 새 신분을 만들어 줘 새로운 껍질을 쓰게 된 것이다.그래서 은지는 일찌감치 어떻게 복수하고 어떻게 벗어날지 다 생각해 놨다.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자, 준호의 답답했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졌다.준호의 지금 목표는 하나다. 은지를 찾는 것. 준호는 손에 든 자료를 봤다. 그 위에 은지가 남한성에 갔다고 나와 있었다.‘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법이다? 고은지 담이 진짜 크네?’형탁이 말했다.“고은지가 남한성에 간 뒤로 아무런 종적을 찾을 수 없어. 어느 산이나, 마을에 숨었을지 아무도 모르지. 남한성 쪽은 나도 잘 몰라서 너 절로 찾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