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원의 기억은 신옥영의 평온한 말투에 따라 되살아났고,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너무 차가워서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신옥영이 느꼈던 비통한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곽도원의 시선이 흔들렸다.사실 그때 곽도원은 진심으로 신옥영과 다시 잘해보고 싶었다.그때 곽도원은 자신의 모든 여유 시간으로 신옥영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 했었다. 심지어 부하한테서 아이를 잃은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는지 배우기까지 했다.곽도원은 신옥영이 착하고 아이도 키우고 있으니, 자신을 언젠가는 용서할 줄 알았다.그러나 그렇게 착하고 자애로운 신옥영이 곽도원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신옥영은 곽도원과 화를 내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않고 그저 가장 예의를 지키는 방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 큰 벽을 세웠다. 곽도원이 아무리 다가가도 다시는 원래의 거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두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준호의 첫돌 생일에 곽도원이 신옥영의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피해서 곽도원이 이런 생각을 했었다.‘옥영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생각 정리도 잘될 거야.’그러나 그렇게 30년이 지났고 한 가정이 단란히 모이는 것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이혼을 맞이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준호까지 집을 떠나려고 한다.‘근데 뭐 어때? 옥영이 없어도 은지가 있잖아. 준호가 없으면 다른 아이 가지면 되지.’이 세상에서 반드시 누구랑 함께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곽도원은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눌렀다.“내가 너한테 미안한 건 사실이야, 그래서 내가 미안한 만큼 너한테 보상해 줄게. 그러나 준호는 이미 글렀어, 갠 우리 집안을 계승할 사람이 못 돼.”이 말을 들은 신옥영이 웃었다.“그 말은 지금 제가 당신의 아들을 잘못 키웠다는 말씀이세요?”‘당신의 아들.’이 말이 곽도원이 할 말을 잃게 했다. 그는 더 이상 준호를 나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그렇다. 신옥영이 키운 아들은 그녀의 아들이 아닌,
두 사람은 손님들을 피해 뒤 정원으로 나갔다.신옥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은지 씨, 아마 다 들었을 텐데, 준호, 제 아이 아니에요.”“들었어요.”은지는 신옥영을 바라보았다. 신옥영은 거의 50살이 되는데, 자애로운 얼굴을 갖고 있어 보는 사람이 호감을 느끼게 했다.은지가 신옥영을 바라볼 때, 신옥영도 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은지 씨, 이 일 준호는 모르니까 비밀로 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하시면 안 돼요.”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곽도원이 사모님을 이렇게 대하는데, 복수하실 생각 없으셨어요?”“첫 몇 년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신옥영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나 후에 준호가 커가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준호의 얘기가 나오자, 신옥영의 표정이 더욱 인자해졌다.“은지 씨는 못 보아냈을텐데, 준호는 사실 말 잘 듣는 아이예요. 제가 유산해서 몸이 안 좋을 때, 준호가 네, 다섯 살이었어요. 겨울이면 몰래 제 방에 와서 침대를 따듯하게 만들어준 뒤에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었죠.”“후에 학교에 들어간 뒤, 저는 준호가 항상 최선만 다 하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애가 성격이 도원 씨처럼 승부욕이 강해서 뭘 하던 가장 잘하고 싶어 했죠. 공부든 운동이든, 무슨 시합에만 나가면 꼭 상을 받아 왔어요.”“후에 알았어요. 준호는 제가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이 훌륭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안을 떠올릴 때 염옥란이 아닌 절 떠올리게 하려고요.”신옥영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준호를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준호는 겉으로 보기에는 좀 강해 보여도 사실 되게 섬세하고 약한 아이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쉽게 상처를 주고 상처도 쉽게 받고요.”은지의 시선이 흔들렸다.“저한테 이런 말씀을 왜?”“은지 씨, 저 한평생을 바쳐서 준호를 키웠어요. 전 준호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어요. 도원 씨랑 저처럼 이렇게 말
준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술 취한 할아버지가 은지를 터치하고 있었다.“은지 씨, 정말 미인이시네요. 도원이 정말 복 받았네.”준호는 이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는데, 일흔, 여든이 되는 나이에 이발도 거의 없어서 밥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예쁜 여자만 좋아했다.‘저 늙은 게.’은지는 바보처럼 피하지 않았다. 준호는 그런 은지를 보고 있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다. 준호는 성큼성큼 걸어가 은지를 툭 쳤다.“할아버지, 저 준호인데, 저 기억하세요?”준호가 오자, 아까까지 주인공이었던 은지가 옆으로 밀려났다.은지는 아직 서류상으로 곽도원의 새 아내가 아니었기에 곽씨 집안의 계승자인 준호의 지위가 더욱 높았다.순식간에, 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준호를 칭찬했다. 다른 집들과 달리 곽씨 집안에는 자식이 준호 하나뿐이고, 이루어 낸 성과도 좋았기에, 다른 집 애들과 달랐다. 그래서 많은 집에서 자신의 딸을 준호랑 엮고 싶어 했다.한 사람이 말했다.“우리 딸이 도련님이랑 같은 중학교를 나왔더라고요. 정말 인연이죠.”다른 사람이 말했다.“도련님께서 전에 남한성에서 근무하셨죠? 제 딸이 남한성에 음식을 좋아해요.”또 다른 사람이 딸을 등판시켰다.“은지야, 너 집에서 계속 도련님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어렵게 온 기횐데, 얼른 와서 술 부어.”“은지?”준호는 눈썹을 찌푸렸다.김은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감격스러워했다.“네. 전 김은지라고 합니다.”준호는 은지가 자기랑 상관없는 일을 보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아, 제 새엄마도 은지인데.”김은지는 준호가 좋은 뜻으로 한 말인 줄 알고 웃었다. 그러나 준호가 한 마디 덧붙였다.“그래서 전 이 이름 싫어해요.”준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딱히 놀라워하지 않았다.곽도원과 신옥영이 이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새 아내를 맞아들인 것도 모자라, 새 아내가 준호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준호가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한 일이다.손님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듯이, 또는 은
곽도원의 안방을 새로 꾸며 신혼부부의 방으로 만들었다. 저택에서 가장 큰 방으로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이기도 했다.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고 장식품으로 놓은 것들도 모두 가격대가 있는 골동품이었다. 이때 해가 서서히 저물면서 노을이 졌다.술에 취한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한다. 준호가 많이 지탱하고 있어도 은지는 힘들어했다.곽도원을 침대에 눕히고 나자, 준호는 마치 엄청난 고통을 견뎌온 듯 미간을 찌푸렸다.은지는 곽도원의 신발을 벗겨주려고 하는데, 준호가 그녀의 손을 쳐냈다.준호는 은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 콧방귀를 꼈다.“너 이럴 필요 없어.”준호는 간단하고 확실하게 곽도원의 신발을 확 베껴서 땅에 팽개쳤다.이렇게 해도 곽도원은 여전히 술에 취해 의식이 없었다.곽도원은 지위가 높아 평소에 사업 때문에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많았는데, 준호는 곽도원이 이렇게 취한 모습은 처음 본다.‘이 여자랑 결혼했다고 기뻐서?’준호는 곽도원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은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은지는 준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준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넌 나랑 할 말 없어?”은지가 되물었다.“뭘?”‘그러네, 무슨 말 하지?’준호는 방을 한번 훑어보더니 땅에 던져진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너 도와서 신발 벗겨줬잖아.”“응, 도련님 정말 효자네.”“너!”“도련님.”은지는 이불을 정리하며 준호를 바라보았다.“여기는 나랑 네 아버지 신혼 방이니까 그만 나가봐.”‘신혼 방’이라는 말을 듣자, 준호는 그제야 방안의 모든 물건이 신혼부부에게 맞춰서 놓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모든 물건이 다 준호에게 오늘은 곽도원과 은지의 신혼 첫날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곽도원이 일어나면 고은지랑...’준호는 화가 나 눈이 아팠다.그는 그 물건들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났다.은지는 준호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는 것을 보고 빨간색 이불을 보았다.‘빨간색만 보면 화내는 걸 보니 소인가?’“너랑
곽도원이 뭐라고 하는지 듣기도 전에 준호는 무의식적으로 은지를 품에 안고 머리를 가슴팍에 품어 버렸다.은지는 이렇게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준호의 힘을 못 이겨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침대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지 마.”두 사람은 정지 화면처럼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곽도원이 또 한마디 했다.“옥영아.”곽도원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고통스러운 듯 신옥영을 부르고 있었다.곽도원이 꿈을 꾸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준호는 한시름 놓았다.‘근데 아버지 지금 우리 엄마 이름 부른 건가?’‘전에 아버지 꿈에서 염옥란만 불렀는데, 오늘은 왜 우리 엄마를 찾지?’은지는 준호의 팔을 툭툭 치며 놓아 달라고 했다.준호는 은지를 놓아주고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곽도원은 눈썹을 찌푸리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옥영아, 이게 우리 아이야, 돌려줄게.”준호는 이 말이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왜 돌려준다고 하지?’곽도원은 무슨 악몽을 꾸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괜찮아, 못 낳아도 괜찮아.”준호가 무슨 말인지 더 들어보려고 하는데, 손이 차가워져서 돌아보려고 하는데, 은지가 준호와 입을 맞추었다.은지가 오랜만에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준호의 주의력이 돌려지더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귓가에는 은지의 숨소리로 가득 차 곽도원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내가 그 아이 가져와서 너 줄게.”“옥영아, 날 탓하지 마.”한쪽에서는 두 사람이 둘만의 세상에 빠졌고 다른 쪽에서는 곽도원이 꿈에서 슬퍼하고 있었다.술 때문에 곽도원의 숨소리가 아주 컸지만 준호와 은지의 가쁜 숨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모든 일은 다 조용히 이루어졌지만 아주 강렬했다.해가 저물었는데, 준호는 계속해서 은지에게 뽀뽀하려고 했다.은지는 그런 준호를 피하고 등 돌아서 옷을 정리했다.“너 이젠 가야지.”차가운 은지의 얼굴을 보니 끓어올랐던 준호의 마음에 물이 끼얹어진 것 같았다.준호는 은지의 손목을
곽도원은 원래도 머리가 아팠는데, 준호의 이런 말투를 들으니,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준호야, 난 옥영이를 봐서 너랑 안 따지는 거야. 전처럼 그런 말 계속하면 나 진짜 안 봐줘!”준호는 대들고 싶었지만, 신옥영이 자신을 위해 희생한 것을 떠올리고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제가 고은지 보고 가라고 했어요!”준호가 항상 은지를 싫어했기에 곽도원은 별생각 없이 몇 마디 꾸지람했다.“무슨 소리냐! 은지 너보다 나이 많아! 네가 왜 은지를 가라 마라야? 빨리 다시 불러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나고 준호가 밖으로 나갔다. 곽도원은 요새 머리가 자주 아파 욕할 힘도 없어 소파에 기대있었다....아현원에서 희진은 멀리서부터 씩씩거리며 오고 있는 준호를 보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은지 방으로 뛰어갔다.“사모님! 도련님께서 또 오십니다!”희진은 저번 날 준호가 늦은 밤에 은지의 방에 들어간 것을 본 뒤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추측했었다. 그러나 희진은 준호가 은지를 내쫓기 위해 은지를 괴롭히는 줄로 알고 준호를 보면 항상 두려워했다.은지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희진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 먼저 나가 있어.”희진은 은지가 걱정됐다.“사모님, 도련님 되게 화나 보이시는데, 어디 가서 좀 숨으시죠.”말이 끝나자마자 준호가 방으로 들어왔다.은지가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준호는 더욱 화가 났다.“내가 너 도와서 아버지랑 얘기했는데, 넌 여기서 아침밥을 먹고 있어?”희진은 은지가 또 당할까 봐 손에 땀이 났다. 그러나 은지는 급해하지도 않고 천천히 그릇에 음식을 담고 준호에게 내밀었다.“너 주려고 남긴 거야.”은지가 6개 물만두 중 4개를 그릇에 담고 준호에게 내민 것을 보고 희진은 미덥지 않았다.‘도련님께서 물만두 4개 갖고 풀릴까?’그러나 물만두를 받은 준호는 화가 금세 사라진 듯 은지 옆에 와서 앉았다.“날 주려고 남겼어? 진작에 말하지.”희진은 잘 넘겼다고 생각하다가 탁자 위에 젓가락
“알았어. 나 옷 갈아입을 거니까 너 먼저 나가.”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준호가 불만이 있는 듯 계속 앉아 있었다.“네가 옷 갈아입는데, 내가 왜 나가? 내가 너 뭐 못 본 거 있냐?”“도련님, 너 도련님이야, 지조 좀 지켜.”준호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했다.“왜? 여기 사람도 없잖아.”말하자마자 준호는 옆에 있는 희진을 발견하고 눈치를 줬다. 희진은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고 희진은 그제야 놀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와, 이게 무슨 일이야?’은지는 준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준호는 마음에 안 들면 그녀를 하루 종일 놓고 안 놔준다. 그래서 은지는 준호를 쫓아내지 않고 옷장에서 빨간색 원피스를 꺼냈다.“결혼식도 다 끝났는데, 왜 입어!”은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빨간색으로 준호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하얀색 원피스로 바꿨다.은지가 고른 것은 잠옷이었고 준호를 등쥐고 갈아입었다.은지는 마른 편이고 피부가 되게 하얬다. 흑발을 하고 있어 더 하얘 보였고 언젠가는 천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은지가 잠옷을 다 입자, 이때 뒤에서 준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은지는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은지가 옷을 벗었을 때 뒤에서 준호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나이가 어려 이런 쪽에 욕망이 큰데,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이러니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준호의 반응에 은지는 반항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네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셔.”“기다리시라고 해!”“내가 계속 안 가면 찾아오실 수도 있어.”준호는 은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준호는 그저 이렇게 은지를 보낼 수 없었다. 준호는 그런 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왜 이렇게 담담해? 너 나랑 같이 있는 거 싫어?”은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준호의 입에 뽀뽀했다.“옷 갈아입을게.”이것보다 더 한 것도 많이 했지만, 단순한 입맞춤이 준호의 얼굴이 빨개지게 했다. 그러나 준호는 부끄러움을 인
곽도원이 신옥영이 사는 집에 도착하자,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이 층짜리 작은 집이었는데, 이웃과의 거리가 1미터도 되지 않았다. 집과 집이 거의 다 붙어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나마 좀 좋은 집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 놓고 말하면 그저 보통 집이다.정원 앞은 철로 둘러막고 있었고 정원에는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았다. 정원에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도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신옥영이 현재 사는 환경을 보고 곽도원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그녀가 곽씨 저택에서 30년을 살았고 저택에는 열 걸음에 도우미가 한 명씩 있어서 혼자 무슨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신상 백이나, 신옥영 피부에 맞게 만들어진 화장품이나, 그녀가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하던 사람들이 다 도와주었다. 그래서 곽도원은 신옥영이 저택에서 산 30년 동안 줄을 서서 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모른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그런데 집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집에서 살면 소음이 장난이 아닐 텐데 옥영이 어떻게 버티지?’곽도원은 신옥영이 잘 못 지낸다고 생각하고 노크를 하려고 하는데, 안에서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접시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햇살이 정말 좋네요. 밖에서 드시지요.”‘도우미인가? 아니야, 너무 젊어. 스물 다섯, 여섯 같은데? 옷도 너무 예쁘게 입었고.’신옥영은 치마에 카디건을 걸치고 걸어 나왔다.신옥영은 그 여자를 보고 인자하게 웃었다.“하나야, 밖에서 먹기엔 좀 추울 거 같아. 안에서 먹자.”장하나는 그릇을 놓고 신옥영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싫어요, 싫어요! 집에 있을 때 아빠가 밖에서 못 먹게 해서 오늘 딱 한 번만 밖에서 먹을게요. 빨리 먹고 들어올게요!”신옥영이 하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주 자애로웠다. 신옥영은 하나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말했다.“그래, 그럼 바람 덜 부는 쪽에 앉아.”이때 나이가 오십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양념을 들고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안경을 쓰고 있어 점잖아 보였다.하나가 이미 밖에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