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는 움직이지 않았다.준호는 은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너 때문에 이렇게 몸이 상했는데, 날 위해서 약도 안 바꿔줘? 고은지, 너 아무리 차가워도 이 정도는 해 줘야지!”그러나 은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준호는 내밀었던 팔을 거둬들이고 은지가 오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나 약 안 교체해 주면 안 갈 거야. 내일에 아버지가 나 못 찾아서 네 방까지 오면 아들이 새엄마랑 이러고 있는 걸 보고도 너랑 결혼할지 볼래?”준호가 은지랑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 은지는 유치하다는 듯이 준호를 바라봤다.결국 은지는 준호의 약을 교체해 주었다.아직 젊기에 준호의 상처는 벌써 아물기 시작했다.준호가 평소에 부대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등 근육이 아주 발달했다. 은지는 신음을 애써 참고 있는 준호를 발견하고 비웃었다. 소독할 때 준호는 이를 악물었고 구릿빛 근육도 같이 움직였다.은지는 준호의 목과 등에 땀이 흥건한 것을 보았다. 불빛 아래에서 그 근육이 더 섹시해 보였다.은지는 처음처럼 준호에기 다가가 굳어있는 등에 입김을 불었다.따듯한 바람과 부드러운 손길에 준호는 참지 못하고 은지의 머리를 잡고 입맞춤했다.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하는 입맞춤에는 강렬함과 탐색이 동반되어 있었다.준호는 눈을 감지 않았고 은지도 마찬가지였다.은지가 낮에 했던 말이 떠오른 준호는 화가 난 듯 손으로 그녀의 눈을 막았다.“전에는 너 괴롭히려고 그런 거라서 실력을 못 보여준 거야! 못 믿겠으면 다시 봐봐!”준호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그리고 말 못 할 감정 때문에 이 차가운 은지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따듯한 몸으로 은지의 차가운 몸을 따듯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이런 상황은 준호도 그렇고 은지도 적응이 안 되었다.은지는 준호가 예전처럼 대해 줬으면 했고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두 사람은 욕망의 바다에서 서로 탐색했다. 준호는 은지를 삼키고 싶었고 은지는 준호를 손에 넣고 싶었다.파도가 첨벙대는 바다에
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넌 네 어머니를 대신해서 날 지켜보는 거야, 아니면 네 아버지를 질투하는 거야? 도련님, 설마 날 좋아하게 된 거야?”준호는 은지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가 부끄러운 듯 화를 냈다.“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처럼 이렇게 차가운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은지의 질문에 당황해서 화를 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절대 은지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준호는 말을 마치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은지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문을 보며 준호가 앞으로 몇 번 더 오면 문이 박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다행히 준호가 바빠져서 은지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은지가 곽도원과 같이 있을 때는 매번 어디서 나타나는지 곽도원에게 일에 관해 물었다.준호가 성격이 좀 안 좋지만, 어릴 때부터 곽도원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고 요 몇년 사이에 나가서 단련을 받았기에 가업을 계승하기 너무 어렵지는 않았다.두 달 사이에 곽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준호가 어떻게 진중한 사람이 됐고 어떤 일을 해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곽도원도 시름 놓고 준호에게 일을 맡겼고 그사이에 나가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부자가 바빠지자, 은지는 자연스럽게 여유로워졌다.가끔 도우미가 밖에 나가서 산책하라고 해서 정원에 나가서 걷기도 했다. 이날 은지는 신옥영의 정원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었다.준호가 정원의 관리를 책임졌지만, 그가 꽃을 키우는 방식이 돼지를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영양제를 주고 비료를 주며 물을 주었다. 전에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던 정원이 현재는 영양이 과한 돼지우리 같았다. 꽃들이 너무 무성해서 울타리 밖으로 밀려 나올 지경이었다.이렇게 계속 자라다가는 꽃들이 다 죽어버릴 것 같았다.은지는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기에 가려고 하는데, 이때 희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옥영 사모님께서 계실 때는 이 정원을 정말 아끼셨는데, 제가 여기에 있은 시간이 너무 짧아 옥영 사모님
아현원에서 희진은 너덜거리는 은지의 손목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사모님, 손목 탈골된 건가요?!”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 같아.”“저 지금 당장 가서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희진이 나간 뒤, 은지는 힘겹게 외투를 벗으려고 했는데, 이때 누군가 외투를 잡아당겨 줘서 쉽게 벗을 수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 준호가 서 있었다.은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본 준호는 부끄러웠다.“정원사에게 물어봤더니 네가 꽃 정리해 준 거라고 하더라. 내가 너 오해했어.”“응.”은지가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고 준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너 손목 나갔네, 내가 맞춰줄게.”은지는 뒤로 물러나면서 거절했다.“괜찮아.”준호는 은지가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부대에서 다른 분들 거 많이 해봤어. 너 안 그러면 회복하기 어려울 거야.”“고맙지만 괜찮아.”은지는 확실하게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준호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걱정 마, 나 실력 꽤 좋거든. 너 아프게 안 할게.”듣는 사람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말에, 문밖에 있던 의사와 희진은 깜짝 놀랐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들으셨죠?’‘들으셨어요?’‘와!’다행히 곧이어 방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봐, 이렇게 하니까 맞춰졌잖아. 손목 움직여 봐.”‘아, 손목 맞추는 거구나.’의사와 희진은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그러나 희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 도련님께서 사모님 엄청나게 미워하지 않았나? 왜 오늘은 사모님이 다치신 걸 보고 이렇게 긴장하신 거지?’의사가 은지의 손목을 검사하고 안경을 올리면서 말했다.“비록 원래 자리로 돌아왔지만,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잘 회복이 안 되면 앞으로 습관성 탈골이 올 수 있어요.”준호가 의사의 말을 듣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렇게 심하다고? 병원 가서 엑스레이 좀 찍어보자!”은지는 준호를 한번 보더니 거절하지 않았다.희진이 따라가려고
복도에서 은지는 어떤 남자의 손에서 상자를 건네받았다.“감사합니다.”정장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제가 약속드렸던 것인데요.”두 사람 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남자가 말을 이었다.“순리롭나요?”“네.”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은지가 눈썹을 찌푸렸다.“예상 밖의 일이 있어서 조금 힘들긴 합니다.”“네?”남자가 묻기도 전에 밖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지!”곧이어 복도의 문이 열리더니 준호가 나타났다.준호는 은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준호는 말하다가 은지 옆에 있던 남자를 발견했다.“태준 선생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련님.”준호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무엇인가 깨달은 듯 은지와 태준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태준 선생님께서 여긴 왜?”“검사받으러 왔다가 은지를 봐서요. 얘기 좀 하느라고.”태진의 해석에 문제는 없었지만, 준호는 의심하기 시작했다.‘왜 하필 오늘에 검사하지? 마침, 고은지를 만났다고?’‘고은지를 만났으면 밖에서 말하면 되지 왜 복도에서 말하지? 남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라도 했나?’준호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다 얘기하셨나요?”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준호는 태준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은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준호의 뒤통수만 봐도 은지는 준호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 수 있었다.걷다 보니 준호는 은지를 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은지가 멈춰 서 있었다.“왜? 태준 씨랑 더 얘기하고 싶어?”은지는 준호의 손을 뿌리쳤다.“그건 아닌데, 너 이렇게 잡아당기다가 내 이쪽 손목까지 탈골할까 봐.”...차에 타고나서 준호는 모든 행동에서 자신이 화가 났다고 티를 냈다.은지가 한 손으로 안전벨트를 하는 것을 보고 준호는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위해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안전벨트를 해주고 나서 준호는 씩씩거리며 운전석으로 갔다.그러나 은지는 준호를 상관하지 않고 엑스레이를 이리저
그 뒤로 준호는 차를 아주 빨리 몰았다. 그러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는 또 후회했다.너무 빨리 몰아서 은지랑 말 몇 마디 못 했기 때문이다.요즘 너무 바빠서 다른 일을 신경 쓰지 못했다. 거기다가 전에 은지가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말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단독으로 안 만난 지 두 달이나 지났던 것이다.‘이것 때문에 은지가 태준 씨를 찾은 건가? 혼자 있는 걸 참지 못하는 여자네!’은지는 엑스레이를 봉투에 잘 담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차가 저택에서 점점 멀어져갔다.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물었다.“길 잃은 거야?”준호는 아무렇게 둘러댔다.“어머니 곧 생신이라 같이 가서 선물 좀 골라줘.”“응?”“선물 하나 사는데 뭐 어때?”“아니, 내 말은 네 새엄마 데리고 네 친엄마 생일 선물을 산다고?”“캑캑.”준호는 사레에 들려 은지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은지가 준호랑 말을 안 해줘도 화나고 말을 해주면 더 화가 났다.쇼핑몰에서 준호는 은지를 데리고 액세서리를 파는 곳으로 갔다.“넌 어느 게 마음에 들어?”은지가 자세히 둘러보자, 준호가 말했다.“너 먼저 네가 좋아하는 걸 골라봐, 그러고 나서 내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볼게.”판매원이 안내를 해주었다.“고객님, 피부가 너무 하야시네요. 저희 제품 중에 블루 보석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있는데, 고객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요.”블루 보석으로 된 팔찌가 은지의 손목에 채워졌다. 판매원이 말한 것처럼 은지의 피부가 하야므로 아주 아름다웠다.준호는 그 팔찌가 마음에 들었다.“두 개 주세요.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두 개요?”판매원이 웃으며 대답했다.“저희 디자인마다 하나씩밖에 없어요. 같이 착용하면 예쁜 거 많아요.”판매원이 은지에게 다른 팔찌를 끼워주면서 말했다.“이렇게 비싼 액세서리를 두 개씩 사시는 걸 보니 남편분께서 정말 사랑하시나 봅니다.”은지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저 얘 새엄마에요.
저택에서 오후에 적지 않은 도우미들이 준호가 은지에게 화를 내서 은지가 손목이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의사를 불렀는데도 회복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갔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래서 도우미들은 은지가 세게 다친 줄 알았다.은지가 준호를 따라 나간 뒤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저녁에 곽도원이 돌아오고 도우미가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도련님이 사모님 손목 잡아끌어서 사모님 손목 나갔다며? 사모님께서 바로 기절하셔서 구급차에 실려 갔대.”이 말을 들은 곽도원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집사,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집사는 준호가 욕을 먹을까 봐 에둘러 대답했다.“은지 아가씨께서 옥영 사모님이 키우시던 꽃을 잘라서, 도련님께서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근데 도련님께서 아가씨 데리고 병원에 가셨어요.”곽도원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탁자 위에 ‘쿵’하고 놓았다.“난 준호가 성숙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작은 일로 새엄마하고 다퉈? 가서 준호 불러와!”...반 시간이면 오는 집을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준호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준호는 차에서 내린 뒤, 조수석으로 가서 차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나 잡고 내려.”은지가 움직이지 않자, 준호가 은지를 다그쳤다.“얼른! 나 안 잡고 내리다가 다치면 또 내 탓 하려고?”준호가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므로 은지가 그의 팔을 잡고 내릴 때, 준호의 팔이 조그마한 미동도 없었다.은지가 차에서 내리자, 준호는 으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은지는 그런 준호를 무시하고 가려고 하는데, 준호가 그녀를 막았다.“태준 씨는 이렇게 너 못 잡아주지?”“응.”준호가 으쓱해 있는데, 은지가 천천히 한마디 덧붙였다.“평소에는 내가 태준 씨 부축하지.”이 말을 들은 준호는 차 문을 확 닫아 버렸다.은지가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보고 준호는 아까 샀던 물건들이 떠올라 트렁크에 가서 가지려고 하는데, 기다리고 있던 집사에게 끌려갔다.“도련님,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국장님
준호의 태도가 곽도원의 화를 더 돋울 수 있다는 생각에 집사가 다급히 설명했다.“국장님, 오해하셨어요. 은지 씨 지금 별문제 없어서 방에서 쉬고 계세요. 도련님께서 잘못한 걸 아신답니다.”“잘못한 걸 알면 없던 일로 넘어갈 수 있어? 그런 보잘것없는 꽃이 뭐라고 새엄마한테 손을 대! 옥영이 널 이렇게 가르쳤어?”원래 대충 사과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곽도원의 말을 들은 준호는 그 재떨이를 땅에 세게 던져버렸다.“절 욕하는 건 괜찮은데, 우리 엄마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정원에 심은 꽃들 다 우리 엄마가 심은 거예요. 엄마가 반평생을 가꾼 꽃인데, 아버지는 관심 없겠지만, 전 아니라고요!”신옥영이 도우미에게 말해놨기에 준호는 정원 밑에 무엇이 묻혔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엄마가 이 집에 남겨둔 유일한 흔적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그러나 곽도원은 정원에 묻힌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준호가 정원의 꽃 얘기를 하자 귀가 찌릿했다.“됐어!”곽도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곽준호, 내가 경고하는데 네 엄마가 유산한 건 네 엄마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거야. 그 여자랑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네 엄마가 과거를 잊지 못해서 애를 정원에 묻어서 날 죄책감 가지게 하려고 그런 거라고! 네 엄마가 혼자서 해결이 안 되니까! 너 한 번만 더 이 말 꺼내면 우리 집에서 나가!”“국장님!”집사가 다급히 막으려고 했지만, 준호가 다 듣고 말았다.서재의 불빛이 준호의 얼굴을 비추었다. 사람들이 준호가 곽도원 젊었을 때 같다고, 잘생기고 눈에서 빛이 난다고 했었다.그러나 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기 하관은 신옥영을 더 닮았다는 것을 말이다.신옥영을 본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신옥영이 오르지 못했고 준호의 엄마가 신옥영이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곽도원의 인생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너무 많이 거론되어 그의 절반 인생을 함께한 아내를 덮어버렸다.모든 사람이 준호가 곽도원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염옥란이 곽도
그러나 이미 늦어 버렸다. 집사는 곽도원이 저렇게 안 좋은 표정을 지은 것을 처음 봤다.준호가 한 말은 두 사람의 혈육 관계를 파탄 냈고 곽도원의 자존심까지 바닥으로 끌어내렸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곽도원은 그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책임을 지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아들이 이런 말을 했기에 어쩔 방법이 없다.곽도원의 남자로서 자존심과 아버지로서의 존엄까지 짓밟혀 버렸다.암울한 분위기 속에 불빛도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집사가 분위기를 좀 바꿔 보려고 했는데,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곽도원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나지 않았고 준호도 자존심을 굽힐 나이가 아니어서 마찬가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몇 분 후, 곽도원이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네가 내 아들을 하고 싶지 않다면 오늘부터 넌 우리 곽씨 집안 사람이 아니다. 돈, 권력, 네가 갖고 있는 지위까지 내가 다 몰수할 거다.”“그리고 지금부터 넌 우리 집안의 모든 권력을 이용할 수 없다. 곽씨 성도 갖지 말고 네 엄마한테 갈 거면 가서 네 엄마 성 따라. 난 너 같은 불효자 필요 없다.”“국장님!”곽도원이 준호랑 부자 관계를 끊겠다는 말을 들은 집사는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국장님, 도련님께서 지금 화가 너무 나서 이러시는 거예요. 국장님께서 아들이 도련님 한 명뿐인데, 이렇게 부자 관계를 끊으시면 어떡해요!”곽도원은 집사의 말을 무시하고 담담히 말했다.“어서 가서 결혼식 준비해. 곧 제2의 계승자가 나올 거니까.”결혼이라는 말을 들은 준호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준호는 곽도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가버렸다.“도련님! 도련님!”...아현원에서 희진이 창문을 닫으면서 말했다.“사모님, 밖에 비가 오네요. 얼른 쉬세요.”“응.”희진이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온몸이 쫄딱 젖은 준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도련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희진의 목소리가 점차 낮아졌다. 왜냐하면 준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