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는 반항하지 않고 조금 더 편한 자세로 바꿨다.“넌 지금 내가 네 엄마의 위치를 대신해서 화를 내는 거야, 아니면 내가 너랑 잤는데 네 아버지랑 결혼해서 화가 난 거야?”“뭐가 달라! 결론은 다 똑같잖아!”“달라.”은지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았다. 드레스를 입어보는 중이어서 머리가 헝클어진 상태였다. 은지는 준호보다 6살이 많았기에 어린 여자의 수줍음은 없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더 알고 싶게 했다.“만약 신옥영을 위해 화를 내는 거라면 네 아버지가 정이 없는 사람임을 슬퍼해야 하는 거고 내가 네 아버지랑 결혼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사람을 삼킬 듯이 쳐다보고 있는 준호를 보며 은지는 가볍게 웃었다.“그럼 날 막으면 되지. 그러나 아쉽게도 곽씨 집안에서 네가 권력이 제일 센 게 아니네.”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준호는 전처럼 불이 붙지 않고 은지의 손목을 더 꽉 잡았다.은지의 말이 맞았다. 곽도원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고 준호가 뭘 이루어 보자고 남한성에 가서 곽도원의 권력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곽씨 집안을 계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준호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자, 은지는 준호에게 다가갔다.“저녁에 너 기다릴게.”준호가 대답하길 기다리지 않고 은지는 그를 밀어냈다.“나한테 와서 화를 내도 소용없어. 결혼하는 건 네 아버지의 결정이니까.”말을 마치자, 문이 열리고 곽도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들어왔다.“준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니?”...서재에서 곽도원은 어두운 표정으로 탁자 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요즘 두통이 심해져 은지가 마사지를 해주면 좀 낫다고 했다.곽도원은 미간을 어루만졌다.“준호야, 나랑 네 엄마 이젠 정말 이혼했다. 그러니 내가 누구랑 만나던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은지는 이젠 네 엄마가 됐으니까 존중해 줘야 해.”준호는 어이가 없어 곽도원을 가리키며 말했다.“우리 엄마랑 방금 이혼했는데 이렇게 빨리 새 여자랑 결혼해요? 이 두
은지의 말투가 너무 담담해서 마치 밥을 먹을 건지 물을 마실 건지를 물어보듯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었다.준호는 대답하지 않고 은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은지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준호가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누르고 얼굴을 세게 물었다.은지는 준호의 과격한 표현을 피하려고 했지만, 준호가 아직 어리고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쉽게 놔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은지는 화장대의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그녀는 너무 아파서 눈을 질끈 감았다.화장대 위에 놓였던 화장품들이 와르르 쏟아졌지만 그걸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준호가 은지의 옷을 벗기려고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뭐가 깨진 건가요? 제가 처리할까요?”방안에서 ‘사모님’이라는 말을 들은 준호는 눈이 빨개져 은지를 대답하지 못하게 했다. 준호는 은지를 누른 상태로 허리띠를 풀었다.준호는 도우미를 당장 들여보내 곽씨 집안 전체가 이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게 만들고 싶었다.은지가 대답하지 않자, 도우미는 은지가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은지가 미래의 곽씨 집안 사모님이 될 사람인데,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나면 큰일이 난 것이다.“사모님?”도우미가 집사를 불러 방의 열쇠를 갖고 오려고 하던 참에 방에서 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아, 물건이 떨어진 거야. 너 얼른 가서 자.”짧은 한마디였지만 은지는 끊어서 말했다. 착각 일수도 있지만 도우미는 평소의 은지와 목소리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 것 같았다. 원래는 담담하게 얘기했는데, 아까는 숨이 헐떡이면서 얘기했다.도우미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다시 물었다.“뭐가 떨어진 건가요? 제가 수습할까요?”한참 동안 기다려서야 은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괜찮아.”은지가 이렇게 말하자, 도우미도 할 수 없이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이렇게 말했다.“혹시 파편 같은 거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내일 제가 와서 청소할게요.”그러나 이번에는 은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도
준호는 자신을 돋구는 은지를 보고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법을 어기면 안 되기에 준호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절반쯤 닫힌 커튼 뒤로 둘은 신체적인 교류를 진행했다.준호는 은지를 죽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힘을 써서 은지를 반쯤 죽여 놓았다.준호가 간 뒤에 은지는 샤워할 힘도 없었다.해가 거의 뜰 때, 은지는 힘겹게 벽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샤워할 때, 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힘을 조절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아무 조치도 하지 않다니.’은지가 샤워를 마치고 흐트러진 방을 청소하다가 침대 위의 흔적을 발견했다.새벽에 곽씨네 도우미들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은지는 위가 불편해서 우유 한 컵 가져오라고 했었다.어제 도우미가 은지 방에서 난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찍 은지의 방에 왔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도우미는 은지를 불렀다.“사모님?”은지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는데, 도우미가 온 것을 보고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나 아침에 받은 우유 쏟아버렸어.”“알겠어요. 제가 시트 바꿀게요.”정리를 마치고 도우미는 그 시트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우유를 쏟았는데, 왜 이렇게 주름이 갔지?’...곽씨 집안에서 아침은 항상 8시에 먹었다. 곽도원은 은지가 떠온 죽을 받았다. 이때 준호가 밖에서 들어왔다.곽도원은 준호가 신옥영에 대해 말하려는 줄 알고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러나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인 거나 다름이 없었다.곽도원은 아들이 준호 하나뿐이다. 신옥영의 엄격한 교육하에 자랐기에 꽤 잘 자라줘 걱정할 일은 없었다.준호가 화를 내지 않자, 곽도원도 더 이상 꾸짖지 않고 은지에게 말했다.“오늘 아침 죽 괜찮네. 준호에게도 한 그릇 떠 줘.”곽도원이 은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준호가 은지를 너무 막 대하지 않았으면 했다. 곽도원은 이런 일들을 신경 쓸 정력이 없어 은지가 준호에게 잘 보이길 바랐다.은지는 천천히
은지가 다가가려고 하는데, 준호가 은지의 손목을 잡고 욕조 쪽으로 밀어붙였다. 은지는 준호와 욕조 사이에 껴서 꼼짝할 수 없었다. 준호는 은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너 일부러 그런 거지?”“아니야, 너무 뜨거워서 잘 못 잡았어.”‘뜨거워서 못 쥐고 있겠으면 땅에 버려야지, 내 팔등에 쏟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걸 누가 믿어!’“너 진짜...! 아, 아파.”은지가 준호가 덴 곳을 잡아 준호가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손을 뗐다.“미안.”은지는 약을 상처에 발라주었다. 준호의 팔은 이미 물집이 생긴 상태였고 대면적으로 빨개져 있었다.이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고 은지의 체향이 감돌았다.염옥란은 그 당시 해원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은지가 염옥란과 닮았기에 아주 아름다웠다.생김새뿐만 아니라 은지가 풍기는 아우라가 사람의 이목을 끄는 힘이 있었다.지금 은지가 몸을 숙여서 준호를 위해 약을 발라주고 있는데, 준호는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준호는 차갑게 웃었다.“너 이렇게 병 주고 약 주면서 우리 아버지 꼬신 거야?”은지는 약을 다 바르고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았다.“너희 아버지 너처럼 이렇게 유치하지 않아, 병 안 줘도 돼.”남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유치하다고 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특히 준호처럼 남자다운 남자는 더 하다.준호는 화가 나 은지를 등 뒤쪽의 거울에 눌러버렸다.“고은지, 너 언제까지 이렇게 나올 거야?”은지의 상체가 뒤로 기울며 하체가 준호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도련님은? 네 아버지 여자도 탐내는 너는?”은지가 비웃자, 준호는 은지가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쳐버리고 강제로 하려고 했다.요란한 소리에 준호와 은지가 또 싸움이 난 줄 알고 집사는 걱정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아침에 서로 기분이 좋지 않게 식사를 마쳤고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싸웠다는 말을 들은 곽도원은 은지를 서재로 불렀다.은지가 서재에 갔을 때, 곽도원은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고개도 들지
망가진 브로치의 변두리를 보면서 곽도원의 눈에 있던 빛이 사라졌다.“중요하지 않아, 다 처벌했으니까.”곽도원의 시선이 은지의 얼굴에 머물렀을 때, 차갑던 눈빛이 사라졌다. 그는 은지의 어깨를 토닥였다.“월말에 집안 사람들을 다 모아서 결혼식을 올릴 거야. 그러니까 잘 준비해.”곽도원은 자신이 재혼한다는 소식을 막 퍼트리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집안 사람들이 은지를 다 알 수 있도록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식사했다.은지는 곽도원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숙여 브로치의 흠집을 바라보았다.“알겠어요.”...결혼식 날짜가 잡히고 곽씨 집안 사람들은 이 결혼식 준비 때문에 바삐 돌아쳤다.준호는 팔이 덴 뒤로 은지를 찾아가지 않았고 2주 뒤 신옥영을 찾으러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도우미가 속닥이는 말을 들었다.“그거 들었어? 오늘 국장님께서 아현원에서 주무신대.”“그러게, 다음 주면, 결혼식을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은지 씨 쪽에 가서 주무시네. 집사님께서 은지 씨 방 다시 꾸미라고 하셨다던데.”“은지 씨 저렇게 아름다우신데, 국장님께서 앞으로 엄청나게 아끼시겠어.”말하고 있는데, 뒤에 준호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도련님...!”준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그게 진짜야?”도우미들은 준호의 화를 돋울까 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저희 막 말한 거예요.”준호는 도우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정원으로 돌아가 나이가 있는 도우미 진성에게 물었다.“누가 날 찾은 적 있어?”진성은 귀가 안 좋아 큰소리로 되물었다.“네?”“누가 날 찾은 적 있냐고?”“없어요.”이 말을 들은 준호는 화가 나, 이가 간질거렸다.은지는 준호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이 곽도원과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아니지, 아버지 챙기는 게 고은지가 주요하게 할 일이지. 다음 주면 정말 우리 집안 사람이 되는 건데.’은지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여자다.“네? 도련님, 뭐라고요?”진성이 또다시 묻자, 준호는 짜증이 났다.“나 아무 말도 안
은지는 반항하지 않고 탁자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주면, 결혼식 하지 않나요?”“맞아.”곽도원은 은지의 어깨를 감쌌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가슴팍에 단 브로치에 맞혔다. 그러자 곽도원은 다른 쪽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며 익숙한 그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서 우리 이젠 정말 부부가 되는 거야.”사실 은지의 눈이 너무 차가워서 염옥란과 너무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을 계속 밀어내는 느낌이 오히려 더 끌리게 했다.그러나 전과 다른 것은 은지는 곽도원의 손안에 있다.은지는 곽도원의 눈을 바라보며 그 타오르는 눈빛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은지는 이성희를 따라서 어릴 적부터 다녔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이성희한테 누군가 이런 표정을 지으면 그는 은지에게 용돈을 주면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고 주고, 문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고 웃고 있는 것을 그 사람이 보고 좋은 말을 들으면 팁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은지는 그 돈으로 이성희에게 아침을 사줄 수 있었다.어느 날, 은지가 또 다른 사람의 구두를 닦아주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바지를 입으면서 걸어 나와 은지의 손을 잡아당겼었다. 익숙하고도 익숙하지 않은 눈빛으로 말이다.그 뒤에 그 남자가 은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이성희가 나와서 은지의 뺨을 때렸던 기억이 있었다. 이성희는 은지에게 어린 나이에 벌써 남자를 꼬시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비위가 상한다고 했었다.그 뒤로 은지가 누구랑 말하던, 누구랑 웃던 이성희는 항상 그녀의 뺨을 때렸다.그렇게 천천히 은지는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만약 이성희가 지금 은지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았다면 미쳐서 환장했을 것이 분명했다.다행히 이성희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싫어?”곽도원이 아무 표정이 없는 은지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은지는
이 일을 곽도원이 알게 되면 은지는 첫 번째로 벌을 받게 된다.‘고은지를 내보내면 좋은 거 아닌가? 내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고은지를 쫓아내려고 온 거잖아.’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준호는 은지의 손목을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 준호는 이를 악물고 은지의 손목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당겼다.“맞아! 너 죽이려고 그래! 빨리 나와!”준호가 너무 세게 잡아당기자, 은지는 넘어질 듯이 끌려 나갔다.계속되는 연기에 곽도원도 화가 났다.“준호를 정원에 묶어 놔!”준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벌을 많이 받았지만, 이렇게 반항한 적은 처음이었다.곽도원은 준호가 자신의 것까지 위협하려고 하자, 정말 화가 난 것이다. 그는 직접 가서 준호를 밀어냈다.한참 동안 애를 써서야 준호를 정원에 묶을 수 있었다. 준호는 강제로 묶인 말처럼 거세게 반항했다.곽도원은 이번에 엄청나게 힘을 써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채찍을 들고 준호를 때리기 시작했다.저번보다 더 빈번하게 더 세게 때렸다.준호는 이를 악물고 굴복하지 않았다. 그저 불이 켜진 방안을 바라볼 뿐이다.부자가 이렇게 붙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싸움을 말릴 신옥영도 곁에 있지 않았다.집사는 준호의 목에 선 핏줄을 보고 또 입가에 흘러나온 피를 보고, 참지 못하고 땅에 무릎을 꿇었다.“도련님께서 잘못하신 걸 알았답니다!”곽도원이 멈추지 않자, 집사가 준호를 대신해서 빌었다.“도련님, 제발 잘못했다고 하세요!”준호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잘못한 게 없어!”곽도원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다.“잘못한 게 없다고? 그럼, 네가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때릴 거야!”곽도원은 평소에 준호가 자신의 유일한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봐줬었는데, 오늘은 마음을 먹고 때릴 심산인 듯했다.집사는 곽도원에게도 빌어보고 준호에게도 빌어봤지만,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은지에게 무릎을 꿇었다.“은지 씨,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맞다가는 도련님 죽겠어요!”...집사가 말한 것처럼 준호의 입가에 흘
곽도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준호가 은지에 대한 미움이 도를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준호가 신옥영을 아끼는 마음을 생각하면 또 이해는 갔다.그리고 곽도원은 신옥영이 곽도원이 은지를 새 아내로 맞이하는 사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옥영이 준호를 위해, 곽씨 집안의 사모님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다.이런 생각이 든 곽도원은 머릿속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신옥영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혼을 꺼낸 일이 곽도원의 마음에 응어리로 남은 듯했다.크진 않지만, 존재감이 강한 응어리로 말이다.신옥영 때문에 이러는 것으로 생각하자, 곽도원의 화가 조금 사그라졌다.“결혼식 날짜를 뒤로 미뤘다. 그러니까 너도 맨날 미친 사람처럼 날 찾아와서 태클을 걸지 마. 먼저 몸 좀 사리고, 앞으로 우리 집안을 계승할 사람이 몸이 망가지면 안 되니까.”결혼식을 미뤘다는 말을 들었지만, 준호의 얼굴색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결혼을 미뤘다고 해도 곽도원은 여전히 은지와 한 침대에서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준호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그날 준호가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본 광경은 말 안 해도 다 알 수 있었다.준호는 화를 참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퇴원 안 해도 돼요. 근데 고은지 보고 와서 무릎 꿇고 날 간호해 주라고 하세요.”곽도원은 화가 났다.“작작 해!”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붕대 속의 상처 난 피부가 눈앞에 나타나자, 곽도원은 손에 든 컵을 땅에 내팽개쳐 버렸다.“가서 고은지 불러와.”...집에 있던 은지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별 반응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알겠어요.”그러나 한 도우미가 은지를 대신해서 걱정했다.“도련님과 국장님께서 저렇게 싸우시는데, 사모님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국장님한테 애원해서 가지 마시죠.”은지는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더니 그 도우미에게 말했다.“못 들었어? 국장님께서 나보고 오라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