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준호가 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은지는 곽도원의 눈치를 살피고 준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준호는 은지의 말에서 그녀가 자신을 돌봐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준호는 은지의 손목을 더 꽉 잡았다.곽도원이 준호를 때릴 때, 은지는 차가운 눈으로 옆에서 방관했고 준호가 다쳤을 때, 그녀는 또다시 피하려 했다.‘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차가운 여자가 있을 수 있지? 독사도 얘보다 착하겠다!’말 못 할 화가 준호를 감쌌다.“거절하면 아버지한테 네가 내 침대에도 올라왔었다고 이를 거야!”은지는 이 세상에 이렇게 사람을 협박하는 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에 깜짝 놀란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잠시 대치한 사이에 곽도원은 통화를 마쳤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은지는 침대 옆에 서서 준호를 위해 물을 떠주고 있었다.이 장면을 본 곽도원은 마음이 좀 놓였다.“할 일이 있어서 준호 좀 부탁할게.”은지는 준호를 무시하고 곽도원을 배웅하러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서 곽도원은 우울해 있는 은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준호 성격이 좀 그래서 네가 아주 힘들지? 그래도 넌 내 미래의 아낸데 이런 집안의 일들은 너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 너희 둘 사이의 일로 날 신경 쓰이게 만들지 마. 알았어?”그 말을 들은 은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기사가 와서 재촉하자, 곽도원은 할 수 없이 병원을 떠났다.곽도원 같은 남자는 사업, 권력이 가정보다 중요한 사람이다.만약 곽도원에게 준호를 제외하고 시름 놓을 수 있는 후계자가 한 명 더 있다면 준호한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은지가 병실 문을 열자마자 아픈 몸으로 침대 위에서 아등바등하는 준호를 보았다.땅에 떨어진 물건으로 보아 준호는 먼저 문 쪽에 가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 은지는 바로 보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준호가 현재의 몸
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준호에게 물을 떠다 주면서 의사가 먹으라고 한 약을 건네주었다.준호는 약을 땅에 던져버렸다.“나 안 먹어!”은지는 한번 보더니 담담히 말했다.“응.”은지는 컵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그 모습을 본 준호는 깜짝 놀랐다.“내가 안 먹겠다고 하면 다시 안 줘?”은지가 되물었다.“그러면? 네 입이라도 강제로 벌려서 먹여줘? 도련님, 너 이젠 25살이야, 5살이 아니라.”“너!”준호는 상처가 난 부분이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심장까지 찌릿찌릿 아파졌다.은지거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준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 과일 먹을래.”은지는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씻어서 준호에게 건네주었다“너 껍질도 안 깎아줘?”“나 깎을 줄 몰라.”“모른다고? 아버지한테 마사지해줄 때는 왜 모른다고 안 해?”은지는 준호를 노려보았다.“네가 사과를 받고 마사지해달라고 하면 나도 너 마사지해줄 수 있어.”“고은지!”준호는 이를 갈았다.“너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왜 날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데?”준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상처를 받은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은지는 그런 준호를 보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가을이 되어 날씨가 쌀쌀했고 은지의 목소리도 차가웠다.“내가 너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네가 네 아버지 못 이길 거 알면서 달려든 거잖아. 네가 방에 쳐들어왔을 때부터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네가 지금 생명이 위험하다고 해도 난 여전히 네 아버지 거야.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야.”은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준호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침대에 넘어지고 말았다. 은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가가 빨개진 준호의 얼굴이었다.“네가 아버지 것인 걸 알면서 왜 날 꼬신 거야! 나 갖고 장난치는 게 재밌어?”은지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난 그냥 매사에 엄마를 위하는 착한 아이가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 보고 싶었어. 이젠 그 답을 알았고.”“너!”준호는 가슴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비록 은지
다음날, 준호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곽도원은 은지를 불렀다.“준호를 잘 보살피라고 했더니 걔는 왜 또 퇴원한 거야?”은지는 오늘 긴팔 맨투맨에 긴 바지를 입었다. 그녀는 마스크로 턱 쪽을 가리고 있었는데, 대답하려고 하자 밖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태까지 너무 투정만 부린 거 같아서 퇴원해서 아버지한테 사과하려고요.”준호가 당당하게 걸어들어오자, 다친 데 없이 말짱해 보였지만 사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갈비뼈가 아파졌다. 그러나 의자에 앉아 있는 은지를 보고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부대 쪽에는 말해 놨어요. 해원에 돌아와서 아버지 도우려고요.”이 말을 들은 곽도원은 깜짝 놀랐다.“너 내 곁에 남아서 일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너 절로 사업 하나 차리고 싶다며?”“맞아요. 요 몇 년간 해왔던 건 우리 집안의 사업을 더 잘 계승하기 위해 한 노력이에요. 제가 곽씨 집안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집안을 위해 할 일은 해야죠.”처음에 준호가 해원을 떠나 혼자 일을 벌여보겠다고 했을 때, 곽도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소를 바꾸면 밑바탕이 없으니,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다시 시작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원에는 곽씨 집안이 대대로 닦아온 기초가 있기에, 이 기초에다가 조금만 더 보태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버리고 준호가 가겠다고 하니 고생을 찾아서 하는 셈인 것이다.그러나 후에 준호가 확실히 해냈고 신옥영의 지지까지 있었기에 곽도원은 잠시 참기로 했었다.그는 준호가 밖에서 몇 년은 더 있다가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정신을 차릴 줄은 몰랐다. 준호가 돌아온다는 소리를 들은 곽도원은 마음이 시원해지는 듯했다.곽도원은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야?”준호는 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새엄마가 잘 설득해 줘서 그렇죠.”‘새엄마’라는 호칭을 들은 은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고 곽도원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이상해졌다.“왜 갑자기 이러는데?”준호는 은지를 보며 말했다.“아버지께서
곧이어 은지의 턱이 들려지고 준호가 위에서 아래로 은지를 바라보았다.“어때? 새엄마? 내가 모든 공로를 다 너한테 넘겨줘서 아버지한테 칭찬도 받고 좋아?”은지는 준호가 자신을 비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준호가 비꼴 대상을 잘못 찾았다. 이런 공격은 은지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았다.은지는 준호의 손을 피했다.“좋지, 네가 날 찾으러 안 오면 더 좋고.”준호는 냉담한 은지의 반응을 보고 그녀의 살점을 물어뜯고 싶었다. 준호는 의자의 손잡이를 꼭 잡고 은지를 가지 못하게 했다.“너 전에 온갖 수단을 써서 내 침대에 오르려고 하더니 지금 이렇게 차가운 모습을 누구한테 보여주려고?”은지는 담담히 준호를 바라보았다.“체험 감이 너무 별로라 안 하고 싶어.”준호는 깜짝 놀랐다. 어느 남자가 들어도 화가 날 법한 말을 자존심이 강한 준호가 들으니 너무 화가 난 것이다. 준호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체험 감이 별로라고? 너 전에 힘들다고 했잖아!”“힘들다는 건 시간이 충분하다는 거지 기교가 좋다는 건 아니지.”준호의 표정이 일그러져 은지가 앉아 있는 의자를 부숴버릴 듯한 기세였다.준호는 너무 화가 나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은지는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들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물을 마셨다....저녁 식사를 할 때, 곽도원과 준호가 다 집에 없었기에 은지는 아주 여유로웠다.준호가 해원에 돌아오기로 했으니, 곽도원이 아들을 위해 늦게까지 술을 마실 것이 분명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곽도원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자, 준호는 곽도원을 부축해서 집으로 갔다.곽도원이 요즘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술을 마시니 침이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은지 불러와.”집사는 대답하고 가서 은지를 부르려고 하는데 준호에게 손목이 잡혔다.“부르지 마. 가서 해장국 좀 끓여와.”집사는 그런 준호에게 말했다.“국장님께서 요즘 두통이 심하셔서 은지 씨가 마사지를 해줘야 주무세요.”‘마사지해야 잔다고?’준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고은지가 뭐
은지는 움직이지 않았다.준호는 은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너 때문에 이렇게 몸이 상했는데, 날 위해서 약도 안 바꿔줘? 고은지, 너 아무리 차가워도 이 정도는 해 줘야지!”그러나 은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준호는 내밀었던 팔을 거둬들이고 은지가 오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나 약 안 교체해 주면 안 갈 거야. 내일에 아버지가 나 못 찾아서 네 방까지 오면 아들이 새엄마랑 이러고 있는 걸 보고도 너랑 결혼할지 볼래?”준호가 은지랑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 은지는 유치하다는 듯이 준호를 바라봤다.결국 은지는 준호의 약을 교체해 주었다.아직 젊기에 준호의 상처는 벌써 아물기 시작했다.준호가 평소에 부대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등 근육이 아주 발달했다. 은지는 신음을 애써 참고 있는 준호를 발견하고 비웃었다. 소독할 때 준호는 이를 악물었고 구릿빛 근육도 같이 움직였다.은지는 준호의 목과 등에 땀이 흥건한 것을 보았다. 불빛 아래에서 그 근육이 더 섹시해 보였다.은지는 처음처럼 준호에기 다가가 굳어있는 등에 입김을 불었다.따듯한 바람과 부드러운 손길에 준호는 참지 못하고 은지의 머리를 잡고 입맞춤했다.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하는 입맞춤에는 강렬함과 탐색이 동반되어 있었다.준호는 눈을 감지 않았고 은지도 마찬가지였다.은지가 낮에 했던 말이 떠오른 준호는 화가 난 듯 손으로 그녀의 눈을 막았다.“전에는 너 괴롭히려고 그런 거라서 실력을 못 보여준 거야! 못 믿겠으면 다시 봐봐!”준호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그리고 말 못 할 감정 때문에 이 차가운 은지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따듯한 몸으로 은지의 차가운 몸을 따듯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이런 상황은 준호도 그렇고 은지도 적응이 안 되었다.은지는 준호가 예전처럼 대해 줬으면 했고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두 사람은 욕망의 바다에서 서로 탐색했다. 준호는 은지를 삼키고 싶었고 은지는 준호를 손에 넣고 싶었다.파도가 첨벙대는 바다에
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넌 네 어머니를 대신해서 날 지켜보는 거야, 아니면 네 아버지를 질투하는 거야? 도련님, 설마 날 좋아하게 된 거야?”준호는 은지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가 부끄러운 듯 화를 냈다.“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처럼 이렇게 차가운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은지의 질문에 당황해서 화를 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절대 은지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준호는 말을 마치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은지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문을 보며 준호가 앞으로 몇 번 더 오면 문이 박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다행히 준호가 바빠져서 은지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은지가 곽도원과 같이 있을 때는 매번 어디서 나타나는지 곽도원에게 일에 관해 물었다.준호가 성격이 좀 안 좋지만, 어릴 때부터 곽도원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고 요 몇년 사이에 나가서 단련을 받았기에 가업을 계승하기 너무 어렵지는 않았다.두 달 사이에 곽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준호가 어떻게 진중한 사람이 됐고 어떤 일을 해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곽도원도 시름 놓고 준호에게 일을 맡겼고 그사이에 나가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부자가 바빠지자, 은지는 자연스럽게 여유로워졌다.가끔 도우미가 밖에 나가서 산책하라고 해서 정원에 나가서 걷기도 했다. 이날 은지는 신옥영의 정원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었다.준호가 정원의 관리를 책임졌지만, 그가 꽃을 키우는 방식이 돼지를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영양제를 주고 비료를 주며 물을 주었다. 전에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던 정원이 현재는 영양이 과한 돼지우리 같았다. 꽃들이 너무 무성해서 울타리 밖으로 밀려 나올 지경이었다.이렇게 계속 자라다가는 꽃들이 다 죽어버릴 것 같았다.은지는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기에 가려고 하는데, 이때 희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옥영 사모님께서 계실 때는 이 정원을 정말 아끼셨는데, 제가 여기에 있은 시간이 너무 짧아 옥영 사모님
아현원에서 희진은 너덜거리는 은지의 손목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사모님, 손목 탈골된 건가요?!”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 같아.”“저 지금 당장 가서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희진이 나간 뒤, 은지는 힘겹게 외투를 벗으려고 했는데, 이때 누군가 외투를 잡아당겨 줘서 쉽게 벗을 수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 준호가 서 있었다.은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본 준호는 부끄러웠다.“정원사에게 물어봤더니 네가 꽃 정리해 준 거라고 하더라. 내가 너 오해했어.”“응.”은지가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고 준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너 손목 나갔네, 내가 맞춰줄게.”은지는 뒤로 물러나면서 거절했다.“괜찮아.”준호는 은지가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부대에서 다른 분들 거 많이 해봤어. 너 안 그러면 회복하기 어려울 거야.”“고맙지만 괜찮아.”은지는 확실하게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준호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걱정 마, 나 실력 꽤 좋거든. 너 아프게 안 할게.”듣는 사람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말에, 문밖에 있던 의사와 희진은 깜짝 놀랐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들으셨죠?’‘들으셨어요?’‘와!’다행히 곧이어 방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봐, 이렇게 하니까 맞춰졌잖아. 손목 움직여 봐.”‘아, 손목 맞추는 거구나.’의사와 희진은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그러나 희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 도련님께서 사모님 엄청나게 미워하지 않았나? 왜 오늘은 사모님이 다치신 걸 보고 이렇게 긴장하신 거지?’의사가 은지의 손목을 검사하고 안경을 올리면서 말했다.“비록 원래 자리로 돌아왔지만,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잘 회복이 안 되면 앞으로 습관성 탈골이 올 수 있어요.”준호가 의사의 말을 듣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렇게 심하다고? 병원 가서 엑스레이 좀 찍어보자!”은지는 준호를 한번 보더니 거절하지 않았다.희진이 따라가려고
복도에서 은지는 어떤 남자의 손에서 상자를 건네받았다.“감사합니다.”정장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제가 약속드렸던 것인데요.”두 사람 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남자가 말을 이었다.“순리롭나요?”“네.”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은지가 눈썹을 찌푸렸다.“예상 밖의 일이 있어서 조금 힘들긴 합니다.”“네?”남자가 묻기도 전에 밖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지!”곧이어 복도의 문이 열리더니 준호가 나타났다.준호는 은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준호는 말하다가 은지 옆에 있던 남자를 발견했다.“태준 선생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련님.”준호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무엇인가 깨달은 듯 은지와 태준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태준 선생님께서 여긴 왜?”“검사받으러 왔다가 은지를 봐서요. 얘기 좀 하느라고.”태진의 해석에 문제는 없었지만, 준호는 의심하기 시작했다.‘왜 하필 오늘에 검사하지? 마침, 고은지를 만났다고?’‘고은지를 만났으면 밖에서 말하면 되지 왜 복도에서 말하지? 남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라도 했나?’준호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다 얘기하셨나요?”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준호는 태준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은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준호의 뒤통수만 봐도 은지는 준호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 수 있었다.걷다 보니 준호는 은지를 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은지가 멈춰 서 있었다.“왜? 태준 씨랑 더 얘기하고 싶어?”은지는 준호의 손을 뿌리쳤다.“그건 아닌데, 너 이렇게 잡아당기다가 내 이쪽 손목까지 탈골할까 봐.”...차에 타고나서 준호는 모든 행동에서 자신이 화가 났다고 티를 냈다.은지가 한 손으로 안전벨트를 하는 것을 보고 준호는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위해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안전벨트를 해주고 나서 준호는 씩씩거리며 운전석으로 갔다.그러나 은지는 준호를 상관하지 않고 엑스레이를 이리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