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준호가 갑자기 손으로 은지의 목을 조였다.“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너 뭘 하고 싶은 거야?”준호는 은지의 목을 세게 조이지는 않아, 말은 할 수 있었다.“뭐가 일부런데?”“약 발라주는 거, 아침 식사, 그리고 지금도! 일부러 날 꼬시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모를 줄 알아?”아까 곽도원이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와 준호가 방법이 없어서 은지의 말을 따랐다.사실 곽도원을 피할 필요가 없었고 곽도원이 준호와 은지가 같이 있는 것을 봤다고 해도 그저 예의를 안 지킨다고 욕을 먹으면 먹었지, 스파크가 튄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준호가 이제 집에 온 지 며칠 밖에 안 됐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은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유혹이 좀 됐어?”은지가 이렇게 쉽게 인정하는 것을 본 준호는 깜짝 놀라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우리 아버지를 꼬신 것도 모자라서 나까지?”은지는 손을 준호의 손목에 놓았다. 촉촉한 촉감이 느껴졌고 수면위는 더욱 일렁였다.“준호 도련님, 계속 이렇게 저랑 얘기하실 건가요?”준호의 옷은 이미 다 젖은 상태였고 티셔츠 안의 복근이 조금 보이는 상태였다. 은지는 목이 조인 상태라 조금 야릇한 분위기가 났다.이 둘의 상태로 보면 누구나 다 오해할 만한 상황이다.준호는 조금 소름이 끼쳤다.‘이 여자 뭐야.’준호는 은지를 놓아주었고 욕조에서 나왔다.가기 전에 준호가 차갑게 말했다.“고은지, 네가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한 네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준호가 돌아갈 때, 마침 신옥영과 마주쳤다. 신옥영은 깜짝 놀랐다.“준호야, 너 왜 이래? 왜 다 젖은 거야?”“저 괜찮아요.”준호의 머릿속에 갑자기 아까 봤던 은지의 하얀 피부가 떠올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아까 발을 헛디뎌서 호수에 빠졌어요. 저 먼저 가서 옷 갈아입을게요.”샤워를 할 때, 뜨거운 물이 몸에 닿아 몸은 따뜻해졌지만 말 못 할 답답함이
준호가 집으로 돌아오자, 은지의 자료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고씨 집안에서 낳은 사생아, 어머니는...!그 세글자를 보자 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고은지가 임현주의 딸이라고?’은지의 담담한 모습을 떠올린 준호는 임현주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자료에는 오 년 전에 은지가 증거를 모아서 고씨 집안을 감옥에 넣고 태준에 의해 해운시에 와서 한동안 공씨 집안 아가씨를 하다가 일 년 전에 태준과 약혼을 한 상태였다.은지가 곽도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번 주에 태준이 은지를 데리고 파티에 참여했는데, 은지가 파티에서 피아노를 친 모습을 보고 곽도원이 은지를 집으로 초대했다.모든 것이 다 우연이지만 은지와 염옥란의 생김새가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에 준호는 이 모든 것이 우연 같지 않았다.준호가 핸드폰으로 은지에 관련되 자료를 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신옥영이 보약을 한 그릇 들고 들어왔다.준호는 쓴 향기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어머니, 절 주려고 들고 오신 거예요?”신옥영은 보약을 준호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당연하지. 요 몇 년간 네가 계속 밖에 있었으니까, 엄마가 너한테 보약 못 챙겨줬잖아. 요 며칠 집에서 많이 마셔.”준호가 대답했다.“어머니, 저 몸 좋아요.”“너 엄마가 들고 온 게 맛없다고 그러니?”준호는 신옥영이 실망할까 봐 숨을 참고 단숨에 보약을 마셔버렸다. 그러자 신옥영이 웃으며 말했다.“너 이거 마실 때 표정이 딱 네 아빠 같네.”여기까지 말하자, 신옥영의 얼굴에 미소가 옅어졌다.“너 집에 이젠 오랫동안 있었잖아. 부대에서도 너 없으면 안 될 텐데,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안 돼요!”준호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저 반드시 고은지를 쫓아내고 말 거에요!”“준호야.”신옥영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28년 동안 지냈던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이젠 나이가 많아져서 많은 일들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엄마는 그저 너만 잘 지내면 돼.”“저.”“준호야, 엄마 말 들어. 내일에 부대
준호는 마침 요즘 임무 수행을 완료해서 긴 휴가를 받아 이튿날에 바로 해원으로 돌아갔다.6월에 비가 많이 내려 날씨가 흐렸고 습했다.준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옥영이 묵는 저택으로 갔다. 신옥영은 평소처럼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신옥영이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여 준호는 조금 시름을 놓았다.“어머니.”신옥영은 준호가 온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엄마가 키운 꽃 좀 봐.”정원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예쁘네요.”신옥영은 사랑스러운 듯 꽃잎을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꽃들은 물을 많이 먹어서 물을 꼭 많이 줘야 해. 토양이 흠뻑 젖을 정도로 말이야. 저쪽에 꽃들은 건조한 걸 좋아해서 비가 오랫동안 안 왔을 때 빼고는 물을 안 줘도 돼. 그리고 저쪽에 있는 두 과일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바로 먹고 다 못 먹었으면 땅에다가 비료로 묻어.”오랜 시간 동안 신옥영은 준호를 키우는 외에 정원의 꽃을 가꾸는 것에만 정성을 기울였었다.백목련이 피면 봄이 온 것이고 수련이 피면 여름이 지난 것이며 계화꽃의 향이 나면 가을이 온 것이다.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신옥영은 그렇게 50년을 지내왔다.그녀는 꽃을 쓰다듬었다. 꽃은 여전히 예쁘게 피어 있지만, 신옥영은 나이가 들어버렸다.준호는 신옥령이 당부하는 말을 듣고 예감이 들었다.“어머니, 설마...?”신옥영은 스카프를 다듬고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하듯이 말을 꺼냈다.“준호야, 엄마 아빠랑 이혼하게 될 것 같아.”...“이혼?”곽도원은 신옥영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신옥영이 은지의 일 때문에 이러는 것으로 생각했다.“옥영아, 내 기억에 넌 성깔을 부리는 여자를 싫어하지?”“그래요?”신옥영은 평온한 말투로 되물었다.“그럼 저는 어떤 여자 같은데요? 도원 씨, 그럼 저희 28년을 부부로 살았는데, 당신 눈에는 제가 어떤 여자로 보이는데요?”곽도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배운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여성스럽고 박식해서 도우미들도 칭찬 많이
신옥영이 서재에서 나갈 때, 은지를 만났다. 신옥영은 은지가 곽도원을 찾으러 가는 줄 알고 몸을 비켜주면서 말했다.“저희 얘기 다 끝났으니까 들어가셔도 돼요.”은지의 시선이 신옥영에게 머물렀다.“저희 얘기해도 괜찮을까요?”곽씨 저택은 비교적 낡았기에 얘기할 곳을 찾기 쉬웠다.“죄송합니다. 제가 이혼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설마 저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아닙니다, 은지 씨.”신옥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피부 상태는 관리가 아주 잘 됐지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 아주 피곤해 보였다.“그냥 갑자기 이젠 저 자신을 놓아줄 때가 된 거 같아서요. 은지 씨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은지는 말하고 싶었다.“사실 저.”“어머니!”준호는 달려와서 신옥영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는 차갑게 은지를 보며 말했다.“도우미가 네가 우리 엄마 불러냈다고 하던데,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준호야.”신옥영은 그런 준호를 막아서며 가벼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준호가 성격이 좀 급해서 그래요. 은지 씨가 좀 이해해 줘요.”신옥영은 준호의 팔을 잡아당겼다.“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준호야, 우리 얼른 가자.”얼마간 걷다가 준호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은지를 보고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어머니는 쟤 안 미워요? 왜 저 여자를 대신해서 말을 해주는 건데요?”“엄마는 염옥란도 안 미워하는데, 고은지도 미워할 리가 없지. 준호야, 한 사람을 미워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난 그냥 남은 날들을 편하게 살고 싶어.”...신옥영은 자신의 정원으로 돌아가 준호를 돌려보내고 트렁크를 꺼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신옥영은 곽씨 집안에서 28년을 살아왔기에 정리해야 할 물건이 꽤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트렁크 하나로 정리하면 됐다.신옥영은 그저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물건만 챙기고 나머지는 하나도 넣지 않았다.그녀는 도우미를 불러 자신이 입지 않았던 옷들을 도우미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고 입었던 옷들은 기부하는 것으로 했다.책장에
아침이 되자, 준호는 집 주변을 돌면서 러닝을 했다. 어릴 때부터 곽도원이 아침에 달리는 것을 엄격하게 요구했었다. 어릴 때 준호는 집이 너무 커서 아무리 달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한 바퀴를 달리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신옥영의 인생 절반을 묶어 버렸다.준호는 달리면 달릴수록 더 짜증이 났다.다 달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준호의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준호가 티셔츠 아랫부분으로 얼굴을 닦자, 딴딴한 근육이 호흡을 따라 움직였다. 준호는 땀을 닦고 고개를 들자마자 문 앞에 어떤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준호는 옷을 내리고 은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안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준호는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단단한 근육으로 어우러진 몸은 뜨거운 물보다 온도가 더욱 높았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순간 욕실의 문이 열렸다.준호는 문 앞에 서 있는 은지를 보고 마음속의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노즐이 땅에세게 부딪혀,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너 도대체 무슨 짓이야!”은지는 오늘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곽씨 집안에 들어온 뒤로 계속 원피스만 착용했다. 왜냐하면 곽도원이 그렇게 입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물이 은지의 몸에 튀어 원피스가 젖어 버렸다.은지는 욕실 안으로 들어가 노즐을 집어 원래 자리에 놓았는데, 옷이 반쯤 젖어 버렸다.은지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갔다.“너 아버지가 네 어머니를 실망하게 해서 미워하는 거지? 네 아버지가 날 갖고 싶어하지만 내가 아직 허락 안 했으니까, 네가 내 첫 번째 할래?”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지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노즐을 끄지 않아 물이 은지의 옷에 다 튀어 몸에 딱 붙었던 원피스가 물에 젖어 더 붙어버렸다. 증기가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준호는 화가 많은 사람이라 은지도 미웠고 곽도원도 미웠다. 그러나 준호는 곽도원의 아들이다. 준호는 그런
저녁 9시, 은지가 정원에 돌아왔을 때,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어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 곽도원이 소파에 앉아 피곤한 듯 미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어디 갔었어요?”“아무 데나 가서 걸었어요.”곽도원은 기분이 좋지 않아, 은지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어디가 평소와 다른지 알지 못했다.“옥영이 저랑 이혼하겠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은지는 비웃듯 미소를 지으며 곽도원의 등 뒤로 가서 그를 위해 태양혈을 마사지해 주었다.“저 잘 모르겠어요.”곽도원은 은지의 의견을 진심으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신옥영이 곽씨 집안에 금방 시집을 왔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신옥영은 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가정 교육이 엄격했었다. 그래서 신혼 첫날 밤 그녀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었고 곽도원이 무엇을 하든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너무 수줍어했고 모든 것을 지켜가면서 지내왔기에 재미가 없었다.곽도원은 결혼한 뒤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희미한 기억이 자신의 곁에 사람한 명이 더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그러나 그 뒤로 갈수록 마치 차가 맛이 점점 옅어져 가듯 마지막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그래서 신옥영이 어느 때부터 자신과 이혼할 생각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빗소리와 은지의 체향이 어우러져 곽도원은 조금 잠이 왔다.아마도 오늘 신옥영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신옥영에 관한 짧은 꿈을 꾸었다.신옥영은 메디컬 푸드를 좋아했다.다른 사람들이 메디컬 푸드를 만들 때 식자재를 위주로 하고 약재를 보조로 한다. 그러나 신옥영은 반대였다. 매번 보약 맛이 나게 끓였는데, 식자재까지 더하면 정말 너무 썼다.곽도원은 처음 마셨을 때 바로 뱉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신옥영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고 겨우 삼켰다. 그리고 애써 좋게 평가했다.“괜찮네.”이 말이 신옥영의 열정을 더욱 불타오르게 해 시도 때도 없이 곽도원에게 들고 왔다.신
준호는 한숨도 자지 못해 목소리가 쉬어버렸다.“어머니, 먼저 차에 타세요. 제가 처리할게요.”신옥영은 웃으며 말했다.“준호야, 엄마 한평생 나쁜 짓 안 하고 살았는데, 도망갈 필요 없어. 걱정하지 마.”신옥영은 말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혼할 때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옷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신옥영은 그저 평소처럼 단정하게 입고 눈빛에도 원망하는 기색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만약 현재 이혼하려는 상태가 아니라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신옥영은 아주 평온하게 대답했다.“저 시집올 때 주신 집이 있어서 거기로 가려고요.”곽도원은 한숨을 내쉬었다.“옥영아, 내가 말했잖아. 나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뭐 그럴 필요 있나요.”신옥영은 곽도원을 바라보며 뒤편의 저택도 바라보았다.“저 이제 28년 동안 곽 사모님으로 지냈는데, 제 남은 인생까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곽도원은 눈썹을 찌푸렸다. 신옥영이 방금 한 말에서 이 결혼생활을 부담으로 느꼈고 둘 사이의 결혼을 부정했으며 곽도원까지 부정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럼, 더 이상 붙잡지 않을게. 이혼 서로 작성해서 준호한테 보낼게.”“고마워요.”신옥영은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곽도원을 먼 사람처럼 대했다.준호는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고 신옥영은 차에 탔다. 그러고 나서 준호는 운전석에 올라탔다.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본 곽도원은 신옥영에 대한 기억을 또 떠올렸다.신옥영이 처음 유산을 한 일이다.그 여대학생이 전화가 온 전후로 언제 유산했는지 곽도원은 잊어버렸다. 그때 의사가 여자 아기였고 많이 자란 상태라고 얘기했던 것만 기억했다.그때 신옥영이 아이의 시체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까지 기억했다.곽도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집사에게 물었다.“그때 아이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던가?”집사는 곽도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집사는 곽도원을 바라보며 얘기했다.“사모님께서는 태어나지 않은 아가씨를 화원에 묻으셨습니다.”
이혼 서류는 이튿날 아침에 신옥영한테로 배달이 되었다. 신옥영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거라 했지만 곽도원이 정말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부부의 정을 제외하고 더 중요한 것은 밖의 사람들이 곽도원을 나쁘게 평가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곽도원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직접 법원에 갈 필요가 없이 오후에 이혼이 됐다는 서류가 배달왔다.신옥영은 서류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준호는 신옥영이 슬플까 봐 불러보았다.“어머니.”신옥영이 고개를 들자, 예상 밖으로 눈에 눈물이 고여있지 않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혼하면 이런 서류를 주네?”준호는 조금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그렇구나.”신옥영은 서류를 정리하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결혼할 때랑 많이 바뀌었네.”준호는 마음이 답답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신옥영이 이 아픔을 감당하기 어려울까 봐 준호는 곽씨 저택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그녀와 함께 이 낡은 집에서 한 주일을 지냈다.신옥영의 하루는 곽씨 저택에서랑 다를 바가 없었다. 매일 텔레비전을 보고 보약을 끓이는 일이다.곽도원과 이별해서 슬퍼하지 않았고 곽도원의 곁에서 떠나 더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다 예전처럼 흘러갔다.이날 준호가 문 앞의 잡초를 정리하고 울타리를 단단하게 고정했다.“어머니, 저 오후에 꽃 좀 사다가 심으려고요. 어떤 꽃 심을까요?”신옥영은 고개를 저었다.“필요 없어. 이젠 나이가 들어서 관리 못 해.”그녀는 준호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땀 좀 닦고 들어와서 밥 먹어.”식탁에 앉아 신옥영은 준호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준호야, 너 이젠 일주일 집에 안 갔어. 이젠 가야지.”준호는 화가 났다.“거긴 제 집이 아니에요. 저 안 가요.”신옥영은 미소를 지었다.“아기처럼 떼질 쓰지 말고 얼른 가. 넌 미래에 곽씨 집안의 유산을 계승할 아이야. 그때가 되면 엄마도 좀 누리고 살 수 있지 않을까?”피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