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혜는 곧 사람을 먹는 지훈은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가마 안의 떡처럼 앞, 뒤로 바꿔가며 뒤집어졌다.침대에 금방 올라갔을 때는 분명 싱싱한 복숭아였는데, 침대에서 내려올 때는 사하라 사막에 버려진 말린 복숭아처럼 수분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소혜는 너무 졸린데, 옆에서 지훈이 체험 후기를 묻는 짜증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시간은 충분해?”“체험한 몇 가지 자세 중 특별히 선호하는 자세가 있어?”“만약 10점 만점이고 점수를 매긴다면, 이번 체험이 만족도가 얼마야?”소혜가 잠들려고 하는데 깨워서 여러 번 묻자, 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5점!”너무 낮은 점수에 지훈은 말을 잠시 멈췄다.소혜가 막 잠들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또 울렸다.“나머지 5점은 어디서 감점이 된 거야?”소혜는 짜증이 나서 아무렇게 내뱉었다.“스틱스에 가서 연수하면 알게 될 거야!”말을 마친 소혜는 생각에 잠긴 지훈을 버리고 꿈나라로 들어갔다....그날 밤, 소혜는 또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소혜는 처음으로 스틱스에 가서 자신의 많지 않은 돈으로 남자 모델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런 것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과 무수히 경험해 본 사람, 이 두 가지 부류로만 나뉘었다.한 무리의 멋지고 잘생긴 남자들이 너랑 술을 마시고, 너만을 위한 게임을 놀아주며, 다른 남자랑 말한다고 질투해 주고, 애교도 부려주며, 남자답게 술도 대신 마셔준다. 소혜는 갑자기 자신이 전에 싱겁고 맛없는 나날을 보냈다고 느꼈다.처음 남자 모델을 주문했을 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었다. 그때 소혜는 만취한 상태여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잔뜩 겁에 질렸었다.‘맙소사, 내가 설마 어떤 남자 모델을 침대에 데리고 올라온 거 아니겠지?’머릿속에서 전날 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소혜가 돈을 어떤 사람의 주머니에 넣고 얼굴을 핥으며 말했다.“오빠, 날 따라와! 나 엄청나게 세!”뒤의 장면이 떠오르자, 소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난 돈만 있으면 마음대
하윤은 1,500만 원 정도는 갖고 있었기에 연이어 대답했다.“알겠어요, 근데 무슨 다단계 마케팅에 휘말린 거예요? 장소 불러봐요. 오빠보고 구하러 가라고 할게요!”“올케언니, 저...!”“아이고, 아이고!”소혜가 자세를 바로잡고 하윤과 하소연하려고 하는데 하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곧이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소혜의 선량하고 친절한 올케언니에서 인간성이 없는 오빠로 변했다.“거기서 일 잘해서 우승하도록.”“아! 올케언니, 올케언니!”도준이 마음대로 통화를 끊은 것을 보고 하윤은 화가 나서 도준을 때렸다.“1,500만 원도 소혜에게 빌려주지 않는 거 너무 한 거 아니에요?”도준은 소파에 기대어 하윤의 주먹을 잡고 만지작거리며 놀면서 하윤을 쳐다보았다.“소혜가 자기적으로 지훈이랑 거래를 했는데, 1,500만 원을 보내줘서 또 날리면 어떡해?”하윤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런가요?”“못 믿겠으면 내기해 볼까?”“어떻게 할까요?”“이 1,500만 원이 소혜를 거기서 빼낼 수 있을지 내기 하자.”하윤은 소혜가 1,500만 원을 빚졌다고 말했기에 1,500만 원을 주면 빠져나올 수 있으니 무조건 자신이 내기에서 이긴다고 생각했다.“좋아요! 내기합시다!”하윤은 곧바로 요구를 제기했다.“만약 당신이 지면, 도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고 도윤이 목말 태워줘요!”도준이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어.”하윤은 도준의 대답에 만족했다.‘앗싸, 아들에게 아름다운 어릴 적 기억을 심어줄 수 있겠어!’도준은 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잡고 웃었다.“지금 기뻐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나? 당신이 지면 어떡하려고?”하윤은 얼굴이 도준에게 눌려 말하기 어려웠다.“말해봐요.”“간단해.”도준은 하윤을 바라보았다. “만약 당신이 지면 목말 태워줄게.”하윤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반응하지 못했다.“저 어른인데 어떻게 타요?”도준이 눈치를 주자 하윤의 얼굴이 빨개졌다.“변태!”...경성.[1,500만 원 입금되었습니다.]원래 아무런
소혜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동그라미가 가득 달린 숫자를 보고 소혜는 너무 놀랐다.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보았다.소혜가 그 숫자를 다 세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이, 이, 십...!”소혜가 말을 더듬는 것을 발견하고 지훈은 좋은 마음으로 알려주었다.“맞아, 2,000억이야.”소혜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민지훈! 하룻밤에 2,000억이라고? 너 그러고도 사람이야?”지훈은 빙그레 웃었다.“미스 진, 너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뭐 재밌기는! 민지훈, 하룻밤에 2,000 억이면 사기 아니야?”지훈이 놀랐다.“미스 진,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어제 미리 가격이 꽤 나갈 거라고 말했고, 이 차용증도 네가 직접 서명한 건데, 사기라니?”소혜는 말문이 막혔다. 어젯밤에 먹잇감이 눈앞에 다가오니 액수를 생각하지 못하고일을 저지른 자신이 미웠다. ‘그게 다 돈인데! 돈!’더 이상 말해도 자신한테 유리한 것이 없다고 느낀 소혜는 의기소침하게 의자에 앉아 인중을 누르며 말했다.“이 차용증 내가 서명한 것이라고 해도 이 가격 너무 불합리한 거 아니야?”“예를 들면?”“네가 나에게 준 가격표에는 결혼이 2,000억이라고 했는데, 지금 하룻밤 자는 게 2,000억이라고 하니까, 그럼 내가 큰 손해를 보는 거잖아?”지훈이 소혜의 말을 이해했다.“아, 그거?”지훈은 예쁜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커피를 저었다. 그 장면은 마치 무슨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훈이 입을 벌리자 또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표를 사는 것과 무임승차 하는 가격은 분명히 다르지. 만약 네가 이 가격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지훈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내가 너를 도와 이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어.”소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말했다.“어떻게 교환해?”“네가 이 돈을 다 갚으면 나랑 결혼할 수 있어.”소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삶에 희망을 잃은 소혜는 무기력했다.“무슨 복지?”지훈은 친절하게 소혜를 위해 알려주었다.“여기 있어.”[근무 기간에는 무료로 사장님한테 예약해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혜는 자기가 잘못 본 줄 알았다.‘어떤 사람이 근무하면서 사장님과 잠자리를 갖나?’그러나 소혜가 힘껏 눈을 깜박이자, 정말 그렇게 쓰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무료로!소혜는 순식간에 시들시들하던 복숭아에서 먹음직스러운 딴딴한 복숭아로 변했다. 소혜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언제든지 괜찮아?”지훈이 대답했다.“예약에 성공하면 돼.”“그럼, 지금 예약해도 돼?”“지금?”지훈이 깜짝 놀랐다.“너 또 할 수 있어?”소혜는 강한 말투로 말했다.“할 수 있어!”‘정가 2,000억 하던 물건이 지금 무료다. 그러니 더 잘수록 가격이 낮아진다는 것을 설명하지. 그러니까 많이 자야지!’‘뷔페처럼!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자!’지훈은 소혜가 기뻐서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미스 진, 네가 할 수 있다고 해도 나 조금 있다가 유진을 만나야 해서 저녁으로 예약해.”‘아, 그래,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잊을 뻔했네!’유진의 약이 아니었다면, 소혜도 이성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성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이 큰 사기에 속아 2,000억이나 되는 차용증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빚은 반드시 계산해야 해!!!’-아침 8시 반, 유진은 빗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지훈이 오자 그녀는 기뻐하며 지훈을맞이했다.“지훈 오빠, 좋은 아침~”그러나 지훈이 가까이 오자마자 유진은 그 어디선가에서 살기를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차 운전석에 있던 소혜가 그녀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유진은 괜히 몸서리를 쳤다.“지훈 오빠, 저 운전기사는 왜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어요? 너무 무서워요.”지훈도 소혜를 한 번 보고는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아마 오늘 기분이 좋은 가 봐.”“아, 그래요?”유진은 지훈의 말을 억지로
핸드폰을 거꾸로 책상 위에 놓아 소혜는 전혀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망했어, 망했어!’소혜는 석현을 바라보았다.“석현! 나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아, 소혜 누나!”소혜는 그런 석현을 버리고 달려 나왔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경매는 모두 끝나 있었다. 지훈과 유진은 문 앞에 서서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렸는지 몰랐다.소혜가 온 것을 본 유진이 불평하며 말했다.“운전기사가 왜 아무 데나 다녀? 우리 널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거 알아?”소혜는 유진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지훈을 보며 머쓱해서 웃음을 지었다.“미안해, 못 들었어.”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지훈의 태도는 여전히 온화했다.“잠들었어?”“어? 어, 맞아! 깊게 잠들었어!”소혜는 자신이 놀러 갔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자자, 도련님, 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그러나 소혜가 고개를 돌리자 하얀 이빨을 내놓고 웃고 있는 석현을 발견했다.“누나, 아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맞혀 보세요.”소혜의 얼굴이 굳어졌다.‘내가 뭘 잃어버렸겠어. 내 얼굴을 잃어버렸나?’소혜는 뒤에 있는 지훈을 감히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석현의 손에서 모자를 받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고마워, 얼른 가!”그러나 석현은 소혜의 절망을 알아채지 못하고 바보같이 웃었다.“누나, 아까는 정말 멋있었어요. 저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다음에 시간 나면 제 룸메이트들도 데리고 올게요!”석현이 얘기한 것은 아까 한 게임 얘기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귀에 어떻게 이상하게 들릴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의 눈은 이미 동그래졌다.‘근무 시간에 노는 것도 모자라 남자랑 사심을 채워?’‘내 안목이 맞았어. 이 사람 보통 사람 아니네!’소혜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뒤에서 경멸하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자신이 근무 시간에 논 것이 들켰다고 생각하고 아직 게임의 여운에 빠져있는 석현을 향해 말했다.“알았어. 다음에 네 룸메이트들도 불러. 빨리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이 머무는 호텔에 도착했다. 유진이 차에서 내리자, 차에는 소혜와 지훈만 남았다. 소혜는 불안한 듯 말했다.“도련님, 아니면 내가 운전할게.”지훈이 웃었다.“난 이미 불합격한 사장인데, 어떻게 널 귀찮게 할 수 있겠어. 그런 말을 듣고도 개선하지 않는다면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야?”소혜는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여서 욕을 먹는 일이 아주 많았기에 지훈이 아무리 욕해도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훈이 이런 비꼬는 말투로 말하자 소혜는 온몸이 불편했다. 그녀는 애써 설명했다.“난 여전히 도련님 존경해, 예를 들면...!”“예를 들면.”소혜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무엇인가 떠오른 듯 말했다.“아, 맞아! 너무 잘생겨서 얼마나 음흉한 사람인지 잊게 만들어! 하하하...!”‘하늘이여!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지훈은 책상 옆에 앉아 손을 마주 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소혜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미스 진, 오늘 네가 한 행동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있어?”‘오늘 근무 시간에 맘대로 놀고 사장님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했는데.’소혜는 고개를 숙였다.“정말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을게.”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매우 좋지만, 나는 모든 일은 근원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이분, 석현 학생 말이야.”“어?”소혜는 어리둥절했다.‘내가 근무 시간에 농땡이 부리는 거랑 석현이랑 뭔 상관이야?’소혜는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근무 시간에 농땡이를 부린 건 잘못했어. 근데 친구 사귀는 건 내 자유 아닌가? 여기서 석현이 왜 나와?”정적이 흐르자, 지훈의 웃음이 옅어졌다.“어? 네 뜻은, 네가 오늘에 한 잘못은 그저 근무 시간에 농땡이를 피운 것밖에 없다는 거지?”“그렇지. 아니야?”지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미스 진, 너는 우리가 지금 무슨 관계라고 생각해?”“어, 난 너에게 빚을 졌지.”지훈은 탁자
이번에 정적이 꽤 오래 흘렀다. 너무 오랜 시간 말이 없자 소혜는 지훈이 잠들었는지 묻고 싶었다.마침내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소혜는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그 일 년은 덜어주는 거야?”지훈은 계약서를 접었다.“네가 정답에 이의가 있는 이상 당연히 감해줄 수 없지.”‘이럴 줄 알았어!’지훈이 가려고 하자 소혜는 그를 불러 세웠다.“저기, 도련님.”왠지 모르게 지훈의 말투는 많이 차가워졌다.“또 할 말 있어?”“저기, 저녁 예약 유효하지?”기대하는 소혜를 보면서 지훈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당연히! 유효하지!”소혜는 바보처럼 좋아했다.‘좋아! 또 벌었어.’속담에서 이르길 따뜻하고 배부르면 욕망을 채울 생각 하고 욕망을 채우기 전에 먼저 배불리 먹어야 한다.소혜는 이미 지훈과 함께 사랑을 나눌 준비가 되었는데, 오늘의 요리가 아주 풍성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따끈따끈한 채소, 구수한 쌀밥을 보면서 소혜는 정말 감동하여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아! 너무 우아해!’소혜는 배불리 먹고 나서 위층에 올라가 향기로운 샤워를 하고 후식을 기다렸다.지훈이 들어왔을 때 이불을 목까지 꽁꽁 덮은 소혜가 자면서 바보같이 웃는 것을 보았다.“헤헤, 지훈 선생님,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가르쳐 주세요.”지훈은 소혜를 방해하지 않고 의자를 당겨다가 그녀 앞에 앉아 소혜의 잠꼬대를 들었다.소혜는 손에 마구 움직였고, 이어서 또 잠꼬대하기 시작했다.“석현, 너 설마, 선배가 가르쳐 줄게.”꿈속에서 소혜가 석현을 향해 음란한 손을 내밀고 있을 때 갑자기 교실에 풍선이 하나 더 생겼다. 그 풍선에는 뜻밖에도 지훈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다가 풍선이 점점 커지더니 소혜를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쉬려고 해도 숨을 쉴 수 없었다. 자신이 질식해서 죽을 것 같다고 느끼자, 그녀는 갑자기 눈을 떴다.지훈은 소혜가 깨나자, 그녀의 코를 쥐고 있는 손을 놓고 관심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미스 진, 괜찮
소혜는 지훈의 하얀 상체를 보면서 생각했다.‘분명히 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이는데, 옷을 벗으면 딱 좋아. 특히 저 균형 잡힌 골격, 좁고 가는 허리.’소혜는 자신도 모르게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좋아, 너무 좋아. 한 벌 더 벗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거 같아.”지훈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네가 해볼래?”‘뭐? 나보고 벗기라고? 너무 자극적이잖아!’소혜는 바로 동의했다. 그녀는 바보처럼 웃으며 지훈에게 다가갔다.“나, 왔어!”소혜는 빨리 벗기면 빨리 벗길수록 좋다고 생각했는데 벨트가 꽉 조여있어 반나절을 시도했지만 풀리지 않았다.이때 지훈의 참을성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경험이 풍부할 텐데 설마 이런 버클을 풀어본 적 없어?”소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누가 좋다고 내 앞에서 바지 벗어줬겠어.”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자, 소혜는 포기했다.“아이고, 그냥 네가 하는 게 낫겠다!”지훈은 미소를 지었다.“그래.”말이 떨어지자마자 소혜의 푸시시한 머리가 지훈의 손에 받혀졌고 건조하던 입술에는촉촉한 지훈의 입술이 맞닿았다.‘너 절로 옷 벗으라고 했지, 나한테 손대라고는 안 했는데?’‘근데 뭐 이렇게 해도 나쁘지는 않지.’입술 주변은 물론이고 입술까지 간지러웠지만, 지훈은 진짜로 입맞춤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볍게 입 주위를 터치했다.놀림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든 소혜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왜 계속 정확한 위치를 못 찾는 거야?”그러자 지훈이 웃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에는 자세히 보지 못했던 웃는얼굴이 지금은 마치 마약처럼 매혹적이었다.지훈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듣기 좋다.“미스 진, 템포를 좀 더 빨리 하라는 말이야?”소혜는 지훈의 부드러운 입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아, 맞아, 우주선이 발사하듯 빨리...! 욱...!”마침내 소혜의 입술이 지훈의 입술에 의해 감싸졌다.‘키스는 누가 연구해 낸 거지? 왜 이렇게 재밌어?’소혜는 손으로 지훈의 목을 잘 껴안았고, 두 다리로 그의
연말이 되자, 하윤은 사람들 다 같이 경성에서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경성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진가연과 한성운도 그러고 싶어 했다.남은 사람은 양현숙이었다.하윤은 원래 양현숙을 데리고 경성에 오려고 했는데, 양현숙이 해성시의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양현숙은 집을 지켜야 한다면서 오래 집을 비우면 너무 처량한 느낌이 난다고 했다.하윤은 양현숙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집뿐만이 아니라 이성호와의 추억이다.그래서 하윤은 그렇게 요구하지 않고 도윤을 데리고 자주 보러 갔다.이번에 하윤의 요청에 양현숙이 기분 좋게 동의하면서 31일에 같이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하윤은 손님 맞을 준비를 했고 곧 새해가 다가왔다. 양현숙이 하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하윤에게 물었다.“하윤아, 네 오빠 귀국한다는데, 만나볼래? 싫으면 너희 방해하지 말라고 할게.”그때 병원에서 기분 나쁘게 헤어진 뒤로 만난 적이 없었다.승우는 도윤의 나이를 잘 기억하고 있어 가끔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보내주었다.이렇게 여러 해 지나고 하윤은 전의 일을 마음에 담아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것에 대해 조금 자책했다. 양현숙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하윤은 양현숙이 중간에서 힘들까 봐 가볍게 말했다.“오빠 돌아왔으면 같이 오세요. 우리 한 가족 되게 오래 같이 못 만났잖아요?”양현숙은 기뻐서 대답했다.“알았어, 그렇게 오빠한테 전달할게.”...통화를 마친 하윤은 이 일을 도준에게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승우가 하윤의 오빠지만, 하윤이 이 이년 사이에 아무 이성과 접촉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컷 모기까지 도준은 하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도준은 승우를 항상 경계해 왔다.도준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그날 저녁 도준이 돌아왔을 때, 하윤은 120%로 잘 보이려고 했다.하윤은 발꿈치를 들고 도준의 외투를 벗겨주었다.“여보 왔어요? 어땠어요? 오늘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도준이 하윤을 힐끔 쳐다보고 소파에 앉아
하윤은 요즘 아들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도윤은 다른 애들과 달리 장난감으로 놀기 좋아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책을 보는 일이었다.가끔 하윤은 도윤이 너무 오래 앉아 있어 힘들까 봐 텔레비전 앞에 데려와서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그러나 하윤이 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도윤이 뉴스 채널을 돌려서 재밌게 보고 있었다.소파 위에 있는 작은 아들을 보고 하윤은 걱정이 앞섰다.‘설마 내가 너무 연습에 몰두해서 아들을 소홀히 했나? 그래서 아들이 상처를 받아서 저런가? 안 돼! 도윤에게 완벽한 동년을 줄 거야!’하윤은 이 일이 엄청나게 큰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생각하고 도윤을 데리고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과 많이 만나게 하려고 했다. 많이 만나면 도윤의 동심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하윤은 어디를 가던 도우미가 자기를 보는 것이 싫어, 그냥 아파트에 살았다. 이곳에는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있었고 그중에 모래로 촉감놀이 하는 곳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하윤은 그곳에 도윤을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날씨가 좋아 하윤은 도윤의 손을 잡고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갔다.모래가 있는 곳으로 가자, 도윤은 모래를 뿌리며 재밌다고 웃어대는 친구들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하윤은 도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신나게 말했다.“도윤아, 친구들 얼마나 재밌게 놀아, 우리도 얼른 들어가서 놀자.”도윤은 눈썹이 붙을 정도로 찌푸렸지만, 하윤이 기대에 찬 모습에 하윤과 함께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도윤은 하윤이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하윤과 함께 모래에 들어갔다.도윤의 눈썹과 눈은 하윤을 닮았고 나머지는 도준과 똑같았다. 너무 잘생겨서 순식간에 다른 애들의 주의를 끌었다.한 아이가 도윤에게 말했다.“우리 같이 모래 파서 궁전 만들자!”그 아이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도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미안, 난 엄마랑 놀아야 해서.”하윤은 도윤이 자기랑 놀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마음속으로
하윤이 해성시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소혜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혜는 딸 민효연이 첫돌 생일을 쇠는 김에 미뤘던 결혼식도 같이 한다고 했다.지훈이 산을 구매해서 이제 산속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하윤이 깜짝 놀랐다.“결혼식 한다고?”“네!”소혜는 간식을 먹으며 말했다.하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혜를 불렀다.“소혜야.”소혜가 목을 쭉 뻗었다.“네?”지훈이 욕실에서 몸을 내밀자, 빛나는 눈은 여우처럼 사람을 홀렸고 머리가 젖어 더욱 섹시해 보였다.지훈의 보조개는 아주 귀여웠다.“수건 가져다줘.”지훈의 섹시한 모습에 소혜가 다급히 말했다.“언니, 오빠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줄래요? 그럼, 이렇게 정하고 저는 남자 만지러, 아, 아니, 수건 가져다주러 갈게요!”‘헤헿.’통화를 마친 하윤이 소혜가 보낸 웨딩사진을 보고 마음이 조금 찡했다.소혜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지훈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저녁 식사를 할 때, 하윤이 이 일을 도준에게 말했다.“지훈이 소혜랑 결혼식 올린대요. 다음 달에 한다는데, 당신이 언제 경성에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던데.”도준이 하윤을 바라봤다.“그건 당신한테 달린 거 아닌가? 당신이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내가 힘을 좀 써서 당신을 잡아와야지.”“말하는 것 좀 봐요. 제가 무슨 나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하네요? 다 연습하러 가는 거지.”하윤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일부러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소혜랑 지훈이 결혼식 한대요.”도준은 물을 마시고 콧소리가 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도준이 눈치채지 못하자, 하윤은 더 선명하게 눈치를 줬다.“아니, 쟤네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미뤘던 결혼식 올리는 거네요?”도준이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아기를 배속에 다시 밀어 넣고 결혼식 할 수는 없잖아?”하윤은 화가 나 그릇에 담겼던 완자에 구멍을 뚫었다.“맞아요! 맞는 말이죠!”도준이 눈치가 없자, 하윤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도준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봤다.
경성에서 하윤이 자기 전에 핸드폰을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욕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여보!”“도준 씨!”“도준 씨!!”욕실의 안개가 도준의 넓은 어깨에 흩어졌고 도준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가슴팍이 보였고 물기를 채 닦지 않아 가슴팍과 근육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도준은 하윤의 다급한 부름에 어디 부딪힌 줄 알고 급히 나왔는데, 나와보니 하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도준은 들고 있던 수건으로 하윤의 엉덩이를 때렸다.“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봤어?”하윤은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도준의 어깨에 놓고 핸드폰을 도준에게 들이밀었다.“빨리 봐봐요! 빨리!”하윤이 너무 날뛰어 핸드폰을 너무 가까이 대는 바람에 도준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도준은 하윤의 손목을 뒤로 잡아당겼지만 하윤이 손을 흔드는 바람에 인내심이 없어 하윤의 허리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혹시라도 너무 흥분해서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보기 귀찮으니까 얘기해 줘.”“고은지가 결혼한대요! 누구랑 하는지 맞혀 봐요!”도준이 물어보기도 전에 하윤은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곽준호! 곽도원의 아들 말이에요! 세상에, 아무런 연관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결혼하게 된 거죠?”도준은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아무 연관이 없진 않지. 전에 곽도원이 고은지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고 술자리를 열었었어.”“네?”하윤이 깜짝 놀랐다.‘그럼, 고은지가 곽준호 새엄마? 세상에! 나보다 더 용감하네?’하윤은 참지 못하고 도준을 밀었다.“얼른 얘기해 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팔을 하윤의 다리에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하윤은 도준의 팔을 치워버렸다.“쳇, 당신도 몰라요?”하윤의 귀여운 모습에 도준이 하윤의 볼을 꼬집으며 그녀를 돌렸다.“그렇게 알고 싶으면 결혼식에 가면 되겠네.”하윤은 볼이 꼬집혀서 말을 똑바
준호는 가볍게 물었지만, 눈빛에는 긴장함이 깃들어 있었다.준호는 은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마음도 자신처럼 뜨거운지 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은지가 왜 준호를 찾지 않고 준호가 왔을 때 그에게 기회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수도 없이 많아진다. 은지를 볼 수 없을 때는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만나니까 가지 말라고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지 말라고 잡으면 은지 마음속에 준호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준호의 마음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져 버렸다.준호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자신의 기분을 은지가 느끼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너 속이기 싫어, 난 너 없어도 잘 살아.”준호의 손에 힘이 빠졌고 빛나던 눈도 빛을 잃었다.준호가 기분이 처져 손을 떼려고 하는데, 은지의 차가운 손이 준호의 손등을 감쌌다.“근데 네가 있으면 난 더 기분이 좋아서 매일 행복하게 살 거 같아.”실망했던 준호는 조금 희망을 얻고 말했다.“왜 말을 그렇게 늦게 해! 날 그렇게 힘들게 할 거야?”은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마도?”준호는 은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정말 기뻐서 나오는 웃음은 더 본 적이 없었다.준호는 성큼성큼 은지에게 다가가 입맞춤했다.“고은지, 너 이번에 또 가면 너 절대 안 놔줄 거야!”“응.”비음이 섞인 은지의 목소리에 준호의 몸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준호는 은지를 품에 안았다.“더 이상 나 화나게 하면 안 된다?”“될수록 그렇게 해볼게.”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성격에는 문제가 없어?”“너!”준호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계속 품에 안고 싶었던 은지를 안고 있어 화를 낼 수 없었다.“성격 안 좋은 거 나도 알아, 차근차근 알려주면 나 다 고칠 수 있어.”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말은 잘 듣네.’“다 고쳐도 나 좋아해야 된다? 안 그러면 너 안 놔줄 거야!”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될
아까는 은지에게 핍박을 당해 자기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다.두 사람은 마주 보며 차에 앉아 있었고 은지가 준호를 지그시 바라보자, 준호는 그 물음을 다시 물어볼 수 없었다.그러나 준호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한 적 있어.”아까까지 겨울의 추위에 덜덜 떨던 준호가 은지의 대답에 봄으로 끌려온 것 같았다.준호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아 다시 물었다.“뭐라고?”은지는 담담하게 바로 대답했다.“이 6개월 동안 너 생각한 적 있다고.”이 6개월 동안 은지는 준호처럼 어린 사람, 준호처럼 무모한 사람, 은지를 마음에 들어한 사람,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 중에 준호처럼 진심으로,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은지는 30여 년간 계속 연기를 했었다. 이성희한테서 귀염을 받으려고, 고씨 집안의 사랑을 받으려고, 곽도원의 귀염을 받으려고 말이다.은지가 수많은 자태를 뽐냈지만, 준호는 은지가 가장 악독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고도 좋아한 사람이다. 그래서 준호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생각났다.“그럼, 앞으로 생각 안 할 거야.”“너!”준호가 다급히 말했다.“왜? 아까는 내 생각 했다며?”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준호를 바라보았다. 은지는 준호의 화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준호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나, 나도 네 생각 했어.”이때 차의 라디오에서 로맨틱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준호는 평소에 이런 노래를 듣기 싫어했는데, 지금 들으니 아주 로맨틱했다.준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은지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가게는 저기 있어.”은지가 물어보지 않자, 준호도 은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나랑 가는 거야, 마는 거야?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용기가 안 나!’마을이 너무 작아 노래 한 곡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은지가 차에서 내리자, 준호도 따라서 내렸고 은지가 계단으로 올라가자, 준호도 따라
호텔 내부의 뜨거운 공기에 준호는 재채기를 했고 곧이어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은지를 발견했다.반년이 지나 은지의 머리는 좀 길었지만 조금 헝클어진 상태로 풀어 놓았다.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전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었다. 준호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열정 넘치는 아저씨가 준호 보고 얼른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술을 부어주었다.“은지 남자 친구죠?”준호는 은지가 또 전처럼 새엄마라고 할까 봐 경계했다.그러나 은지는 그저 간결하게 대답했다.“아니요.”준호는 한숨 돌렸다. 그러나 곧이어 준호는 또 짜증이 났다.이제 은지가 준호의 새엄마도 아니니 정말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희현은 은지에게 귓속말했다.“저 사람은 왜 또 언니 잡으러 온 거예요? 제가 문 지킬 테니까 도망갈래요?”말을 채 하지 못했는데, 은지가 희현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왜요? 이 계획 별로예요?”“아니, 너 목소리 너무 커서 저 사람이 너 보고 있어.”과연 고개를 돌리자, 준호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희현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제 막 유명해지려고 하는데, 죽으면 안 되지.’희현이 한 말 때문인지, 은지가 준호를 불러 놓고 준호랑 말을 안 해서인지, 밥을 채 먹지 못했는데, 그는 은지가 화장실을 갔을 때 막아섰다.은지가 손을 씻고 돌아섰는데, 준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은지는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준호가 지금까지 버틴 것이 기적 같았다.“손 씻으려고?”준호는 잘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은지의 말에 또 화가 났다.“손 씻는다고? 내가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손 씻으러 왔겠어?”은지는 준호의 손에 묻은 양념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아니겠지만, 손은 씻어야 할 거 같아.”준호는 은지가 한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씻었다.손을 다 씻은 준호는 은지가 자리에 돌아갔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은지가 옆에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두 사람은 연인처럼 붙어 있었다.은지가 준호를 보자,
‘설마 고은지?’곧이어 여자가 목도리를 벗자, 얼굴이 보였다.은지가 아니라, 전에 은지와 함께 준호를 속였던 배우 희현이었다.연말이 되자, 밖에서 일하던 자녀들이 다 무진으로 돌아왔기에 마을에 못 보던 차가 많이 세워져 있어 희현은 준호의 차를 의심하지 않고 차 주변을 돌며 통화를 했다.“여보세요? 언니,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호텔 쪽에 있어요? 아, 그럴 줄 알았으면 택시 타고 호텔로 갔죠.”준호는 희현의 통화를 듣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언니? 고은지인가? 고은지도 여기 있나?’...무진에 호텔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항상 손님이 별로 없었다. 연말이라 손님이 더 없어서 주인장은 일 층에 탁자를 다 붙여서 음식을 해놓았다. 아이들이 모여 있어 희현이 왔을 때 아이들이 희현에게 달려왔다.“희현 언니!”희현은 통쾌하게 용돈을 나눠줬다.“이리와, 언니 돈 많이 벌어서 너희 용돈 줄게!”아이들을 보내고 희현은 창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언니, 저 왔어요!”은지가 처음에 무진에 왔을 때는 준호를 피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져 사탕 가게를 책방으로 바꾸고 알바생을 찾았다. 이 책방에서 책을 보면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했다.이 반년 동안 은지는 여행을 다니면서 지냈다.며칠 전, 호텔 주인이 은지보고 무진에 와서 연말을 보내라고 했고 아이들이 은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희현은 옆 마을에서 드라마를 찍다가 같이 식사하러 왔다.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둘러앉았다.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준호만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차가워진 도시락을 들고 화를 냈다.준호는 은지가 외롭게 연말을 보낼 줄 알고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이렇게 화목하게 모여서 보낼 줄 몰랐다.준호는 몇 시간을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자신이 참 바보 같았다.이렇게 도시락을 건네주기는 좀 그렇고, 아무 말도 안 건네고 가자니 아쉬
준호도 그동안 못 완성했던 임무를 마저 수행해야 했다.전에는 은지를 찾는 데만 집중해서 임무는 뒷전이었다. 이번에는 각 지역을 하나씩 제대로 돌아봐야 했다.돌아본 곳이 많아질수록 준호의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마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자연과 마주하니 준호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3개월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준호는 남한성에 돌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팀장은 준호가 전과 달라진 모습에 칭찬했다.“이런 일 많이 하니까 좋은 점이 있네.”...그 후로 준호는 예전처럼 훈련하고 임무를 수행했다.이곳에 있으면 외계의 간섭을 덜 받기에 사람들이 준호의 집안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개의치 않았다.그저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준호는 신옥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은지 씨가 정말 차가운 사람이라면 날 위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을 거야.’신옥영도 이 비밀을 준호가 알게 되면 많은 것을 바꾸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은지처럼 작은 일도 따지는 사람은 무조건 알았을 것이다.준호는 전에 은지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고은지 나한테 정은 있었나?’준호는 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만약 고은지가 나한테 마음이 없다면 이미 놔줬으니까 다시 가서 방해하면 안 돼. 근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면?’...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어 길거리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준호는 신옥영이 머무는 저택으로 갔는데, 집안이 시끄러웠다.하나가 장원수를 지휘하며 집을 꾸몄고 하나는 신옥영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신옥영에게 애교를 부렸다.올해에 준호는 신옥영의 저택에서 이 부녀를 자주 봤는데, 처음에 그들을 만났을 때,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장원수를 쏘아보며 일자리며 가족 관계까지 다 물어봤었다.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신옥영은 재혼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준호는 신옥영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자기는 신옥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