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34화 아니라면 떠나주세요

작가: 강캔디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4-23 18:00:00
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윤 씨, 제삼자인 제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다는 거 알아요. 돌아가신 분은 시윤 씨의 아버지이니 누구라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요.”

시윤은 마음이 심란하여 멍한 눈으로 되물었다.

“뭘요?”

“만약 도준 형과 다시 시작하겠다면 여기서 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만약 아니라면 떠나주세요. 도준 형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시윤은 멍해졌다.

“지금 그 말...”

시윤의 눈빛에 민혁은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말했다.

“희망이 있었다 사라지는 것보다 처음부터 없는 게 낫잖아요. 다시 그런 경험을 하면 도준 형 정말 지쳐버릴 지도 몰라요.”

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다면 도준 씨는 여전히 그 대단하신 민 사장님이었을 텐데.’

그런데 시윤은 그런 그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또 떠나버렸다.

행복을 얻어본 적 없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텐데...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시윤은 고통스러운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했다.

그날 비행기에 오른 순간, 시윤은 사실 도준의 곁을 떠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었다.

그녀로서는 절대 아버지를 죽게 만든 범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더러 그런 사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윤은 또다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가끔은 가족과 다시 만나던 그날이 떠올랐고, 도준이 외롭게 밖에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고, 또 때로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 나더러 어떻게 선택하라고...’

...

그 시각 방 안.

한참 동안 목이 졸린 수진은 끝내 기절해 버렸고, 그걸 본 나석훈은 다급히 수진의 호흡을 체키하고 나서야 식은땀을 닦으며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도준을 바라봤다.

20여 년간 심리 치료사 일을 해오면서 그는 한 번도 도준과 같은 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

민도준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35화 시윤의 선택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가고 있었다. 도준은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나서야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러다가 커다란 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순간 몇 초간 멈췄다.심리 치료사인 나석훈은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이건 이제 곧 일어날 일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나온 행동이다.이런 망설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정상적일 테지만 도준이 이런 행동을 보이자 나석훈은 얼른 노트를 꺼내 뭔가를 끄적이며 동그라미를 그렸다.그리고 나석훈의 노트가 닫히는 순간, 문도 열렸다.문밖은 아무도 없었다.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진작 짐작했다는 듯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나석훈도 밖을 두리번대더니 물었다.“오늘 한 사장님이 안 계시네요?”...한편, 민혁은 시윤을 차에 태운 채 엑셀을 밟으며 공항으로 향했다.그러는 와중에도 시윤을 위로하는 걸 잊지 않았다.“불안해할 거 없어요. 어머님 꼭 괜찮을 거예요.”사실 방금 전, 시윤은 해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하필 이승우가 출장을 간 탓에 동네에서 쓰러진 양현숙을 동네 주민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했던 거다.가는 길에 시윤은 가장 빠른 비행기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쉴 새 없이 시계를 확인했다.심지어 3시간이라는 비행시간 동안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하며 어머니에게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전화 통화를 할 수 없는 터라 3시간은 3년처럼 느껴졌다.너무 늦어 일찍 해원에 돌아오지 않는 저를 나무라기까지 했다.만약 공연이 끝나고 바로 돌아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해원에 도착하자마자 시윤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간호사님, 양현숙 환자분 병실이 어디 있나요?”간호사는 기록을 확인하다가 한참 뒤 대답했다.“입원 병동 6층 612호 병실입니다.”전속력으로 달려 병실에 들어간 시윤은 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양현숙을 보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시윤은 곧바로 병상 쪽으로 달려가며 흐느꼈다.“엄마, 미안해요. 미안해요.”“우리 딸, 왜 울고 그래?

    최신 업데이트 : 2024-04-24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36화 너도 못 잊었잖아

    샘플 채취 수, 시윤은 곧장 병실에 돌아가는 대신 복도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확실히 수아의 말대로 해원에는 벌써 꽃들이 피어 있었다.물론 많은 편은 아니지만 경성보다 일찍 따뜻하져 벌써 봄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방금 바삐 뛰어다닐 때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조용해지니 이제야 경성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시윤은 결국 그 문을 열지 않았고, 운명에 이끌린 듯 해원으로 돌아왔다.‘이게 우리의 바뀌지 않는 운명인가 보네...’“윤아.”시윤은 번쩍 정신을 차리며 돌아섰다. 승우도 어느새 샘플 채취를 마치고 돌아왔다.“오빠.”승우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마음 아픈 듯 말했다.“여위었네.”그 말에 시윤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뚱뚱해지면 쌤이 욕해.”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우를 빤히 바라봤다.“그러는 오빠야말로 멋있어진 것 같네. 혹시 형수는 언제 데려올 거야?”승우는 눈을 내리깔며 속내를 숨기려 했다.“급할 거 없어.”시윤이 떠난 1년 반 동안 승우는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예전에 바이올린 연습에 기울이던 노력을 모두 학생을 가르치는 데 기울였다. 심지어 전에 사용하던 연습곡도 리뉴얼하고 많은 기법도 새로 추가했다.그 뿐만 아니라 일전에 천재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덕에 많은 토크쇼에 초대되었고, 그 방송분이 공개되자 수많은 여자 후배들이 시윤에게 승우의 연락처를 물어보기까지 했다.심지어 수아는 잘생긴 것보다는 바이올린 켜는 남자가 좋다며 다리를 놔줄 걸 제안했지만 승우가 거절했다.물론 승우가 거절한 사람은 시윤의 후배뿐이 아니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시윤은 심지어 제 오빠가 이성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본 적이 없다.‘잠깐, 설마 오빠 남자가 취향인가?’승우는 갑자기 이상야릇해진 시윤의 표정을 보며 우스운 듯 물었다.“윤아, 너 표정 왜 그래?”시윤은 승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오빠, 저기 있잖아. 나 오픈 마인드라 형수는 여자가 아니어도 괜찮아.”그 말에 승우는 잠깐 멍해 있다

    최신 업데이트 : 2024-04-24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37화 친딸이 아닐 수 있어요

    보고지를 받은 두 사람은 곧장 주치의를 찾아갔다.그러자 보고지를 건네받은 의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두 분 모두 환자분 자녀가 맞나요?”“네.”시윤은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왜 그러시죠? 혹시 저희 모두 맞지 않나요?”“아니요.”의사는 승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드님은 매치가 잘 되니 이 보고서를 들고 간호사를 찾아가세요.”본인은 매치율이 떨어진다는 말에 시윤은 이내 실망했다. 물론 저와 오빠 중 누가 이식해 주든 결과는 같을 테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미안한 만큼 뭐라도 해주고 싶었으니까.하지만 결과가 나왔으니 시윤은 이내 받아들인 채 승우와 함께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의사가 시윤을 불러 세웠다.“따님분은 잠시만요. 환자분에 관해 전할 말이 있습니다.”‘뭐지? 다 끝났다고 했잖아?’시윤은 의아했지만 의사에 대한 존중과 믿음으로 남게 되었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따님분은 어머니와 매치가 전혀 안 되는 거로 나옵니다.”“그게 뭐가 문제인데요?”“정상적인 자녀라면 어머니와 적어도 절반 정도는 일치하다고 나와야 하는데, 따님분 같은 경우는 완전히 불일치로 나옵니다. 따님분은 환자분 친딸이 아닐 수 있어요.”“네?”시윤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선생님, 이 보고 결과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제가 엄마 딸이 아니라니. 그럴 리 없어요.”의사는 견식이 많은지라 냉정하게 대답했다.“물론 따님분도 당연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겠죠. 하지만 양현숙 화자분이 따님분 친엄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말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시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작 한마디로 20여 년간 엄마로 알고 지낸 사람을 남이라고 단정 짓다니.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른 시윤은 겨우 다시 제 목소리를 찾았다.“그럼 제 오빠는요?”“오빠분은 양현숙 환자분과 모자 관계가 맞습니다.”벼락이라도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은 시윤을 보자 의사는 곧바로

    최신 업데이트 : 2024-04-25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38화 너 내 친딸 아니야

    시윤의 표정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양현숙은 시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물었다.“물어봐, 뭐든 물어봐도 돼.”양현숙은 늘 그렇듯 다정한 말투로 말했지만 시윤이 오히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에 고개를 돌려 양현숙의 눈을 피하고 나서야 끝내 입을 열었다.“엄마, 저 엄마 딸 아니에요?”양현숙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듯 싱긋 웃었다.“우리 딸이 어떻게 엄마 딸이 아니야?”하지만 웃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는지 어조가 조금 느려졌다.“어, 그건 왜 묻는 건데?”말을 꺼낸 마당에 시윤은 결실이라도 내린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엄마 빈혈이래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이 필요해서 오빠랑 같이 샘플 검사하러 갔는데 의사가 저랑 엄마의 세포가 완전히 불일치 하대요. 보고서 상으로만 보면 모녀가 아니래요.”시윤은 제가 말하고도 황당했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20몇 년간 엄마라고 불렀는데 고작 보고서 한 장으로 모든 걸 말살하려 하다니? 게다가 엄마든 아빠든 그동안 나를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시윤은 제 말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하기라도 할까 봐 얼른 말을 보탰다.“그런데 보고서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저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도 몇 번 봤어요. 기계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한참 동안 말했는데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시윤은 눈을 들어 양혀숙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빨갛게 물들어 있는 양현숙의 눈시울을 보고 흠칫 놀랐다.“엄마, 왜 그래요? 혹시 제가 헛소리했다고 화났어요? 다 제 탓이에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소리 안 할게요.”시윤은 심지어 양현숙의 손을 저에게 갖다대며 때리라고까지 했지만 양현숙은 오히려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이미 알았으니 엄마도 속이지 않으마. 너 내 친딸 아니야.”“...”시윤은 순간 머리가 ‘펑’하고 터지는 것만 같았다.‘네가 엄마 딸이 아니라고?’‘그럼 나는 누구지? 내 엄마 아빠는 어디 있지?’양현숙의 목소리는 솜이라도 끼어 있는 듯 흐릿하게 시윤의 귀에

    최신 업데이트 : 2024-04-25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39화 승우의 이상한 반응

    몇 년 전, 이성호한테 그런 사고가 났을 때 양현숙은 암시했던 적이 있다.‘만약 네가 내 친자식이 아니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을 텐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떠나.”그때 시윤은 이렇게 대답했었다.“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만약 혼자 도망가서 다시는 가족들 못 보면 제 인생도 희망이 없어지잖아요. 엄마, 저 꼭 식구들 데리고 해원 벗어날 거예요.’사실 그때 이미 모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그 시각, 아이처럼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은 어머니를 보며 시윤은 자책하던 마음마저 사라졌다.본인이 양현숙의 친딸인지 아닌지는 사실 별 의미 없었다. 그동안 양숙이 저를 친딸처럼 키워준 덕에 원래 보육원에서 자라야 할 그녀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보배로 자라왔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더 바랄 것도 없다.시윤은 먼저 양현숙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지난 20여 년간 우리 가족이 저를 얼마나 아껴주고 사랑해 줬는데요. 친딸로 키워준 게 아니라, 후원해 주었다 해도 저 절대로 우리 가족 안 버려요! 엄마는 영워한 제 엄마예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 앞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어느새 돌아왔는지 승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승우 손에 든 죽은 바닥에 떨어져 김을 폴폴 풍기고 있었고, 승우는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 시뻘게져서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심지어 늘 듣기 좋던 맑은 목소리에 모래라도 섞인 듯 많이 갈라져 있었다.“엄마, 방금 뭐라 했어요? 윤이가 엄마와 아빠가 낳은 딸이 아니라니요?”양현숙은 너무 큰 반응을 보이는 이승우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윤이 네 아빠랑 내가 낳은 딸이 아니야. 그런데 그동안 함께 지내왔으면 내 딸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앞으로도 동생 예뻐해야 한다, 알았지?”늘 다정한 성격을 갖고 있는 데다 시윤을 아끼던 승우라면 당연히 이 말에 두말없이 승낙했을

    최신 업데이트 : 2024-04-26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40화 승우의 비밀

    시윤이 왜 미안한지 되물을 새도 없이 승우는 몸을 돌려 황급히 병실을 떠났다.시윤은 그런 승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오빠가 왜 갑자기 저러지?’한편 승우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 미친 듯 상자를 뒤져 편지를 찾아 꺼내 들었다.새빨갛게 충혈된 데다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 속에 적인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승우의 심마로 되어 보지 않아도 줄줄 외울 수 있었다.[여보, 승우가 윤이한테 남매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듯하오. 혈육을 나눈 남매 사이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니 큰 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꼭 윤이에게 전해주오...]바로 이 말 때문에 승우는 이 편지를 따로 꽁꽁 숨겨두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밤마다 이 편지를 어머니에게 들키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다.특히 시윤이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오빠가 저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는지 느끼고 역겨워하는 모습.심지어는 이 편지를 손에 들고 역겹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빠가 나한테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 생각해도 역겨워요.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그때 교통사고로 확 죽어버리지 그랬어요.’ 라는 말을 퍼붓는 꿈을 꿀 때면 너무 고통스러웠다.시윤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심지어 아버지도 모두 함께 서서 차갑고도 경멸에 찬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꿀 때면 승우는 설명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매번 그의 심장은 낱낱이 파헤쳐져 그 속에 숨어 있는 기형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요 몇 년뿐만 아니다.솔직히 동생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승우는 이런 날이 올까 봐 늘 불안해했었고, 그래서 더 좋은 오빠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심지어 시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에도 오빠의 입장으로 조언도 해주고 위로도 해줬다.그런데 그간의 모든 게 갑자기 무의미해졌다.그와 시윤은 피를 나눈 남매가 아니다.그러니까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내어 다가갔더라면 뒤의 모든 게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뜻이었다.승우는 편지를 손에

    최신 업데이트 : 2024-04-26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41화 오빠가 설마

    양현숙의 말에 시윤은 가슴이 요동쳤다.‘다시 화해하라고?’‘화해하면 도준 씨가 치료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하지만 설레기도 잠시, 시윤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하던 시윤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엄마, 저 아빠랑 혈연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지난 20 몇 년 동안 아빠가 저한테 준 사랑은 진짜잖아요. 저도 아빠 정말 존경하고요. 만약 아빠가 친 아빠가 아니라는 이유로 바로 모른 척하는 건 너무 비겁해요.”“아빠는 신경 안 쓰실 거야...”“엄마.”시윤은 양현숙의 말을 잘랐다.“저 집에 가서 집부터 챙겨 올게요.”말을 마친 시윤은 뭘 더 말하려는 양현숙을 뒤로 한 채 곧바로 병실을 나섰다.하지만 문을 닫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물론 피를 나눈 부녀지간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양현숙과 이성호 부부가 시윤을 진심으로 대한 건 사실이다.양현숙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도준을 받아주라고 하는 것도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고, 시윤이 도준을 다시 받아줄 수 없는 것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어머니더러 살인범을 마주하라고 할 수 없으니까.어쩌면 도준이 이성호를 죽게 만든 그날 두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안 좋게 정해졌을지도 모른다.마음을 가다듬은 시윤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집안은 온통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시영은 요즘 학업 때문에 학교 숙소에서 지내느라 집에 오지 않는다. 때문에 승우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시윤은 거실 불을 켜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다가 승우의 방을 지날 때 희미하게 생 나오는 방 안 불빛을 빌어 안에 승우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것도 침대에 기댄 채 바닥에 넋을 잃은 채로.시윤은 어리둥절했다.“오빠?”승우는 시윤의 목소리에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봤다.빛을 등지고 있은 탓에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오후에 자기의 출생을 처음 알았을 때 시윤은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해 승우를 관찰할 겨를이 없었다,그런데

    최신 업데이트 : 2024-04-27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242화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시윤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이건 왜 다 꺼냈어?”바닥에 앉아 있던 승우는 천천히 눈을 들어 시윤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고 눈가는 어느새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는 평소 단정하고 상냥하던 오빠와는 거리가 멀었다.시윤을 바라보는 승우의 눈에는 시윤이 그간 저를 오빠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던 모습들이 언뜻언뜻 지나갔다.유치원 문 앞에서 그를 꼭 안고 울던 모습,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며 쪼르르 달려와 고자질하던 모습, 중학교 때 밖에 나가 놀기 위해 두 손을 꼭 모으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모습, 그리고 고등학교 때 제 일에 관여하지 말라며 반항하던 모습...한 장면 한 장면 모두 눈앞에 있는 시윤과 겹쳐 보였다. 빼어난 외모와 단단한 마음, 모든 게 너무 완벽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슴에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승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물었다.“윤아,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해? 나... 좋아해?”이 질문을 승우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숨겨 두었다. 너무 오래 숨겨두고 있어 마치 캐비닛 뒤에 떨어져 있던 진주 목걸이처럼, 미처 감상도 하기 전에 덮쳐 오는 먼지 때문에 기침하고 눈을 뜨지 못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승우의 질문에 시윤의 안 좋은 예감은 더욱 강렬해졌다. 이에 잠깐 머뭇대다 진지하게 말했다.“오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야.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이렇게 좋은 오빠가 있다고 다 부러워했어.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난 친딸이든 아니든 난 오빠를 친 오빠로 생각할 거야.”질문한 순간부터 숨죽이고 대답을 기다리던 승우는 시윤의 답이 떨어지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굳게 닫힌 눈꺼풀 사이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승우도 사실 시윤이 저를 그저 오빠로 생각한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윤이 저를 좋아하면 어떨까? 만약 남매 사이 때문에 마음을 내비

    최신 업데이트 : 2024-04-27

최신 챕터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4화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요

    연말이 되자, 하윤은 사람들 다 같이 경성에서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경성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진가연과 한성운도 그러고 싶어 했다.남은 사람은 양현숙이었다.하윤은 원래 양현숙을 데리고 경성에 오려고 했는데, 양현숙이 해성시의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양현숙은 집을 지켜야 한다면서 오래 집을 비우면 너무 처량한 느낌이 난다고 했다.하윤은 양현숙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집뿐만이 아니라 이성호와의 추억이다.그래서 하윤은 그렇게 요구하지 않고 도윤을 데리고 자주 보러 갔다.이번에 하윤의 요청에 양현숙이 기분 좋게 동의하면서 31일에 같이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하윤은 손님 맞을 준비를 했고 곧 새해가 다가왔다. 양현숙이 하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하윤에게 물었다.“하윤아, 네 오빠 귀국한다는데, 만나볼래? 싫으면 너희 방해하지 말라고 할게.”그때 병원에서 기분 나쁘게 헤어진 뒤로 만난 적이 없었다.승우는 도윤의 나이를 잘 기억하고 있어 가끔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보내주었다.이렇게 여러 해 지나고 하윤은 전의 일을 마음에 담아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것에 대해 조금 자책했다. 양현숙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하윤은 양현숙이 중간에서 힘들까 봐 가볍게 말했다.“오빠 돌아왔으면 같이 오세요. 우리 한 가족 되게 오래 같이 못 만났잖아요?”양현숙은 기뻐서 대답했다.“알았어, 그렇게 오빠한테 전달할게.”...통화를 마친 하윤은 이 일을 도준에게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승우가 하윤의 오빠지만, 하윤이 이 이년 사이에 아무 이성과 접촉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컷 모기까지 도준은 하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도준은 승우를 항상 경계해 왔다.도준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그날 저녁 도준이 돌아왔을 때, 하윤은 120%로 잘 보이려고 했다.하윤은 발꿈치를 들고 도준의 외투를 벗겨주었다.“여보 왔어요? 어땠어요? 오늘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도준이 하윤을 힐끔 쳐다보고 소파에 앉아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3화 당신은 참 좋은 엄마인 거 같아

    하윤은 요즘 아들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도윤은 다른 애들과 달리 장난감으로 놀기 좋아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책을 보는 일이었다.가끔 하윤은 도윤이 너무 오래 앉아 있어 힘들까 봐 텔레비전 앞에 데려와서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그러나 하윤이 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도윤이 뉴스 채널을 돌려서 재밌게 보고 있었다.소파 위에 있는 작은 아들을 보고 하윤은 걱정이 앞섰다.‘설마 내가 너무 연습에 몰두해서 아들을 소홀히 했나? 그래서 아들이 상처를 받아서 저런가? 안 돼! 도윤에게 완벽한 동년을 줄 거야!’하윤은 이 일이 엄청나게 큰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생각하고 도윤을 데리고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과 많이 만나게 하려고 했다. 많이 만나면 도윤의 동심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하윤은 어디를 가던 도우미가 자기를 보는 것이 싫어, 그냥 아파트에 살았다. 이곳에는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있었고 그중에 모래로 촉감놀이 하는 곳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하윤은 그곳에 도윤을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날씨가 좋아 하윤은 도윤의 손을 잡고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갔다.모래가 있는 곳으로 가자, 도윤은 모래를 뿌리며 재밌다고 웃어대는 친구들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하윤은 도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신나게 말했다.“도윤아, 친구들 얼마나 재밌게 놀아, 우리도 얼른 들어가서 놀자.”도윤은 눈썹이 붙을 정도로 찌푸렸지만, 하윤이 기대에 찬 모습에 하윤과 함께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도윤은 하윤이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하윤과 함께 모래에 들어갔다.도윤의 눈썹과 눈은 하윤을 닮았고 나머지는 도준과 똑같았다. 너무 잘생겨서 순식간에 다른 애들의 주의를 끌었다.한 아이가 도윤에게 말했다.“우리 같이 모래 파서 궁전 만들자!”그 아이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도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미안, 난 엄마랑 놀아야 해서.”하윤은 도윤이 자기랑 놀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마음속으로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2화 결혼식 한다고?

    하윤이 해성시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소혜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혜는 딸 민효연이 첫돌 생일을 쇠는 김에 미뤘던 결혼식도 같이 한다고 했다.지훈이 산을 구매해서 이제 산속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하윤이 깜짝 놀랐다.“결혼식 한다고?”“네!”소혜는 간식을 먹으며 말했다.하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혜를 불렀다.“소혜야.”소혜가 목을 쭉 뻗었다.“네?”지훈이 욕실에서 몸을 내밀자, 빛나는 눈은 여우처럼 사람을 홀렸고 머리가 젖어 더욱 섹시해 보였다.지훈의 보조개는 아주 귀여웠다.“수건 가져다줘.”지훈의 섹시한 모습에 소혜가 다급히 말했다.“언니, 오빠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줄래요? 그럼, 이렇게 정하고 저는 남자 만지러, 아, 아니, 수건 가져다주러 갈게요!”‘헤헿.’통화를 마친 하윤이 소혜가 보낸 웨딩사진을 보고 마음이 조금 찡했다.소혜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지훈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저녁 식사를 할 때, 하윤이 이 일을 도준에게 말했다.“지훈이 소혜랑 결혼식 올린대요. 다음 달에 한다는데, 당신이 언제 경성에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던데.”도준이 하윤을 바라봤다.“그건 당신한테 달린 거 아닌가? 당신이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내가 힘을 좀 써서 당신을 잡아와야지.”“말하는 것 좀 봐요. 제가 무슨 나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하네요? 다 연습하러 가는 거지.”하윤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일부러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소혜랑 지훈이 결혼식 한대요.”도준은 물을 마시고 콧소리가 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도준이 눈치채지 못하자, 하윤은 더 선명하게 눈치를 줬다.“아니, 쟤네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미뤘던 결혼식 올리는 거네요?”도준이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아기를 배속에 다시 밀어 넣고 결혼식 할 수는 없잖아?”하윤은 화가 나 그릇에 담겼던 완자에 구멍을 뚫었다.“맞아요! 맞는 말이죠!”도준이 눈치가 없자, 하윤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도준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봤다.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1화 가고 싶어?

    경성에서 하윤이 자기 전에 핸드폰을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욕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여보!”“도준 씨!”“도준 씨!!”욕실의 안개가 도준의 넓은 어깨에 흩어졌고 도준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가슴팍이 보였고 물기를 채 닦지 않아 가슴팍과 근육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도준은 하윤의 다급한 부름에 어디 부딪힌 줄 알고 급히 나왔는데, 나와보니 하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도준은 들고 있던 수건으로 하윤의 엉덩이를 때렸다.“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봤어?”하윤은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도준의 어깨에 놓고 핸드폰을 도준에게 들이밀었다.“빨리 봐봐요! 빨리!”하윤이 너무 날뛰어 핸드폰을 너무 가까이 대는 바람에 도준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도준은 하윤의 손목을 뒤로 잡아당겼지만 하윤이 손을 흔드는 바람에 인내심이 없어 하윤의 허리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혹시라도 너무 흥분해서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보기 귀찮으니까 얘기해 줘.”“고은지가 결혼한대요! 누구랑 하는지 맞혀 봐요!”도준이 물어보기도 전에 하윤은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곽준호! 곽도원의 아들 말이에요! 세상에, 아무런 연관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결혼하게 된 거죠?”도준은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아무 연관이 없진 않지. 전에 곽도원이 고은지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고 술자리를 열었었어.”“네?”하윤이 깜짝 놀랐다.‘그럼, 고은지가 곽준호 새엄마? 세상에! 나보다 더 용감하네?’하윤은 참지 못하고 도준을 밀었다.“얼른 얘기해 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팔을 하윤의 다리에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하윤은 도준의 팔을 치워버렸다.“쳇, 당신도 몰라요?”하윤의 귀여운 모습에 도준이 하윤의 볼을 꼬집으며 그녀를 돌렸다.“그렇게 알고 싶으면 결혼식에 가면 되겠네.”하윤은 볼이 꼬집혀서 말을 똑바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0화 슬픈 멜로디(99)

    준호는 가볍게 물었지만, 눈빛에는 긴장함이 깃들어 있었다.준호는 은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마음도 자신처럼 뜨거운지 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은지가 왜 준호를 찾지 않고 준호가 왔을 때 그에게 기회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수도 없이 많아진다. 은지를 볼 수 없을 때는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만나니까 가지 말라고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지 말라고 잡으면 은지 마음속에 준호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준호의 마음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져 버렸다.준호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자신의 기분을 은지가 느끼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너 속이기 싫어, 난 너 없어도 잘 살아.”준호의 손에 힘이 빠졌고 빛나던 눈도 빛을 잃었다.준호가 기분이 처져 손을 떼려고 하는데, 은지의 차가운 손이 준호의 손등을 감쌌다.“근데 네가 있으면 난 더 기분이 좋아서 매일 행복하게 살 거 같아.”실망했던 준호는 조금 희망을 얻고 말했다.“왜 말을 그렇게 늦게 해! 날 그렇게 힘들게 할 거야?”은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마도?”준호는 은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정말 기뻐서 나오는 웃음은 더 본 적이 없었다.준호는 성큼성큼 은지에게 다가가 입맞춤했다.“고은지, 너 이번에 또 가면 너 절대 안 놔줄 거야!”“응.”비음이 섞인 은지의 목소리에 준호의 몸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준호는 은지를 품에 안았다.“더 이상 나 화나게 하면 안 된다?”“될수록 그렇게 해볼게.”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성격에는 문제가 없어?”“너!”준호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계속 품에 안고 싶었던 은지를 안고 있어 화를 낼 수 없었다.“성격 안 좋은 거 나도 알아, 차근차근 알려주면 나 다 고칠 수 있어.”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말은 잘 듣네.’“다 고쳐도 나 좋아해야 된다? 안 그러면 너 안 놔줄 거야!”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될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9화 슬픈 멜로디(98)

    아까는 은지에게 핍박을 당해 자기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다.두 사람은 마주 보며 차에 앉아 있었고 은지가 준호를 지그시 바라보자, 준호는 그 물음을 다시 물어볼 수 없었다.그러나 준호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한 적 있어.”아까까지 겨울의 추위에 덜덜 떨던 준호가 은지의 대답에 봄으로 끌려온 것 같았다.준호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아 다시 물었다.“뭐라고?”은지는 담담하게 바로 대답했다.“이 6개월 동안 너 생각한 적 있다고.”이 6개월 동안 은지는 준호처럼 어린 사람, 준호처럼 무모한 사람, 은지를 마음에 들어한 사람,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 중에 준호처럼 진심으로,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은지는 30여 년간 계속 연기를 했었다. 이성희한테서 귀염을 받으려고, 고씨 집안의 사랑을 받으려고, 곽도원의 귀염을 받으려고 말이다.은지가 수많은 자태를 뽐냈지만, 준호는 은지가 가장 악독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고도 좋아한 사람이다. 그래서 준호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생각났다.“그럼, 앞으로 생각 안 할 거야.”“너!”준호가 다급히 말했다.“왜? 아까는 내 생각 했다며?”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준호를 바라보았다. 은지는 준호의 화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준호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나, 나도 네 생각 했어.”이때 차의 라디오에서 로맨틱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준호는 평소에 이런 노래를 듣기 싫어했는데, 지금 들으니 아주 로맨틱했다.준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은지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가게는 저기 있어.”은지가 물어보지 않자, 준호도 은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나랑 가는 거야, 마는 거야?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용기가 안 나!’마을이 너무 작아 노래 한 곡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은지가 차에서 내리자, 준호도 따라서 내렸고 은지가 계단으로 올라가자, 준호도 따라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8화 슬픈 멜로디(97)

    호텔 내부의 뜨거운 공기에 준호는 재채기를 했고 곧이어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은지를 발견했다.반년이 지나 은지의 머리는 좀 길었지만 조금 헝클어진 상태로 풀어 놓았다.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전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었다. 준호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열정 넘치는 아저씨가 준호 보고 얼른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술을 부어주었다.“은지 남자 친구죠?”준호는 은지가 또 전처럼 새엄마라고 할까 봐 경계했다.그러나 은지는 그저 간결하게 대답했다.“아니요.”준호는 한숨 돌렸다. 그러나 곧이어 준호는 또 짜증이 났다.이제 은지가 준호의 새엄마도 아니니 정말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희현은 은지에게 귓속말했다.“저 사람은 왜 또 언니 잡으러 온 거예요? 제가 문 지킬 테니까 도망갈래요?”말을 채 하지 못했는데, 은지가 희현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왜요? 이 계획 별로예요?”“아니, 너 목소리 너무 커서 저 사람이 너 보고 있어.”과연 고개를 돌리자, 준호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희현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제 막 유명해지려고 하는데, 죽으면 안 되지.’희현이 한 말 때문인지, 은지가 준호를 불러 놓고 준호랑 말을 안 해서인지, 밥을 채 먹지 못했는데, 그는 은지가 화장실을 갔을 때 막아섰다.은지가 손을 씻고 돌아섰는데, 준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은지는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준호가 지금까지 버틴 것이 기적 같았다.“손 씻으려고?”준호는 잘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은지의 말에 또 화가 났다.“손 씻는다고? 내가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손 씻으러 왔겠어?”은지는 준호의 손에 묻은 양념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아니겠지만, 손은 씻어야 할 거 같아.”준호는 은지가 한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씻었다.손을 다 씻은 준호는 은지가 자리에 돌아갔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은지가 옆에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두 사람은 연인처럼 붙어 있었다.은지가 준호를 보자,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7화 슬픈 멜로디(96)

    ‘설마 고은지?’곧이어 여자가 목도리를 벗자, 얼굴이 보였다.은지가 아니라, 전에 은지와 함께 준호를 속였던 배우 희현이었다.연말이 되자, 밖에서 일하던 자녀들이 다 무진으로 돌아왔기에 마을에 못 보던 차가 많이 세워져 있어 희현은 준호의 차를 의심하지 않고 차 주변을 돌며 통화를 했다.“여보세요? 언니,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호텔 쪽에 있어요? 아, 그럴 줄 알았으면 택시 타고 호텔로 갔죠.”준호는 희현의 통화를 듣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언니? 고은지인가? 고은지도 여기 있나?’...무진에 호텔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항상 손님이 별로 없었다. 연말이라 손님이 더 없어서 주인장은 일 층에 탁자를 다 붙여서 음식을 해놓았다. 아이들이 모여 있어 희현이 왔을 때 아이들이 희현에게 달려왔다.“희현 언니!”희현은 통쾌하게 용돈을 나눠줬다.“이리와, 언니 돈 많이 벌어서 너희 용돈 줄게!”아이들을 보내고 희현은 창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언니, 저 왔어요!”은지가 처음에 무진에 왔을 때는 준호를 피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져 사탕 가게를 책방으로 바꾸고 알바생을 찾았다. 이 책방에서 책을 보면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했다.이 반년 동안 은지는 여행을 다니면서 지냈다.며칠 전, 호텔 주인이 은지보고 무진에 와서 연말을 보내라고 했고 아이들이 은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희현은 옆 마을에서 드라마를 찍다가 같이 식사하러 왔다.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둘러앉았다.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준호만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차가워진 도시락을 들고 화를 냈다.준호는 은지가 외롭게 연말을 보낼 줄 알고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이렇게 화목하게 모여서 보낼 줄 몰랐다.준호는 몇 시간을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자신이 참 바보 같았다.이렇게 도시락을 건네주기는 좀 그렇고, 아무 말도 안 건네고 가자니 아쉬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6화 슬픈 멜로디(95)

    준호도 그동안 못 완성했던 임무를 마저 수행해야 했다.전에는 은지를 찾는 데만 집중해서 임무는 뒷전이었다. 이번에는 각 지역을 하나씩 제대로 돌아봐야 했다.돌아본 곳이 많아질수록 준호의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마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자연과 마주하니 준호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3개월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준호는 남한성에 돌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팀장은 준호가 전과 달라진 모습에 칭찬했다.“이런 일 많이 하니까 좋은 점이 있네.”...그 후로 준호는 예전처럼 훈련하고 임무를 수행했다.이곳에 있으면 외계의 간섭을 덜 받기에 사람들이 준호의 집안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개의치 않았다.그저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준호는 신옥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은지 씨가 정말 차가운 사람이라면 날 위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을 거야.’신옥영도 이 비밀을 준호가 알게 되면 많은 것을 바꾸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은지처럼 작은 일도 따지는 사람은 무조건 알았을 것이다.준호는 전에 은지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고은지 나한테 정은 있었나?’준호는 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만약 고은지가 나한테 마음이 없다면 이미 놔줬으니까 다시 가서 방해하면 안 돼. 근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면?’...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어 길거리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준호는 신옥영이 머무는 저택으로 갔는데, 집안이 시끄러웠다.하나가 장원수를 지휘하며 집을 꾸몄고 하나는 신옥영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신옥영에게 애교를 부렸다.올해에 준호는 신옥영의 저택에서 이 부녀를 자주 봤는데, 처음에 그들을 만났을 때,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장원수를 쏘아보며 일자리며 가족 관계까지 다 물어봤었다.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신옥영은 재혼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준호는 신옥영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자기는 신옥영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