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택시를 잡기 어려운 터라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한 하윤은 잔뜩 토라져 중얼거렸다.“뭐? 카리스마 사장님과 재벌녀의 사랑? 웃기고 있네. 평범한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설겠나?”깊은 생각에 빠진 하윤은 길가에 선 차창이 내려간 것도 눈치채지 못하 채 혼잣말만 중얼댔다.그러던 그때.“쯧쯧.”비아냥 섞인 소리에 정신이 하윤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차 뒷좌석이 앉은 남자가 하윤의 눈에 들어왔다.“타.”하윤은 화를 참은 채 차에 올랐지만 유독 도준에게만 시선을 주지 않았다.잔뜩 토라진 하윤의 목을 돌려 저와 눈을 맞춘 도준은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한참동안 기다렸는데 얼굴도 안 보여주는 거야?”“본인이 운전한 것도 아니면서.”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내 의자 앞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고생했어요……, 민혁 씨?”그러다가 검게 변한 민혁의 머리에 놀란 듯 되물었다.“머리가 왜 이래요?”민혁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빨간 불에 걸린 틈을 타 고개를 돌렸다.“누가 양아치 같다고 해서 까맣게 염색했어요. 하윤 씨가 보기에는 어때요?”민혁은 잘생긴 미남에 속하지는 않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남성미 있는 스타일이다.하지만 전에 빨간 머리 때문에 겉보기에 불량해 보였는데 검은 색으로 염색하니 오히려 대형견을 연상케 하는 데다 더 활기 찬 모습이었다.“더 멋있어졌는데요. 물론 그 구멍 뚫린 청바지만 갈아 입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네?”민혁은 구멍이 뚫린 무릎 위치를 긁적거렸다.“이게 얼마나 멋있다고 그래요?”“아무리 그래도 모든 바지가 다 구멍 뚫린 거면 조금 심한 거 아니에요?”민혁도 하윤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되물었다.“그럼 구멍 뚫린 청바지가 아니면 뭘 입죠?”“아니면 나중에 저랑 같이 쇼핑할래요? 제가 봐 줄게요.”“그거 좋은데…….”말을 하던 민혁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이내 입을 다물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저녁식사 사간이 되어 가는데, 어디 레스토랑이라
도준은 긴장한 나머지 표정까지 일그러진 하윤을 보자 피식 웃으며 그녀의 볼살을 꼬집었다.“공은채는 제 목숨 끔찍이 아껴, 만약 눈치챘다면 순순히 입원할 리 없지.”확실히 그런 게 맞지만 하윤은 여전히 불안했다.그런데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음식배달을 온 민혁이 초인종을 눌렀다.하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발을 들어 도준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얼른 가서 가져와요.”도준은 그런 하윤의 다리를 한 손으로 잡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제는 자연스럽게 나를 부려먹네?”다리를 뒤로 뺄 수 없게 되자 하윤은 오히려 발을 구르며 떼를 썼다.“얼른요. 식으면 맛없어요.”민혁은 겉보기에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일처리는 항상 깔끔하다. 갈비를 포장하는 것만으로도 민혁의 그런 면을 보아낼 수 있었다.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온 것도 모자라 식을까 봐 겉에 은박지까지 두른 덕에 갈비 맛은 식당에서 직접 먹는 것과 거의 유사했다.게다가 민혁은 특별히 도준과 하윤의 입맛에 맞는 음식 몇 가지를 더 사오기까지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마치 집에서 직접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맛있는 음식을 먹은 덕분인지 하윤의 기분은 전보다 꽤 좋아졌다.하지만 얼마 먹지 못하고 그릇을 내려놓더니 젓가락을 입에 문 채 도준을 바라봤다.도준은 그런 하윤을 흘깃거리며 되물었다.“고작 그만큼만 먹는 거야? 뭐 고양이도 아니고.”하윤도 솔직히 먹고 싶었지만 아쉬운 듯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번주 금요일 공연이 있거든요. 윤 쌤이 몸매에 대한 요구가 워낙 엄격한 분이라 살찔까 봐 그래요”그 말에 도준은 이내 미간을 좁혔다.“그 가느다란 팔다리를 하고 그게 지금 할 말이야? 누구는 힘쓰면 부러질까 봐 걱정돼 미치겠는데. 그게 어딜 봐서 살찐 거야? 얼른 더 먹어.”안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하윤은 도준의 설득에 이내 젓가락을 들고 갈비 하나를 짚으며 중얼거렸다.“그럼 하나만 더 먹을게요.”마지막 한나라고 큰소리까지 떵떵 친 하윤은
도준은 손쉽게 30킬로그램이나 되는 샌드백을 막더니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었다.“설마 이 샌드백이 자동으로 자기 비켜갈 거라고 생각한 거야?”그제야 조심스럽게 눈 한쪽을 가늘게 뜬 하윤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걸 확인하고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처음이라서 그런 거잖아요. 다시 해요.”도준이 손을 살짝 움직이자 모래 주머니는 다시 하윤 쪽으로 움직였다.아까보다 작은 폭으로 움직이는 샌드백을 보자 하윤은 이내 힘을 다해 쳐냈다.연습하는 동안, 하윤이 받지 못할 것 같을 때면 도준은 대신 모래 주머니를 잡아 주었다가 다시 던져주며 연습을 도왔다.그렇게 약 반시간쯤 연습하고 나니 하윤의 목덜미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생기가 흘러 넘쳤다.도준은 흔들거리는 샌드백을 손으로 잡으며 노골적인 시선으로 하윤을 훑었다.“이제 몸도 풀었으니 진짜 사람과 대결해야지.”아무 생각없이 동의하려던 하윤은 일전에 도준에게 여기저기 얻어터져 불구가 되었던 사람을 떠올리자 이내 겁을 먹었다.“저 맷집이 약하니 사살해야 해요.”하윤의 그런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래, 최대한 노력해 볼게.”“그런데 왜 손에 글러브도 안 해요?”도준은 눈썹을 위로 치켜 올렸다.“자기랑 하는 데 글러브가 왜 필요해?”도준이 제 실력을 무시하자 하윤은 욱해서 도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렸다.하지만 그걸 가볍게 피해버린 도준은 하윤의 허리를 느긋하게 문질렀다.“무계 중심이 흔들리잖아. 그래서야 사람을 어떻게 때리려고 그래?”“이건 무효예요. 다시 해요!”하윤은 손을 휘휘 저으며 생떼를 부렸다.하지만 아무리 다른 동작으로 공격해도 결과는 똑같았다.몇 번을 시도해도 도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의 손에 농락당한 하윤은 도준의 손이 제 옷 안을 파고들 때 꽉 붙잡았다.“뭐하는 거예요? 운동한다면서요?”도준은 손쉽게 하윤의 반항을 가볍게 누르며 농담을 내뱉었다.“이것도 운동이잖아, 땀을 이렇게 많이
석지환이 건넨 가방을 손에 든 하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석지환이 방금 한 말뿐이었다.“경성이요? 거긴 뭐 하러요?”“답 찾으러.”석지환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끝내 대답했다.하지만 그 말에 하윤은 오히려 더 어리둥절했다.“무슨 답이요?”석지환은 더 이상 하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말머리를 돌렸다.“시윤아, 만약 나한테 벌어진 일이 너한테도 벌어지면 넌 어떻게 할래?”오늘 건넨 첫마디부터 애매모호해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더 알아들을 수 없었다.“무슨 뜻이에요? 혹시 공은채 말하는 거예요?”석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에 하윤은 미간을 좁히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지환 오빠, 도준 씨는 공은채와 달라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결혼도 했고요. 그런 가정도 하기 싫어요.”하윤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자 석지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걸렸다.“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어……, 아니다, 못 들은 거로 해. 나 며칠 동안 해원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니 나중에 네 공연 보러 올게.”비록 석지환의 말에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이웃집 오빠인지라 하윤은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혹시 혼자가요? 도준 씨한테 도움 청해볼까요? 그러면 오빠도 더 편할 거고.”“아니야, 내가 경성에 간다는 건 누구한데도 말하지 마. 내 개인적인 일 처리하러 가는 거니까. 다른 사람 알게하고 싶지 않아.”‘하긴, 요즘 지환 오빠 상태도 안 좋은데, 기분전환 하러 가는 건지도 모르지.’하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안전 조심해요.”멀리 떠나가는 석지환의 뒷모습과 텅 빈 팔소매를 번갈아 보며 하윤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현재 가는 곳마다 도준과 공은채에 관한 소식이라서 석지환은 아마 하윤보다 더 괴로울 거다.‘아직도 지환 오빠 여자친구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지. 차라리 기분전환 할 겸 외출하는 것도 좋지.’차에 오른 하윤은 뒷좌석에서 도준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도준 씨는요?”“
병원.“상황이 이대로 안정되면 다음주 목요일 바로 수술할 수 있습니다.”검사 보고를 확인하던 원장이 짤막한 결론을 내놓자 도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다음주 목요일로 정해요.”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공은채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이내 되물었다.“혹시 지금 수술하면 성공 확률은 얼마인가요?”“90퍼센트 이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희 병원의 심장내과는 국내 최고 수준이니 저희 말대로 약만 꾸준히 먹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면 성공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원장의 말에도 공은채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어찌됐든 현재 겨우 제가 원하는 모든 걸 손에 넣었는데, 이대로 일이 틀어지면 안 됐으니까.원장을 포함한 의료진이 떠나자 공은채는 이내 도준을 바라봤다.“수술할 때 제 곁에 있어줄 거죠?”“응.”도준은 짤막하게 대답했다.요 며칠동안 저를 매일 보러 오는 도준 덕에, 공은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때문에 말투도 많이 가벼워졌다.“그럼 됐어요. 도준 씨가 곁에 있으면 저는 늘 위험에서 벗어났었으니까.”이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준이 살이 있는 부처처럼 공은채를 항상 지켜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모든 걸 동원해서 그녀를 살려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설령 공은채에게 죽을 고비가 찾아와도 도준은 저승길이라도 찾아와 그녀를 다시 끌어냈다.솔직히 이런 도준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하지만 공은채에게 남은 이런 소녀 같은 마음은 진작 염옥란과 함께 죽었다. 공은채는 남자를 믿지 않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 그녀가 믿는 건 오직 손에 쥐고 있는 것뿐이다.하지만 지금, 그런 공은채에게도 왠지 다른 마음이 생겨났다.도준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어찌됐든 도준처럼 모든 걸 갖춘 사람과 함께라면 남은평생 편하게 살 수 있기도 하고, 무너진 공씨 가문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니까.공은채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한편 룸 안.저한테 추근대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내는 투자자를 본 진가을은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빙 둘러봤다.제 앞에 놓인 와인병을 보자 당장이라도 눈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힘껏 내리쳐 구멍을 뚫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왓다.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매니저의 눈치를 보며 눈을 내리깔고 사과하는 것뿐이었다.“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닙니다.”매니저 지하늘은 일을 그르친 진가을을 째려보더니 이내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투자자를 바라봤다.“주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우리 가을이 성격. 이렇게 화끈한 성격 때문에 더 좋아하셨잖아요.”하지만 주승범은 그런 매니저의 손마저 홱 뿌리치며 버럭 화를 냈다.“듣기 좋은 소리는 그만해! 애초에 이번 드라마 여주인공 자리 내어주면 진가을이 내 말 고분고분 들을 거라며? 그래서 계약서에 사인했는데 지금 뭐 하자는 건가?”주승범의 말에 놀란 진가을은 고개를 홱 돌려 매니저를 바라봤다.“이번 여주인공은 감독님이 직접 뽑았다면서요?”제 발이 저려 눈을 슬슬 피하던 지하늘은 이내 미간을 좁혔다.“가을아, 너도 이 바닥 입성한지 벌써 2년이 다 돼가잖아. 그런데 어쩜 그렇게 순진해? 얼른 주 대표님 모시고 가서 휴식해.”진가을은 서로 말을 맞춘 두 사람을 원망하듯 바라봤다. 이렇게 늙은 놈과 잠을 잘 바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술 마시고 죽어버리는 게 나았다.이윽고 진가을은 테이블 위에 있는 술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이 술 다 마시면 갈 수 있는 거죠?”현재 테이블에는 4병의 와인과 한 병의 도수 높은 양주가 놓여 있었다. 이 술을 모두 마실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만약 마시더라도 바보가 되거나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피둥피둥한 살이 소파와 거의 하나 될 것처럼 축 늘어 앉은 주승범은 얇은 천쪼가리만 달랑 걸친 여자를 제 품안으로 껴안았다.“재주가 있으면 어디 마셔 보던가. 마시지 못하겠으면 순순히 나 따라와야 할 거야.”주승범의 말이 떨어지자 진
주승범 일행은 진가을을 아는 체하는 한민혁을 보자 둘이 사귀는 사이라고 오해하고 버럭 화를 냈다.“어디서 같잖은게! 당장 나가지 못해?”하지만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민혁은 팔을 걷은 채 와인병을 손에 들었다.“술친구 필요한 거 아니었어? 내가 같이 마셔 줄게.”“이게 누굴 놀리나…….”주승범이 욕지거리를 내 뱉은 순간, 옆에 있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혹시 한민혁 사장님 아니세요?”그 말을 내뱉은 사람은 다름아닌 주승범의 비서였다. 일전에 주승범은 민도준이라는 연줄을 잡으려고 비서를 보내 알아보게 한 적이 있었다.그 때문에 주승범도 솔직히 민혁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방금 알아보지 못한 건 너무 변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민도준의 오른팔인 한민혁을 건드리는 건 민도준을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다…….그걸 인지한 순간, 주승범은 낯빛이 싹 변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한 사장님이셨군요, 나는 또 누구라고. 어떻게 귀한 분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얼른 앉으세요.”이윽고 테이블에 쓰러지다시피 엎드려 있는 정가을을 힐끗 보더니 이내 다시 아부하는 미소를 지었다.“가을이도 참, 진작 한 사장님 여자라고 말했으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텐데.”평소 주승범 같은 사람을 가장 혐오하는 민혁은 경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누구 여자든 강제로 술 마시게 하는 건 안 되지. 참 뻔뻔하네.”분위기를 풀려고 했던 말을 오히려 사정없이 받아치자 주승범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한 사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죠. 제 밑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이러는 건 주가을한테는 영광이죠.”“퍽이나. 술시중 들게 하는 게 영광이라고? 그럼 당신 어머니 모셔와 봐, 내 술시중 들라고 하게.”“뭐?”주승범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려는 순간, 비서가 막아 서며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그리고 그 순간, 민혁은 인사불성이 된 진가을을 일으켜 세우더니 주승범을 째려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혼자
“띠리링.”한민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진가을을 불렀다.“이봐요, 싸가지, 그쪽 약 가져왔어요.”그러면서 목을 빼들고 안을 살펴봤다.“어? 사람은 어디 갔지?”“아, 바닥에 떨어졌네.”침대 옆으로 걸어간 민혁은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는 진가을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참 개구리도 아니고, 이건 무슨 자세야?”진가을을 안아 침대 위로 올려준 민혁은 지하늘이 준 약병을 열었다.“이봐요, 약 먹어요. 그래야 내일 노래할 거 아니에요.”인사불성이 된 진가을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민혁은 어쩔 수 없이 친히 약까지 먹여주고는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겨우 끝났네. 난 참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하지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진가을의 물 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래 할 바엔 끝까지 해야지.’민혁은 이내 부엌으로 가 빈 컵에 물을 따라서 진가을의 방으로 돌아왔다.하지만 물을 들고 나타났을 때, 진가을은 또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뭐가 불편한지 몸까지 배배 꼬기 시작했다.“하, 왜 또 떨어졌대? 좀 얌전히 자면 안 되나?”심지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민혁이 저를 침대위로 끌고 가려고 하자 그를 꼭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계속 혼잣말로 ‘더워’라고 중얼거리면서.이렇게 예쁜 여자가 제 품에 안기자 민혁은 순간 날아갈 듯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거절했다.“이러면 안 돼요. 제가 비겁하게 인사불성인 사람을 덮치는 것 같잖아…… 어!”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진가을이 갑자기 덮쳐 오는 바람에 민혁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그 순간 눈앞이 어지러워나기까지 했다.상대의 적극적인 모습에 민혁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제 허리 위에 가로 타고 있는 진가을을 보며 경고하기 시작했다.“아니, 이러지 말고 우리 말로 해결해요.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충동적으로…… 읍읍…….”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멍해진 민혁은 잠깐 숨돌릴 틈에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말한 건 이런 게 아니에요! 경고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