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어르신. 도련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집사인 저는 도련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하지만 성동철은 속을 뻔히 내다보는 사람이었기에 집사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재무팀에 가서 월급을 받고는 이 집에서 당장 나가.”집사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는 꿈에도 이렇게 엄중한 결과가 기다릴 거로 생각하지 못해 철썩 무릎을 꿇었다.“어르신, 제가 성씨 가문에서 10년 넘게 열심히 일한 걸 봐서라도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성씨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고서야. 이보다 더 멍청한 잘못이 어디 있어?”성동철은 인내심을 잃고 손을 내저으면서 빨리 나가라고 했다.집사는 몸을 흠칫 떨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 자신 때문에 후회가 몰려왔다.성동철은 그동안 계속 자애로운 어르신의 이미지를 보였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스스로 A 국의 주얼리 시장을 연 개척 공신일 정도로 능력이나 기개가 대담한 사람이었다.성동철은 바로 고청민을 부른 대신 세움 임원들에게 내일 아침 일찍 이사회를 열 거라는 통보를 내렸다.그는 고청민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거짓말을 한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다. 게다가 성씨 가문의 사람까지 끌어서 그를 속이려고 했으니 이건 저지르면 안 되는 큰 실수였다.‘내가 청민이를 제대로 교육해야겠네. 아니면 앞으로 지안이까지 괴롭히면 어떻게 해?’...성씨 가문의 본가 저택에서.성연신이 스스로를 서재에 가두면서 밥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았다.성우주가 국수를 들고 오고는 애어른처럼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왜 안 드시는 거죠? 어른인데도 전혀 말을 듣지 않네요.”성수광이 휠체어에 앉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저놈을 신경 써서 뭐 해. 하루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증조할아버지는 아빠가 걱정 안 되세요?”“걱정이 안 돼. 말 안 하니까 훨씬 좋은데? 적어도 말할 때보다는 사람이 호감이 가네.”성우주는 반듯하게 차려입고
고청민이 맑은 눈망울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어제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성동철은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가 쉬었고, 그와 다른 얘기를 더 나누지도 않았다.심지안은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그럼 할아버지가 모두에게 비밀로 하셨다는 얘긴데. 무슨 중대한 사항을 발표하려고 하시나?’심지안은 앞으로 두 번째 줄 고청민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고청민의 앞이 바로 성동철의 자리였다.한참 지나고서야 성동철이 도착했다.“여러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어요.”성동철이 지팡이를 내려놓고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은 채 한가운데의 자리에 앉았다.“아닙니다. 저희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오랜만에 어르신의 얼굴을 뵐 수 있으니 저희야 영광이죠.”“맞습니다. 어르신이라면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참, 식사는 하셨습니까? 마침 어르신께서 가장 좋아하는 만둣집에 들렀다가 조금 포장했습니다.”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아부를 떨었다. 방금까지는 얼굴이 굳어 있던 임원들은 모두 활짝 미소를 지으며 성동철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필요 없습니다.”성동철이 손을 내젓고는 비서더러 프로젝터를 켜라고 했다.“시작하죠. 앞으로 3년 동안 매출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또 여러 가지 지출이 어느 정도 될지 토론해야죠.”물론 회사의 상황을 체크하는 건 이번 이사회의 중점이 아니었지만 이사회에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용히 지켜보기 시작했다.그리고 보통 이사회가 끝날 때쯤이어야 중요한 얘기가 오가곤 했다.한 시간 후, 비서가 PPT를 끄고는 성동철에게 말했다.“어르신, 보고는 전부 마쳤습니다.”“좋아요.”성동철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심지안을 보고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지안이가 제 손녀인 건 다들 아시죠?”같은 시각, 심지안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몰랐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람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고청민이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는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께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는데요.”“마침 나도 시간이 있네.”성동철이 비서에게 말했다.“따라올 필요 없어요. 오늘 바로 지안이랑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지분 양도 계약서를 잘 작성하세요.”...널찍한 사무실에서.성동철은 전용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눈앞에 놓인 백옥 바둑알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앉아.”고청민이 허리를 곧게 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잘못을 저질러 할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제가 어찌 감히 자리에 앉겠습니까.”성동철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한 그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뭘 잘못했는데?”“저랑 지안 씨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신 후 보게 될까 봐 그만 집사님에게 CCTV를 삭제하라고 했어요.”“부부는 다투기 마련이지. 그렇다고 CCTV를 삭제해?”고청민이 고개를 들자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듯한 성동철과 눈을 마주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최대한 완벽한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했다.“할아버지를 속일 수는 없네요. 사실 작은 말다툼 정도가 아니었어요. 지안 씨가... 파혼을 하고 다시 성연신 씨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거든요. 일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제가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조처를 했어요.”바둑알을 굴리고 있던 성동철의 손이 급작스레 멈췄다.그는 오늘 아침 그의 앞길을 막았던 성수광을 떠올렸는데 성수광은 심지안과 고청민 사이의 결혼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고청민은 조용히 성동철의 표정을 관찰했는데 그가 의심하지 않은 것 같아 계속 말했다.“저는 지안 씨를 보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안 씨를 방에 가뒀죠. 하지만 지안 씨가 계속 나가려고 했고, 또 정신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아서 제가 지안 씨를 어르고 달래며 정신과 병원으로 갔었죠.”“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필요하면 진정제 주사를 맞아도 된다고요. 집에 돌아와도 지안 씨가 계속 어리광을 부리니까 저도 부득이하게
심지안이 업무를 모두 마친 후 바로 회사를 떠났다. 물론 병원으로 가는 걸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그녀는 방매향과 마주쳤다.방매향이 그녀를 보더니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지안 씨, 괜찮아요? 연신이가 나에게 다 말했어요.”“네? 저야 당연히 괜찮죠.”심지안은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구겼지만 그녀는 얼굴이 푸석하고 입술이 바짝 말라 많이 피곤해 보였다.방매향은 그런 심지안의 모습을 보더니 가슴이 아팠다.“지안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나중에 연신이와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안 씨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요. 그 어떤 일 때문에라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 곁에 억지로 남을 필요 없어요.”심지안은 그녀의 말을 오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방매향의 말에 대답했다.“방매향 씨도 연신 씨와는 달리 정말 좋은 분이세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더는 연신 씨와 얽힐 일이 없다는 걸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는 계속 방매향 씨를 보통 직원으로 대할 거예요, 연신 씨 때문에 일부러 괴롭히거나 이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그 말을 들은 방매향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심지안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들렸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심지안은 머릿결을 정리한 후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하지만 고청민은 이 모든 걸 휴대폰으로 전송된 CC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짜증이 몰려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세게 내던진 후 눈을 꼭 감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사실 그도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남겨두면 도움은커녕 시한폭탄에 불과했으니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방매향 씨, 제가 아닌 당신의 운명을 탓하세요.’고청민이 눈을 뜬 후 지난번에 받은 송석훈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요 며칠 동안 심지안 때문에 그는 계속 송석훈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이 그때가 온 것 같았다.심지안이 세움을
“저도 당연히 성연신을 제고하고 싶죠. 다만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제가 알아봤는데 성연신은 이틀 후에 성수광 대신 전우에게 제사를 지내러 제원 파크로 간다고 해요. 제원 파크는 산 정상에 있어 도착하려면 반드시 산길을 지나야 하죠. 거기는 인적이 드물고 신호가 좋지 않아 구조를 요청해도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거예요. 그러니 제원 파크에서 손을 쓰면 분명 성원신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송석훈이 차를 마시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렇게 서두른 이유는 3일 후에 있을 심지안 씨와의 결혼식 때문인가요?”고청민은 몸을 흠칫 떨었지만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방지하기 위해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 타이밍에 성연신을 제거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그럼 저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생각인가요?”“성연신이 죽으면 찾고 계신 분을 바로 드리겠습니다.”고청민이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방매향이 입사할 때 개인 정보를 모두 똑똑히 작성하진 않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그녀의 주소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연신은 자기가 방매향을 잠 숨겨놓은 줄 알고 있고, 또 아무도 방매향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하느님도 성연신이 눈에 거슬려 나를 도와주고 계신 거 아닐까?’송석훈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찻잔을 그에게 건네고는 말했다.“그럼 앞으로 잘해봅시다. 술 대신 차로 미리 승리를 자축할까요?”고청민이 찻잔에 담긴 녹차를 바라봤다. 차향이 코끝을 스쳤고 그는 찻잔을 들어 송석훈과 살짝 잔을 부딪쳤다.“네, 앞으로 함께 잘해보죠.”하지만 그는 바로 차를 마신 게 아니었다.그는 송석훈이 차를 마신 걸 확인하고서야 겨우 한 모금 들이마셨다.모레 손을 쓸 구체적인 얘기를 다 나누고 고청민은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자리에 일어서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웠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하얗고 고운 그의 얼굴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송석훈이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옷 주름을 매만지고 자리를 떴다. 마치 이곳에 일어난 모든 일이 그와 상관없는 듯이 홀가분하게 말이다.그가 떠난 걸 끝까지 지켜보고서야 송준은 카메라를 조정하고 고청민을 보더니 씩 웃음을 터뜨렸다.“아직도 참는 거예요? 임시연 씨, 적극적으로 안 움직일 거예요?”비밀 조직은 공짜로 인재를 육성하지 않는다. 조직의 혜택을 받았으니 조건 없이 명령에 따라야 한다.게다가 만약 임시연이 그때 비밀 조직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기껏해야 부자들에게 몸을 내주며 돈을 받는 꽃뱀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되는 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임시연은 당연히 그 도리를 알았고 비밀 조직으로 들어온 후 해야 할 첫 번째 일도 바로 ‘은혜’를 갚는 것이었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종종걸음으로 고청민에게 걸어가고 희고 고운 속살을 고청민의 팔에 겹쳤다.“청민 씨 많이 괴롭다는 걸 알고 있어요.”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은 탓에 고창민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다 보니 그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있는 힘껏 테이블 모서리를 잡은 그는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손등의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콧속이 뜨거워지더니 코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는데 큰 핏자국이 점점 번지면서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준이 흠칫 놀랐다.‘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욕구가 불타올라 코피까지 흘리는 거야?’“미쳤어요? 그대로 참으려고 해요?”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게 무슨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임시연도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청민이 이대로 죽게 될까 봐 두려웠다.또 송석훈이 내린 미션을 완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허겁지겁 고청민의 버클을 풀어 이 일을 빨리 끝내려고 했다.고청민이 고개를 확 들더니 붉은 핏줄로 뒤덮인 두 눈을 보였다. 분노 어린 그의 눈빛은 보는 사람으로
긴장한 송준은 앞으로 한 발 내디뎠지만 여전히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 X끼 정말 미친 거 아니야?’송준은 고청민을 방어할 능력이 충분했지만 광기 어린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고청민은 손에 힘을 더 주더니 칼끝이 그의 손바닥에 더 깊게 박혔다. 더욱 강력한 고통이 전해졌는데 대신 욕구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에는 싸늘하고 음산한 빛이 감돌았다.“나까지 당신들처럼 비밀 조직에 굴복하게 하려고요?”그의 말은 정곡을 찔렀는지 송준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안 돼요? 설마 혼자의 힘으로 비밀 조직과 맞서 싸우려고요?”“맞서 싸우는 건 어렵겠죠.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비밀 조직의 꼭두각시로 되진 않을 거예요. 협력할 마음이 있다면 저도 당연히 제대로 친구 대접했겠죠. 하지만 이렇게 저를 끌어내려고 한다면 저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죠. 이미 기자들에게 연락했거든요. 내가 죽든 다치거든, 이 찻집에서 무사히 나오지 못한다면 기자들은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그럼 당신들은 어마어마한 여론에 휘말리게 되겠죠?”송준의 이름으로 된 회사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거래를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회사는 비밀 조직의 유일한 투명하고 합법적인 수입원이었다. 만약 경찰이 개입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고청민은 이미 준비를 단단히 하고 그들을 만나러 온 듯했다.자기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없다면 비밀 조직을 같이 끌어내릴 생각이었다.송준은 병약해 보이는 소년을 빤히 쳐다봤는데 놀라우면서도 답답해 마음이 착잡했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송석훈마저 고청민을 과소평가한 게 아닌지 싶었다.고청민은 작정하고 칼끝으로 자신의 살갗을 찌르며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독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아프더라도 굳센 의지로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하긴, 성연신과 대놓고 여자를 뺏고, 게다가 그 여자와 결혼까지 앞두게
“저는 정신과 의사인데요, 방금 두 분의 대화를 들었는데 진료를 해드릴 수 있어요. 제 진료실로 와서 진료받으실래요?”빡빡이 머리를 가진 남자의 얼굴에는 느끼한 기름이 떠 있었다.그는 마치 은혜로운 기회를 선사하는 듯 그녀를 훑어보며 거만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저 건강하거든요.”심지안은 이 대화가 불편했지만 여전히 예의를 지키면서 거절했다.“기회가 귀한 줄 모르네요. 나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저는 당신을 위해서 한 말인데 나중에 진료받아달라고 애원하지나 말아요.”“의사면서 말을 왜 그렇게 안 가리고 해요? 내 친구 안 아프니까 괜한 소리 하지 마요, 부정 타니까.”의사가 예의도 지키지 않고 말을 막 내뱉자 진유진은 화난 얼굴로 반박했다.“안 아픈데 병원에는 왜 와요?”남자는 턱을 만지면서 그들을 지켜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사생활이 문란해서 이상한 성병 있는 거 아니에요?”“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심지안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머리가 아파서인지 심지안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소였으면 이런 무례한 인간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따지고 싶었다.한발 물러서면 일은 더 커지지 않겠지만 그 화를 굳이 참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그러면 내가 무서워서 말 못 할 줄 아는데, 당신 몸 파는 여자죠? 젊은 나이에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남자에게 제대로...”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지안은 뾰족한 힐로 남자의 발등을 내리찍었다.남자는 극심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는 팔을 뻗어 심지안에게 귀싸대기를 날리려고 했다.심지안은 남자가 반격할 걸 진작 예상했기에 이미 도망갈 준비를 마쳤다.그녀는 진유진의 팔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는데 몸을 돌리자마자 어떤 남자의 뜨거운 가슴팍에 부딪히고 말았다.“당장 꺼져! 네 몸에 손 쓰는 것도 손을 더럽히는 거야.”성연신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고는 카리스마 있게 심지안을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