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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가람은 초조한 마음에 박정후의 눈치를 볼 겨를도 없이 회사의 비상용 차 키를 들고 앞만 보고 직진했다.

사무실 기온이 뚝 떨어졌고, 마치 엄동설한처럼 싸늘했다.

박정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따라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 괜히 회사 차를 끌고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이라도 잃으면 골치 아프니까.”

조민형은 상사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담긴 걱정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어젯밤에도 느즈막이 연락와서 이정신과 함께 강민석을 ‘잘’ 챙겨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얼굴이 퉁퉁 부은 강민석은 그동안 저질렀던 추잡한 짓거리를 술술 불었고 하나같이 가관이었다.

회사를 벗어난 신가람은 내비게이션에 따라 S시에서 가장 큰 개인 병원, 모아병원으로 향했다.

경비원들은 전부 군인 출신으로 경비가 삼엄했고, 그녀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여보냈다.

신가람은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운 듯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3층에 문이 열려 있는 병실은 하나뿐이고,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서서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자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여기 웬일이지?”

강민석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눈은 호두처럼 퉁퉁 부었고, 험상궂은 얼굴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게다가 이빨이 두 개나 부러진 탓에 어눌한 말투로 협박했다.

“저 빌어먹을 년을... 붙잡아...”

경호원 몇 명이 다가와 신가람을 즉시 포박했다.

장정들을 어찌 여자 혼자서 상대하겠는가? 결국 바닥에 양쪽 무릎을 꿇고 목덜미까지 붙잡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신가람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우리... 엄마를... 어디로 데려간 거죠?”

“젠장, 내가 어떻게 알아?!”

강민석은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중심부를 걷어차인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신가람은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버둥거렸다.

“고집이 장난 아니네? 듣던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이때, 등 뒤로 귀에 익은 오만방자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가람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강정애와 소지율을 발견했다.

소지율은 칭칭 감은 붕대를 풀더니 백옥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팔짱을 꼈다.

강정애를 만난 적이 있던 신가람은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혹시 사모님이 문자를 보내셨어요?”

양팔이 뒤로 꺾인 채 무릎 꿇고 있는 신가람의 모습은 꽤 굴욕스러웠다.

강정애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외모와 달리 사실을 왜곡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맞아. 그게 왜? 내 동생의 인생을 망치고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감옥까지 보내려고 해? 간덩이가 부었나?”

“엄마, 쓸데없는 소리는 생략하시죠? 저년이 외삼촌을 유혹해서 외숙모랑 자칫 이혼하게 했을뿐더러 정후 씨한테도 추파를 던졌단 말이에요.”

소지율이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여 신가람의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보자 펄쩍 뛰었다.

그리고 상의를 끌어 내리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젯밤에 정후 씨랑 잤어요?”

신가람은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부인했다.

“아니요.”

짝하는 소리와 함께 소지율은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터지면서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고, 신가람도 중심을 잃은 나머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하지만 아파할 겨를도 없이 빨개진 눈으로 외쳤다.

“우리 엄마는 어디 있죠?!”

소지율이 냉소를 지었다.

“궁금해요? 그렇지만 알려주기 싫은데? 이 천한 년이! 화를 자초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죽고 싶어 환장했나? 감히 내 남자를 건드려?”

가뜩이나 성치 않은 심장으로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소지율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깜짝 놀란 강정애가 서둘러 의사를 불러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지율아, 우선 진정해. 엄마가 있잖아? 내가 대신 복수해줄게. 남자랑 자는 게 그렇게 좋으면 이번 기회에 질리도록 놀아보라고 하지, 뭐.”

강정애는 손을 들어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이 여자 옆방으로 데려가서 정신 좀 차리게 제대로 교육 시켜.”

남자의 투박한 손이 신가람을 잡아당기며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신가람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눈앞에 나타난 뒤죽박죽 한 형상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았다.

남자들의 손에 끌려가서 무슨 짓을 당할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무용지물이며, 결국 절망에 빠져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옷이 군데군데 찢어졌고, 뽀얀 어깨가 공중에 훤히 드러났다.

병상에 누워 있는 강민석은 남자구실을 못하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입맛을 다셨다.

이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왔다.

신가람은 눈을 가늘게 떴고, 그녀를 옥죄던 속박이 단번에 풀리면서 따뜻하고 넓은 품에 안겼다.

이내 익숙한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었고, 다름 아닌 박정후였다.

그는 신가람을 품에 안고 싸늘한 눈빛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사모님, 제 직원을 함부로 건드린 이유에 관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신가람은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남자의 슈트 단추를 꽉 움켜쥐었다.

“우리 엄마를 데려갔는데 어디 계시는지 못 찾겠어요.”

이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외투를 적셨다.

박정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숙여 퉁퉁 부어오른 반쪽 얼굴을 내려다보자 속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조민형이 연락 와서 강정애가 신가람의 어머니를 모아병원으로 옮겨 갔다고 했다.

그리고 강민석도 2시간 전에 보석으로 풀려나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었다.

감히 대놓고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소씨 가문은 이제 눈에 뵈는 것도 없는지 싶었다.

소지율은 신가람을 껴안고 있는 박정후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정후 씨, 나 심장이 너무 아파.”

이에 박정후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대뜸 품에 안긴 여자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조민형에게 신가람을 맡기고 성큼성큼 다가가 소지율 앞에 멈춰서서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많이 아파? 약은 챙겼어?”

소지율은 남자의 품에 스르륵 기대더니 훌쩍이며 말했다.

“약은 가방에 있어. 나 먹어주면 안 돼? 커피에 덴 손이 아직도 낫지 않아서 힘이 안 들어가.”

준수한 외모의 남자가 싸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강정애를 향해 호통쳤다.

“물 따라줘요.”

강정애는 어안이 벙벙했다. 박정후가 그녀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이 대놓고 부려 먹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딸의 건강이 1순위인지라 물을 따르고 나서 약병을 거꾸로 탈탈 털어 약을 한 알 꺼내 건네주었다. 그리고 소지율에게 약을 먹여주는 박정후의 모습을 지켜보면 내심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됐든 눈앞의 남자는 자기 딸을 좋아하는 게 확실했다.

따라서 신가람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녀는 단지 대가로 가벼운 벌을 줬을 뿐이었다.

신가람은 꼭 껴안은 남녀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박정후의 표정에 심장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아까만 해도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눈앞의 장면으로 인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빛 같은 존재였으나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을 위한 거였다.

신가람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우리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강정애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녀를 보며 불쾌함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하지만 박정후가 지켜보는 앞에서 선을 지켜야 했기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내가 선심을 베풀어서 가람 씨 어머니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겨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헛소리나 지껄여? 우리 사위가 오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사위라는 호칭에 박정후는 고개를 들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소지율은 흠칫 놀라더니 심장이 아픈 줄도 모르고 말했다.

“우리 엄마가 틀린 말 했어? 곧 약혼할 사이인데, 소씨 가문의 사위이자 내 약혼자 맞잖아.”

“내가 얘기했지? 전문의 선생님이 진료하고 나서 다시 보자고.”

박정후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입구에 서서 옷깃을 꼭 쥐고 있는 신가람을 흘끗 쳐다보았다.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얼굴은 온통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다. 빨갛게 부은 두 눈은 분노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정후 씨, 나 완쾌했어. 진짜야.”

소지율이 고집을 부리면서 심장병 약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그의 허리에 꼭 끌어안았다.

박정후는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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