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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소지율은 허리를 배배 꼬며 박정후 앞까지 걸어가서는 손으로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럼 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빨리 와야 해.”

박정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불러 소지율을 데려다주게 했다.

밖으로 나가면서까지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소지율에 신가람도 이번 일이 그녀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증거가 없으니 일단은 혼자 책임져야 했다.

“주 씨 집안은 전 혼처 아니었나.”

하지만 박정후는 신가람이 무엇 때문에 초조한지 바로 눈치채고 물었다.

“이미 헤어진 지 오래예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말을 마친 신가람은 어차피 처리해야 할 일 빨리하는 편이 나으니 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박정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원그룹에 도착한 신가람이 프로젝트 담당자를 찾아가 봤지만 그쪽에서도 난감해하며 말했다.

“사모님, 이 일은 저희가 아니라 시즌즈 호텔에 가서 주 회장님하고 직접 얘기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신가람은 바로 호텔 로비에 가서 물어봤지만 직원은 기다려야만 한다고 답했다.

“오늘 부원그룹 임원분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하시는 건 맞지만 비공개라서 밖에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신가람은 밖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밤이 어둑어둑해질 때가 돼서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들렸다.

김현정과 강정애를 포함한 재벌 집 사모님들이 주얼리를 가득 두르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신가람을 본 김현정이 다른 사람들을 보며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 아가씨가 그때 우리 집에 시집오겠다고 아주 난리를 쳤다니까요. 다행히 강인이가 출국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됐죠. 지금은 여자친구도 사귀고 잘 지내요. 그때 안 그랬으면 저 거지 같은 게 우리 아들한테 붙어서 거머리처럼 안 떨어졌을 거라니까요.”

그에 강정애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망했다던 신풍 그룹 딸이죠? 나도 들은 적 있긴 한데 여기까지 찾아오고, 어린 게 부끄러움도 없나 봐요.”

그 비아냥들을 들으면서도 신가람은 이를 악물고 공손하게 김현정을 불렀다.

“사모님.”

“네가 왜 왔는지는 알아. 그런데 위약금은 한 푼도 양보 못 해. 20억 다 받을 거야.”

의논할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는 김현정에도 신가람은 미소를 지었다.

“전 그냥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이 일은 제가 회장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신가람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던 김현정은 아까의 모욕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고자 새침하게 말했다.

“정말 용서받고 싶은 거면 내 귀걸이나 좀 찾아줄래? 아까 요 앞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그거 찾아주면 내가 우리 그이 대신 해결해줄게.”

아까까지만 해도 두 개던 귀걸이가 지금은 하나만 남아있는 걸 보고 신가람도 김현정이 그냥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까 가방에 넣는 거 다 봤어요.”

“그래서?”

“여사님, 이런 애는 한번 혼나봐야 해요. 얘가 우리 딸 약혼자도 꼬시는 애라니까요.”

그때 옆에 있던 강정애가 거들며 나서자 신가람은 눈을 감았다 뜨며 차분하게 대꾸했다.

“사모님 기분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제가 얼마든지 맞춰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신가람은 플래시를 키고서 “사라진”귀걸이를 찾기 시작했다.

“분수대 안에 있을 것 같은데.”

“아, 저 화단에 있나.”

“하수구에도 한번 봐봐.”

온몸이 젖어버려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신가람은 차갑게 불어오는 10월의 S 시 밤바람에 몸을 떨어댔다.

김현정은 계단 위에 올라서서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달고 하수구 뚜껑을 닫고 나오는 신가람을 보며 말했다.

“신가람 씨, 오늘은 그냥 경고일 뿐이야. 강인이가 돌아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런 방법으로 우리 아들의 주의를 끌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기대 하지 마. 네가 다시는 내 아들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김현정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주강인이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신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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