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후는 신가람을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는 아예 그녀의 속옷까지 벗겨냈다.“그만... 이제 그만 가요.”눈이 부시게 비춰대는 불빛들 때문에 적나라하게 보일 그곳에 부끄러워진 신가람이 다리를 움직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남자친구 있으면 긴장도 풀리고 좋죠.”하지만 의사는 신가람의 마음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하며 그녀를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뒤집으며 샅샅이 살펴봤다.한참 동안 보던 의사는 박정후를 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남자친구가 돼서 여자친구가 아파하면 좀 조절을 했어야죠. 이렇게 거칠게 대하면 어떡해요? 지금 여자친구분 상태가 어떤지는 알아요?”의사의 말에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 신가람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때는 출혈이 조금 생긴 게 전부라 피만 빼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해졌을까 봐 걱정되었다.“CT 찍어야 할까요? 황체낭종파열일 수도 있다던데...”박정후의 말이 끝나자 진료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고요한 침묵 속에서 의아하다는 듯 박정후를 응시하던 의사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그걸 아는 사람이 이렇게 힘을 쓴 거예요? 여자친구가 이렇게 아파하는 걸 꼭 보고 싶었어요? 여자 몸이 아주 약한 존재예요. 그러니까 아껴주셔야 한다고요. 앞으로는 조심 좀 하세요.”“네.”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박정후를 보고 있던 신가람은 몰려오는 수치심에 그냥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그럼 적어도 저런 얘기를 당사자 앞에 두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의사의 권유에 CT까지 다 찍어봤지만 다행히 황체에는 문제가 없고 그저 생리 올 때가 되어서 반응이 격해진 것뿐이라는 진단 결과 신가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의사에게서 염증을 없애는데 좋은 연고와 열이 조금 있는 탓에 해열제를 함께 받은 신가람은 박정후의 겉옷을 걸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깔끔한 정장 차림에 긴 다리를 휘적이며 걷는 박정후는 한눈에 봐도 귀티가 철철 흐르는 외모 탓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까지 풍겨내고
“강인이가 애쓰네.”부드럽게 웃던 이정미는 얼굴이 빨개진 신가람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근데 가람이는 왜 그래?”아까 들어올 때도 안겨있더니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레 묻는 이정미에 신가람이 해명하려고 했지만 박정후가 그보다 더 빨리 답했다.하지만 이유가 좀 급조한 느낌이 다분했다.“길 가다가 실수로 벽에 부딪혔어요.”“네, 앞을 잘 못 봐서...”이렇게 유머러스한 면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박정후의 그 유머에 맞춰야 하는 신가람은 괴롭기만 했다.이정미는 덤벙대는 딸을 나무라면서도 자상한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또 2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너희들도 이젠 어린 나이는 아니잖아. 몇 년만 더 있으면 가람이도 서른인데, 그때 가서 애 낳으면 위험하기도 하고. 아이는 아직 생각 없는 거야?”“엄마, 나 아직 스물다섯이에요.”“스물다섯이면 어리진 않지, 엄마는 스물다섯일 때 너는 집안일도 돕고 그랬었어.”이정미는 신가람을 끌어당기며 나지막이 말했다.“남자도 서른 넘으면 정자 질량이 안 좋아진대. 지금이 적기니까 빨리 애부터 낳아, 그래야 엄마도 살아있을 때 손자 안아보지.”“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또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 이정미에 코끝이 찡해진 신가람이 투덜대자 이정미는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알겠어, 안 할게.”엄마와 얘기할 때는 한없이 고분고분한 신가람에 박정후는 얌전한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이정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사위”로서의 본분을 다했다.신가람은 천하 그룹 대표로서 카리스마 있게 일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럴 때는 또 한없이 싹싹해지는 박정후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고개를 돌리는 박정후와 눈이 마주쳐버렸다.“참... 얘기도 잘하시네요.”“그래?”“한 집안사람끼리 뭘 그렇게 존대를 해? 너무 바빠서 다 까먹은 거 아니야?”둘 사이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는 이정미가 웃으며 말하자 신가람도 들킬까 봐 대충 둘러대며 말을 맞췄
자신은 인형이 아니라 사람인데, 밭도 지나치게 개간을 하면 상하는 법인데 자신한테만 멀쩡하길 강요하는 박정후가 매정해 보였지만 신가람은 이번에도 웃으며 말했다.“네, 다음엔 조심할게요.”그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민형이 머뭇거리며 박정후에게로 다가왔다.“구 박사님께서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둘이 관계를 하고 난 날에도 새벽에 눈을 떠보면 항상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정후를 봐왔기에 신가람은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질병이 있는 건가 의심도 해봤지만 침대 위에서 힘을 쓰는 걸 보면 딱히 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저는 알아서 갈게요.”아무튼 따로 볼일이 있어 보이는 박정후에 신가람은 그의 외투를 조민형에게 건네주며 말했지만 박정후는 돌아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타.”“저 진짜 괜찮아요.”“같은 말 계속 반복하게 할래? 내가 말한 만큼 네가 갚아야 해 좀있다.”조민형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게 차 문을 열었고 그 말에 앞으로 걸어갈 엄두가 사라져버린 신가람은 말없이 차에 탔다.그런데 차에 타자마자 박정후가 가방에서 연고를 꺼내어 신가람에게 던져주었다.“네가 직접 발라.”여기서 연고를 주며 말하는 박정후에 신가람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대꾸했다.“나중에 집에 가서 바를게요.”“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거든, 이걸 핑계 삼아 빠져나갈 생각 중인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은 일찍 접는 게 나을 거야.”사업을 하면서 만나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박정후는 늘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들여다보곤 했다.신가람도 사실 상처만 천천히 아물면 그에게서 며칠은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연고를 바르지 않으려 했었는데 그 희망 또한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상대방에 할 수 없이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치마를 올리고 장갑을 낀 손으로 연고를 펴 발랐다.차가운 연고가 피부에 닿으니 열기가 내려가면서 통증도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박정후는 눈을 돌리지 않고 신가람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몇 년간 박정후의 상태를 옆에서 지켜봐 왔던 구동하로서는 그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그 여자와 계약을 하고 난 뒤로는 조금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 요새는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점점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구동하도 박정후에게 이런 병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여자를 만나고 난 뒤로 이렇게 돼버린 친구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약을 주고 있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병은 관계를 하든지 아니면 정신력으로 버텨내든지 둘 중 하나였다.그리고 만약 관계를 하는 걸 택했다면 주의력도 쉽게 분산되지 않아 그냥 여자만 죽어나는 것이었다.“여자분은 괜찮아? 죽은 건 아니지?”“안 죽었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그럼 다행이고. 이런 병은 다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걸어 다니는 해독제 어렵게 찾은 만큼 소중히 다뤄. 이건 억제제랑 약.”구동하는 말을 하며 가방에서 흰 약들과 두 개의 주삿바늘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적당히 먹어. 너 지금 회복 중이니까 그 정도로도 충분해. 사람이 사람인 건 욕구를 억제할 수 있어서야.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하진 말고.”어떨 때는 정말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에 박정후는 헛웃음을 흘렸다.“아이 생각은 정말 없는 거야? 그런데 왜 소지율 씨한테는 그렇게 잘해줘? 그 집안에서는 너만 좋다고 하면 당장 파티라도 열 분위기던데. 이미 널 사위로 점 찍어둔 집이잖아.”“난 생각 없어.”담담히 말하는 박정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거짓말이 아님을 확인한 구동하가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아주머니 그렇게 되시고 아저씨는 매일 너만 기다리시는데 정말 이러다 제사 지내줄 사람도 없겠어.”“우리 집안에 이어야 할 가업도 없어.”박정후는 대답을 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주삿바늘과 약들을 상자에 넣어두었다.그리고는 바로 전화를 꺼내 들어 금주에서 오기로 한 심장내과 교수에게 연락을 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이러면서 뭘 결혼 생각이 없어.
수신음이 두어 번 울리고서야 받은 상대방은 받자마자 언짢은 듯 화를 내기 시작했다.“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해놓고 일자리를 달라는 거에요 지금?”그 익숙한 목소리에 헛웃음을 흘린 신가람이 대꾸했다.“소지율 씨, 뒤에서 사람 조종해서 이런 일이나 꾸미고, 재밌어요 이러면?”신가람의 말에 상대방은 당황한 듯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날 제 사무실에 다녀간 사람들 중에 소지율 씨랑 하지영 씨가 있어서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는데 오늘 홍보팀에서 추적해낸 IP가 하지영 씨 핸드폰으로 나오더라고요.”신가람은 소지율이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알았지만 박정후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회사인 천하 그룹에 손을 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전화 한 통이 뭘 증명할 수 있다고 이래요? 그리고 내가 정후 씨한테 한마디만 하면 정후 씨가 나를 믿을까요 아니면 가람 씨를 믿을까요?”소지율을 그렇게 아끼는 박정후라면 이 일을 더 따지고 들려 하진 않을 것 같았다.누구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러운 일에 휘말리는 건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소지율의 맞는 말에 신가람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통화는 바로 끊겼다.하지영도 핸드폰을 낚아채고 자리를 벗어났지만 소지율은 그렇다 쳐도 하지영은 회사 일원으로서 기밀을 누출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그날 오후에 바로 경찰에게 넘겨지게 됐다.그런데 하지영은 끌려가면서도 발버둥 치며 말했다.“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 나도 다 누가 시켜서 한 거라고요...”그 진술은 당연히 박정후의 귀에 들어갔고 박정후는 신가람의 예상대로 소지율이 엮이는 걸 막기 위해 조민형에게 당부했다.“가서 내 말 전해. 경찰 조사받을 때 입 함부로 놀리면 영원히 S 시에 발 못 붙이게 만들 거라고.”그 말을 들은 신가람은 답답한 가슴과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박정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곧바로 조민형이 그 방을 나서자 박정후는 신가람을 보며 물었다.“아직 아파?”“네, 조금요.”“그럼
하지만 신가람의 몸도 빠르게 달아올랐고 그녀도 박정후를 원하게 됐다.그때 박정후의 핸드폰이 울려왔다.박정후는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끊겼다가도 다시 울리는 핸드폰에 신경질적으로 확인했는데 발신자가 소지율인 걸 보고 그는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았다.“정후 씨, 며칠 전에 의사가 와서 약 처방해주고 갔는데 이거 너무 써서 먹기 싫어.”소지율의 목소리가 신가람의 귀에도 들려오자 그녀는 몸을 떼어내려 했지만 이미 박정후의 것이 깊숙이 들어와 있어 다리가 후들거려서 힘을 주는 게 쉽지가 않았다.그래서 신가람은 베개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은 채 시트를 꽉 깨물며 자신의 신음소리가 소지율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몸에 좋은 약은 다 써, 얼른 먹어.”박정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마친 뒤 못 참겠는지 몸을 움직였다.그에 신가람의 입에서도 야릇한 소리가 튀어나왔고 그 소리를 들은 소지율은 다급히 물었다.“정후 씨 지금 뭐 해?”“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소지율을 대충 달랜 박정후는 거칠게 전화를 끊어내고 소지율의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박정후에게 허리가 잡혀버린 신가람은 몸에 힘이 다 빠져 흐물흐물해질 때가 돼서야 만족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욕구를 다 풀어내고 난 박정후의 눈가는 여전히 빨갰다.신가람이 처음 그와 잠자리를 가졌을 때는 박정후를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하며 보수적이었던 그녀로서는 이런 강압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3년 동안 그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다 못해 그 속에서 알아서 흥분까지 하고 있었다.“어때?”일을 마치고 난 박정후는 다시 원래의 그로 돌아온 것처럼 차갑게 물었다.그에 신가람은 다리를 움직여 보다가 말했다.“다리에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아요.”“안 아프면 됐어. 이거 그래도 꽤 유용한 약이니까 앞으로는 하기 전에 알아서 발라.”박정후의 말에 놀란 신가람이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자 박정후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
박정후는 흥분한 소지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말했잖아, 네가 잘못 들은 거라고.”전에 있던 온화함 밖으로 서리가 낀 듯 차가운 눈동자를 보며 박정후가 저를 싫어하게 될까 두려워진 소지율은 신가람 때문에 박정후와의 약혼을 망칠 수는 없어 다시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좀 예민해졌나 봐. 미안해, 정후 씨. 근데 나는 항상 정후 씨랑 결혼하고 싶었어. 그건 정후 씨도 알잖아.”소지율의 고백에 박정후는 그녀를 천천히 떼어냈다.“이건 무슨 뜻이야?”“다들 내가 정후 씨 여자친구인 줄로 알아. 정후 씨가 나한테 잘해주는 거, 그거 나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지율아, 나한테 넌 가족 같은 존재야. 몸도 안 좋은데 약혼은 서두르지 말자.”박정후의 말에 상처받은 소지율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래, 나 수술한 적 있어. 교수들도 뭐 이런저런 위험 있다고 다들 조심하라고 하는데 몇 년 동안 나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 사람들이 전부 헛소리하는 거라고!”박정후는 온화한 말투로 소지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지율아, 고집부리지 마.”그에 소지율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신가람을 욕했다.소지율은 남자가 없으면 죽기라고 하는지 감히 박정후를 꼬시는 신가람을 위해 특별히 남자 하나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한편 오피스텔로 돌아온 신가람은 바로 라면을 끓여서 먹으려고 하는데 그때 또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역시나 국제전화였지만 별생각을 하지 않은 신가람은 저도 모르게 전화를 받아버렸다.수화기 너머에서 호흡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가람이 전화를 받을 줄 몰랐어서 당황한 상대방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누구세요? 말씀 안 하시면 전화 끊겠습니다.”“가람아...”그 목소리에 신가람은 깜짝 놀라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렸고 라면 그릇은 엎어지면서 신가람의 발등으로 떨어져 발등이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그녀는 아픈 것도 못 느끼는지 제자리에 주저앉아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주강인, 정말 주강인이었다.그때 저를 버
“넌 왜 온 거야?”박정후는 신가람의 손이 스치기만 해도 크기를 부풀리는 자신의 것을 바라보며 구동하에게 물었다.“실험기구가 좀 필요한데, 투자해줘. 다음 주에 써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이딴 식으로 투자받는 거 나한테나 통하지, 다른 사람이었어 봐. 너 진작 두들겨 맞고 쫓겨났을 거야.”구동하는 팔짱을 풀고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돈도 안 받고 개인 연구원 노릇도 해주는데, 이 정도도 못 바라냐? 그럼 어제 줬던 약 내놔.”“투자할 테니까 약 더 만들어와.”가장 빠른 방법으로 투자금을 확보한 구동하도 흔쾌히 답했다.“당연하지, 근데 효과는 어땠어? 후기 좀 풀어봐. 나도 어딜 개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그런 개인적인 얘기를 할 리가 없는 박정후는 그냥 좋다고만 얘기했고 구동하도 굳이 묻지 않고 떠오르는 광고멘트를 날려주었다.“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좋은 거네.”그때 새 정장 바지를 찾아낸 신가람이 방으로 들어오자 박정후는 집요하게 따라오는 구동하의 시선을 느끼고는 당장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나가.”오래된 친구라 그런가 돌려 말하는 것도 없이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의사 표현이었다.“정 없는 사람들은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도 네가 원탑이야. 그래도 몇십 년 친구한테 그게 뭐냐.”구동하는 신가람을 향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나한테도 이러는 데 직원한텐 오죽하겠어요. 혹시라도 얘가 괴롭히면 절대 참지 마요.”“직원들한텐 잘해주세요, 괴롭힌 적 없으십니다.”“외할아버님이 한의학계의 전설 같은 존재시던데 가람 씨도 옆에서 보고 들은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새로 하는 프로젝트에 혹시라도 관심 있으면...”당당하게 사장 앞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구동하에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박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직도 안 갔어?”박정후가 신가람에 대한 마음이 단순히 파트너에 대한 것은 아님을 보아 낸 구동하는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정적이 맴도는 사무실에서 고개를 돌려본 신가람의 눈에 풀어